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했네요. 9월 말 추석 영화 1편을 보고 10월 중순까지 보고 싶은 영화나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무료 티켓이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어제 겨우 하나 봤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플라워 킬링 문>입니다. 디카프리오에 로버트 드니로에 봉준호 감독이 존경하고 전 세계 감독과 영화 팬들이 존경하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연출이라면 안 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매를 하려고 하니 하루 2회 상영에 아! 지루한 영화인가 보다 했습니다. 상영을 하루 2회만 하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흥행을 못할 것이라는 배급사의 미리 판단이 있고 이는 실제로 지루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초반 1시간 30분은 졸린 구석이 많습니다. 보다가 뭐 이리 영화가 길어 언제 끝나나 했는데 후반 1시간에서 법정 드라마가 펼쳐지니 졸린 눈꺼풀이 쭉 올라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다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상영시간이 무려 206분으로 3시간 30분입니다. 영화 자체도 큰 흥행을 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상영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하루 3회 상영하면 하루가 다 갈 정도네요.
실화이자 베스트 셀러 원작의 플라워 킬링 문
영화를 볼 때 배경 지식을 알고 보면 좋은 영화가 있고 모르고 보면 더 좋은 영화가 있습니다. 전 공부를 하고 봤습니다. 실화이고 2017년 베스트셀러 책이 원작이라서 이미 영화의 이야기는 검색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전 알고 봐도 배우들이 연기와 연출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자세한 내용까지 알고 봤지만 알고 봤더니 초반은 상당히 지루하네요.
따라서 <플라워 킬링 문> 분들은 실화 이야기를 검색하거나 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알고 봐도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는 내용이라서 저기서 어떻게 하겠구나가 빤히 보여서 폭력 살인 장면도 뚱하게 보게 되네요. 그래서 검색하지 마시고 보실 것이 좋습니다. 다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세이지족에 대한 이야기는 좀 알고 가면 좋습니다. 영화에서 약간의 설명을 하지만 왜 오세이지족이 백인 여러 명을 하인으로 두고 사는지 왜 이들이 돈이 많은지 왜 돈이 많지만 백인 후견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해서 이 부분만 제가 좀 채우겠습니다.
1800년대 미국은 야만의 시대였죠. 영국 등에서 온 백인들이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총으로 위협하면서 내쫓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야만적인 행동이지만 당시는 정글의 시대라서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지금도 야만적인 행동이 우리 사이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고 있는데요. 다만 법과 정부 시스템이 발달해서 덜할 뿐이죠.
그렇게 오세이지 부족은 원래 살던 미국 캔자스에서 미국 중부의 오클라호마 북동부 바위가 많은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합니다. 불모지로 내 쫓긴 것이죠. 강제 이주는 미국 정부가 단행했는데 당시 오세이지 부족 추장은 이주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땅 밑의 광물은 오세이지족이 가진다는 합의서를 작성합니다.
이 합의서가 대박이 납니다. 오세이지족이 사는 땅 밑에서 석유가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오세이지족은 모두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걸 그냥 볼 미국 정부, 백인들이 아닙니다. 돈을 물쓰듯 쓸 수 있는 돈이 있지만 그 돈을 사용하려면 백인 후견인의 허락을 받고 써야 한다는 조건을 답니다. 이유는 원주민들이 멍청해서 재산을 쉽게 탕진할 것이 뻔하다는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담았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당시는 흑인 및 홍인종이라고 하는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이웃 동네 텔사에서 흑인 마을이 멸절하는 사태까지 일어난 걸 보면 당시 백인들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세이지족이 사는 마을에서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백인은 안 죽고 오세이지족이라는 갑부들이 계속 죽어나갔지만 동네 보안관이나 백인들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수사 자체를 안 합니다. 이 정도면 수사를 해야 함에도 모든 사망 사고는 자살이나 의문사나 이유 없음으로 쉽게 덮히고 잊혔습니다. 이 오세이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가 <플라워 킬링 문>입니다.
영화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세이지족들이 연쇄 살해 당하고 있던 시기 1차 대전에 보병으로 참전한 '어니시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 이 오클라호마 지역의 왕처럼 군림하는 지역 유지인 삼촌인 '윌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 분)을 찾아옵니다. 직업이 없던 어니스트에게 삼촌 윌리엄은 택시나 몰면서 세상을 배우고 공부도 하라고 책도 주죠.
그렇게 어니스트는 택시를 몰다 몰리 버크하트(릴리 글래드스톤 분)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여러번 택시에서 만나다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합니다.
이 몰리는 무려 4명의 자매가 있습니다. 동생 리타, 미니가 있고 위로는 애나라는 큰 언니가 있습니다. 둘째인 몰리와 어니스트가 결혼을 합니다. 이 오세이지족들은 백인 남편을 둔 가정이 많았는데 재산 상속을 노리고 결혼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만 알고 봐도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 안의 욕망이라는 괴물을 담은 플라워 킬링 문
인디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동양 문화 자체가 자연을 이겨내기보다는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반면 서양은 자연을 파괴하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문화죠. 이 과정에서 인간들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 본성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주의도 서양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현재 우리 인류를 위협하는 달콤한 병이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 욕망을 바탕으로 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먹는 자연의 동물과 식물과 달리 돈이라는 재산 축적 도구로 필요 이상의 물질과 재산을 쌓습니다. 이만큼 벌면 됐다가 아닌 죽을 때까지 돈 벌 생각만 하다 죽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욕심을 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벤츠 몰고 와서 한 외국인 신부가 운영하는 급식소에서 공짜 밥 먹고 가는 사람들이나 돈 욕심에 인간 이하의 상식의 가진 재벌이나 갑부들이 참 많습니다.
