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나무와 군인, 그리고 군견 ‘북두’, 2010년 4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x100cm
벚꽃 엔딩도 여자친구랑 해야지 멋지고 황홀한거지 군대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그냥 벚꽃일 뿐입니다. 한국 남자에게 있어서 군대는 어떤 존재일까요? 또한 어떤 무게일까요?
몇번 밝혔지만 전 공군 병 출신으로 약 30.5개월의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육군의 26개월 보다 길었지만 편하다는 말에 지원해서 군입대를 했죠. 육군과 공군 영장이 같은 날로 잡혔고 고민 끝에 공군에 가게 되었습니다. 선택은 잘 했다고 판단됩니다. 공군은 복지시설도 좋고 육군과 달리 야전개념도 없는 기술병이 대부분인지라 육군보다는 많이 너그러운 분위기였습니다. 대대마다 다르지만 통신 쪽과 기상병 쪽은 일병이 내무반에서 책을 봐도 괜찮았습니다. 또한 10시 취침 점호 후에 공부해도 괜찮았고요. 한 고참은 수능시험까지 보던데요. 그 고참 절 참 많이 괴롭혔는데 수능 떨어져서 참 고소했었습니다.
군대는 군대인지라 구타도 갈굼도 얼차려 같은 것은 다 있었습니다. 지금 군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어느 후미진 곳에서 구타와 왕따가 살벌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 입니다. 굳이 해병대 총기난사나 GP 총기 난사 사건을 들먹이지 않아도 군대라는 곳은 사라지지 않는 한 구타와 갈굼은 사라지지 않을 것 입니다
전 그런 구타나 갈굼은 참을 만 했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못 참는게 폐쇄성입니다. 군인 자체가 폐쇄적이어야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고 군대라는 곳이 비밀이 많은 곳이라서 외부인과의 접촉이나 외부와의 접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 그 폐쇄적인 획일성이 사람 미치게 만들더군요. 전 그런 억압 질려버리거든요. 게다가 요즘 육방부라는 국방부는 생각까지 획일화 시킬려고 안달난 곳이잖아요. 불온서적? 베스트셀러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목하는 그 꼰대정신은 한국 국방부의 정신적 폐쇄성을 몸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군대에서는 18세기 전투모델인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군인만 양상할 뿐입니다.
군대는 이렇게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정신개조의 장소입니다. 무조건 동료와 집단을 우선 생각케 하는 사고방식이 주류고 아니 그렇게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세뇌시킵니다. 물론 이런 우리라는 집단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우선시 하는 생각이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당한 면도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식당에 갔는데 난 짜장면 먹고 싶은데 남들이 다 짬뽕 시키면 자신의 취향따위는 가볍게 버리고 통일하면 더 빨리 나온다는 우리의 이익을 따르는 소시민들이 많은게 한국입니다. 참 신기한게요. 한국,중국,일본 서로 으르렁 거리지만 이 3나라의 공톰점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나라들이고 이게 동북아 정신문화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이 우리라는 개념이 너무 강해지면 바로 전체주의가 되고 징고이즘(광신적 애국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이 광신적 애국주의가 수시로 발현하는 나라입니다. 황우석 사태때 보세요. 그 광끼에 제가 기겁을 한 후 한국에서 히틀러 같은 사람 태어나면 세계대전 일으키겠다는 생각마져 들었습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제가 철저하게 개인주의 혹은 개인주의 찬양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집단주의 즉 나 보다는 우리라는 테두리를 더 크게 생각하는 모습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생겼을까요?
이미 초등학교 때 부터 교과서나 학교에서 가르쳤겠죠. 하지만 제대로 교육 받는 기간은 바로 군대입니다. 뭐 요즘 남자 대학생이나 여자 대학생들이 너무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자들로 변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군대라는 집단 생활이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의 병폐를 희석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 같아 긍정적인 면도 있긴 합니다만 군대라는 집단우선주의 체제의 병폐도 아주 큽니다.
그 예가 바로 한국에서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대우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내부 고발이라는 용기에 박수를 치지 못하고 집단을 욕보였다면서 몰려와서 조인트를 까고 집단 구타를 합니다. 이런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요?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내부고발하면 한국에서는 집단 구타를 당하는 모습, 이러 모습의 시작점을 전 군대로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군대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고 너무 집단 우선주의 즉 우리만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불이익은 가볍게 무시하고 항상 개인의 희생만 강요하고 다수의 의견만을 존중하는 편협스러운 사회시스템의 큰 축을 군대라는 곳이 큰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군대에서 이해 못할 행동들 참 많았습니다.
