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의미와 이유 속에서 파괴된 우정을 담은 이니셰린의 밴시

by 썬도그 2023. 10. 6.
반응형

세상에서 가장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마틴 맥도나' 감독은 2009년 <킬러들의 도시>를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감독입니다. 그리고 그의 최고작은 2018년 개봉한 <쓰리 빌보드>입니다. 전 2018년 아카데미상을 이 작품이 작품상을 받았어야 생각했을 정도로 놀라운 스토리에 반해버렸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갈 수도 있나?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에 놀랐던 '마틴 맥도나' 감독은 현존 감독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서두에 말하지만 입소문이 좋아서 다들 재미있다고 하는 <이니셰린의 밴시>는 좀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내용이 간결하고 강력하게 들어가 있네요.

갑자기 절교 당한 다정한 남자 파우릭의 절교 이유 찾기

이니셰린의 밴시

콜름(브레단 글리슨 분)과 파우릭(콜린 파렐 분)은 친구입니다. 나이는 20살 차이가 나고 지적 수준도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은 친구입니다.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의 막바지에 있는 이니셰린이라는 작은 섬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죠. 두 사람은 낮 2시에 항상 동네 펍에서 흑맥주를 마시면서 농담 따먹기를 하던 친구였죠. 

그런데 콜름이 갑자기 절교 선언을 합니다.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절교 한다고 하면 좋은데 뭔 속인지 말도 없이 절교를 합니다. 파우릭은 자신이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했고 그 때문인가 하고 사과도 하고 해 보지만 절교 선언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이니셰린의 밴시

하도 치근거리고 보채기에 콜름은 대놓고 말합니다. 실없는 농담이나 하는 시간들이 아깝다면서 자신은 12년 안에 뭔가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작곡입니다. 유명한 작곡가나 시인이나 소설가는 자신이 죽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입에 오르내리는데 자신도 그렇고 싶다면서 창작의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친해도 그래라 그러고 싶으면 그래라고 할 수 있죠. 좋은 사람은 친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이 친구이기에 일방적 절교라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생각이 바뀌면 말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가장 현명하죠. 그런데 파우릭은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사실 이 파우릭은 제니라는 당나귀를 집안에서 키우고 싶어 하는 다정함이 생명인 지적 능력이 살짝 떨어지는 동네 바보형 바로 위에 있는 순박함 그 자체인 사람입니다. 콜름의 절교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이니셰린의 밴시

파우릭은 평소에는 말을 섞지 않던 동네에서 가장 질 떨어지는 경찰의 아들인 도미닉(배리 케오간 분)과 밀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합니다. 도미닉은 경찰의 아버지에게 항상 구타를 당하고 성적 학대를 당하는 등 폭력 경찰 아버지 밑에서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착하지도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하죠. 유일하게 다정함이 강한 파우릭이 아버지에게 맞은 도미닉을 저녁 식사와 하룻밤을 재워줍니다. 두 사람은 콜름의 절교 이유를 말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유를 찾습니다. 아니! 말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절교 이유가 명확하고 이해가 가능한데 뭔 딴 이유를 찾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콜름의 절교 선언은 우리가 살면서 수 없이 하는 절교 중 하나입니다. 아무이유없이 우리는 친구와 헤어집니다.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나이 들수록 절교는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으면 사람은 관계를 정리합니다. 나이게 필요한 관계만 남기도 자연스럽게 끊어버리죠. 그래야 남은 여생을 보다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이들면 친구가 주는 것을 안타깝게 보는데 아닙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불필요한 관계,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관계는 미리미리 잘라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얼굴에 대고 절교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연락 안 하면 자연스럽게 끊어지죠. 콜름이 그랬습니다. 파우릭과 흑맥주 마시면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 하기보다는 본섬에서 온 음악대생들과 함께 연주하고 보다 실속 있는 삶을 살고자 파우릭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사실 콜름도 그렇죠. 그냥 평소처럼 지내면서 작곡을 하면 되는데 뭔 노인네 고집인지 갑자기 절교를 선언합니까. 그렇게 교양있는 척하면서 교양 없는 짓을 해요. 

