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경주에 여행을 갔었는데 아직도 여행 포스팅을 다 끝내지도 못했네요. 여행의 시작 부분만 열어 놓고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여행기를 뭐 거창하게 쓸 것은 아니지만 나름 정보도 넣고 여러가지 느낌도 녹여서 쓸려고 했더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똥이 되어가고 있네요. 아끼면 똥되는 것은 포스팅도 마찬가지네요.
에서 이어지는 포스팅입니다.
신라는 거대한 고분이 많아서 곡선이 참 많은 도시입니다. 대릉원도 왕의 무덤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대릉원을 둘러보고 나온 후에 첨성대로 향했습니다. 저는 대릉원을 후문으로 들어 갔다가 후문으로 나왔고 그게 후문인지도 모르고 첨성대 근처에 와서야 정문을 발견 했습니다. 신라의 미소가 벽에 그려져 있네요. 그려진 것 보다는 누가 찍어낸 듯 합니다. 신라의 미소이자 LG전자의 로고인 수막새입니다.
대능원의 곡선을 따라서 첨성대로 향했습니다.
대능원??? 대릉원도 아니고 어떤 표기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대릉원이 맞겠죠.
대릉원 앞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있습니다. 하루에 1만 원 안쪽으로 빌릴 수 있는데 여자 분들은 자전거로 돌아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상당히 많이 걷게 되는 것이 경주 시내 여행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 경주국립박물관,월성, 황용사지, 분황사 등을 돌아 볼 수 있습니다. 불국사는 버스를 이용해야 하고요
변압기에 있는 지도를 보면서 동선을 체크 했습니다.
첨성대, 계림, 월성, 최씨고택, 향교, 경주박물관, 안압지, 황룡사지, 분황사 찍으면 되겠네요.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지도 어플로 보니 그냥 열심히 걸으면 다 돌아 볼 수 있겠더라고요. 남자 걸음으로는 하루에 다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이 두 다리로 많이 다니는 걷는 것이 일상인 분들이야 걷는 것이 좋지만 걷는 것 질색인 분은 이 비단벌레 차를 이용하면 됩니다. 코끼리 열차 비슷한 것인데요. 이 비단벌레차가 제가 여행한 2월 말에는 테스트 운행 중이었고 3월 부터 개통 했다고 하네요. 주요 관광지를 이동하는데 자전거가 싫은 분들은 이 비단벌레 차를 이용해도 괜찮을 듯 하네요
비단벌레는 장신구와 많이 만들어졌는데 비단벌레의 날개를 이용해서 만듭니다. 엄청나게 많은 비단벌레의 희생이 필요하겠네요
첨성대로 향하는데 저 멀리 또 고분이 보입니다. 정말 경주는 고분의 도시에요. 왕들의 무덤 또는 귀족들의 무덤들ㅇ 가득하네요.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곳도 있고 도굴된 곳도 있고 누구의 묘인지 모르는 곳도 있고 아직도 계속 무덤들의 주인을 찾고 있다고 하네요. 저 고분은 '신라 내물왕릉' 고분 앞에 있는 고분입니다.
첨성대입니다. 수학여행을 오면 누구나 배경으로 찍어야 하는 사진 명소죠. 첨성대는 입장료가 있습니다. 500원 인데 들어갈 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밖에서도 다 보이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긴합니다만 좀 더 가까이서 담고 싶어서 들어갔습니다.
입구에는 작은 기념품을 파네요. 어렸을 때 삼촌이 수학여행 갔다 온 기념으로 받은 그 기념품이 아직도 파네요.
첨성대는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답은 아니고 여러가지 설이 있어요.
첨성대는 큰 벌판에 우뚝 서 있는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나무도 숲도 없기에 별을 관측하기 아주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대기 오염도 없고 조명도 없어서 평지에서도 별을 깊고 오래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천문대하면 조명과 공해를 피해서 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첨성대는 둥근 원형과 꼭대기는 4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원과 사각이 잘 어우러진 조형물입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조형미도 아주 뛰어나죠. 뭐 화려함은 없지만 투박함도 아름다움 중 하나 이기에 그런 투박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첨성대의 벽돌은 362개입니다. 이 벽돌의 갯수 때문에 이 첨성대가 천문의 움직임을 관측해서 1년을 계산한 도구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첨성대는 바로 옆 월성 옆에 있어서 천문 관측한 내용을 빠르게 왕에게 보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월성은 신라시대의 궁궐이 있던 곳인데 생긴 것이 초승달 같이 생겼습니다.
앞에는 강이 있어서 헤자 역활도 했고요.
