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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나무 같이 맑디 맑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발견한 일상의 보석들

by 썬도그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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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작가가 퇴근길의 반려 라디오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참 특이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노년에 가까운 중년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영화 내내 화장실 청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화장실 청소하는 영화를 누가 보려고 할까 했는데 감독 이름에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빔 벤더스'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놀라운 영화 <퍼펙트 데이즈>

1993년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베를린 천사의 시'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영화입니다. 너무 영화가 좋아서 몇 번을 다시 봤네요. 아마 제가 이 무렵에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이 90년대 초 중반은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 영화들이 개봉해서 큰 사랑을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죠. 

 

영상 시인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영상 감각이 있고 스토리텔링도 잘하는 '빔 벤더스' 감독은 한국에 와서는 한국의 발렛 파킹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이 감독님 2024년에 그 말을 실현했습니다. 비록 한국이 아닌 일본이지만 감독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영화 퍼펙트 데이즈

2011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신칸센 개통 홍보 영화로 만들어졌다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끈 것처럼 <퍼펙트 데이즈>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영화입니다. 한국의 공중화장실이 대변혁을 일으킨 계기가 2002년 한일월드컵 덕분이었듯 2020도쿄 올림픽은 더럽고 탁하게만 느껴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서 유명 건축가에게 공중화장실 설계를 의뢰하고 사진작가들에게는 사진을 그리고 영화감독에게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단편 영화였지만 '빔 벤더스'감독이 이걸  흥쾌히 받아서 장편으로 만들었고 주연인 '야쿠쇼 코지'를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중견 배우로 우리에게는 <우나기>와 <쉘 위 댄스>로도 잘 알려져 있는 배우입니다. 

 

참고로 조카가 찾아왔을 때 청소하던 그 화장실이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화장실입니다. 

혼자 사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나무 같은 삶

영화 퍼펙트 데이즈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조카의 나이로 보면 대략 50대 언저리 쯤의 혼자 사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가 주인공입니다. 히라야마는 아침에 일어나서 건넌방에 있는 작은 나무에 물을 주고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하나 꺼내서 먹고 80~90년대 팝송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청소부 차량을 몰고 도쿄 곳곳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도착해서 청소를 합니다. 

 

처음에는 더러운 것이 보일까 걱정도 했지만 전혀 없습니다. 관객 혐오하게 만드는 장면 하나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저런 곳까지 손으로 직접 청소하나? 할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를 합니다. 양변기 안쪽을 거울을 넣어서 청소를 하고 소변기 바닥에 있는 돌도 장갑을 끼고 들어서 세제로 닦습니다. 보면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도구를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닦습니다. 

 

반면 20대로 보이는 동료 직원은 어차피 더러워질 거 뭘 그리 열심히 닦냐고 핀잔을 주죠. 이런 히라야마를 보는 대중의 시선을 영화 초반에 넣습니다.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꼬마 아이 손을 잡고 엄마를 찾으러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엄마라는 여자가 아이를 낚아채더니 히라야마가 잡은 아이의 손을 빠르게 닦고 사라집니다.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시선이 익숙한지 히라야마는 마음의 스크레치가 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목욕탕을 가고 저녁에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정해진 곳에서 밥을 먹습니다. 자기 전에는 중고 서점에서 산 1천엔 짜리 책을 읽다가 자고 흑백 꿈을 꿉니다. 그리고 다음날이 시작됩니다. 영화가 이 히라아먀의 약 1주일 정도 되는 시간을 무던하게 담습니다. 

나무가 된 히라야마가 느끼는 반짝이는 일상의 행복들

영화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는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현재는 혼자 삽니다. 영화 후반에 여동생과 조카가 등장해서 과거를 상상하게 하고 대충의 느낌을 알 수 있게 하지만 이는 관객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영화는 담지도 관심도 없습니다.  히라야마 자체가 말 수가 적고 필요한 말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의 흔한 독거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상당히 고요하고 조용하고 패턴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보다 보면 평온함을 느끼게 됩니다. 매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고요함과 정갈함과 정숙함. 이 도파민의 시대에 히라야마는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흑백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걸 차곡차곡 아카이빙 합니다. 그렇다고 히라야마가 감정이 없냐? 아닙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거대한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도 좋아하고 청소하다가 화장실 표면에 비춘 거리 풍경에 놀라워하고 멋진 풍경에 미소를 짓습니다. 이 장면들이 히라야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줍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반짝이는 순간을 만났을 때의 행복. 히라야마는 이런 행복 속에서 하루 하루를 견디는 것이 아닌 즐깁니다. 

