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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왜 봉준호 감독이 추앙하는 지를 알게 되다

by 썬도그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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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보면서 한국 명감독들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인 <하녀>를 보고 봐야 하나 할 정도로 그 상황을 재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없나 할 정도로 영화는 너무 지루하네요. 김지운 감독이 <인랑>부터 예전 느낌이 많이 사라졌네요.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형식미만 가득하고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몰라서 1시간 정도 보다가 관람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가 1960년 작품인 <하녀>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하녀>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네요. 클립 영상으로 부분 부분 본 게 전부였네요. 잘 알죠.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이고 역대 최고의 한국 영화에 TOP 5안에 들어갈 정도로 명성 높은 영화입니다. 보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에서 '1960년 하녀' 또는 '김기영 하녀'라고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 하녀의 줄거리

1960년 김기영 하녀

배경은 1960년대입니다. 대형 방직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부 선생님인 동식(김진규 분)은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경북 김천에서 주인이 하녀를 데리고 살다가 사건이 생겼어라는 말을 합니다. 이에 아내는 남자들은 비겁하다면서 하녀 따위에 관심을 가지냐고 합니다. 

 

이에 동식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하녀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우리와 삶을 공유하는 시간도 길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어린 남매가 실뜨기를 하는 장면을 담습니다. 수 없이 연습을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실뜨기는 2분 이상 진행됩니다. 남자 아역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안성기입니다. 80,90년대 대표 한국 배우였던 안성기의 아역 시절을 볼 수 있는데 안성기 느낌이 전혀 안 들어서 알고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더라고요. 

 

동식은 그날도 방직공장에 가서 피아노를 치면서 합창을 하는데 여공 곽선영이 연애편지를 유부남 동식에게 줍니다. 그러나 동식은 부도덕한 일이라면서 이걸 공장 관리자에게 알립니다. 관리자는 공론화하면 여공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기에 이쯤에서 멈추길 바랐지만 동식의 강력한 의지에 곽선영을 부릅니다. 그렇게 곽선영은 정직 처분을 받지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곽선영은 공장을 그만둡니다. 그런데 그 연애편지를 쓰라고 부축인 조경희(엄앵란 분)는 그걸 빌미로 개인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어 합니다. 마침 동식은 새 저택으로 이사를 갑니다. 

1960년 김기영 하녀

그렇게 조경희는 동식의 두 아이들에게 호감을 사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옵니다. 동식은 경희에게 아내가 아프다면서 하녀를 구해달라고 하죠. 

 

공장에서 담배를 피다가 경희에게 눈에 띈 동료 여공을 동식 집의 하녀로 소개합니다. 하녀(이은심 분)는 집에 오자마자 쥐를 때려잡는 용감무쌍함을 잘 보여줍니다. 직업명이 하녀라서 그런지 가장 직설적인 캐릭터인 동식의 아들 창순(안성기 분)은 권력관계를 잘 알아서인지 하녀에게 반말을 하고 하대를 직접적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녀는 동식 가족의 아랫 사람 취급을 당하면서 지냅니다. 아래에 있으면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게 인간 욕망이죠. 최소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합니다. 영화 초반은 별 내용이 없어서 좀 지루합니다만 중반부터 영화가 크게 요동칩니다. 같은 여공이지만 경희는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고 같은 집에 살지만 동식은 절대로 피아노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녀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동식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여공 경희가 여공 곽선영이 고향에서 죽었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동식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흑심을 꺼내서 보여주자 동식을 따귀를 때리면서 내쫓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창가에서 모두 지켜본 하녀는 이 모든 것을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대신 자신도 피아노를 치게 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말을 했어야 하지만 동식은 반협박 반욕정으로 하녀와 동침을 합니다. 이후 영화는 관계의 전복이 일어납니다. 

하녀가 상녀가 되자 파국으로 치닫다 

1960년 김기영 하녀

인간 세상이 평등한 거 같지만 인류세 전체를 살펴보면 평등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평등한 세상이라면 허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처럼 공동 보육의 시대가 되어야죠. '부모팔자 반팔자'라고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출발선상이 다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계급 사회는 줄이거나 최소한 책임 관계로 전환을 해야죠.  사장과 말단 직원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특권 의식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죠. 

