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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10

한국의 엔진이었던 구로공단에 대한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의 가리봉오거리 전시회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첨한 전쟁 중 하나였던 한국전쟁 후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유엔과 미국의 원조로 겨우 겨우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무능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자신의 장기 집권에만 집중하고 나라 경제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한국의 경제발전이 북한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웁니다. 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원래 계획대로하면 제2공화국인 민주당에서 시작하려고 했느나 1년 짜리 정권이었던 제2공화국은 썬글라스끼고 탱크를 몰고온 박정희 소장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이후 박정희 소장은 대통령이 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거대한 폭풍 성장을 합니다. 마치 성장판 열린 청소년.. 2015. 5. 8.
달빛처럼 은은한 빛이 나는 책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런 타박은 독자들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내 소설을 읽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가라앉아 평상심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즐거운 이야기는 쓸 계획이 없다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상하네. 내가 쪽지처럼 숨겨둔 유머들은 왜 발견되지 않는 거지? 속이 상하고 그랬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글쓰기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그쪽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신경숙의 소설은 잔잔한 슬픔과 깊은 슬픔이 있다. 신경숙의 소설은 다 읽고 나면 슬픔은 한 입 베어 문듯 하다. 그 슬픔의 느낌이 내 영혼을 얼얼하게 만들고 한 동안 깊이 깊이 뒤척이고 사색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신경숙의 글을 읽다 보면 작가와 함께 호흡을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 2013. 11. 4.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구로공단노동자 생활체험관' 집근처에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를 자전거를 타고 가끔 갑니다. 가면 금천구나 구로구답지 않은 거대한 빌딩숲을 보면서 약간의 현기증도 느껴집니다. 저 거대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도 함께 거대한 빌딩의 이질감과 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대한 이질감도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두 디지털단지에서 근무하는 사람 대부분은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기 떄문입니다. 금천구민도 구로구민 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살면서 출퇴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가산디지털단지는 섬과 같아 보입니다. 일만하는 섬, 아니 구로공단의 21세기 버젼이죠. 외형적으로는 큰 성장과 깨끗한 건물을 보면서 공단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사라졌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은 21세기 공순이, 공돌이 같은 느낌도듭니다... 2013. 5. 8.
세계 공통단어 엄마에 미국이 흔들리다. 엄마를 부탁해 열풍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었을 때 그 뛰어난 묘사력과 감수성에 흠뻑 빠졌습니다. 등단때 부터 전 이 정읍출신의 신경숙에 푹 빠졌죠. 신경숙이 첫 장편을 쓸때도 한달음에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 들었습니다 깊은 슬픔. 이 책을 군대에서 읽으면서 많이 우울했던 기억이 나네요. 신경숙은 한국 문학계를 지탱하고 있는 여류작가입니다. 그녀에 대한 비판도 참 많죠. 먼저 신경숙은 뛰어난 언어묘사력 마치 시와 같은 아름다운 언어들과 묘사력은 탁월하지만 서사가 무척 약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보다 서사는 좀 약한편이죠. 그녀의 글쓰기는 대부분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판속에서 나온 책이 바로 '외딴방'입니다. 이 외딴방도 그녀의 학창시절 부터 현재까지 .. 2011. 4. 7.
공지영, 그 많던 안티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386 운동권의 현장감을 쉬운 언어로 쓴 작가 공지영 90년대 초는 386세대라고 불리는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의 선배들이 지나간 후였습니다. 90년대 초는 노태우 정권에서 93년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권이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이 때도 지금보다 대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했지만 대학생 시위의 정점은 87년 6.10 항쟁이었습니다. 마치 2008년 촛불시위가 1백만명이 광화문에 모인 6월10일 이후 촛불시위는 계속되었지만 점점 사그라드는 촛불과 같았죠. 치열했던 시위문화를 간접화법으로 배우던 시기였습니다. 87년 때는 전국의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했지만 90년대 초는 일부 대학교만 시위를 했습니다. 제가 몇년만 더 일찍 대학교에 갔다면 저도 386세대라고 불리면서 그 치열한 사회의 생체기를 .. 2011. 2. 10.
