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서 본 사진을 보는 4가지 시선

by 썬도그 2019. 5. 1.
반응형

홍상수 감독이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 급하게 찍은 듯한 <클레어의 카메라>는 상영시간이 68분이라는 중편 영화입니다. 투박한 스타일이 정체성이 된 홍상수 영화라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성긴 구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배우들의 대사도 밀도가 낮고 연기도 꽉 차지 않습니다. 또한 뜬금없는 대사와 장면들도 꽤 있습니다. 급하게 만든 티가 역력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배우 김민희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와 함께 칸에 왔을 때 홍상수 감독이 급하게 촬영한 영화입니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대중을 상징하는 듯한 장미희와 홍상수 감독 본인을 상징하는 정진영 그리고 김민희 본인을 연기하는 김민희 그리고 이 모든 관계를 사진으로 담아서 객관화 하는 듯한 이자벨 위페르가 등장합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김민희

영화 내용은 간단합니다. 칸에서 영화 판매를 하는 영화 배급사 직원인 만희(김민희 분)는 사장인 양혜(장미희 분)의 호출을 받습니다. 양혜는 노천카페에서 만희에게 정직은 타고나는 본성이라면서 만희의 실수에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해고를 통보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해고당한 만희는 짐을 싸서 프랑스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사장 양혜는 만희에게 정직하지 못하다고 했지만 실제 해고 이유는 만희와 소완수 감독(정진영 분)이 하룻밤을 즐겼고 이에 질투한 나머지 해고를 합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두 남녀

칸 영화제에서 초청 받은 감독 소완수(정진영 분)는 노천카페에 커피를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클레어(위자르 위페르 분)가 말을 걸어옵니다. 교사인 클레어와 말을 섞던 둘은 친해지게 되고 앙혜와 함께 3명은 술자리를 하게 됩니다. 이 술자리에서 클레어는 자신이 즉석 인화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 사진들 중에는 클레어가 촬영한 만희의 사진도 있습니다. 이후 영화의 장면은 클레어와 만희가 해변가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만희와 클레어는 금방 친해지게 됩니다. 클레어는 자신의 촬영한 즉석 사진을 만희에게 보여주는데 이 사진 중에 소완수 감독을 촬영한 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희, 양혜, 소완수, 클레어 이 4명의 주연 배우들은 한 공간에 함께 만난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클레어와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즉석카메라가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잘 알게 해 줍니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시간 순서대로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인 2014년작 <자유의 언덕>에서 영화 초반 땅에 떨어진 여러장의 편지를 집어 든 편지지부터 읽는 것처럼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간 순서라는 강박에 사로 잡히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의 순서만 집중해서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저도 처음 볼 때는 시간 순서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만 가득했네요. 어떤 시퀀스가 어떤 시퀀스 앞인지 뒤인 지에 대한 힌트는 클레어가 촬영한 즉석 사진이 유일한 단서입니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 영화 답게 꼰대들의 위선을 진하게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진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 사진에 대한 시선을 조심스럽게 소개하겠습니다. 

1. 사진은 위선의 결과물이다.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 영화의 특징은 식자층들의 위선을 블랙 코미디로 아주 잘 담습니다. 영화 속 영화감독인 소완수는 만희가 핫팬츠를 입고 있자 싸구려 욕망의 대상이 되지 말라면서 심하게 비판하고 훈계합니다. 이 장면은 홍상수 영화를 3분으로 담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그런데 이 위선을 잘 담는 도구가 사진입니다. 영화 초반 만희는 사장인 양혜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만희와 소완수 감독이 하룻밤을 같이 지낸 것이 괘씸해서 해고를 했습니다. 양혜의 갑질에 분노할만도 하지만 같이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다소 황당한 제안이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사장 양혜는 방금 해고한 만희와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사진 촬영을 할 때 자신의 감정과 표정을 숨기거나 감추고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 촬영을 합니다. 인상을 쓰고 있으면 현재의 그 감정을 잠시 숨기라고 다그치듯 웃으라고 강요를 하죠. 우리는 사진 촬영을 할 때 웃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실제 내 감정이나 표정을 숨기고 인위적인 사진용 표정인 미소를 짓는 것이 위선적 행동이 아닐까요? 물론 그 위선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아니지만 정직한 모습도 아닙니다. 
 
