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해 가장 잘한 일을 했네요. 카카오의 티스토리 갑질 사태에 하루하루 기운이 쪽 빠져서 지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티스토리에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제가 열심히 써봐야 카카오가 수익의 70%를 가져가는데요. 이러면 누가 열심히 블로그 포스팅을 하려고 할까요? 그럼에도 떠날 땐 떠나더라도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하여튼 심란한 하루하루입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윤종신, 장항준, 김세윤 GV를 보다
7월 5일 개봉하는 세계적인 영화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기를 다룬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GV에 참석했습니다. 엔니오는 저에게 영화를 소개해준 감독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까지 들어본 음악 중에 가장 선율이 뛰어난 영화음악을 만든 음악 감독이자 제 청춘의 1할을 차지할 정도로 저에게는 영화 사랑의 큰 축을 담당합니다.
고양감이라고 하죠. 엔니오의 노래를 들으면 정신이나 기분이 숭고함에 빠져듭니다. 잠시 천상의 세계에 다녀오는 느낌이랄까요? 이 GV에는 제가 잘 알고 좋아하는 김세윤 작가, 윤종신, 장항준 감독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어제 알았는데 이 3분이 2000년대 초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라디오의 한 코너인 '장항준의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를 함께 진행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새벽 2시 MBC 영화음악 라디오인 '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을 진행하는 김세윤 작가가 이때 같이 했었군요. 어쩐지 왜 친한가 했어요.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 사이는 잘 알죠. 장항준 감독이 어려웠던 시절 윤종신이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게 해 줬고 결혼 후에 궁핍한 생활을 할 때 윤종신이 엄청나게 도와줬다고 하죠 그래서 요즘 하는 말이
"윤종신이 임보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눈물자국 없는 말티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은 윤종신의 SBS 라디오에서 진행자와 작가의 관계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서 GV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자세히 하겠습니다.
1960~80년대 이탈리아 영화에 반하다
홍콩영화가 80년대를 주름잡았듯 이탈리아 영화는 50~80년대가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어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했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입니다. 미국 배우가 나오긴 하지만 이탈리아 자본, 이탈리아 감독, 이탈리아 스텝이 만든 영화입니다.
정작 서부가 있는 미국보다 더 잘 만들어서 미국인들이 자존심 상해했다고 하죠. 유럽이 만든 서부 영화? 이 인기에는 영상미와 함께 뛰어난 영화음악가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해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영화입니다. 전주영화제에서 먼저 본 분이 전반부에는 모르는 음악들이 나와서 지루했다고 하는 말에 오히려 좋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모르는 엔니오 시절이 있는데 바로 1966년 전후의 이탈리아 영화 음악들입니다.
많을 때는 한 해에 21편의 영화음악을 만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조수 고용해서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죠. 엔니오는 머릿속에 음악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사람으로 그냥 그걸 끄집어내기만 하면 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영감 영상을 음악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천재급이었고 이는 그 어떤 영화음악감독도 가지지 못한 능력입니다.
저도 처음 들어보는 이탈리아 60~70년대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크게 놀란 게 있습니다. 처음 보는 이탈리아 영화들인데 그 짧은 영상 클립에 홀딱 빠졌습니다. 수백 명의 엑스트라가 전투를 하고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전진을 하고 대규모 전투신을 보면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이런 영화 없습니다. 100명 이상 넘으면 그냥 CG로 만들어서 붙여 넣습니다. 다 티가 나요. 너무 티가 나서 대규모 전투라고 해도 이제는 감흥이 없습니다. 그냥 애니구나 할 정도니까요. <인디아나 존스 5>를 예고편 보고 관람 포기했습니다. 해리스 포드 옹 가는 길 배웅하고 싶은데 CG 떡칠물인 걸 돈 주고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CG 만능주의 시대라서 대규모 군중 장면이나 심지어 자동차 액션과 각종 액션 장면에 CG가 들어갑니다. CG를 사용하면 이상하게 영화가 진실되지 못해 보입니다. 우리가 풍경 사진에 감탄하는 건 그게 진짜 있다는 것 때문이죠. 합성한 풍경 사진을 보여주면 감탄이 안 나옵니다. 어차피 만들어진 인공 사진을 누가 보고 감탄을 하겠어요. 진짜여야 말 그대로 리얼이야?라고 하죠.