첨성대는 천문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고 우리는 거의 믿고 있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해시계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림자 길이를 보고 계절과 시간을 관측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첨성대 안에 들어가서 사람이 별을 관측하기에는 좀 좁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첨성대 안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답답하고 좁아 보입니다.
우주 우물이라는 소리도 있고요. 우주와 신라의 채널링 도구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선조들은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운 것이 많아서 뭐든 이해가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 무조건 부처님과 하늘을 올려다 봤을 것입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진데요.
우연이 몇 번 반복되면 신의 뜻이구나! 라고 우리는 생각하잖아요.
경주는 이 고분 보는 즐거움이 아주 좋네요. 계속 줌을 하면서 담아 봤습니다.
정말 여행은 날씨가 좋아야해요. 흐린 날이 운치가 있다고 해도 그건 매일 나다니는 곳에서나 운치지 오랜만에 혹은 처음 가는 곳의 풍경이 이렇게 우중충하면 기분도 우중충해집니다.
하지만 하늘의 구름 떄문에 직사가 아닌 확산광이 펼쳐졌고 굴곡이 많은 이 오래된 나무의 세월의 더께가 잘 도드라지네요
첨성대를 지나서 한 200미터만 가면 계림이 나옵니다
계림은 고목들이 참 많았습니다. 신라시대 부터 자라온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그러고보면 나무는 1천년도 사는 대단한 유기체입니다)
나무 하나하나가 예삿 나무들이 아닙니다.
계림은 작은 숲이예요. 숲이라고 하기에도 작은 그냥 집 주변의 작은 공원 같은 느낌입니다. 계림 안에는 작은 정자가 있네요.
아니 정자가 아닌 비석 집이라고 할까요? 안에 비석을 품고 있습니다.
계림은 김알지의 설화가 깃든 곳입니다.
닭이 우는 숲이라는 계림은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태어난 곳입니다. 신라는 김씨가 왕이 계속 된 나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신라의 시조는 '박혁거세'입니다. 박씨와 석씨 김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을 했는데 김씨가 처음 왕이 된 것은 13대 미추왕 때 부터였습니다. 그 미추왕의 조상이 바로 김알지입니다. 이후 김씨가 세력을 키워서 박씨 석씨를 밀어내고 김씨가 계속 왕의 자리에 이어갑니다.
박씨, 석씨, 김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을 한다? 참 재미있는 시스템이네요. 김알지는 김씨의 시조입니다.
신라 4대왕인 석탈해왕 때 어디선가 닭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음 날 닭이 우는 숲으로 찾아갔는데 닭이 날아가 버린 자리 위 나무에 금상자가 달려 있었습니다. 금상자를 내리자 온갖 새들이 춤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상자 안에는 사내 아이가 있었고 석탈해 왕은 그 아기 이름을 금상자에서 태어난 아기라는 뜻으로 금알지로 지었습니다.
지금은 김알지라고 부르고 김씨 성이 유래가 바로 금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설화이기 때문에 100% 뻥입니다. 하지만 역사 시대라도 이런 뻥들이 있어야 우민들에게는 먹어줍니다. 뭐 20세기에도 두만강을 낙엽타고 건넜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요. 어 그러고보니 그분도 김씨네요
알에서 태어나고 금상자에서 태어나고 아무튼, 탄생부터 요란하고 호화스러워야 숭배할 맛이 나기 때문에 뻥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 탄생신화와 설화입니다.
계림은 이 고목들이 아주 많습니다. 마치 지팡이를 집고 있는 노인 같은 나무도 있습니다.
나무는 물푸레 나무, 홰나무, 휘추리 나무, 단풍나무 등의 약 100개의 고목이 가득한 계림입니다.
봉두난발 그 자체네요. 김알지는 북방 민족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돌무지 덧널 무덤 양식이나 여러가지 풍습들이 북방 기마민족과 상당히 유사하고 따라서 김알지가 북방민족인데 신라로 내려와 토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흉노족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여러 고찰에 따르면 분명 신라는 북방민족의 영향을 받았고 상당히 먼 곳까지 교역을 했었습니다.
박씨 석씨는 남방 계열 즉 인도 아랍계에서 왔지만 김씨는 북방 계열이라는 소리가 있는데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북방 민족이면 어떻게 남방 민족이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현재죠.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는 일본의 왕족은 백제 후손이라는 소리도 있고 실제로 일왕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밝히기도 했잖아요.
계림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요. 이 건물은 조선 순조 3년 (1803년)에 김알지 탄생 기념비를 품고 있습니다.
돌담이 아닌 흙담이지만 조선의 왕이 왜 김알지 탄생지에 대한 비석을 세웠을까요?. 경주 여행기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