연예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인위적, 인공적 표정을 짓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미소 짓고 있는 연예인 사진들을 보고 같이 웃어보이지만 그 연예인의 웃음은 연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날 바라본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위선적인 행동을 잘 합니다. 남들이 쳐다 보면 쓰레기를 안 버리다가 아무도 안 보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죠. 
 
사진은 다른 사람이 날 보는 시선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남을 의식하면서 위선적 행동을 많이 하면서 삽니다. 남이 찍어주는 사진과 내가 날 찍는 셀카도 다 꾸민 사진, 연출된 표정이나 나의 진짜 감정과 표정을 숨긴 위선적인 행동의 결과물이 아닐까요? 실제 내 모습은 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때 몰래 촬영 된 캔디드 사진이 평상시의 진짜 내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몰래 촬영한 캔디드 사진이 자연스럽고 꾸민지 않은 포즈와 표정을 담아냅니다. 
 
영화 후반 그러나 시간상으로는 앞 부분인 장면인 만희와 소완수 감독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완수 감독은 너무 노출된 옷을 입고 다닌다고 만희를 심하게 비난합니다. 기분이 좋지 못한 만희. 그런 만희의 뒷모습을 클레어가 카메라로 담습니다. 이에 만희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 뒷모습을 촬영하지 말라고 합니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에 만희는 그런 진실이 알려지기 싫었습니다. 

2. 사진은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클레어의 카메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은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속 인물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체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 찾아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인 주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사진입니다. 

사진은 객관의 도구이자 증명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자기 주장을 하다가 인증샷으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속 클레어가 촬영한 사진들은 흐트러진 시간 퍼즐을 맞추는 도구이자 진실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클레어가 술취한 소씨 성을 가진 한국 감독을 만났다고 진실을 말해도 쉽게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 감독을 촬영한 즉석 인화 사진을 내밀면 간단하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진의 뛰어난 기록성과 재현성은 뉴스 보도 사진에서 아주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1번에서 말한 위선의 도구 사진에서 사진은 기록성과 재현성은 동일하지만 연출과 인위적인 꾸밈이 있어서 객관의 도구라기보다는 주관의 도구입니다. 반면 보도 다큐멘터리는 연출이나 꾸밈없이 담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담는 도구가 됩니다. 가끔 보도 사진을 연출로 촬영하거나 포토샵으로 사진을 합성하거나 피사체를 지우는 사진을 보도, 다큐 사진이라고 주장하다가 들통이 나서 큰 비판을 받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진은 크게 이 연출을 잔뜩하거나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 담는 2가지 시선으로 보입니다. 책으로 치면 전자는 소설이고 후자는 에세이입니다. 즉 장르가 아예 다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한 사진을 이용했다고 해서 패션 사진, 광고 사진과 보도 다큐 사진을 동일한 사진 문법에서 나온 사진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이 2개의 사진에 관한 시선을 섞어 놓았습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클레어가 3명의 주인공을 촬영하는 사진은 다큐 보도의 사진이고 만희가 양혜와 함께 촬영한 사진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촬영한 연출 사진입니다.

3. 피사체의 단면만 보여주는 사진의 맹점

클레어의 카메라

영화에서는 카페에서 키우는 큰 개가 여러번 나옵니다. 영화 초반 만희는 사장 양혜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느닷없이 옆에 있던 개를 보고 참 착하다고 합니다. 너! 너무 착해라는 뜬금없는 말을 합니다. 이 개는 영화 중반 또 나옵니다. 이번엔 클레어와 함께 소완수 감독이 카페 앞에 누워 있는 거대한 개를 발견합니다. 클레어는 이 개를 보고 예쁘다고 말합니다.