 

우리는 사람의 조건이나 여건이나 결과물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경향이 있죠. 혼자 살면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느껴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사람들은 적응의 동물이고 각자 방식대로 사는 것이지 그 안에서 모든 감정을 느끼고 삽니다. 

 

히라야마에게는 햇빛과 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새끼 나무를 캐서 키우고 오래된 노래들을 들으면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건 아닙니다. 잔잔한 호숫가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면 밤을 지새울 수도 있습니다. 히라야마에게 뺨 키스를 한 아야 때문에 '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즈'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 좋아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과지만 그 안에서 나름 변화를 즐깁니다. 누군가가 남긴 화장실 종이 쪽지의 퍼즐을 즐기면서 좋아하고 동료가 다운증후군 친구와 잘 놀아주는 모습에도 기분 좋아합니다. 비록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듯한 존재들을 인지하는 능력도 참 좋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거들떠도 안 보는 노숙자에게 눈인사를 합니다. 

 

동물의 세상에서 식물로 사는 히라야마

영화 퍼펙트 데이즈

여백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다만 핵심은 있습니다. 가출한 조카가 삼촌과 엄마는 다르다고 합니다. 이에 삼촌은 엄마와 삼촌이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참 크게 와닿았습니다. 가족이라고 해도 사고방식이나 삶이나 특히 취향 성향이 너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다른 상태로 살면 되는데 그걸 꼭 맞추려고 해요.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라야마 같은 식물의 삶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겁니다. 주로 동물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히라야마 같은 정적인 식물의 삶을 답답하다고 하기도 하죠. 

 

저도 모르게 히라야마의 삶에 동화되어서 영화에 젖게 되네요. 식물 같은 삶을 사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좋은 동료 또는 고요한 호수를 만난 느낌일 겁니다. 그렇다고 히라야마가 모든 것에 만족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히라야마가 현재만 보고 사는 이유, 매번 같은 패턴으로만 돌아가는 이유를 살짝 엿봤습니다. 미래의 불안을 지우기 위해서 지금은 지금, 미래는 미래, 과거는 과거라고 정리하고 사는 모습이 보이네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의 알 수 없는 표정에서 온갖 상념이 쏫아져 나옵니다. 이래서 상을 받았구나 이래서 칸이 이 배우를 선택했구나를 잘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매사에 충실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히라야마라는 호수를 만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취향을 꽤 타는 영화입니다. 이걸 왜 보냐고 하는 분들도 있을테지만 식물처럼 조용함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호수 같은 영화입니다. 멀리서 찾아온 조카가 바로 삼촌의 삶에 동화되듯 삼촌인 히라야마는 옛날 사람이지만 자신만의 루틴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아닌 즐기면서 매사 충실하고 사랑하고 행복을 찾습니다. 이게 불안한 미래를 지우기 위한 모습으로 전 느껴졌고 그래서 더 울림이 컸던 것 같네요. 

영화 퍼펙트 데이즈

어떻게 보면 히라야마 가족 중에서 삼촌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여자 조카가 아닐까 하네요. 히라야마는 잔잔한 호수 같은 일상을 유지하지만 불안도 함께 있고 불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평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평온 유지법은 수많은 시간이 만든 루틴이 줍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정해진 걸 행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상 속에서 수행을 하는 수도승 같은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게 원해서 만들어진 삶이 아닌 가족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 기재로 작동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서 마지만 표정에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드리웠고 저도 그 모습에 흔들리게 되네요. 

 

참 맑은 영화입니다. 보다 보면 호수 위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힘들여서 만들어도 와닿지 않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여백을 가득 넣고 배우의 힘으로 툭툭 만든 느낌이 드는 영화가 오히려 저에게 더 큰 영화로 다가오네요. 

 

별점 : ★ ★ ★ ★
40자 평 : 호수가 잔잔해지 전까지 수 많은 사회와 가족의 따가운 시선으로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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