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건이 연일 언론과 유튜브에서 크게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 사전은 2004년 밀양에서 일어난 천인공노할 일로 당시에도 엄청나게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 여학생 학교에 찾아가서 합의를 봐달라고 하거나 당시 밀양 경찰이었던 분이 "너 때문에 밀양 물 다 흐려 놓았다" 식의 2차 가해를 하는 것을 넘어서 가해자들 대부분이 처벌을 안 받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끝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묻히지 않고 10년 단위로 크게 다시 회자가 되는 이유는 이 밀양 사건이 제대로 처리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해자들은 물론 당시 밀양 경찰 그리고 당시 판검사 등등의 관련 사법체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반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당시 피해자들을 우리 사회가 잘 보듬어주고 치료해 주고 세상에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평생 살펴봐줘야 할 겁니다.
하지만 언론들은 사적인 복수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사적인 복수, 검증 받지 못한 유튜브 조리돌림이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적인 복수에 전 국민이 박수쳐주는 모습을 보면서 왜 국민들이 사적인 복수의 문제점을 알지만 왜 유튜버들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안 보이네요.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근 밀양시 사회 지도층들이 강당에 모여서 믿도 끝도 없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종교계 인사까지 총 출동해서 사과를 하는 모습이 참 천박스러웠습니다. 사과를 하려면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하고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밝히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강당에서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지도 없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없습니다. 그냥마냥 밀양 불매 운동이 일어나자 겁을 먹고 쇼잉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냅다 사과를 하네요.
밀양 사건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창동 감독 영화 시
영화를 참 많이 보고 참 좋아합니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 내 인생의 영화 랭킹을 매깁니다. 내 인생의 영화 랭킹 TOP 3에 들어가는 영화이자 이창동 감독의 수 많은 좋은 영화 속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시>입니다. 2010년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21만 명이 봤으니 아주 적은 관객들만 봤습니다. 그 21만 명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이 영화를 10명도 안 되는 관객이 같이 봤는데 관객 대부분이 영화 후반 '아네스의 노래'를 배우 윤정희의 목소리로 읽을 때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어디서 누구랑 봤냐도 참 중요한데 그 2010년 영화관의 그 공기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당시는 이 영화가 이렇게 좋은 영화일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2010년 그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긴 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순위가 더 올라서 내 인생의 영화로 손꼽을 정도로 아주 아주 좋은 영화가 되었네요.
영화의 순위를 끌어 올린 결정적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온 후에 더 심해진 부끄러움을 모르는 한국 사회를 더 자주 겪으면서 이 영화 <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시선이 더 강렬해지네요.
성폭력 가해자인 손주를 키우는 미자 할머니
지방 소도시에 사는 미자 할머니(윤정희 분)은 딸이 이혼한 후 중학생인 어린 손주를 종욱(이다윗 분)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딸이 부산에서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하지만 안 보내주는 일이 잦아서 기초연금과 파출부와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손주를 키우고 있습니다. 강한 생활력의 원동력은 어쩌면 손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한통의 전화가 옵니다. 종욱의 친구 아버지가 만나자고 하네요.
종욱과 종욱의 친구 6명이 같은 학교 여중생을 6개월간 성폭행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최근 자살을 했습니다. 이에 종욱 친구 아버지를 포함 가해자 부모 6명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먼저 학교 교감이 나서서 학교의 입단속을 하고 경찰도 지역 부끄러운 일이라고 숨기기 급급합니다. 한 지방 언론사가 냄새를 맡고 이 사건을 다루려고 하지만 학교, 가해자 부모, 경찰까지 숨기려고만 합니다.
마치 밀양시에서 일어난 그 사건처럼요.
그렇게 합의금 3천만원 마련해서 피해자 부모에게 전달하고 이 사건은 덮어질 듯합니다.
시를 쓰는 그 마음이 세상의 본질을 보는 마음
미자 할머니는 지역 문화센터에서 시 강좌를 듣습니다. 강사는 첫 강의 때 사과를 꺼내면서 사과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는 이걸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 보니 이창동 감독이 중의적으로 사용한 느낌이 드네요. 영화 <시>는 사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사과인지 개사과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정말 할 줄 모르고 알아도 안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해자면 돈과 합의 이전에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게 실수이든 본의가 아니든 의도가 있었던 무조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 피해자가 용서할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영화 <시>는 미자 할머니가 시 강좌를 들으면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뭐든 오래 보고 깊게 보면 그 본질이 보여집니다. 수많은 꾸밈이 난무하는 세상에도 원리와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본질을 보는 시선과 힘을 가지고 되고 미자 할머니는 그 어떤 가해자 부모도 학교도 찾지 않은 피해자 부모를 찾아갑니다.
사과를 모르는 세상을 고발한 영화 <시>
해병대원의 순직 사건의 본질을 전국민은 다 압니다. 그럼 가해자는 진심으로 머리 숙여서 사과를 하고 법의 처벌을 받으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죠. 하지만 그 생각의 결과가 비극이라면 그 비극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 됩니다.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기에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때렸는데 아무런 반성도 처벌도 없다? 그럼 세상은 야만의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안 합니다.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도 안 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봅니다.
영화 <시>에서 미자 할머니를 포함 가해자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 앞 길을 막아 버릴 수 있기에 성폭행 사건을 덮으려고만 합니다. 만약 내 자식이 그런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내일이 되면 또 다를 겁니다. 미자 할머니도 그렇게 손주 미래를 위해서 사과보다는 5백만 원을 어떻게 구하냐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를 배우면서 변합니다. 시가 짧아서 요즘 다시 뜨고 있다고 하는데 짧다고 다 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시는 길고 장황하고 꾸밈이 많은 것들의 본질을 보고 그 본질만 담을 때 시가 됩니다. 따라서 시를 쓰려면 세상의 이치와 본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지난한 과정 후에 시가 잉태되죠.
그러나 경박단소한 세상, 도파민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시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자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자꾸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미자 할머니는 세상의 본질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합니다.
미자 할머니는 죽은 여학생이 올랐던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피해자를 점점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내 손주가 아닌 피해자를 위한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씁니다.
사과를 해야 합니다. 미자 할머니는 아침밥 식탁에 죽은 여학생의 사진을 올려놓습니다. 가해자인 손주가 흠칫 놀랍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손주는 그냥 놀라고 끝입니다. 그러나 미자 할머니는 시 수강생 중에서 유일하게 시를 써서 제출합니다. 강사는 말합니다.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사과하고 반성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사과와 반성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미자 할머니는 그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밀양 사건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 당시 밀양 경찰과 판사과 검사들이 가지지 못한 건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어제보다 밝은 미래를 향해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이 사건을 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다시 떠올린다는 겁니다. 비록 그 방식이 과격할 수 있지만 사회 정화를 위한 마음까지 지적할 수 없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나오면 밀양 사건을 본보기 삼아서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밀양시에 미자 할머니 같은 분이 한 분이라도 있었다면 묻지 마 사과는 안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