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는 연말이 되면 올해의 단어를 선정합니다. 2013년 옥스포드 대학이 뽑은 단어는 셀피(Selfie)입니다. 좀 생소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셀피는 우리에게는 이미 아주 익숙한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바로 셀카입니다. 즉 셀프 카메라라는 뜻이죠. 우리는 이미 폰카가 보급 되었던 2005년 경부터 셀카가 유행을 했고 얼짱 각도가 유행이 지나도 한 참을 지났지만 이제 서양에서는 셀피(셀카)라는 단어가 큰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단어들이 분화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머리카락이 나오는 셀카를 찍으면 헬피, 엉덩이를 찍은 셀카는 벨피, 운동 중에 찍은 사진은 셀피라, 술에 취해서 찍은 셀카를 드렐피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콘트롤 할 수 있는 사진, 셀카
사진의 혁명 중에 가장 큰 혁명은 디지털 사진입니다. 아나로그 필름 사진은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사진 동아리를 해보면 그 돈 나가는 소리가 팍팍 들립니다. 찍어도 돈, 뽑아도 돈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사진은 돈이 안 듭니다. 또한, 무제한으로 공유할 수도 있죠. 다만 물리적인 크기의 사진이 아닌 액정 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진이긴 하지만 액정 디스플레이가 널린 요즘에 그걸 직접 뽑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진의 민주화를 가져온 것이 디지털 사진이고 이 디지털 사진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2번째 혁명은 카메라 폰이 생상하는 셀카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포함한 이전의 카메라들은 자기 모습을 스스로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부착 되면서 팔만 돌려서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촬영하는 셀프 카메라 사진이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이는 아주 큰 변화입니다. 아니 변화가 아닌 혁명입니다. 그 이유를 좀 풀어보자면
이전의 사진은 자신이 찍는 사진이 아닌 항상 누군가가 찍어주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사가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지나가는 사람이 찍어 준 사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남이 찍어준 사진은 맘에 들거나 또는 맘에 안 들기도 합니다. 맘에 안들어도 어쩌겠어요. 사진 아까우니 그냥 가지고 있어야죠. 에이! 사진 좀 잘못 나왔네라면서 맘에 안들지만 이것도 내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대부분의 거울 속 내모습이겠죠)과 사진으로 담긴 내 모습은 왠지 모르게 괴리감이 있습니다. 난, 이 보다 한 3배는 더 멋진데 남이 찍어 준 사진 속 나는 맘에 안 듭니다. 아마도 거울 속의 나는 나를 의식하고 보는 나라서 그럴까요? 남이 찍어 준 사진 특히나 몰카 같은 사진 찍히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찍을 때의 캔디드 사진 속 나는 정말 볼품이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나와 객관적(?)인 나의 괴리감이 있었던 셀카 이전의 시대를 셀카는 그 괴리감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아니 괴리감이 뭡니까? 나를 더 꾸미고 예쁘게 담을 수 있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얼짱 각도라고 해서 상방 45도에서 사진을 찍으면 머리는 작아 보이고 턱은 갸름해 보이고 눈은 크게 보입니다. 실제 보다 더 예쁘게 보이게 하죠
셀카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이 찍으면서 맘에 안 들면 들때까지 계속 재촬영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맘에 드는 사진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남이 찍어준 사진은 맘에 안 들수는 있지만 셀카는 맘에 안 들수가 없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맘에 안들지는 몰라도 자기 맘에는 꼭 듭니다. 맘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촬영하면 되니까요
이 셀카는 나를 보다 주관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이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 과시의 모습도 있습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이나 힘들고 울고 있는 모습을 찍은 셀카는 거의 없습니다. 가장 예쁘고 기분 좋을 때 촬영을 합니다. 자기 과시와 자기 도취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 이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런 자기 과시나 자기 도취 마져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정말 수 많은 잉여의 세계에서 퍼덕 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SNS에서의 나의 이미지도 셀카와 비슷하다
SNS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SNS에서 저를 좀 더 멋지고 잘난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보다 더 화가나고 분노한 글만 씁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 느끼는 제 모습과 페이스북에서 느끼는 제 모습에는 괴리감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좀 더 과격하고 불만분자 같이 보이니까요. 그러나 그걸 지우거나 거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도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일부만 투영하는 것이기에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쓴 글만 보고 실제의 저를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SNS나 블로그에서의 글도 셀카와 비슷합니다. 자신을 충분히 꾸밀 수 있습니다. 다만, 셀카와 달리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안 좋은 모습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SNS도 내 모습을 내가 콘트롤 하는 도구입니다.
이러다보니 SNS에서 친구였던 분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많이 다른 모습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SNS와 실제는 엄연히 괴리감이 존재합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봐도 사진과 다르다고 하는데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괴리감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늘어갑니다. 왜냐하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나를 콘트롤 하긴 하지만 잘나고 못난 모습을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SNS나 셀카와 달리 실제의 삶은 좋고 나쁜 게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셀카와 SNS의 공통점은 내가 내 이미지를 콘트롤 할 수 있다입니다. 그러나 삶을 내가 오롯하게 다 콘트롤 할 수 없듯이 실제의 우리 모습은 우리가 다 콘트롤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