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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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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돌아보고 기억하게 하는 영화 생일

썬도그 2019. 5. 18. 08:51

내 인생에 있어서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 때문에 수년 동안 마음 아파하고 슬퍼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삼풍백화점 무너질 때도 성수대교 사고가 터졌을 때도 길게 아파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내 또래의 문제라기 보다는 고속성장에 취해서 안전을 무시하고 살아온 기성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벚꽃이 피던 4월에 세월호 사고가 터집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TV를 보다가 너무 답답해서 집 밖에 나와서 밤 벚꽃을 보면서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21세기 한국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무능력한 정부와 사실을 숨기기 급급한 관련자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썩어빠짐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부끄러웠고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고 지금도 나보다 어린 세대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우리 책임이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만든 부끄러운 세상을 목격했습니다. 

위 사진은 세월호 사고가 난 후에 안산에서 추모 행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제 페이스북 메인 사진으로 걸어 놓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대문으로 사용할 듯하네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 한국 사회의 추한 모습이라는 모습은 다 본 듯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하는 금수보다 못한 인간들도 보고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지역 자영업자들의 항의도 봤습니다. 

가장 짐승같은 인간들은 보상금 많이 받아서 좋겠다라는 인간들이 가장 짐승같은 아니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 입니다. 이런 짐승보다 인간들과 같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 것이 정말 구역질 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인간에 대한 혐오가 더 진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위 사진 속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주인공인 영화 <생일>

한 시대를 정리하고 돌아보고 회상하게 하는 건 역사책 보다는 영화가 그 역할을 잘 합니다. 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국가의 시선이 아닌 한 병사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돌아보게 한 영화 <플래툰>처럼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영화로 씻김굿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영화 <1987>과 <택시운전사>는 격동의 80년대 한국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영화입니다. 정권에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쉽게 바뀌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영화로 박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세월호 사고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사고 발생한 지 10년이 지날 즈음에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습니다. 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세월호 사고는 고통이 현재진행형이라서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기만 하고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고통이란 사고 모습을 재현하는 장면일 겁니다. 분명 필요한 장면이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 무덤덤해 질 때 보는 것과 지금도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른 거리는 유가족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생일>은 다행스럽게도 사고 장면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숨기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 영화 <생일>을 아무런 정보 없이 봤다면 이 영화 속에서 자녀가 하늘 나라로 떠난 것 같은데 무슨 일로 하늘 나라로 갔는지 영화 중반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영화가 서사가 예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 초반에는 궁금증만 야기할 뿐 큰 느낌을 주는 공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 유가족들의 눈물과 고통과 함께 우리들의 못난 모습을 자분자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오래 지냈던 아빠 정일(설경구 분)은 아내 순남(전도연 분)과 어린 딸 예솔(김보민 분)이 살고 있는 집을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합니다. 할 수 없이 정일은 아내와 친했던 여동생의 도움으로 하교길에서 어린 예솔을 봅니다. 자신의 딸이지만 오래 떨어져 살아서인지 아빠인지도 잘 모릅니다. 예솔과 함꼐 아내 순남을 만난 정일은 순남의 싸늘한 반응에 안절부절합니다. 


순남은 고등학생인 아들을 사고로 떠나 보낸 후 마트 계산원으로 생활을 하며 어린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순남은 아들이 죽었을 때 어디서 뭘 했냐며 정일을 타박하고 배척합니다. 정일은 미안한 마음에  순남의 마음을 풀리길 바라며 멀리서 조금씩 다가갑니다. 순남은 아들이 죽은 지 2년이 지났지만 다른 유가족과 달리 아직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데 반해 무슨 소풍왔냐면서 유가족들을 타박합니다. 넋이 나간 삶을 살던 순남, 아들 수호의 생일이 다가오자 주변 사람들이 아들 수호의 생일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이 마저도 뿌리칩니다. 여기에 친척이 보상금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자 억장이 또 무너집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받은 서러움을 잘 담았으나... 

