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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교(敎)만 있고 육(育)이 없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

by 썬도그 200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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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의 대한 쓴소리와  수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국민의 최대관심사중 하나가 되어버린
교육 내가 학부모든 학부모가 아니든  한국교육에 대한 걱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입시지옥이라고 불리우는 한국교육의 총제적인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교육부장관이 바뀌고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지만   다 빛좋은 개살구입니다.
지금의 한국교육시스템에서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정책을 써 봐야  효과가 없습니다.
하지만 매번 국민들과 학생들은 이 입시전쟁, 과도한 사교육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줄까 새정부에 기대하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그게 헛된 희망임을 알수 있습니다.

한국교육은  교과과정을 다 뜯어고치고 혁명과 같은 변화가 없으면 사교육비및 입시지옥이라는 오명은 씯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전체를 함께 뜯어고쳐야 하는 대 수술을 해야합니다.하지만 대수술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기득권층들이 호락호락 이 사회시스템을 뜯어고치는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 한국교육의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보겠습니다.


1. 경험을 쌓기보단 이론을 먼저 배우는 한국교육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중에 하나는  세상을 배우는것을  글과 사진몇장으로만 배우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밀링머신,선반등을 공업책으로 배웠던 저에게  그 공작기계는 사진한장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그냥 그게 뭔지 몰라도 외우면 됩니다.  그게 잘 외워질리가 없죠. 백문이 불여일견 ~~ 한번 보면
머리에 쏙쏙들어오지만  한국교육은 그렇지 못합니다.  뭐 예전보다는 시청각교육이 발달했다지만
그래도  이론수업이 대부분인것이 한국교육입니다.  하지만  교육의 참된모습은   학생들에게 수 많은 경험을
쌓게하고  그 경험속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여   스스로 공부를 하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서양의 학생들이  대학교가서  죽으라고 공부하는것은  초중고에서 익힌 경험들을 토대로 이론을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반대입니다. 초중고때 이론수업만 하다가  공부에
대한 흥미를 다 잃어버리고 대학가서는 그냥 놉니다. 요즘은 토플이다 토익이다 해서 취직할려고 영어공부에
매달리는것이 조금 달라졌지만요



2. 자아인식과 자기발견보다는 사회의 일꾼이 되라는 국가주의 가치관


여러분들은 어려서 이런이야기 안들어 봤네요.  훌륭하게 자라서 산업역군이나 사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조의 말들을요.  우린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레고블럭으로 취급되어 개성과  자아는 국가에
저당잡히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위해 사회화를  초중고대학교를 통해 배워 나갑니다.
왜요~~라는 말은 닥치고 외워.라는 말로 되돌아오고 어느새  우린 순응주의에 쩌든 자신을 발견합니다.
순응을 잘 하면 잘 할수록  유능한 사원으로 인식되고   투자해야할  가치로 환원되는 회사의 분위기
얼마전  중앙일보에 대한 쓴소리를 했다가  계약해지당한 이모기자를 보더라도  우리에게 반항이란  불순한것
하면 안되는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속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걸 밖으로 표출하지
않아야  이 한국사회에 살아가는 생존법임을 알기에 순응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넥타이끈이 풀리는 저녁 퇴근길의 술자리에서 술을 그럻게 마시나 봅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니까요.  이런 순응주의가  밤에는 배설구를 찾아 배설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성과 자아발견은 없습니다.  그냥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준 몇개 안되는 길을 그냥 남들에 떠밀려 혹은
스스로 갈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일을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르면서 회사생활까지 하는 분들
많습니다.   결국은 나이 50살이 넘은 분들도  직업이란 자기가 하고싶어서 한것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로 인식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창의성은 나올수 없습니다.  끽해야 남에것을 배끼는 수준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창의력 어쩌고 하지만  다 쓸떼없는 모습입니다. 교육과 사회가 변화되지 않았는데  학습지
이름만 창의력으로 바꿔지면 없던 창의력이 생기나요?  그 창의력도  학력이 올라갈수록 퇴색되어 버립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대토론이 일어나지 않는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인간의 개성을 탈개성화시키고 획일화 시키는 교육입니다.
순수한 학문으로써의 교육은  아직까지는 요원한듯 합니다. 학생들의 머리모양까지 간섭하는 사획가
레고사회가 아니고 뭘까요



3.  교(敎)만 있고 육(育)이 없는  한국 교육


한국은  교(敎)만 있고 육(育)이 없습니다.   가르치기는 엄청 많이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100이란  교육을  학생들 머리에 주입하면  학생마다 선천적인 능력이 다르기에  어떤 학생은 100을 다 소화못하고 80만 소화하고 20을 소화못하겠다고 뱉어냅니다. 또 어떤학생은 100을 소화하고 더 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도 있죠. 

소화를 다 못하는 학생들은 도태되고 버립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런 학생을 보듬어주지 않습니다.
이 한국교육이란것이  어차피  대학교 입학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게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최대목표입니다. 어차피  능력이 안되는 학생들을 걸러내는것이 한국식 서열주의 교육이기에
당연한 모습으로 취부해버리죠.    한국은  1등하는 학생이 중요하고 예쁜것이지  50등 하던 학생이
다음시험에서 30을으로 20등이 올라도    뭐 그래도 30등이네 하면서  치부해 버립니다.
50등에서 30등이 된다는것은  엄청난 개인적성과이자 성취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좀더 격려하면 좋은 성적
공부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데 그런 학생들을 중요하고 가치있게 보지 않는게 한국교육입니다.
어차피  모든 교육의 목적은  대입이라는  구멍을 통과하느냐 못하느냐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런것은
안보이죠.   그 대학이라는 구멍을 통과시키기 위해  학교는 교(지식)만 입력시키기 바쁩니다.
육(育)이라는 학생들을 기르는데  소홀합니다. 학생들이 가져야할  덕목과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그 인성교육이라는것도  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할것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립심이 없습니다. 자립심세워준다고 해병태
캠프보내는 모습은 오히려  집단에 대한 적응력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때문에 한국의 대학생들은  몸만큰 고등학생이라는 느낌이 많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나이지만  지금까지 스스로라는  말을 듣고 살아보질 못해서 어설프기만 합니다.
또한  대학이라는 구멍을 통과한 선택받은자라는 쾌감과 함께  대입이란 방아쇠가 당겨졌기 때문에
대학생활은 느슨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대학입학하면  초중고에 못논것을 보상받을려고 하죠.
요즘은 대학입학해서 노는 대학생은 별로없고 영어공부에 전공공부에 매달립니다. 취직이라는  구멍이
대입구멍보다 더 작기 때문입니다. 방아쇠가 예전엔 대입으로 맞추어졌다면 지금은 4년 더 연장된 취업으로
맞추어졌습니다.



한해에 수많은 학생이 학업스트레스로 자살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쏟아붇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대비 인재양성은  효율성이 좋지가 않습니다. 이 증기기관같이  효율이 낮은 엔진을 한국이란 기차의 교육엔진으로 쓰고 있는한 한국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기차자체를 통채로 버리고  신형엔진으로 바꾸지 않는한 이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계속 울릴것입니다.
기차를 바꾸는일은  정말 어렵고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같이 소모적인  논쟁거리로만 인식하는 모습에서는
그 희망마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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