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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한국여행

경주 향교, 경주 교촌마을 그리고 경주 최부잣집 그리고 박정희

by 썬도그 201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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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집니다. 


유서 깊은 지방 도시에 가면 꼭 있는 것이 향교입니다. 향교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립학교입니다. 나라에서 세운 공립 기관이교 서원은 사립 교육기관입니다. 경주 항교는 서기 682년 신라 신문옹 때 국학을 세운 뒤 고려,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교육기관입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시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라시대의 맞배지붕 건물이 가득하네요. 건물 지붕 형태만 봐고 그 건물이 조선시대 건물인지 그 이전 건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책을 엎어 높은 듯한 맞배 지붕은 고려 이전의 지붕 형태고 조선시대에는 팔짝 지붕이라고 청와대의 그 지붕 형태로 바뀝니다. 팔짝 지붕이 4방향 모두 기와 처마가 드리워져 있어서 더 품위 있게 보이죠



경주 향교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인지 아닌지 몰라서 머뭇 거렸습니다만 일단 들어가보고 쫒겨나도 쫒겨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들어가니 개가 반겨 주던데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전주 향교에 비해서는 고풍스러운 맛은 없네요. 2년 전에 갔었던 전주향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을 정도로 옛 냄새가 물씬 풍겼고 아름드리 거대한 은행나무와 판소리가 들려서 아주 그윽 했습니다. 

그러나 경주 향교는 그런 고풍스러운 느낌 보다는 정갈한 느낌입니다. 또한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서 좀 을씨년스럽기도 했어요. 아무도 이른 오전시간이고 흐린 날씨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위 건물은 명륜당입니다. 



명륜당 뒷쪽에는 '존경각'이 있었습니다 아마 서재가 아니였을까 하네요



명륜당 뒤쪽을 거닐다 보니 국궁장이 있네요. 


옆 건물은 향교가 아닌 일반 주택인데 경주 교촌 마을 같습니다



흙담이 참 정감있어 보이지만 꽃담은 아니네요. 꽃담이 참 예쁜데요


경주 향교 곳곳의 문이 닫혀 있어서 조금만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문이 개방 되었다면 좀 더 자세히 보다 올텐데 닫혀 있는 모습에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딱히 더 보고 싶은 곳도 없어서 그냥 둘러 나왔습니다.


나오니 월정교 복원사업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뒤에 긴 묘한 건물이 보입니다


월정교는 신라시대 때 지어진 다리인데 지금 복원 공사를 하고 있네요. 경주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미소2'에서 저 월정교에서 선덕여왕인 덕만과 화랑의 슬픈 헤어짐이 있었어요. 

다리가 정말 신기하네요. 지붕이 있는 다리는 첨이예요. 저렇게 긴 다리 중간에 평상을 마련하면 바람 쐬기에도 좋긴 하지만 문제는 주변에 볼 경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다리 역할만 하는데요. 저 다리를 건너도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복원의 의미 이상은 없습니다. 이 다리를 복원하는데 지금까지 200억 원이 들어갔고 문루 까지 지어지면 공사비는 더 올라갑니다. 밤에는 야간 조명으로 그 빛이 더 발한다고 하느데 다리를 건너가는 용도가 없기 때문에 반쪽 짜리 다리로 보입니다.

즉 전시용이지 실용성은 없는 다리입니다. 저 다리를 건너서 국립경주박물관까지 가는 길이 쫙 연결되면 좋겠는데 이 길 보다는 월성을 가로 질러서 가는 길이 더 가깝기 때문에 그 역할도 못할 듯 하네요. 경주는 여기저긱 복원 공사가 한창이던데요. 이제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문화재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사업들이 많아졌네요. 경복궁도 가보면 항상 복원 공사를 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경주 향교 옆에는 교촌 마을이 있습니다. 교촌마을은 몰라도 경주 최부자라는 말은 잘 압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아는 부자였죠.  KBS에서 경주 최부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 명가를 2010년 16부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최부자 이야기는 좀 있다 다시하고요


경주 교촌마을은 첨성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서울의 북촌마을과 비슷한 곳이라고 할 수 있고 전통 가옥이 가득한 마을입니다.  새로 지어진 한옥 건물과 오래된 한옥 건물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한정식집도 있는데 점심 정식이 1만3천원으로 크게 비싸지는 않네요. 


