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by 썬도그 2022. 9. 19.
반응형

한류 드라마, 한류 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은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와 드라마의 공통된 주제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모습이 마치 자본주의 최첨단 국가인 한국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그나마의 위안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부의 쏠림, 양극화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고통입니다. 다만 한국이 천민자본주의 성향이 보다 강할 뿐이죠. 흥미롭게도 천민자본주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두 나라가 있는데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미국입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정부가 이런 부의 쏠림과 문제를 중국은 강력한 정부 제재로 미국은 강력한 법과 일부 부유층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겠다는 자발적 부유세를 내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종부세도 감면해주고 법인세 감면 등등 부자 감세를 이끄는 정부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대기업들이 많아서 다른 나라보다 양극화가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빨갱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죠. 

설렁설렁 봤다가 강렬한 이야기 진행에 깜짝 놀란 <작은아씨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제목이 별로였습니다. 전 여성 많이 나오는 드라마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성 자매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고 자매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잘 공감하지 못합니다. 경험치가 낮기에 안 봤습니다. 그러나 볼 게 없어서 봤습니다. 1화 보고 판단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자매가 3명이나 나오네요. 게다가 명작 소설 제목과 동일하네요. 

그나저나 내가 <작은 아씨들>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네요. 30년 전 미국 드라마로 얼핏 본 기억이 나고 재미있게 본 기억은 납니다만 딱히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화 보고 알았습니다. 이 드라마 자매들의 우애를 담은 그런 드라마가 아닌 돈을 소재로 한 스릴러라는 것을요. 2화에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중요한 캐릭터 같은데 죽다니 너무 놀라서 이 작가 누구야 하고 검색하니 박찬욱 감독과 시나리오를 공동 작업하는 정서경 작가네요.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과 많은 영화를 함께 집필했습니다. 하나의 모니터에 2개의 키보드를 놓고 집필할 정도로 두 사람은 많은 영화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이자 뼈대는 스토리가 텍스토로 담긴 시나리오죠. <헤어질 결심>에서 두 사람의 결실이 맺어졌지만 박찬욱 감독의 최고 인기 영화는 <아가씨>라고 하죠. 저도 <아가씨>를 보고 질이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귀하면서도 섬세하면서도 품위감이 느껴지는 스토리 진행에 묵직함과 재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 정서경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네요. 더 놀라운 건 이 드라마는 창작극이 아닌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19세기 명작 소설 <작은아씨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입니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돈과 얼굴 보고 결혼했다가 돌싱이 된 속물 근성이 가득한 첫째 오인주(김고은 분)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외치는 기자인 둘째 오인경(남지현 분) 가난에 찌든 삶이 지긋지긋해서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부자 친구가 더 좋은 오인혜(박지후 분)이라는 각기 성향과 성격이 다른 세 자매가 주인공입니다. 

이 세자매의 공통점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돈에 찌들 대로 찌든 삶을 충분히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돈에 아주 민감합니다. 네 돈입니다. tvN 토, 일 드라마 <작은아씨들>의 핵심 소재는 돈입니다. 돈을 통해서 3명의 가난한 자매들의 행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냥 보여주면 재미없기에 의뭉스러운 인물들과 사건을 넣어서 스릴러 형식에 돈을 태웠습니다. 

돈에 관한 놀라운 대사들이 돈다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작은아씨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돈에 관련된 대사들이 꽤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대사들이 팍팍 꽂힙니다.
김미숙이 연기하는 갑부 고모인 오혜석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가 상실감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상실감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다고요. 이는 대단한 통찰입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하이리스크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하이리스크를 견디면 하이리턴으로 큰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습니다. 코스피, 코스닥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갈 때 줍줍 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들입니다. 그리고 남들 다 주식할 때 팔고 나옵니다. IMF 때 쏟아져 나온 아파트 저가 매물들을 쓸어 담은 사람들이 바로 자본력이 있는 부자들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치킨게임에서 가장 오래까지 남고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이라는 지구력을 가진 부자들입니다.  

이런 대사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자들은 자본으로 리스크를 걸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대사요. 

유명 기업 재벌 2세, 3세들이 다양한 사업을 한 후에 말아 먹는 경우가 엄청 많죠. 그런데 그 재벌 2세, 3세들 회사에서 잘립니까? 여전히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 부회장은 많은 사업을 했지만 실패한 사업도 엄청 많습니다. 그러나 명성이나 지위에 타격감 일도 없습니다. 반면 사업 실패 후에 자살을 하는 많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패가 자실로 이어지는 세상이 한국 사회입니다. 

세상의 유일한 공정하고 공평함은 불공평함이 골고루 제공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단 0.1% 이너서클 사람들만 제외하고요. 한국의 정계, 재계, 법조계 이 3각 트라이앵글에서 피어나는 악의 꽃들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의 고질병은 21세기 되어도 2022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네요. 같은 잣대가 아닌 다른 잣대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네요. 

