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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by 썬도그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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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 중에 명작 애니도 많지만 재미없는 애니도 많습니다. 넷플릭스에 <표류단지>가 새로 나왔길래 이미지를 봤더니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드네요.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망망대해에 항공모함처럼 아파트 단지가 떠 있습니다. 일본이니 맨션이라고 해야겠죠. 일본의 맨션이 배처럼 떠 있고 그 위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15소년 표류기도 아니고 무슨 아파트가 배처럼 떠 있나? 다소 황당한 설정에 안 봤습니다. 어제 보니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하네요.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으응? 일본 애니건 영화건 드라마건 한국에서 1위를 찍은 걸 거의 못 봤습니다. 그런데 1위네요. 뭔가 있나? 다른 나라 순위도 봤습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홍콩 1위, 인도네시아 3위, 일본 1위, 말레이시아 4위, 한국 1위, 대만 1위, 태국 1위, 베트남 2위 등등 동아시아에서 인기가 높네요. 그래서 봤습니다. 좀 보다 재미없으면 끄면 되니까요. 다 봤습니다. 작화가 꽤 좋고 독특한 스토리텔링도 좋았습니다. 

제작사가 <스튜디오 콜로리도>네요. 이 제작사가 만든 애니가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와 <펭귄 하이웨이>네요. 고양이 가면은 꽤 놀라운 스토리가 있었고 좋은 기억은 남은 애니이고 <펭귄 하이웨이>는 안 봤습니다. 감독은 <펭귄 하이웨이>의 '이시다 히로야스'입니다. 

태어난 곳은 있어도 태어난 공간은 사라진 도시인들을 담은 <표류단지>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코스케와 나츠메는 같은 집에서 자란 친구입니다. 형제는 아니고 친구인데 같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나츠메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혼자 남겨졌는데 코스케 할아버지가 나츠메를 키웁니다. 그렇게 코스케와 나츠메는 동갑의 친구이자 형제처럼 같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오고 나츠메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와 함께 삽니다. 나츠메는 항상 무엇인가에 주눅 들어 있고 당당하지 못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주변만 맴돕니다. 자신이 세상의 짐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이런 생각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밝은 표정만 보여주죠. 그날도 그랬습니다. 부잣집 딸내미인 레이나와 부딪혔고 쌍방과실임에도 나츠메가 사과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코스케는 나츠메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항상 성질이 나 있는 듯 한 코스케는 대장 기질이 있어서 아이들의 리더 역할을 합니다. 그날도 코스케가 과거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러 갑니다. 다들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고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는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건물이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코스케는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를 둘러보다가 나츠메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나츠메는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왔을 정도로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츠메가 키가 껑충한 놋포가 있다고 소개를 합니다. 놋포는 중학생 정도의 키인데 과거부터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하죠. 뭔가 이상한 캐릭터입니다. 

아이들이 빈 아파트 옥상에서 놀자 코스케를 짝사랑하던 레이나와 주리도 함께 아파트 탐험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가 안 좋습니다. 코스케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나츠메가 가지고 있자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티격태격을 하다가 나츠메가 아파트에서 떨어지려고 하자 갑자기 큰 비가 내리고 난 후 아파트 단지가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게 됩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고로 이 기이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도 꿈이라고 퉁치고 넘어가지도 않고 그냥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지만 <표류단지>는 그런 것을 설명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공간을 이동시켜 놓은 후 이 기이한 일에 대한 은유를 펼쳐놓기 시작합니다. 

6명의 같은 학년 아이들과 의뭉스러운 놋포까지 총 7명의 아이들이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아파트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건 아이들이 뛰어놀던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된 수영장이나 백화점 같은 건물이 아파트 옆을 지나갑니다. 

점점 먹을 것은 떨어지고 다친 아이가 나오자 아이들 사이에 싸움까지 일어납니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지자 나츠메는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로 생각합니다. 그런 나츠메 이야기를 들으면서 리더이자 어린 시절 같이 살았던 코스케가 나츠메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코스케는 놋포에게 아는 걸 다 말하라고 합니다. 놋포는 좀 이상합니다. 몸에서 식물이 자라는 등의 기이한 모습이 보이자 놋포는 자신의 정체를 말합니다. 