60~70년대 이탈리아 영화들을 보면서 뛰어나고 놀라운 스타일에 감탄하고 뛰어난 실험적인 장면에 감탄했습니다. 지금 봐도 충격적인 영화들이 많네요. 돌아보면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문화의 파도가 높았던 시기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던 60~70년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때는 영화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저렴한 돈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영화였고 영화제작자들은 그런 대중들을 영화관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TV로 경험할 수 없는 풍광과 액션 장면을 시네마스코프로 보여줬습니다. 어제 GV에서 윤종신도 거론했지만 60~70년대 이탈리아 영화들을 보면서 놀랐다고 하죠.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가장 큰 2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봐서 그런지 봤던 영화도 더 흥미롭게 봤네요.
황야의 무법자,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천국 등등 수없이 봤던 영화도 대형 스크린으로 보니 또 달라 보이네요. 이래서 좋은 영화는 대형스크린 & 돌비 서라운드로 봐야 하나 봐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가 점점 줄어들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매버릭>은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하죠.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봐야 영화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영상미와 음악이 좋은 영화들이 영화의 전성시대였던 60~80년대는 참 많았습니다만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작년에 개봉한 <매버릭>이나 <듄> 같은 영화 정도가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나머지 영화들은 스마트폰으로 보든 PC 모니터로 보던 그게 그거입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TV 드라마 수준의 영화를 만드니 누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고 할까요. 요즘은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와도 경쟁해야 하는데 그 경쟁에서도 밀리는 영화들도 많습니다.
어제 잠깐 나왔지만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을 다시 보면서 전율이 돋았습니다. 제가 영화 마니아가 된 결정적 계기가 이 장면이었습니다. 수업 마치고 노량진 학원 갔다 와서 집에서 밥 먹으면서 TV를 봤는데 이 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래에 이 영화는 무슨 영화인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2년 전에 개봉할 때 영화관에서 봤다는 말에 너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봤던 영화도 좋은 영화는 대형스크린에 좋은 사운드로 보면 그 감흥이 또 다르더라고요.
CG 만능주의가 영화에 대한 감흥을 떨어트리다
CGI를 사용하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죠. 다만 너무 과용하고 있습니다. 그냥 촬영해도 되는 걸 여러 가지 이유로 CG로 찍습니다. 실외 액션 장면을 실내에서 촬영합니다. 이 자체는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티가 안 나면 되니까요. 그런데 티가 나면 재미가 뚝 떨어집니다.
제가 놀란 건 <트랜스포머>1편이 2007년에 나왔는데 CGI가 2007년 작품이 지금 개봉 중인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보다 더 좋더라고요. 어떻게 영화 기술이 퇴보할 수 있나요. 제작비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갈수록 CGI가 저질인 영화들을 돈 주고 보라고 하네요.
영화 다이하드 1편의 한 장면입니다. 빌런역을 한 '앨런 릭먼'이 낙하하는 장면에서 저 표정 보세요. 저거 연기하는 표정이 아닙니다. 진짜 겁에 질려서 나오는 표정이죠. 이 장면은 원래 하나, 둘, 셋 하고 손을 놓겠다고 했는데 그냥 하나만 외치고 손을 놓았고 이에 놀란 앨런이 진짜 공포에 물든 얼굴을 담았습니다. 영화를 볼 때도 저건 찐이다!라고 했는데 연기가 아닌 실제 장면이었네요.
이걸 왜 이야기하냐면 요즘 영화들은 있지도 않은 괴물과 싸울 때 허공에다 총을 쏘고 칼을 휘두릅니다. 나중에 CG로 입히면 되니까요. 그러나 있지 않은 물체에 대하는 표정이나 시선이 실제로 보면서 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이게 연기에 다 묻어납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에는 벽 전체를 LED 디스플레이를 붙이고 촬영을 하는 버츄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늘고 있지만 실제보다는 다 못합니다.