반응형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또 하나 기억 남는 대사는 가난은 겨울에 잘 드러난다는 첫째 오인주의 대사입니다. 여름에는 걸치는 옷이 많지 않기에 가난을 숨길 수 있지만 겨울에는 가난이 드러난다고 하죠. 이 대사에 공감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가난이 죄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게을러서 근면성실하지 못해서 가난하다고 손가락질을 했던 시절이 있었죠. 
이 말은 80년대까지는 합리적인 말이었습니다. 일할 의지와 몸만 있으면 어디든 취직하기 쉬웠던 경제부흥기에는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쌓이기 시작하고 90년대 강남 졸부들이 등장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와 울타리가 생기고 부자로 가는 계단이 따로 생기게 됩니다. 

부자 아빠가 부자 아들을 만드는 부의 대물림이 확고해진 시기가 IMF 직후 확고해집니다. 자본의 흐름의 제한이 없게 되자 돈은 돈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어서 부자가 돈을 더 벌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로 노동보다는 자본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쉽게 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천민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돈이라면 양잿물도 마실 각오가 된 돈의 노예가 되더라도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오인주(첫째) 같은 태도가 있고 그럼에도 돈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도 돈이 지배하게 둘 수 없다는 원리원칙이 뚜렷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오인경(둘째)이 있고 차라리 돈 신경 안 쓰는 세상에서 편하고 살고 싶다는 현실주의자 오인혜(막내)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주변에 있는 무시무시한 원령 가 사람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원령 가(家)는 갑부입니다. 수백억 대의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박재상(엄기준 분)은 기무사령부 장군의 딸인 원상아(엄지원 분)와 결혼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름이 전 대통령 며느리이자 배우였던 분과 동일하네요. 

이 둘은 박재상 서울시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박재상은 서울시장을 발판삼아서 대권까지 도전할 예정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대통령이 되면 권한이 많고 이권에 개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에 이기기 이기기 위해서 700억에 달하는 비자금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비자금을 첫째 오인주의 유일한 친구이자 언니인 진화영(추자현 분)이 뒤로 빼돌립니다. 이 700억을 찾으려는 원령 가 사람들과 이 돈을 들고 갈팡질팡하는 오인주의 이야기가 아주 아주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런 원령 가 같은 집안이 있지는 않겠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원령 가의 악행은 수 많은 한국 재벌가와 법꾸라지들이 펼치는 일 중 하나이고 이 악행들을 모아 놓은 것이 원령 가로 보입니다. 이런 제 생각을 드라마는 또 대사로 풀어줍니다. 

부자는 다 가해자고 
가난한 사람은 피해자야?
그거
가난한 사람들 
자기 중심적인 망상이야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한 세심한 자기 성찰이 없습니다. 
시스템이 만들어준 돈이고 플랫폼이 만든 돈인지 노력해서 번 돈인지만 잘 구분한다면 부자들이 욕먹을 일이 없습니다. 

3루에서 태어나서 3루타 친줄 알고 좋아하는 모습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고 그런 태도들이 가해자로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덜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고혈 짜서 수익 내는 저질스러운 행태가 여전히 많습니다. 상생, 공생을 외치는 이유가 상생, 공생이 안 되기에 하는 소리들이잖아요. 그냥 마냥 상생, 공생하자는 마케팅 용어 남발하는 그 자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공생이 안 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난 오인주일까? 오인경일까? 오인혜일까? 계속 묻게 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드라마 <작은아씨들>은 나에게 계속 묻습니다. 
당신은 돈이라면 무조건 좋은 속물 오인주일까? 돈보다는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오인경일까? 아니면 정반합에서 합을 보여주는 듯한 현실주의자이자 냉정한 막내 오인혜일까? 전 왔다 갔다 하네요. 오인주였다가 오인경이 되었다가 시니컬한 오인혜가 되기도 하고요. 가끔은 고모 오혜석이 되기도 하네요. 

기생충의 드라마 버전 같은 <작은아씨들>

기생충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 작은아씨들

기생충이 전세계에서 열광을 받은 이유는 자신들의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기생충은 설렁설렁 시작하다가 부자와 빈자의 강렬한 비애를 후반에 넣습니다. 보고 난 후 씁쓸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누구의 이야기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데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메울 수 없는 차이에서 오는 절망과 한숨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언론은 이미 빈자보다 부자들의 스피커가 된지 오래고 그나마 영화와 드라마가 양극화된 이 비정한 세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생충이나 <작은아씨들>과 <오징어게임>은 대기업의 자본으로 만들어서 또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엄청난 시청률은 아니지만 <작은아씨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할 분이 tvN을 이끄는 부자들이 아닐까 하네요. 물론 이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위에서 거론했듯이 제가 너무 가난한 자의 특권인 망상에 젖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겁니다. 

다음 화는 어떤 이야기를 펼칠까요. 그리고 난 세 자매 중 누구에게 영혼을 집어 넣어야 할까요? 이 과정이 주는 곱씹음이 드라마 <작은아씨들>의 핵심 재미로 느껴지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