일부 타락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돈 벌이 수단으로 여기는데 이는 전 세계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돈에 잡아 먹힌 사람들이 이야기가 3시간 20분 동안 펼쳐지는 것이 <플라워 킬링 문>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인지부조화인가 할 정도로 말과 행동이 너무 달라서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 법정드라마가 시작되면 한 인물의 본심이 뭔지 헛갈리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주연 배우의 연기의 힘이 아주 큽니다. 보다가 2개의 감정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아버지로서의 고통과 돈에 대한 욕심이 양립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실제로 그런 감정일 수 있고요. 돈 욕심에 찌든 얼굴과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애처가이자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뛰어난 연기로 묶이니 양립할 수 없는 논리와 감정에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마도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이 영화의 주연 배우가 후보에 오른 것을 넘어서 또 한 번의 남우주연상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플라워 킬링 문의 뜻은?
인디언들은 자연을 숭상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공존을 하면서 자연을 찬양합니다. 영화 제목인 '플라워 킬링 문'은 원제인 'Killers of the Flower Moon'와 다릅니다. 왜 한국 제목을 저렇게 지었나 모르겠네요. 이 영화 제목은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세이지 족은 5월의 보름달을 꽃의 달이라고 합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죠. 이 꽃이 가득한 들판 위로 보름달이 뜨는 날 많은 오세이지 족이 살해당했습니다. 물론 그 살인자들은 백인들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오세이지족을 꽃으로 비유해서 꽃을 죽이는 백인 살인마라는 뜻도 있습니다.
제목 자체가 미국의 어두운 면을 담고 많은 미국인들이 우리가 행한 과거의 브레이크 없는 돈에 대한 욕망이 일으킨 참혹한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상당히 지루한 초반, 집중하고 보게하는 후반
다만 영화가 상당히 지루합니다. 이는 3시간 20분이라는 러닝 타임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즘 많이 이용하는 플롯을 이용해서 미스터리 수사물로 그리지 않은 점도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 초기 버전은 '존 에드거 후버'라는 초대 FBI국장이 연방수사관 제도를 정착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 이 '오세이지 인디언 학살 사건'에 초점을 맞췄고 보통 영화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서 깜짝 놀라게 하고 반전을 넣죠. 그렇게 그렸다면 더 지루하지 않았겠죠. 또한 상영시간을 2시간으로 압축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을 거에요. 다시 말하지만 지루한 면이 커서 적극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초반 이야기들이 꽤 지루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주인공이 FBI 수사관이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고 FBI 홍보 영화가 됐을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촬영에 큰 도움을 줘야 하고 준 오세이지족 후손들이 스릴러 영화의 도구로 활용되고 이 끔찍한 비극의 핵심 가치인 돈에 눈이 먼 백인들의 추악함을 그리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에 디카프리오는 이 이야기의 시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영화는 플롯을 꼬지 않고 시간 순으로 쭉쭉 보여줍니다. 이렇게 서사극으로 담으면 지루할 수 있고 올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서사 방식이 좋은 점은 이야기의 핵심이 오세이지족의 비극으로 담을 수 있고 실제로 영화 속 몰리와 자매들의 이야기가 아주 생생하고 깊게 담깁니다.
또한 오세이지 인디언 후손들과 미팅에서 우리를 영화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이 명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는 새겨듣고 원주민들의 전통을 수시로 보여주고 영화 끝장면은 이들의 현재 모습까지 담으면서 오세이지 인디언들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갖춥니다. 보면서 좋은 감독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에 북소리와 기타를 섞어서 백인들의 노래인 컨트리와 인디언의 북소리를 조화롭게 담은 '로비 로버트슨'음악감독의 역량도 무시 못합니다.
기품이 있는 서사의 전개는 좋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다 FBI 수사관들이 오클라호마에 도착하고 본격 수사를 하면서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 변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지루함 일도 없습니다. 법정에서 증언에 따라서 가족 중 하나는 크게 상처 입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주는 긴장감이 아주 좋습니다. 또한 주인공 어니스트의 성장도 보입니다.
미국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비극을 통해서 자본주의 세상을 비판한 영화 <플라워 킬링 문>
누구나 사고를 치고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법으로 막으면 좋겠지만 모든 걸 법으로 막기는 어렵죠. 또한 법이 복잡해지면 법꾸라지들이 법을 악용해서 돈 많은 사람들만 빠져 나가고요. 그래서 상식선을 높여야 합니다. 국민 평균 상식선을 높여 놓아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0년 전에는 흔하게 행해졌던 대기업 갑질이 최근 많이 줄어든 것도 국민 상식선과 사회적인 상식이 높아진 결과입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건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FBI의 태동에 큰 역할을 한 이 오세이지 인디언 학살 사건도 오일 머니에 취한 백인들이 앞에서는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 얼굴을 하고서 지역 보안관, 판사, 의사라는 백인 카르텔을 만들어서 인디언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의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고 그 아픈 역사를 직시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양심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00년 전 이야기를 발굴해서 미국인 앞에 내놓은 노장 감독의 선택도 뛰어나지만 오세이지 인디언에 대한 예우 및 영화 후반 나머지 이야기를 라디오 방송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저 나이에도 창의력이 저리 높을 수 있구나를 잘 보여주네요. 좋은 영화입니다. 상당히 긴 영화라는 점이 부담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다 보고 나면 명감독의 연출과 명배우들의 연기가 영화가 참 품격 있구나를 잘 느끼게 해 주네요. 내년 아카데미에서 여러 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네요.
별점 : ★ ★ ★ ★
40자 평 : 오세이지 인디언을 위해서 지루함을 선택한 명감독의 기품과 명배우의 연기가 일품. 좋은 영화는 좋은 사람이 만듬을 알게 해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