같은 개를 보고 만희는 착하다고 하고 클레어는 예쁘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물을 보고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평가하니까요. 그러나 만약 개가 말을 하거나 대화가 가능한 사물이라면 대화를 통해서 처음에 내가 내린 평가는 수정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겪어 봐야 안다고(대화해봐야 안다고)하잖아요. 

사진은 이미지입니다. 사진 속 피사체는 그게 강아지이든 고양이이든 사람이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담겨진 그 상태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말을 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고 교류가 가능한 존재인 사람도 사진만 보고 판단을 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매일 포털에서 보는 수 많은 연예인들과 잡지, 신문에서 보는 유명인들을 우리는 이미지로만 소비합니다. 인터뷰가 있다고 해도 연출된 또는 꾸민 대답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진짜 본모습을 보려면 캔디드 사진처럼 남의 시선이 없는 상태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그 유명인의 진짜 모습이자 진실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이미지로만 보여지는 유명인들을 우리는 이미지만 보고 쉽게 판단을 하죠. 우리는 이렇게 몇 장의 이미지로만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쉽게 평가를 하고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클레어는 한 주점에서 양혜와 소완수 감독 앞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찍은 후에는, 당신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진이라는 도구의 낙인 효과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만약 클레어가 촬영한 소완수 감독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하면 사람들은 소완수 감독에 대한 수군거림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홍상수 본인의 아바타인 소완수 감독의 술을 마시고 있는 초췌한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면 불륜 감독의 추한 모습이다 뭐다 온갖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겠죠. 

사진의 맹점은 피사체를 한 가지 시선으로만 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물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 옆에서 뒤에서 위에서 촬영한 느낌이 다 다릅니다. 사람도 사물도 여러 방면에서 보고 오래 봐야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사진은 오로지 보여주고 싶은 각도(연출 사진)만 또는 보여주기 싫은 각도(파파라치 사진)의 사진만 보여줍니다.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지 못하고 오히려 정보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짓말의 도구로도 쉽게 활용이 됩니다. 

프레임만 바꿔도 사실을 쉽게 왜곡할 수 있는 것이 사진입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만희는 클레어에게 묻습니다. "사진을 왜 찍으세요?"
클레어는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사진은 한 각도에서만 피사체를 담는 맹점이 있지만 이 맹점을 줄이는 방법은 사진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진을 보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길어보야 10초 이상 안 봅니다. 그러나 10초 이상 길게 보면 안 보이던 피사체들이 피어오릅니다. 오래 감상하다 보면 1차적으로 다가오던 이미지가 사라지고 다른 느낌이 묻어나옵니다. 

사진 속 어떤 피사체는 빠르게 다가오지만 어떤 피사체는 느리게 다가옵니다. 클레어는 같은 사진이라고 해도 천천히 보라고 합니다. 사진은 변하지 않지만 천천히 보는 과정에서 내가 보는 사진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는 사진을 넘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천천히 다시 보면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경박 단소하고 스피드가 미덕인 이 세상을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대신 천천히 보기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내가 보는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4. 기억의 마중물

클레어의 카메라

만희는 양혜에게 해고 통보를 당한 카페를 클레어와 함께 밤에 찾아갑니다. 클레어가 큰 개를 촬영하고 싶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만회는 혼잣말로 사장 양혜와 함께 나눈 대화를 되새김질 합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은 희미해짐을 넘어서 왜곡까지 됩니다. 이런 기억의 오류를 보정해 주는 훌륭한 도구가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고 우리는 기억을 보정하고 추억의 마중물로 활용해서 잊고 있던 추억을 길어 올립니다. 사진의 효용중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효용이 기억의 소환 아닐까 하네요.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는 급하게 만들어서인지 구멍이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만듦새도 아주 좋은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도구를 아주 잘 담은 영화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 본 사진이라는 도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