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는 다시는 이런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 바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념 전쟁이 시작됩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진 100장 중 5편입니다.
유진 스미스는 2차 세계대전을 사진으로 기록한 뛰어난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시골의사'사진 시리즈를 촬영합니다. 유진 스미스는 23일 동안 콜로라도 크렘링 있는 '어니스트 세리아니 의사'와 함께 2천 명이 사는 농촌에서 활동을 기록합니다.
이전의 사진들이 1장의 사진으로 승부했다면 이 '시골 의사'는 1장이 아닌 여러 장의 사진을 붙여서 소개한 연작이었습니다. 연작 사진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에세이입니다.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케네디와 약혼녀인 재클린이 요트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젊음과 넥타이플 푼 자유로운 정치인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크게 부각됩니다. 케네디의 젊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됩니다. 무적 불패의 슈퍼맨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미국인들은 자부심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국인의 이미지를 깨버리는 사진을 스위스에서 온 '로버트 프랭크'가 촬영합니다.
위 사진은 전차에 탄 미국인들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앞칸에는 백인이 타고 있고 뒷 좌석에는 흑인들이 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미국이고 이게 미국의 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흑백 갈등이 심했습니다. 이 사진은 그 유명한 흑백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던 '몽고메리 버스 사건'이 일어나기 몇 주 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 미국인들인 뭔가 지쳐 있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아메리칸이라는 사진집 표지로 사용했지만 미국인들이 미국인을 추하게 담았다면서 분노하게 되었고 결국 5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메리칸이라는 사진집은 미국인들을 객관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패션 사진가의 대부인 '리처드 아베든'은 패션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올린 사람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패션잡지등리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하퍼스 바자의 의뢰를 받은 '리처드 아베든'은 서커스단 코끼리와 모델을 배치합니다. 여성의 곡선과 코리끼의 곡선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진이자 놀라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사진이 아닙니다만 미국 흑인들은 아주 잘 아는 사진입니다. 1955년 8월 시카고 출신의 흑인 14살 소년 에멧 틸은 미시시피에 사는 할머니 집에 방문합니다. 식료품 가게에 간 틸은 백인 여성인 식료품 주인에게 농담을 합니다. 이에 여주인은 남편에게 흑인 소년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했고 남편은 남동생과 함께 4명이서 흑인 소년을 집단 구타를 하고 강에 버립니다. 범인들은 잡혔지만 백인 판사는 무죄 석방합니다. 이 사건은 흑인 해방 운동의 도화선이 됩니다.
카메라는 우리 눈보다 광학 성능이 떨어지지만 몇몇 기능은 우리 눈보다 뛰어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주 빠른 셔터스피드로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담는 겁니다.
MIT 대학 교수인 헤롤드 에저튼은 MIT 실험실에서 사진의 미래를 바꿀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 고민 끝네 나온 것이 최첨단 스트로브 조명과 카메라 셔터 모터를 결합해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담았습니다. 위 사진은 우유 방울이 떨어지면서 만드는 왕관 모양을 담은 사진입니다. 수십 년 전에 한 국내 우유회사가 이 왕관 모습을 CF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의 셔터스피드는 1/10,000초입니다. 고급 DSLR이 1/8,000초까지 지원하는 요즘은 이런 사진을 촬영하기 쉽지만 당시는 빠른 셔터스피드를 낼 수도 없었고 이 짧은 노출 시간에 강한 빛을 쏴주는 스트로브도 없었던 시절인데 MIT 실험실에서 만들어 냈네요.
혁명가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체 게바라'이고 그 '체 게바라'는 이 사진으로 상징됩니다. 이 사진은 촬영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가 7년 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죽은 '체 게바라'가 죽자 세상에 공개되었고 지금은 혁명가의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성공한 미국인의 표상 같은 사진이네요. L.A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통유리로 된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이게 바로 성공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잡지사에서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그 디자인으로 그대로 건축한 후 집주인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아주 모던하고 세련된 집을 건축 사진가인 '줄리우스 슐만'이 촬영합니다. 건축 사진의 전설로 불리는 사진입니다. 그러나 사진만 잘 나왔지 실제 집은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군과 소련은 베를린을 분할 점령합니다. 1949년부터 1960년까지 약 250만 명의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서 동베를린을 탈출합니다. 이런 탈출 흐름에 동독 지도자는 1961년 8월 초에 철조망과 콘트리트 블록 장벽을 만들어서 이들의 탈출을 막기 시작합니다.
19살의 동독 국경 수비대인 한스 콘래드 슈만은 갇혀 있는 생활을 하기 싫다면서 갑자기 바리케이트로 달려왔고 철조망을 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자유진영 세계에서 얼마나 공산주의가 싫으면 군인까지 탈출하냐면서 선전 사진으로 많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의 무게 때문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슈만은 1998년 자살을 합니다.
1960년 아프리카에 있는 말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합니다. 196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젊은 커플이 서양 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말리의 독립과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진일 수 있지만 이 사진은 90년대에 서양 세계에 알려지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낙후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아닌 서양인들과 똑같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난하고 못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진입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사진 100장 1편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사진 100장 2편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사진 100장 3편
타임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높은 사진 100장 4편
출처 : http://100photos.ti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