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을 만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90년대 초라고 하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그런가보다 라고 말할뿐. 그녀의 화법과 한숨을 길게 내쉬듯 소곤소곤 말하는 주인공들을 얼마나 읽고 동경하며 같은 호흡으로 몇일을 살았던적도 있는데
그만큼 나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몇배 확장시켜준 소설가이다.
그 10년동안 그녀의 장점도 보았고 그녀의 한계도 보았다.
그동안 그녀의 삶을 각혈하듯 쏟아낸 소설들을 읽으면서 일본의 사소설을 쓰는건가?
그 긴 사소설적인 흐름은 외딴방에서 출혈을 멈추었다. 숨기려고만 했던 그녀의 과거를
그와 같이 영등포여상의 친구의 전화 한통으로..
"넌 우리 얘기는 안쓰는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숙의 대표작은 '풍금이 있던 자리'이고
어느것보다 소중한 소설은 '외딴방'이다.
사소설적인 애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뒤늦게 지켜본것 같은 이웃집 누나같은 느낌이 드는건
내가 너무 깊이 그녀의 문학의 울타리에서 길들여진듯하다.
작년에 '바이올렛'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신경숙의 소설의 화자는 여리고 맑고 쉽게 상처받고
타인과의 관계설정에서 힘들어함을 느낀다.
부석사.. 이 단편소설은 그전의 작품들과 좀 다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상처받은 주인공 둘이 나오는건 있지만 그렇게 저 심연의 바닥까지 그 상처를 가져
가지 않는다.
그녀와 그 두 사람은 각각 P와 K에게 상처를 깊게 베인다.
우연히 동네 뒷산 덫밭에서 상추서리를 하다 만난둘은 서로에게 좀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풍경으로 지낸다. 누구나 다 상처받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가기 힘들다
사랑에 대한 상처의 극복법중 하나가 하나의 사랑이 떠나가면 다른 사랑하나로 치환하라고
말하지만 영혼의 울림까지 가지 못한 사랑이나 그렇구..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함이라기보단 만나가 싫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두 주인공은 1월1일 황량한 숫자의 연속인날에 부석사로 가기로 약속을 정한다.
부석사에 실로 밑을 지나가면 공중에 떠 있는 돌을 확인하기위해서
하지만 그녀와 그는 결국 가지 못하고 길을 잘못들어 낭떠러지에 두 바퀴가 뜬채 멈처선다.
그의 친구인 피디란 사람이 모질게 버렸던 강아지를 그녀는 말없이 주서다가 키운다.
개에게 스스럼없이 따슷하게 옷을 덮어주는 그의 모습에 버려진 개를 키우는 그녀를 보면서
둘은 서로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낀다.
얘전에 신경숙 소설에 어떤 상처들의 나열이였다면 이소설은 그 치유과정까지 그려놓았다는게 달라진걸까?
내 기억으론 그렇다. 그전의 소설이라면 상처가 있고 봉합하고 원천적인 해결은 안한채로 끝맺음을 했다. 하지만 이 소설 부석사에서는 치료를 넘어 다른 희망을 제시하는 모습이 달라졌다면 달라졌다.
요즘은 공지영 작가가 너무 잘나가지만 공지영의 글체가 전투적이고 남성적이라면
신경숙은 소녀적이고 여성적이다. 그래서 난 우울한날엔 신경숙의 글이 좋고 햇볕 가득한 창가에선 공지영글이 어울릴듯하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다 쓰러져가는 한국소설계의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http://www.yes24.com/event/00_Corp/2008/0407BlogFestival_Info.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