 

그러나 여전히 계급 사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외치지만 현실은 여전히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습니다. 하물며 1960년대는 더 심했죠. 하녀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던 시대였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하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당시 <하녀>는 극심한 계급 사회가 아닌 그냥 계급 사회 그 자체였습니다. 하녀가 2층에서 기거하는 걸 지하로 바꾼 것뿐이죠. 

1960년 김기영 하녀

동식은 하녀를 하대하거나 막대하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습니다. 교양인이니까요. 그러나 동레벨인 다른 여공인 경희에게만 피아노를 허락하는 건 차별입니다. 같은 계급이라고 해도 차별 대우는 모욕으로 느끼는 인간들입니다. 흥미로운 시선이에요. 계급 사회 타파를 뭉쳐서 외쳐야 하는데 계급 사회는 인정하면서 차별 대우는 못 참습니다. 계급 사회는 계급이 역전 당하면 더 험한 꼴을 보게 됩니다. 

1960년 김기영 하녀

보면서 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이 떠올랐습니다. 하녀가 동식 집안을 박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자 동식 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슬픔의 삼각형>에서 호화 유람선에서 하층민 같았던 여자 승무원이 식량이라는 권력으로 최상위층에 오릅니다. 이에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상위레벨인 줄 알았던 남자들이 먹이 앞에서 굴종을 하는 모습에 낄낄거리면서 보더라고요. 하녀는 이 계급 역전극을 후반 1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파격과 파격의 연속입니다. 1960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고 한국 영화 중 대표작인지 잘 보여줍니다. 얼마나 좋으면 '마틴 스콜세지'가 이 영화 보고 봉준호, 박찬호 감독 등에 영향을 준 영화라고 대번이 인정하고 1억을 투척해서 <하녀> 복원 사업에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하녀> 영상 초반에 '마틴 스콜세지' 재단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영문 자막이 나옵니다. 

 

파격적인 내용과 영상 연출에 탐복을 하다

1960년 김기영 하녀

뭔 영화이기에 이렇게 극찬을 하나 하고 봤지만 초반 1시간은 이런 영화를 왜 칭찬을 하고 극찬을 하지 했는데 집주인 동식과 하녀가 동침을 한 후 그 관계를 무기로 아내에게 알리면서 영화가 휘몰아칩니다. 보통 지금의 아내라면 남편의 불륜 사실에 당장 이혼하고 소송을 통해서 재산을 갈라치고 끝낼 겁니다. 

 

그러나 동식의 아내는 가정을 지킵니다. 아내는 같은 여자라는 점을 이용해서 하녀를 설득합니다. 그리고 하녀에게 계단에서 굴러서 낙태를 유도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치정극인가 했는데  아내가 셋째인 막내를 낳습니다. 같은 아버지에서 태어났는데 하녀의 아기는 낙태를 당하고 아내가 낳은 아들은 애지중지 키우는 또 하나의 차별 대우에 하녀는 폭발을 합니다. 이후 하녀는 이 가정을 분쇄시킵니다. 이 과정이 주는 파격은 놀랍기만 하네요. 영화가 갑자기 스릴러로 전환합니다. 

 

계급은 인정하지만 차별 대우는 하지마!

1960년 김기영 하녀

영화 <하녀>는 실화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하녀가 주인집 유아 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실화를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고 감독이 직접 창작한 시나리오입니다. 영화 <거미집>에서도 내가 직접 쓴 창작 시나리오라고 강조 오브 강조를 하죠. 