전 돌담이나 고풍스러운 한옥 홀릭인데 돌담이 아주 신기합니다. 흙담도 아니고 돌담도 아니고 기와는 녹이 슨듯한 모습. 정말 한적함과 세월의 흔적을 다 느낄 수 있네요


저 멀리 팔짝 지붕의 한옥 건물이 있는데 기와색이 특이 합니다. 쑥색이라고 할까요


이 쑥색은 기와색이 아닌 기와에 핀 뭔가에 덮혀 있습니다. 곰팡이 같은 균조류가 피어난 듯 한데요. 왜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쑥색 기와가 녹이 슨 기와 같아 보여서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색과 기와 본 적이 없어서 한 참을 서성이면서 카메라로 담아 봤습니다. 




이게 녹색 기와를 만든 주범인데 곰팡이 같아 보입니다. 



이런 신식 한옥도 있습니다. 이 건물은 가배라는 커피의 옛이름을 딴 커피숍입니다. 테이크 아웃도 됩니다. 


교촌마을은 재미있게도 새로 지어인 한옥과 옛 한옥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새로 지어진 한옥이 많습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은 공방이나 체험장소로 활용되고 있네요. 관광 자원화 시킨 듯 합니다. 

그런데 한옥은 이런 페인트 냄새나는 새로운 건물 보다는 아까 그 집 처럼 곰팡내가 나는 고풍스러움이 더 자연스러운데 너무 새 건물만 보니 마치 민속촌 혹은 한옥 테마 파크에 온 느낌입니다. 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운 보호색을 갖추게 되겠지만요



투명한 유리 솟대가 재미있네요






이 교촌마을은 경주시에서 지원하에 만들어진 복원된 마을 같습니다. 여기저기 새로 지어진 흔적이 보이는데 아직까지 관광객도 관리도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가마터 안을 들여다 보니 밤새 먹은듯 한 술병이 들어가 있고 쓰레기 통으로 활용 되고 있습니다. 좀 눈쌀이 지푸려지네요. 

경주 관광객들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 분들이 첨성대를 보고 그냥 휙하고 안압지로 향하게 하지 말고 경주 향교를 끼고 있는 교촌 마을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할 듯 합니다. 저 또한 교촌마을 볼려고 간 것도 아니고 교촌 마을이 교촌 치킨이 생각나서 그냥 재미삼아 들어갔다가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거든요. 경주 최부잣집이 교촌 마을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딱히 그 최부잣집을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경주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교촌마을입니다. 그 만큼 동네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데 아직은 활성화가 되어 있어 보이지는 않네요. 시간이 약이 되겠죠. 


교촌마을의 롤 모델이 될 곳은 전주 한옥 마을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이미 인프라가 다 구축되어 있었고 밤에는 여기저기서 국악소리가 가득해서 낮이나 밤이나 관광객이 골목 골목을 다니면서 사진 찍기를 하던데요. 교촌 마을도 전주 한옥 마을처럼
좀 더 체계적으로 보여졌으면 하네요. 

물론, 제가 스치듯 본 것을 가지고 결과까지 내버리는 모습도 있고 그 불확실성도 인지하고 인정합니다만 좀 생기가 없어 보이는 점은 어쩔 수가 없네요. 심지어 교촌 마을 안내소도 오전 11시가 넘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가마터 술병 안 치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전 이런게 좋아요. 돌담도 흙담도 아닌 독특한 돌담, 전주 한옥마을은 꽃담이 가득했는데 꽃담보다는 미끈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이런 투박한 돌담도 좋아요. 특히 저 지붕 색~~~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교촌 마을에는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이 있습니다.