교양인인척 하는 콜름을 뼈때리는 시오반

이니셰린의 밴시

콜름은 2차 엄포를 내립니다. 다시 자신에게 말을 걸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하죠.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파우릭이 찾아가자 얼마 후 손가락을 잘라서 파우릭 집 앞에 버립니다. 미친~~~ 두 사람의 절교는 전쟁처럼 변해갑니다. 그래도 피해는 콜름 본인이 자해하는 수준이니 여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우릭은 무슨 집착인지 또 찾아가서 말을 걸죠. 

이에 콜름은 구체적으로 자신은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란다면서 유명한 음악을 남기겠다고 하죠. 이에 파우릭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다정함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합니다. 다정한 엄마, 다정한 동생 이게 더 기억되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2개의 삶에 대한 가치는 충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파우릭의 너무 과도한 집착과 교양있는 척 하는 교양머리 없는 콜름의 매정함이 전쟁까지 일으킵니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식자층으로 나오는 사람은 콜름과 시오반(케리 콘돈 분)입니다. 시오반은 순박한 오빠 파우릭을 사랑하는 여동생으로 오빠의 식사와 집안일을 돕습니다. 원래 본섬에 있었다가 잠시 오빠랑 사는데 다시 본섬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이 촌동네에 모든 남자들이 한심스럽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티를 내지 않았지만 콜름의 허영을 깨부셔줍니다. 모차르트가 누군지도 모르는 오빠 파우릭이 펍에서 떠난 후에 콜름에게 모차르트가 17세기 사람이라는 콜름의 말에 18세기라고 정정해 주죠. 

촌 동네에서 사는 두 고집쎄고 못난 남자들의 핵존심 싸움

이니셰린의 밴시

하나같이 들 못났습니다. 파우릭도 콜름도 경찰도 경찰 아들도 심지어 고해성사 내용을 떠벌리는 신부까지도 섬에 사는 남자들 모두 못났습니다. 풍광은 엄청나게 아름답죠. 마치 제주도 돌담벼락이 가득한 동네 같습니다. 동네 풍광은 아름다운데 사람들의 사는 풍경은 너무 삭막하네요. 

이니셰린의 밴시

누구 하나 파우릭과 콜름의 관계를 복원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 술자리 술안주로 소비합니다.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있어하면서 누구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정말 살벌한 어촌 이러니 시오반이 못 견뎌하고 섬을 떠나려고 하죠. 
<이니셰린의 밴시>는 전 재미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두 주인공의 알량한 핵존심 싸움 같아서 보는 내내 피곤하네요. 이 영화가 엄청난 서사가 있는 것도 깊이가 깊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니셰린의 밴시

뭐 본섬에서의 아일랜드 내전을 빗댄 이야기다라고 하고 실제로 동족 간의 비극을 담은 내전을 은유한 구석이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저에게는 그냥 찌질남 2명이 벌이는 막장극으로만 비추어지네요. 뭐 남북한의 말폭탄 대결도 비슷하긴 하지만 보는 내내 두 주인공의 막다른 길로만 치달아가는 모습이 너무 불안 불편하네요. 

콜름은 삶의 의미만 잦고 파우릭은 절교의 이유만 찾네요. 이유와 의미가 멱살잡이하는 영화로 느껴지네요. 그럼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콜름보다는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파우릭의 삶을 전 선택하겠습니다. 삶이 뭐 의미나 점하나라도 남기고 떠나라고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도 아닌데요. 아무도 기억 못하면 어떻습니까? 죽은 후에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어요. 살아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라도 다정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됐죠. 

밴시라는 건 아일랜드 민화에 나오는 누군가의 죽음을 울음소리 나 죽음을 암시하는 예언자로 영화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할머니가 그 역할을 합니다. 다분히 연극적인 구성이죠. 실제로 이 영화는 연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별점 : ★ ★ ★
40자 평 : 삶의 이유를 찾는다고 절교를 한 친구에게 절교 이유를 집요하게 묻는 두 멍청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