세월호 사고는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다 해결되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난 박근혜 정권이 지속적으로 은폐하고 사실을 왜곡해왔습니다. 여기에 일베 같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폭식 투쟁을 하는 등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조롱을 하는 인간들도 참 많았습니다. 유가족 앞에서 조롱만 안 했지 인터넷 댓글로 조롱하고 비난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지긋지긋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는 지겨운 것이 없습니다. 순남은 한결 같았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다른 유가족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떠나간 아이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대신에 죽은 아들의 옷을 사는 등 아직도 아들 수호를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보상금 문제를 담는 등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현실을 그런대로 아주 잘 담았습니다. 세월호를 환기 시켜주는 모습은 무척 좋네요. 


영화 <생일>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지만 소재가 주는 슬픔이 가득합니다. 영화 중간 본격적으로 세월호 유가족 모임이 등장하면서 순남이 세월호 유가족임을 알게 됩니다. 이후 순남이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아도 순남의 표정만 봐도 눈물이 울컥하게 됩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그 자체가 슬픔인데요.

영화는 우리가 본 세월호 아이들의 단체 사진을 직접 담습니다. 죽은 수남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는 순남을 보면서 한 사진전이 떠올랐습니다. 


2015년 세월호 1주기에 서촌에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는 세월호 사고로 떠난 아이들의 빈방을 담은 사진전 <빈방>을 전시했습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날 이후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사진 밖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순남이 그랬습니다. 아들 수남이 올까봐 다른 사람이 수남의 방에 들어가고 물건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전체적으로 영화 <생일>은 용기 있게도 세월호 사고를 정면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온 영화인 생일은 앞으로 계속 나올 세월호 사고에 관한 영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 이유로 영화 <생일>은 참 고마운 영화입니다.

사실 세월호 사고를 소재로 하는 자체가 영화 흥행과는 거리가 좀 소재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가슴 아파하는 일이지만 가슴 아프다고 모두 영화를 보러가지 않을 뿐더러 비극이 매일 일어나는 일상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또 비극을 보러가고 싶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런 것을 잘 알기에 영화 <생일>은 사고를 직적접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없을 뿐더러 간접적으로도 많이 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 남은 아이들이 수호의 엄마인 순남을 피하고 수호를 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이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도 세월호 1주기, 2주기에는 참 열심히 세상에 알리고 안산 분향소까지 찾아갔지만 한 해, 한 해 시간이 더 지나면서 머리에서 비워내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시선들은 참 잘 담고 고맙게 담은 영화 <생일>입니다.  


단순한 서사가 아쉬웠던 영화 <생일>

영화 <생일>은 서사가 단순합니다. 처음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임을 알리고 시작하지도 않고 중반까지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의 정보를 모르고 본 사람들은 정일과 순남 사이에서 큰 오해나 문제가 있었나? 어리둥절해 합니다. 영화 후반에 수호가 하늘 나라로 떠났을 때 아버지 정일이 옆에 있지 못한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건 정일이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이 아님에도 순남은 너무 정일을 배척합니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보니 영화 속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나 힘은 없습니다. 그냥 순남이 아들을 마음 속에 묻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도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렇게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순남이 정일의 지극정성에 마음이 풀린 것이겠지만 크게 아들 생일 모임에 참석하는 모습이 크게 공감가지 못합니다. 

유일한 은유는 현관문 앞에 있는 센서등입니다. 이 센서등을 통한 은유는 억장이 무너지게 하네요. 다만 이런 은유와 촘촘한 스토리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런 것이 없네요. 또한 세월호 사고를 오로지 세월호 유가족의 시선으로만 담고 있습니다. 좀 더 다각도로 담으면 좋았을텐데 하나의 시선으로만 담다보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있습니다. 여기에 감정 과잉도 신파도 살짝 보입니다. 그나마 전도연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몰입할 수 있었지 전체적인 스토리는 아쉽고도 아쉽네요.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잘 만든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한 영화입니다. 용기 내줘서 고맙고 이 영화 <생일>을 필두로 또 다른 세월호 사고를 다룬 영화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마침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억이 옅여지는데 영화 <생일>이 아직도 안개 속에 있다고 환기시켜줬네요.

별점 : ★★★

40자 평 : 잊혀져 가는 세월호 사고를 다시 기억하게 해준 고마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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