유명 소설가들이 포털과 인터넷 서점에 공개연재하는 이유 이해가 안갔습니다. 유명작가인 공지영이 포털 다음에서 '도가니'라는 소설을 연재할 때만 해도 이해가 안갔습니다. 아니 소설을 저렇게 만인에게 공개하면 누가 사서보나? 아니 소설책으로 낼 생각없이 다음과의 계약으로 글을 쓰나보네? 이제는 소설도 웹툰처럼 공짜시대가 되었구나 하고 좋아 했습니다. 포털이 인세를 주고 독자는 공짜로 보고 공짜 책시대가 도래했구나 좋아했죠. 그러나 제 예상은 틀렸습니다. 도가니라는 지방도시의 거대한 짬짜미를 고발한 소설이 오프라인인 소설로 나오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응? 뭐야. 다음에서 다 연재한걸 책으로 낸것도 이상한데 그걸 또 사서보는 사람이 저렇게 많어? 이런 풍경은 낯설었습니다. 이후 신경숙이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느 소설가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소설 하나를 연재했습.. 2010. 10. 13.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부자동네 평창동에 가다 지금은 10대 아이들을 위한 하이틴드라마가 없습니다. 하지만 80년대는 인기 하이틴 드라마들이 많았어요. 최수종. 최수지. 이미연. 최재성. 손창민. 이상아등이 나온 KBS의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정말 인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스타지만 당시 이미연은 남학생들의 로망이었습니다. 학교가 대방동에 있었는데 가끔 KBS에서 주택가 야외촬영을 하기 위해 학교앞에서 야간촬영을 할때가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야간자율학습을 땡치고 그 촬영장면을 구경하러 몰려 나가곤 했었어요. 여의도와 5분거리도 안된다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대방동은 드라마 촬영장소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만 못하더군요. 요즘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한 곳은 종로구 평창동입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죠 영화 빈집. 바람난 가족과 드라마 .. 2010. 3. 8.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준책 엄마를 부탁해 저를 만든 2할은 소설가 신경숙이 만들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저의 감성의 대부분은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군 시절 견디기 힘든 사실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술을 진탕 마시고 하늘에 주먹질을 할 수도 친구와 여행을 갈 수도 또 다른 만남을 할 수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슬픔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스팸처럼 뿌려 되는 게 전부였죠.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러다 신경숙 씨의 신작 소설인 깊은 슬픔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빠지면서 서서히 서서히 이별의 아픔이 치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료된다는 그 한 구절에 극한의 슬픔을 들이마시고 슬픔에 질려버리면서 치료가 되었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로 익.. 2009. 10. 26.
인기작가 신경숙을 있게 했던 풍금이 있던 자리 92년 겨울 사랑의 열병을 앓고서 매일밤 그 열병에 원치도 않던 새벽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새벽에 하는 라디오들은 모두 서정적입니다. 신체적 화학변화도 있지만 조용한 창가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우주까지 생각을 날려보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우주까지 생각이 날아가도 사랑만큼은 우주도 해결못해주는 일이더군요. 지독한 외사랑을 하고 있던 겨울밤 상처로 앓고있던 나에게 위안이 되주던것은 새벽라디오였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한 단편소설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소설의 이름은 듣지못하고 듣기 시작한 이야기 그게 소설을 읽어주는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1주일동안 계속된 낭독이 끝난후 소설의 이름을 알려주더군요. 그 소설은 바로 신경숙씨의 풍금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 긴긴겨울 외사랑을 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2009. 6. 5.
신경숙의 부석사를 읽고 신경숙을 만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90년대 초라고 하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그런가보다 라고 말할뿐. 그녀의 화법과 한숨을 길게 내쉬듯 소곤소곤 말하는 주인공들을 얼마나 읽고 동경하며 같은 호흡으로 몇일을 살았던적도 있는데 그만큼 나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몇배 확장시켜준 소설가이다. 그 10년동안 그녀의 장점도 보았고 그녀의 한계도 보았다. 그동안 그녀의 삶을 각혈하듯 쏟아낸 소설들을 읽으면서 일본의 사소설을 쓰는건가? 그 긴 사소설적인 흐름은 외딴방에서 출혈을 멈추었다. 숨기려고만 했던 그녀의 과거를 그와 같이 영등포여상의 친구의 전화 한통으로.. "넌 우리 얘기는 안쓰는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숙의 대표작은 '풍금이 있던 자리'이고 어느것보다 소중한 소설은 '외딴방'이다.. 200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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