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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지독한 경쟁사회를 만든 한국인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 꽃들에게 희망을

by 썬도그 201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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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합니다. 정말 우울합니다.  잊따른  권력자 권위자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살했고  어제는 국내 초전도체의 최고권위자가 죽었고  오늘은 유명대학병원 교수가 자살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미술학원비가 없어서  어린 학생이 자신의 키보다 수배는 높은곳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죽기전에 세상을 얼마나 원망 했을까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과  실적을 요구하는 거대한 경쟁사회. 그게 바로 한국입니다.
태어나자마자 학교성적순위를 강요받고  경쟁대열에서 낙오되면 부모들은 낙담하면서  갖은 방법과 편법으로 경쟁대열에 합류하게 하고 편법으로 새치기를 합니다. 

그렇게 거대한 서열경쟁에서 대학에 입학하면 이 경쟁이 끝나냐 그렇지 않죠. 회사는 경쟁을 시켜서  낙오자에게는 질타를 경쟁에서 이긴 자에게 포상을 줍니다.  이런 모습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겠죠. 문제는  세상의 루저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한국은 주지 않습니다.

세상엔 위너보다는 루저가 더 많습니다.  모두가 위너일 수 없는 피라미드구조로 살아가니까요.
사업에 실패하면  우리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지고 망가집니다.  하지만  실리콘 벨리 같은 경우는  실패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높은 가치평가를 해주고 여러번의 기회를 준다고 하네요.  한국은 대학입학에 탈락하면  다른 대안을 쉽게 찾기가 힘듭니다. 대학을 가는 여러가지 우회로가 존재한다면 지금같이  중학교때부터 사교육을 받고 공부머신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 입니다. 또한 대학을 가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많아야 하는데  성공을 할려면  4년제 대학(그것도 명문대)이라는 성공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일방통행만 있습니다.

어떠세요? 이런 지옥같은  과도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사는 느낌이요. 
이런 과도한 경쟁사회 효율성을 위해서 삶의 여유는 폐기처분 당한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한국의 경쟁사회에  소설을 하나 강제도라도 읽어주고 싶습니다.
바로 그 책의 이름은  트리나 플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소유욕과 출세욕에 일그러진 현대인들의 멍든 가슴에 희망을 주는 책입니다. 책 머릿말에는  보다 충만한 삶을. 진전한 혁명을 위하여 라는 글이 적여 있습니다.

어느날  줄무늬 애벌레가 태어납니다.  세상아. 안녕  애벌레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잎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일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하게 됩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기둥을 보게 됩니다. 그 기둥은 수많은 애벌레들이 쌓아 올린 기둥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줄무늬 애벌레는 그 애벌레기둥을 기어 오릅니다.

애벌레기둥을 기어오르면서 다른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어께를 밟고 올라가면서 애벌레는 연신 미안 미안! 을 말했습니다.
그러다 노란애벌레를 만납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묻습니다.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라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고
노란 애벨레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걸 보면 틀림없이 그곳은 좋은 곳일 거야  라고 대답해 줍니다
그말에 안심이 되긴 하지만  줄무의애벌레는 친구들을 밟고 올라가는 방법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스니다. 이런 행동을 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친구 노란애벌레와 함께  그 기둥타기를 멈추고  둘은  애벌레기둥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둘은 초원에서  낮잠도 자고 먹고 즐기며 사랑스럽고 평온한  나날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한 삶도 지겨워집니다. 그리고 노란애벌레의 만류에도 줄무늬 애벌레는  저 기둥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 라는 말과 함께 다시 기둥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노란애벌레는 낙담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걷다가 나무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고치를 만들고 있는 늙은 애벌레를 발견합니다.

도와드릴까요?
아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돼.  라고 늙은 애벌레는 말했습니다.

나비? 노란애벌레는 나비라는 존재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늙은 애벌레는  니가 되어야 할 그것이 바로 나비라고 알려주죠.
나비가 없으면 세상의 꽃이 없어지게 될거야라면서  노란애벌레에게 일깨움을 줍니다.

그리고 나비가 될 때를 알려주죠

한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
그리고 이런 충고도 해줍니다.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고치란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란다. 변화가 일어나는 잠시 머무는 여인숙과 같은거야 애벌레의 삶으로 결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도약이지

노란애벌레는 변화와 모든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려움속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나비가 되기 위한 재료는 애벌레 몸속에 다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새로운 세상 무엇인가가 있길 예상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둥이 하나가 아님을 알게 되죠. 여기저기  애벌레들이 만든 기둥들이  가득했습니다.
실망감에  줄무늬애벌레는  기둥을 내려가면서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라고 절규하지만 그 소리를 귀담아 듣는 애벌레는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하게 기둥에서 내려와서 쓰러진 줄무늬애벌레  그런 그를 큰 날개로 보듬어주는 나비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란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나타난 것이죠

이 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요즘 유아용 동화책으로도 나오고 있더군요.  그러나 이 책은 아이가 아닌 우리  부모님들 혹은 어른들이 읽어야 할 우화가 아닐까요? 그렇게 경쟁해서  꼭대기에 도달하면  새로운 세상이 있을까요? 왜 세상의 꼭대기에 있다는  권위자 권력자들이  자살을 할까요?  경쟁만이  살길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들을 향한 훈시가 애속하기만 합니다. 

요즘 부쩍 잉여라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잉여인간과 잉여의 삶. 잉여어플리케이션이라는 말도 나오더군요.
가치가 없는 것들은 모두 잉여입니다. 쓸작덱 없는것들이죠. 그리고 자학을 합니다. 난 잉여인간이야.  맞아요 애벌레들은 가치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나비가 되면  꽃들에게 희망을 줄수 있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평생 애벌레처럼 살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번데기의 고통의 시간을 지나 나비가 될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도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안에 나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평생을 사는 분들도 많다는 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애벌레기둥쌓기 놀이를 하고만 있는것은 아닐까요?  모두가 달려가기에  나도 달려간다는  애벌레들 모두가 기어오르기에 닥치고 기어오르는 무비판적이고 무자아적인 행동들
한번쯤은 돌아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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