<표류단지>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동산, 백화점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을 만나면서 서서히 아이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만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표류일기> 인트로에서도 잘 나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웃음이 피어나는 아파트 단지의 과거 모습을 뒤로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오래된 건물과 공간을 보여줍니다. 이 자체가 이 애니의 핵심 주제입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15년 전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제가 태어나고 나고 자란 동네에 갔습니다. 사라졌습니다. 동네는 사라지고 거대한 아파트 3동이 들어섰습니다. 그때의 허망함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만 이럴까요? 서울에서 태어난 분들은 대부분 고향이 있지만 고향이 없는 분들입니다. 연립 주택과 노후 주택이 가득한 곳에서 태어난 곳은 대규모 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로 변한 곳들이 많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뿐 아니라 주변 전체가 개발이 되어서 아파트 단지들만 가득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살다 죽겠지만 자기가 태어난 아파트에서 평생을 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아파트는 수명이 있어서 40년 이상 지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 것이 좋은 것이라고 고쳐 쓰면서 살 수 있습니다만 재개발로 큰 수익을 낼 수 있고 슬럼화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재건축, 재개발이라서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위해서 편리와 편의를 위해서 우리는 집을 버리고 새집으로 갈아타길 원합니다. 다들 원하니 오래된 집은 사라질 수밖에요. 문제는 집만 사라지는 것이 아닌 한 공간 전체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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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동네가 그렇게 아파트 단지로 변한 모습을 보고 허망함에 유년 시절 뛰어놀던 곳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거의 다 변했습니다. 그나마 몇몇 길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도 대규모 재개발 찬반 투표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건물은 허름한 시장 건물만 남아 있네요. 이런 건물을 보존하는 건 위험할 수 있어서 저도 반대합니다. 다만 공간 전체를 밀고 도로를 새로 까는 재개발보다는 기존 건물 위치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재건축이 좋습니다. 그러나 수익성은 재개발이 좋아서 공간까지 파괴합니다. 

과거에 매달리는 나츠메와 과거를 잊고 살던 코스케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표류단지>는 좀 난해하긴 합니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아이들이 갑자기 아파트 타고 망망대해에 놓인 설정부터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매끄럽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위기 속에서 나츠메와 코스케 사이에 있던 앙금이 풀어지는 과정은 좋네요. 서사는 2가지가 작동합니다. 하나는 나츠메와 코스케 사이의 과거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나츠메 개인의 이야기와 또 하나는 황당무계한 일을 6명의 아이들이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담깁니다. 

나츠메는 부모의 갈등 속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 같은 코스케 할아버지를 만난 후 세상에 정착을 합니다. 나츠메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표류하는 이 아파트 단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과거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나츠메와 현실주의자인 코스케는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그리고 둘은 과거와 현재가 화해를 하듯 손을 잡습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후반에 놋포의 정체가 나오는데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일본의 스토리텔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긴 부분이 분명 있지만 아이디어 하나는 알아줘야겠네요. 누가 이런 고향이 파괴된 도시인들의 삶을 소재로 한 애니를 만들 생각을 하겠어요. 다만 일본 애니 특유의 소심과 갈등의 반복이 좀 지긋지긋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듯 사라진 고향의 공간이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물론 이해 못 하는 분들도 많고 태어나서 여전히 같은 집에 사는 분들이나 고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들이 공감가지 않을 겁니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도시인들의 고향을 담을 애니 표류단지

꼭 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고향이 사라지고 머릿속에만 남은 슬픔을 주제로 아파트 단지가 표류하는 독특한 소재를 담은 창의력이 좋은 애니 <표류단지>입니다. 조금만 더 명징하게 담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 건물과 공간들의 그리워지네요. 

 
표류단지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생존하는 아이들의 모험을 통해 아픈 상처의 치유와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평점
3.9 (2022.01.01 개봉)
감독
이시다 히로야스
출연
타무라 무츠미, 세토 마사미, 무라세 아유무, 야마시타 다이키, 코바야시 유미코, 미나세 이노리, 하나자와 카나

별점 : ★★★
40자 평 : 고향이 붕괴된 도시인들의 구멍 난 마음을 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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