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인생 영화라면서 꼭 보라는 강권에도 안 봤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먼저 제목입니다. <엘리멘탈>이라는 뜻은 원소를 뜻하죠. 불, 물, 공기, 흙이라는 4가지 원소를 다루고 있기에 화학을 소재로 한 영화인가 했고 이런 너무 원초적인 캐릭터 설정은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깊은 메시지를 우려내기 좋은데 잘못 건드리면 유치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 봤습니다. 4개의 원소를 잘 다루기 쉽지 않기에 기대치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K장녀니 K장남이니 하면서 무려 7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천만을 넘는 영화가 거의 멸종하고 있는 시대에 그것도 입소문으로 2달 가까이 상영을 하면서 700만을 돌파했네요. 한국에서는 대박을 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6,621억 매출을 올려서 그런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엘리멘탈>은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피터 손' 감독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미국 다음으로 가장 흥행 성적이 좋은 나라는 한국으로 3위인 영국의 2배 이상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두웠습니다. 이는 디즈니도 놀란 성적이 아닐까 합니다.
로튼토마토의 평점도 보면 평론가 점수는 74%이고 관객 점수는 93%로 평균 이상의 인기를 보여주네요. 특히 평론가들의 평가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엄청 좋은 것은 아니고요. 관객 지수는 93%로 무척 높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생 영화라고 하는 <엘리멘탈>을 디즈니플러스로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이 영화 한 번에 보지 못하고 무려 6번이나 끊어서 겨우 다 봤네요. 보려다가 포기하려고 했던 것을 리뷰 쓰기 위해서 꾹 참고 겨우 다 봤네요.
내가 엘리멘탈을 재미없게 본 4가지 이유
미리 말하지만 제 리뷰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리뷰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과 생김새가 다르듯 제 경험과 영화 경험치와 취향이 다르기에 내가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남들도 모두 재미있게 볼 수는 없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따라서 전 정말 재미없게 봤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본 분들의 의견을 이해하긴 어려울 수 있어도 감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고 할 수 없죠. 다 각자의 평가가 있으니까요. 저처럼 <엘리멘탈>을 재미없게 본 분들도 있겠죠. 그럼 제가 재미없게 본 이유를 적어보겠습니다.
1. K장남, K장녀? 부모의 가업을 이어 받는 건 일본 이야기 아닌가?
K장남, K장녀 이야기라고 해서 한국적인 뭔가가 있나 했습니다. 감독도 한국 이민자의 아들인 분이시고요. 자신의 경험을 녹여 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한국적인 색채는 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문화와 음식과 컬처가 나오지 않습니다.
4개의 원소가 공존해서 사는 누가봐도 뉴욕을 형상화한 거대한 도시에 불의 나라에서 이민을 온 집안의 딸 엠버와 물의 나라에서 온 웨이드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중에서 K장녀라고 하는 앰버의 고민이 서사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전 엄청난 고민인줄 알았더니 그냥 평이한 고민이자 너무 흔한 고민입니다.
앰버는 가난한 이민자 가족에서 태어나서 가업인 아버지가 운영하는 파이어플레이스 운영을 이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앰버는 꿈이 있습니다. 멋진 유리공예품을 잘 만드는 금손임을 웨이드를 통해서 알게되죠. 그리고 자신의 꿈을 발견합니다.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 어머니의 장녀로 살면서 연로하신 아버지 대신해서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금수저 느낌의 웨이드를 통해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좀 의아했던 것이 한국 사람 중에 집안의 가업을 이어 받는 사람들이 있나요? 가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30년 이상 같은 장사를 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어제도 동네 지나다가 재개발로 주변건물이 싹 사라졌는데 홀로 서 있는 건물을 보면서 알박기인가 했을 정도였어요. 그 건물 앞에 보니 40년 전통의 중국집이더라고요. 이렇습니다. 한국에서 대를 이어서 가업을 물려 받는 곳이 거의 없어요. 1%나 될까요?
주변을 보세요. 재벌 말고는 아버지 직업을 이어 받는 자녀들이 몇이나 있어요. 아버지 직업 다르고 아들 직업 다른 것이 자연스럽죠. 몇몇 맛집들이나 가업을 이어 받죠. 이 가업을 이어 받는 전통은 일본이죠. 일본 가보면 수세대에 걸쳐서 같은 일을 하는 가업이 많아요. 장인의 나라 답게요. 그런데 엄청난 기능 보유자도 아니고 그냥 흔한 잡화점을 운영하는 걸 딸에게 강요하는 것이 K장녀라고요? 전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2. 물과 불만 나오고 공기와 흙은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급
<엘리멘탈>이라고 해서 주요 원소들이 조화롭거나 또는 아웅다웅 다툼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상생이라고 하죠. 물과 흙은 상생이 좋고 공기와 불은 또 상생이 좋고요. 물과 불은 상생이 안 좋고요.
