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를 10년마다 다시 보면 다르게 느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영화는 변하지 않지만 그 10년 사이에 내 경험이 늘고 내 관심사와 지식의 높이가 달라져서 다르게 느껴집니다. 서울 곳곳을 잘 싸돌아 다니고 이제는 가본 곳이 많아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곳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달리 보입니다. 영화도 달리 보이는데 장소는 계속 변화하기에 더 느낌이 다릅니다.
창신동이라는 곳을 잘 몰랐습니다. 그냥 동묘 근처에 있는 동네, 영화 <건축학개론> 납득이 계단이 있는 동네, 언덕이 많고 좁은 길이 많은 서울 성벽 바로 옆 동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꽤 매력적인 동네입니다.
낙산 아래 첫 동네 '창신동' 창신동은 골목이 많고 그 골목을 많은 오토바이들이 지나갑니다. 너무 많이 지나가서 오토바이 랠리가 있나 할 정도로 많이 지나다닙니다. 물론 걷기 불편합니다. 그러나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고 금방 익숙해집니다.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는 이 창신동에 많은 봉제 공장이 많아서 봉제 공장의 부품 같은 옷의 각종 재료들과 옷을 오토바이로 배달합니다. 창신동 근처에는 국내 최대의 옷 도소매 상가인 동대문이 있습니다. 한국은 70~80년대에 봉제 산업이 국가 주력 산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인건비가 올라가서 지금은 봉제 공장 대부분이 동남아시아로 이동했죠. 특히 미얀마나 태국, 인도네시아 쪽으로 많이 이동했습니다.
많은 공장이 자동화 되어가고 있지만 단가가 저렴한 옷을 제조하는 봉제 산업은 자동화보다는 저임금 노동자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동남아 공장에서 많이 만듭니다. 지금 한국은 봉제 산업이 많이 축소되었습니다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창신동에는 영세 봉제 공장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각종 봉제 용어를 다 외울 정도로 많습니다.
사대문 밖이이지만 서울 성곽 바로 바깥에 있어서 한옥 건물이 많습니다. 이 골목은 영화 촬영 장소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이네요.
골목은 좁고 오토바이 차량이 많이 지나다닙니다. 노후된 주택이 많아서 한 때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가 많아서 뉴타운 사업은 좌초되었고 박원순 시장이 서울 시장이 된 후에 이 곳을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도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되어서 국가와 서울시로부터 4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투입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마찬가지입니다. 창신동도 도시재생이라고 해서 뭔가 했는데 그 돈이 어디로 사용되었는지 티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도로 개선, 주차장 확보, 주민 편의시설 확보가 도시재생 같더군요. 그런데 그런 것은 뭔 이름을 가지고 하기 보다는 그냥 서울시가 해야 할 의무 아닐까요? 거창하게 이름 붙여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창신, 숭인동은 2014년 서울시가 지정한 1호 도시재생 지역입니다. 총예산 200억 원을 투입해서 CCTV 달고 도로 정비를 했습니다. 그 예산 중에 흔적이 여기 남아 있네요. 도로에 바느질 자국이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창신동, 숭인동 도시재생의 결과물 중 하나가 이 '이음피움봉제역사관'입니다. 지하 1층과 지상 4층으로 된 건물로 창신동 봉제 산업을 이해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운영 시간은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합니다.
휴관일은 월요일, 공휴일입니다.
입구는 지하 1층입니다. 앞에서 입구를 몰라서 돌아보고 있는데 지하 1층이라고 안내를 해주시네요. 평일 오후여서 방문객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지하 1층에 들어간 후에 지상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여길 찾은 이유는 이 사진 때문입니다. SNS와 블로그에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 사진이 가끔 올라왔는데 공간이 참 멋졌습니다. 마치 19세기 미술전시회 방식처럼 벽면 가득히 다양한 크기의 사각 액자가 가득 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화이트 큐브 방식으로 듬성듬성 미술품과 사진을 붙여서 보지만 19세기는 이런 식으로 전시 관람했어요.
정말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또한 봉제 역사에 대해서 살짝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재봉틀들도 보이네요. 요즘은 재봉틀 돌리는 집도 있는 집도 없어요. 그런데 80년대는 꽤 많았고 어머니가 재봉틀 돌려서 옷을 수선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지금은 세탁소에 다 맡깁니다. 참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이 천을 누비고 다니면 천이 이어지고 넓어져서 옷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은 봉제 산업이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60~80년대 우리네 누님 어머니 세대들이 12~13살 나이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해서 구로공단에 있는 수많은 봉제 공장에서 근로를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중, 고등학교 다닐 어린 나이에 남동생, 오빠 대학 보내기 위해서 그 어린 나이에 일을 했어요. 솜털도 안 가신 나이에 공장에서 철야 근무하면서 살았습니다. 밤에 졸리면 타이밍이라는 잠 쫒는 각성제를 먹었습니다. 그런 여공들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습니다.