CG가 없었고 특수효과가 있어도 사용이 아주 국한적이었던 90년대 이전 영화들은 그래서 조악할 수는 있어도 진짜로 큰 괴물을 만들고 거대한 세트를 만들거나 실제로 차를 전복시키고 폭파시키고 건물을 지어서 폭파 시 컸습니다. 요즘은 CG로 폭파시키는데 차이가 꽤 납니다.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도 줄어들고 있고 CGI 오남용 영화들이 너무 늘고 있습니다. 이러니 영화관람을 저도 점점 줄이고 있네요.
내가 고전 명작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4가지
고전 영화라고 하면 고루하다고 하죠. 그런 경향은 있습니다. 경박단소한 시대가 아닌 뭐든 진지하고 진중하던 시절에는 재미의 호흡이 느릴 수 있습니다. 또한 연륜과 경륜이 쌓아야지만 제대로 보이는 영화들도 있죠. 그래서 저는 영화 <박하사탕>을 10년 단위로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20대에는 그냥 밍밍하게 봤다면 30대가 다니 이 영화 이렇게 명작이었다고?, 40대가 되니 주인공이 저 같아 보일 정도로 감정 이입하고 봤네요.
한국 현대사를 돞아보고 많이 알고 보니 확실히 다릅니다. 고전 영화들은 이런 깊이가 깊은 영화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들을 가끔 봅니다. 개봉 당시 못 본 2000년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좋은 영화를 왜 안 봤지 할 정도로 좋은 영화들이 많네요.
고전 명작 영화들이 좋은 이유는
1. 수많은 고전 명작 영화 중 현재까지 회자되는 경쟁력이 높은 영화
고전 영화라고 해도 그 개봉 당시는 수많은 영화들과 경쟁을 했을 겁니다. 조악한 영화부터 마스터피스까지 다양했고 이중 마스터피스급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보라고 권하는 겁니다. 따라서 아주 경쟁력이 높은 영화입니다.
2. 실험성 높은 영화들이 자본을 만나서 혁신적인 영화들도 많다.
지금은 독립영화들이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소재를 담아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영화로 자본가의 입김이 아닌 감독이라는 창작자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를 말합니다. 고전 영화들도 지금처럼 자본가인 제작자 입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고전 명작 중에는 대중성도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작품 또는 실험성 높은 작품도 많았습니다. 특히 60~70년대 전위예술이 전 세계를 휘몰아치던 시절에는 영화도 다소 난해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놀라운 표현법으로 담은 영화들이 참 많았습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욕망(blow-up)은 몇 년 전에 보고 크게 놀랐던 영화입니다. 1966년대에 이런 놀라운 실험적인 영화가 있었다고? 요즘 영화들 중에는 보기 어려운 귀품이 있는 기이한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오히려 더 신선하고 혁신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만큼 요즘 영화들이 너무 자본의 눈치를 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3. 지금은 구현할 수 없는 대규모 군중 장면이 주는 스펙터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모랫바람에 날리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모래를 강풍기에 날려 보냈더니 배우들이 다치는 문제가 발생하자 모래 대신 옥수수 가루를 이용해서 촬영했다고 하죠. 지금은 제작비 때문에 시도하기 어렵습니다. 고전 영화들은 대규모 군중 장면이 많은데 이는 인건비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저렴해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CG가 아닌 영화에서 점으로 잡히는 인물까지 다 고용해서 촬영했습니다. 말 그대로 찐 액션, 실사 액션입니다.
이런 대규모 전투 장면이 주는 스펙터클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진경 액션이 주는 감동과 스펙터클을 간직한 고전 명작 영화들이 참 많습니다.
4. 그 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기록성
촬영한 모든 사진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기록성이 박힙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극이나 SF 영화처럼 과거나 미래를 담은 영화를 빼고 현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그 시절 사람들의 생각과 패션, 거리 풍경 등등을 볼 수 있습니다. <워커힐에서 만납시다>는 영화 자체는 별 내용은 아니지만 1966년대 서울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전차 등을 볼 수 있는 뛰어난 기록성을 가진 영화입니다. 제가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큰 비중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을 간접 체험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것이 영화입니다.
여기에 좋은 연출과 연기와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면 더욱더 좋아지는 것이 고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