마치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각자의 원소들이 상생을 통해서 화합과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일이 주된 스토리일 줄 알았는데 그런 클리세는 깼습니다. 그냥 불 아가씨와 물 총각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둘은 상생이 안 좋죠. 서로를 죽일 수도 있고요. 공기와 흙은 너무 거론되지 않아서 이럴거면 제목을 물과 불로 정하지 왜 <엘리멘탈>로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뉴욕이라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종 인종들의 화합을 담을 줄 알았고 그래야만 제목과 어울리는데 영화 <엘리멘탈>은 그냥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서로 상극인 가정의 아웅다웅을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렸을 뿐 특별한 것이 없네요. 또한 앰버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많은 영화들이 다룬 이야기라서 식상합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했구나는 초기에만 있지 영화 초중반부터 끝까지 그냥 로맨스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쉽네요. 인종 갈등에 대한 깊이도 없고 전체적으로 뭔가 핵심을 건드려주는 대사도 내용도 사건 사고도 없습니다. 너무나도 평이해요.
3. 전혀 안 웃기다
픽사 애니들이 모두 웃기는 애니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미소를 짓게 하거나 감동스토리나 웃기는 장면이 간간히 있습니다. 그게 대사이건 캐릭터에서 나오건 사건 사고가 나오건 웃기는 장면들이나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주토피아>의 나무 늘보처럼요. 아니면 <인사이드 아웃>의 모든 캐릭터들이요.
그런데 <엘리멘탈>은 단 한 번도 웃기지 않았습니다. 보면서 웃음을 시도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피식 웃음도 안 나오네요. 다만 무지개를 만드는 장면이나 크리스탈 위에 올라가면 앰버 몸의 색이 변하는 장면 등의 유니크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은 아주 좋네요. 특히 주제가가 나오는 그 장면은 아주아주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액션 장면도 많지 않고 위기로 향하는 스토리가 너무 맥락이 약하네요.
4. 흙수저와 금수저의 신분 차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
영화를 뭘 분석하면서 보냐. 그냥 보면 돼지라고 하는 분들이 있죠. 네 맞아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엘리멘탈>은 사랑스러운 애니입니다. 먼저 때깔이 때깔이 엄청납니다. 애니 잘만드는 픽사이지만 이제는 애니인지 실사인지 구분 안 갈 정도로 점점 애니 표현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네요.
예를 들어서 아웃포커싱 장면이나 애니만 가능한 물과 불을 형상화 한 캐릭터나 화려한 색이 펑펑 터집니다. 그럼에도 액션 디자인은 정말 조악하네요. 그런면에서 <빅히어로>의 액션 디자인은 아주 좋습니다. <엘리멘탈>은 그냥 화려함이 아주 강력하기에 그냥 생각없이 보기엔 볼만합니다. 또한 주제가도 아주 좋고요.
그러나 이야기의 깊이가 약하네요. 약한 이야기의 한 축은 흙수저 앰버와 금수저 웨이드 사이의 갈등입니다. 웨이드가 금수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라는 점 그래서 항상 긍정적이로 온화합니다. 부자니까 친절한거야라는 대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반면 앰버는 매일같이 뒤에서 굴러오는 돌덩이를 피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 받아야 하는 고민이 크죠. 자신의 꿈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여유가 없어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못하고 살 정도로 흙수저입니다. 두 연인은 신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20,30대 분들이 여러 계층의 친구를 만나다 보면 세상이 불공평함이 공평하게 나눠져 있구나를 깨닫게되죠. 누구는 2군부터 시작해서 1군가려고 노력하는데 누구는 3루에서 태어나서 3루타 친 줄 아는 금수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앰버는 2군에서 시작해서 아버지의 가업을 받는 것이 1군 진출이지만 웨이드는 그냥 바로 1군입니다. 돈에 대한 쪼들림이 없죠. 물론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엘리멘탈>이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분명 두 사람은 신분 차이가 있습니다. 온가족이 보는 애니에서 사회 계층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면 아예 신분 차이를 보여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엘리멘탈>의 좋은 점도 많습니다. 좋은 주제가, 화려한 애니 등등 시각과 청각은 좋습니다만 문제는 스토리입니다. 스토리가 너무 뻔하고 흔하고 이제는 그만 좀 우려 먹었으면 하는 나다움 찾기를 주제로 하고 있네요.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개척하고 쟁취하는 거야 식의 이야기는 요즘 세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 30년 전이나 가업을 잇고 꿈보다 주어진 운명을 따라서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하던 그 시절과 2023년은 다릅니다. 요즘 누가 부모가 시킨다고 직업을 부모가 정해주고 결혼 상대를 정합니까. 다 각자 알아서 자기 원하는대로 직업과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죠. 부모세대들도 X세대 세대라서 그런 자녀의 선택권을 어느 세대보다 우대해주는데요.
마치 90년대나 먹히는 스토리를 2023년에 풀어놓으니 하나도 와닿지가 않네요. 보면서 이 애니가 90년대 애니인가 스토리가 너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에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했는데 끝까지 스토리는 예상과 다르지 않네요. 그래서 전 <엘리멘탈>을 참 재미없게 봤습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고 영화나 소설은 스토리 놀음이라고 스토리가 안 좋으니 전체적으로 좋게 보이지가 않네요.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주관이고 재미있게 볼만한 요소도 많으니 여러 리뷰 보고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별점 : ★ ★
40자 평 : 화려한 시청각 위에 올려진 90년대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