요즘 일베는 이 21세기의 썩어 빠진 세상의 신종 바이러스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봉제 공장 여공들에게 그 당시 사람들은 공순이라고 비하를 했습니다. 왜 비하를 할까요? 아니 그 여공들이야 말로 한국호의 노를 젓는 일꾼인데 왜 비하를 해요. 이런 것을 보면 세상만 변하지 사람은 안 변하나 봅니다. 이 생각이 드니 잠시 화났습니다.
이 여공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는 분이 심상정 의원입니다. 70~80년대는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을 한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여공들은 갖은 인권 침해와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렸습니다. 노동 운동도 할 줄 몰랐죠. 이때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 위장 취업을 해서 노동 운동과 노동 인권을 설파해서 최초로 동맹 파업을 이끕니다. 지금도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빨갱이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노동 운동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이런 봉제 공장이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동화되고 공장이 다 해외로 이주했는데 여전히 봉제 공장이 많은 모습에 놀랬다고 안내하시는 분에게 물으니 공장이 못하고 자동화로 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디자이너 옷들은 소량으로 빠르게 생산해야 하는데 그걸 공장에서는 맞출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200벌 정도 주문하는데 공장 돌릴 수 없죠. 이렇게 소량 생산하는 옷들과 빠르게 제조해서 납품해야 하는 옷들을 주로 만듭니다. 옷은 한 곳에서 만들지 않고 옷을 조립하듯 각자의 공장에서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디는 옷을 자르고 어디는 그걸 바느질로 이어 붙이고 어디는 단추만 달고 어디는 지퍼만 답니다. 이 부품들을 나르는 수단이 오토바이입니다. 오토바이의 비밀이 풀렸네요.
바로 옆이 동대문 의류 도매상가라서 수요가 여전히 많다고 하네요. 새로운 인력 수급은 안 되고 다들 기술자라서 창신동 봉제공장에 옷을 맡기는 회사들이 꽤 되나 봅니다.
2013년 기준 서울시 의류제조를 분석한 그래프를 보니 200개 이상의 고 밀집 봉제 공장이 있는 곳 1위는 종로구 창신 2동으로 638개입니다. 2위인 동대문구 장안 1동의 2배입니다. 중구 신당 1동, 용산구 청파동, 중구 신당 6동, 성북구 장위 2동, 금천구 독산 3동, 종로구 숭인 1동이 있네요. 독산 3동? 여긴 문성초등학교가 있는 쪽인데 여기도 의류 공장이 많군요. 근처 살면서 잘 몰랐네요.
지역마다 다루는 소재와 옷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금천구는 등산, 골프의류, 여성정장이 많고 용산구는 여성정장, 종로구는 여성정장, 캐주얼웨어, 남성정장, 영등포구가 란제리, 가죽의류가 많습니다. 광진구는 수제화 공장이 많아서인지 가죽 의류, 캐주얼웨어네요. 중랑구는 스웨터, 유아동복입니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지역이 여성정장을 만듭니다. 아무래도 옷은 여자죠. 여자들이 옷 많이 소비해요.
그런데 동작구, 강서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는 봉제 공장이 없습니다. 동작구만 빼고 이 지역의 공통점은 60년대 이후에 서울로 편입된 곳으로 이전에는 논 밭이었습니다. 영화 <강남 1970>에서 아주 잘 그려지죠.
의류제조업, 성수기 비성수기가 있네요. 2~5월 성수가, 9~10월 성수기, 비수기는 한창 덥고 추울 때인 혹서기, 한서기에는 비성수기네요. 하기야 계절 바뀔 때 옷을 소비하고 그 계절 전에 만들어야 하니 9월부터 겨울옷 만들고 2월부터 봄, 여름옷 만드네요.
각종 가위를 전시하고
디자이너와 협업한 공간도 있었습니다. 창신동 자체 브랜드 하나 만들어도 좋을 텐데 그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고 하면 더 알아주고 가치 있게 쳐주면 좋잖아요.
안내하는 분하고 동네 이야기 이 봉제 역사박물관 이야기 들을 해봤습니다. 먼저 이 동네는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다가 원주민들이 반대가 많아서 뉴타운이 해제되었습니다. 뉴타운이 좋긴 하죠. 좁은 창신동의 골목을 해결하려면 싹 밀고 도로와 건물 다시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돈이 들어갑니다. 그럼 원주민은 쫓겨나고 투기꾼들이 시세 차익을 얻어요. 그래서 서울시가 도시재생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도시재생은 원주민이 정주할 수 있게 하지만 대신 도로가 좁아서 주는 불편함은 해결 못합니다.
일장일단이 있어요. 저같이 차가 없는 사람은 크게 불편하지 않는데요. 그런 면에서 차 없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게 해서 차를 덜 사게 하면 좋은데 국가 산업을 지탱하는 산업 중에 자동차 제조업이 있어서 그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올라와 봤습니다.
3층에는 옷을 제조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네요. 1개의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1층은 체험 공간이네요.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봉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네요.
여기서 텀블러를 사는군요. 텀블러를 사서 4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정말 다양한 단추들도 있네요. 창신동 가시면 한 번 들려볼 만합니다. 특히 옷 만드는 것에 관심 많은 자녀가 있으면 함께 들려보세요.
http://www.iumpium.co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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