 

하녀는 악녀는 아닙니다. 그녀의 행동이 과한 것은 있지만 그렇다고 공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행동은 슬프기도 하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내 촬영으로 이루어지지만 뛰어난 미장센과 스타일로 영화의 몰입감은 후반 내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성긴 점도 꽤 있는데 1960년대는 이제 막 경제 개발이 시작되던 시절이고 돈이 많던 시절도 아닌데 공장 음악 클럽 교사가 2층 집을 사는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클래식 성악 가수나 유명 피아니스트도 아니고요. 그리고 엄앵란이 여공인데 공주원피스 같은 걸 입고 다니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남은 돈을 고향에 보내는 여공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공주 원피스를 입고 그것도 개인 피아노 레슨을 받습니까? 한 달 월급 5천 원인데 1천 원을 하녀에게 주겠다는 엄앵란이 연기한 경희라는 캐릭터는 너무 과장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계단을 기가 막히게 사용했습니다. 2층 집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죠. 전 한 번도 2층집에서 살아보지 못했고 고등학교 당시 친구 집이 2층 집인 점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 2층집은 중산층 이상을 표식 하는 도구인데 이 계단을 통해서 영화 내의 결정적인 갈등 구조를 잘 담고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 낙태를 당하고 죽음의 도구 등으로 계단이라는 간단명료한 도구로 영화 속 삶과 사랑과 계급 이동을 잘 보여줍니다. 이걸 보고 봉준호 감독이 지하로 내려가는 숨은 계단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네요. 

1960년 김기영 하녀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내 역을 한 주증녀 배우는 눈이 부리부리해서 화면을 잡아먹는 눈빛을 보여줍니다. 천상 배우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있습니다. 김진규야 워낙 잘 생기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녀를 연기한 이은심이라는 배우입니다. 필모를 보니 1964년 <신식 할머니>에서 멈췄네요. 이 좋은 배우가 왜 더 오래 활동 못했을까요? 다행인 건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1960년 제1회 한국 최우수 영화상 신인상을 받았네요. 

 

그렇게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지만 파격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는 스포라서 담지 않겠지만 1960년 영화가 이런 연출을 했다는 것이 쇼킹하네요. 갑자기 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관객에게 대사를 치는데 이런 기법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1953년 영화 <모니카와의 여름>에서 처음 사용한 기법입니다. 사진은 정면 응시를 요청하지만 영화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관객님들 불편하게 한다고 금기시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배우가 정면을 응시하고 관객에게 치는 대사가 기가 막힙니다. 인간 욕망을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그 한마디가 정곡을 제대로 찌르네요.  넌 안 그럴 걸 같아???? 에 뜨끔했네요. 

 

영화 <하녀>를 다 보고 영화 <거미집>을 계속 봤습니다. 영화 <거미집>에서 촬영하는 영화 내용이 하녀와 동일한가 했는데 아닙니다. 다릅니다. 완죤 달라요. <거미집> 속의 영화는 3류 막장드라마네요. <하녀> 보면 재미가 살아나나 했는데 오히려 비교가 더 되어서 더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거장 김기영 감독이라는 소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정말 대단한 연출력과 시나리오와 표현력입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또는 은연적으로 담은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뒤늦게 보고 뒤늦게 탐복하네요. 

 

별점 : ★ ★ ★ ★ ★
40자 평 : 하녀를 통한 인간 세상과 욕망을 맛깔스럽게 담은 명작 영화

 
하녀
헌신적인 가장 동식, 아내를 위해 젊은 여인을 하녀로 맞이하다 방직공장의 음악선생인 동식은 헌신적인 아내와 함께 다리가 불편한 딸, 어린 아들을 보살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인해 여공들에게 흠모 이상의 지나친 관심을 받고 난감해진다. 집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지 얼마 후 손바느질로 맞벌이를 해온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녀를 찾기로 결심, 동식을 사모하던 여공 경희의 소개로 젊은 여인을 하녀로 맞이한다. 하녀는 품행이 방정치 못하지만 나쁜 여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녀와의 하룻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임신 이제 그의 가정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요양을 위해 친정에 간 사이 경희가 집으로 찾아와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는 이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하녀는 경희가 나간 후 동식을 유혹해 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임신한다. 사실을 알게 된 동식의 아내 하녀를 계단에서 넘어뜨려 유산시키고, 아이를 잃은 하녀는 잔인한 복수를 시작하는데..
평점
8.6 (1960.11.03 개봉)
감독
김기영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고선애, 강석제, 나정옥, 나옥주, 옥경희, 최남현, 조석근, 남방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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