명문가인 경주 최씨의 종가인데요. 경주 최씨의 선행은 엄청나게 많았스빈다. 
만석지기 최씨는 주변에 굶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무상으로 먹거리를 주는 등 만석지기 이상의 인심을 썼습니다. 


경주 최씨 종가집은 한옥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곳입니다.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네요


창고인데 저기에 있던 곡식들을 주변의 배 곯는 사람들에게 풀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을 듯 하네요


사람이 사는 공간이지만 공개를 했기에 오전 9시 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을 합니다. 동절기 하절기 따로 운영을 하는데 사람 사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더 정감이 있네요. 한옥은 사람이 안 살거나 관리를 안 하면 바로 녹이 슬어 버립니다. 


기와를 이용애서 자갈을 모은 곳이 신기하네요


툇마루에는 바리케이트들이 올라가 있는데 방문객들이 툇마루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네요. 아무래도 마루에 앉게 되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수다를 떨다가 사는 분들에게 폐가 되기도 할테니까 저렇게 막아 놓은 듯 하네요



최 부자집은 재물을 똥거름으로 여겨서 모으면 악취가 나고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푸는 삶을 실천한 정말 존경스러운 부자였죠. 한국이 부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이유는 존경스러운 부자 보다는 졸부 같은 모으기만 하고 베풀줄 모르는 부자들이 대부분이라서 부자들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습니다.

해외만 해도 빌 게이츠나 여러 갑부들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거의 없고 안철수 같은 분이나 재산을 환원합니다. 물론 이명박 같은 사람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긴 하지만 그건 억지춘향입니다. 

자발적으로 해야지 대통령 될려고 그런 공언을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경주 최씨는 독립운동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경주 최씨의 마지막 부자인 최준(1884~1970)은 독립운동가 안희제와 함께 백산 무역을 운영하면서 임시정부 재정부장을 맡아 독립운동 자금줄 역활도 했었죠

최씨 가문은 나중에 대구대학교를 세웁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켰고 대구대를 강탈해서 삼성 이병철에게 줍니다. 
강탈의 대가가 바로 박정희입니다. 장물을 받은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 사건이후 대구대를 포기하고 박정희는 대구대와 청구대를 합병해 영남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입구에 왜 이 집을 영남대학교 박물관장이 운영하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대구면 경주에서 거리가 있는데 왜 영남대학교가 이 집을 관리하나 했는데 이런 역사적 이야기가 있네요

경주 최부자집은 박정희에게 어떻게 몰락했나 기사보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위 기사를 읽어보세요. 역사는 참 아이러니의 연속이네요. 현 대통령인 박근혜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영남대에 아직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요.  참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기가 차네요

그러면 뭐하겠습니까? 경주도 대표적인 경상도 도시이고 이 경주 시민들이 현재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 한 동네입니다. 
박근혜 지지율이 79%였던 경주, 이 경주 사람들은 과연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이들의 현대사를 얼마나 알까요? 
씁쓸함을 안고 다음 장소로 향했습니다. 



경주 최씨 같은 분들이 세상에 많아져야 하는데 결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허물어진 흙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렇게 쉽게 무너지고 쌓아 올려지는 흙담 처럼 부드러운 이미지를 많이 간직한 경주 최부잣집에서 역사를 느끼다 나왔습니다

독립군들을 숨겨 주고 자금줄이 되었던 진정한 보수 가문이 친일파 가문에 의해서 몰락한 모습
그리고 그 친일파 가문에 79%의 지지를 해준 경주 분들. 과연 역사란 우리에게 무엇이며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여행기에 무슨 정치 이야기냐는 말을 하실 분 분명 계실 것입니다. 저 또한 최부잣집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듣고나니 또 부아가 치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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