같은 내무반 건물을 쓰고 같은 복도를 공유하고 있는 하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병인 저에게 저기 걸어가는 하사에게 김하사! 라고 외치고 오라고 시킨 병장도 이해 안가는 인간이고 왜 같은 군대 같은 나라 군대인데 하사와 서로 갈구고 치고 박고 싸우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또 소위 길들이기 한다면서 나이 어린 소위는 무시하는 모습들, 이런게 한둘인가요?
제 이야기만 너무 했네요. 사진작가 오형근은 이런 나와 우리의 경계선에 서 있는 군인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경계인 특유의 불안감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붉은 체육복을 입은 해병, 2010년 5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x100cm
저는 오형근 작가를 참 좋아 합니다. 그 이유는 이전 작품들에서 아줌마와 소녀들의 삶의 불안감을 미묘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잡아서 관람객에게 보여줍니다. 한 사람을 약 1분간 뚫어지게 쳐다 보세요. 특히 눈을 쳐다 보세요. 그럼 그 사람의 불안감 정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이 항상 불안하긴 하죠. 군인도 나름 늠름한 포즈를 취하지만 그 포즈 뒤의 불안감을 오형근 작가는 잡아내고 있습니다. 불안감 담는데는 오형근 사진작가가 국내 최고입니다. 특히 오형근 사진작가의 사진은 이런 조막만한 사진이 아닌 전신보다 큰 사진으로 보면 그 느낌이 확 옵니다.
<기마전을 앞둔 군인, 2010년 5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x100cm
오형근 작가는 나와 우리라는 그 경계선에 서 있는 군인들의 불안을 담은 사진인 중간인(中間人)을 개최합니다.
작가는 군인을 프로파간다 같은 홍보성 영상도 그렇다고 군인을 비판적으로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작가의 판단에 따라 맡기기 보다는 보는 관람객이 각자 느낄 수 있도록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위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늠름한 후배 군인들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짜증스러운 눈빛과 표정속에서 억지 웃음을 짓는 거짓된 이미지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죠.
따라서 이 작품속 군인들은 육군홍보 영상물이나 해병대 영상물 혹은 국방부 블로그에 올라오는 무적! 해병의 느낌이 아닌 그들도 인간이구나 하는 세심함과 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붉은 벽 앞에 선 해군, 2010년 10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x100cm
<T-50A 고등훈련기 조종사, 2011년 7월>
2011, Pigments on fine art paper, 146x186cm
<2명의 어린 군인, 2011년 4월>
2011, Pigments on fine art paper, 137x174cm
<127 mm 함포 앞에 서있는 해군, 2010년 10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37x174cm
연평도 포격 후에 한 해병대 소속의 장병이 불탄 하이바를 쓰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좀 측은스럽기도 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포격에도 굴하지 않고 공포를 떨치고 북한에 포격을 했다고 포장을 하던데요. 그런 포장된 이미지 말고 당시 심정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았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어렸을 때인 80년대 군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건 말이라기 보다는 악이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3옥타브 올라간 소리로 질러되는 소리에 군인은 저렇게 대화하나 보다하고 공포스러웠습니다. 매일 저렇게 말한다면 난 미칠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삼촌이 인터뷰 할때만 저러는 거라고 하는 말에 안심이었습니다.
겁나지만 겁안나는 척, 터미네이터가 아닌 인간이지만 터미네이터가 된듯한 이미지로 우리와 접하는 군인들, 그리고 그 군인들이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이 바로 중간인입니다.
군대가면 사람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됨이란 나의 이익을 희생하고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이 바로 사람됨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됨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한 그 사람됨은 과연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사람됨인가요?
그 사람됨이 폭주하면 그걸 막아낼 제동장치는 있는 한국사회인가요? 한국의 우리가 폭주하다가 민족주의라는 부스터를 달면 광끼가 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병영국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남자분들이 군에서 전역했어도 군시절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 너무나 많아요.
오형근 개인전 《중간인(中間人)》
- 전시 기간: 2012년 5월 3일(목) - 2012년 6월 17일(일) (총 40일)
- 관람 시간: 11am - 7pm (매주 월요일 휴관)
- 오프닝: 2012년 5월 2일(수) 6pm
- 전시 장소 : 아트선재센터 2, 3층
- 관람 요금: 성인 3,000원, 학생 1,500원
- 주최: 아트선재센터
- 기획: 사무소
- 후원: 국제갤러리, Epson
- 전시 문의: 아트선재센터 T. 02-733-8945 (http://www.artsonje.org)
- 단체전시관람: 어린이~청소년 대상, 전시기간 중 사전예약
문의 및 접수: 사무소 02-739-7098 artsonje_edu@hanmail.net
사진 출처 http://artsonje.org/a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