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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소시민을 통해 전쟁을 비판한 일본 애니 이 세상의 한구석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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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을 통해 전쟁을 비판한 일본 애니 이 세상의 한구석에

썬도그 2021. 11. 2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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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아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뒤적거리다 발견한 것이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일본 애니입니다. 처음 들어본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그냥 무심하게 플레이를 눌렀다가 너무나도 정감 있는 작화와 함께 영화 초반에 나오는 주제곡인 '슬퍼 견딜 수 없어' 노래에 푹 빠졌습니다. 노래 가사는 당연히 안 들리죠. 무정하게도 노래 가사도 해석 안 해 놓았더라고요. 그러나 노래가 너무 좋아서 노래의 힘으로 첫 노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보다가 보다가 영화의 한가운데 들어온 걸 알게 되었고 부리나케 이 영화 정체가 뭔가 궁금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 애니가 2018년 일본 아카데미 애니 부분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네요. 2018년에는 당연히 받았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애니가 있었는데 국내에서 일본 애니 사상 가장 큰 흥행 기록을 세운 '너의 이름은'이 있었습니다. 아니 무슨 애기가 막강한 '너의 이름은'을 제치고 상을 받았을까요? 일본에서만 받은 건 아니고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는 등 수상기록이 꽤 있네요. 

2차대전 당시 해군기지에서 살던 소녀 스즈의 이야기를 담은 '이 세상의 한구석에'

작화는 뛰어나지 않습니다. '너의 이름은'에 비하면 저예산 애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길은 덜 갔을지 몰라도 스타일은 제대로 박혀 있어서 작화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껴지지 보다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몇몇 장면은 너무나도 뛰어난 표현력으로 순간순간 감탄하게 하네요. 

'이 세상의 한구석에'sms 1930년대 히로시마에 사는 소녀 스즈의 이야기입니다. 스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 그리지만 집안 형편상 연필 1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김 말리기를 하는 등 집안 일을 돕든 평범한 시골 소녀입니다. 1944년 스즈는 19살이 되던 해에 이웃마을에 사는 슈사쿠와 결혼을 합니다. 이 당시는 20살이 넘으면 결혼을 했고 여자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꿈이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조혼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학교도 못 다니는 상황에서 무슨 꿈이 있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삶이라는 게 순응의 연속입니다. 

스즈가 허락을 안 했으면 결혼을 안 했겠지만 스즈는 그냥 결혼을 합니다. 슈사쿠는 스즈를 한 번 봤다고 하는데 스즈는 기억이 없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안 보고 결혼을 한 스즈가 좋아했던 남자는 있습니다. 자신이 그림을 대신 그려준 미스츠하라입니다. 많이 좋아했다기보다는 호감이 있었다고 해야겠네요. 

어린 나이에 스즈는 히로시마시에서 산 너머 동네인 구레시로 시집을 갑니다. 구레는 시골이지만 대형 조선소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조선업에 종사를 합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이라서 주로 만드는 것이 군함입니다. 일본 제국의 상징물인 야마토함도 구레에서 만듭니다. 

스즈는 남편과 시가족의 빨래와 밥을 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고 친해질 정도로 쾌활하고 밝습니다. 그럼에도 지근 거리에 있는 친정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남편 슈사쿠는 무척 친절하고 인정 많고 착한 사람이라서 이런 스즈의 마음 변화를 눈치채고 슬쩍 친정에 보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초리가 매서운 올케가 가끔 딸을 데리고 와서 먹고 자고 가곤 합니다. 

올케의 딸 하루미와 함께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구경을 하면서 평범하고 평범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전쟁의 그림자는 더 가까워지고 구레에도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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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숨죽이면서 나부끼는 민들레 같은 스즈

대충의 줄거리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반딧불의 묘'와 비슷한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미군의 폭격 속에서 하루하루 숨죽이며 살다가 죽은 많은 일본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아서 많은 사람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울지 못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라는 전쟁을 일으킨 가해국 때문에 피해를 본 피해국 국민들은 '반딧불의 묘'를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도덕성에 대해서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심도깊게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연기를 아주 잘하는 배우가 있다고 칩시다. 연기는 아주 잘하지만 도덕성이 형편없는 배우가 있다면 우리는 그 배우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무조건 걸러야 할까요? 아니면 도덕성은 도덕성이고 배우는 배우이기에 분리해서 봐야 할까요?

일본 제국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이지만 그건 일본 제국의 위정자들이 일으킨 거지 그 시절 민들레 홀씨를 불던 평범한 일본 국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서 일본 국민들까지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와 반대로 그런 일본 제국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일본 국민 개개인의 문제이니 다 책임이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스즈 가족과 시댁 가족 모두 아니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주어진 삶.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는 일념 하나로 깊은 고통을 참고 폭격으로 집이 사라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국가가 하는 일이라고 따르기만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위정자들이 하는 것이지 스즈 같은 가난한 집에서 다른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간 사람들이 역사를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즈가 참 곱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씨도 곱고 점점 희망이 사라져 가는 삶 속에도 견디는 태도도 곱습니다. 가장 눈물 어린 장면은 폭탄이 온 마을에 터지는 삶 이전의 삶과 전쟁터로 변한 마을의 삶이 단 1개월도 안 된 사이였는데 평범한 삶이 사라진 모습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다시 피어나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지를 스즈를 통해서 보여주는 반전 드라마입니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산 너머 시댁이 있는 히로시마 쪽에서 번개가 치고 하얀 뭉게구름이 피는 걸 보고 그게 뭔지 모르는 스즈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가장 슬픔을 끌어낼 수 있는 이 원폭 피해 장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을 나중에 동생 집에 찾아갔다가 듣는데 크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철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스즈는 그냥 주어진 삶만 살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도 또한 전사한 오빠의 죽음에도 크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더 슬픕니다. 히로시마에 간 스즈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 속에서 현실을 점점 인지하게 됩니다. 이게 가능해?라고 할 정도로 핵폭탄이 떨어진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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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한국에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반딧불의 묘'와 비슷한 이유죠. 전범국이 피해국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판이죠. 이 비판에 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 애니가 크게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반딧불의 묘'에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리에 분노하던 스즈는 자신이 암시장에서 본 청과물 중에 대만에서 온 쌀이 어떻게 온 것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느닷없이 태극기가 마을에서 펄럭입니다. 순간 뭐지 저 태극기는? 이 구간을 몇 번 다시 보면서 태극기가 맞는데 왜 여기서 나오지 했네요. 감독 인터뷰와 원작을 보니 이 군 조선소가 있는 구레시에는 조선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걸 표현한 듯합니다. 

스즈는 모든 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고 국가의 일이라서 폭격도 참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인내의 바탕은 국가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을 옳은 길로 이끌어준다는 신념이죠. 그러나 신이라고 하는 천황이 항복을 한다? 스즈의 믿음이 붕괴되자 하나둘씩 일본이 아닌 일본 제국의 폭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암시장에 왜 대만 콩과 쌀이 있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추할 정도로 이 장면이 긴 것도 명료하게 담긴 것도 아닙니다. 느닷없는 눈물에 왜 울지?라는 생각을 했네요. 

원작 소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담기고 스즈가 순진무구한 것이 아닌 약간의 식자층 같은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소설 그대로 그리면 일본 우익들이 싫어하고 투자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이 부분은 살짝 부드럽게 담고 지나갔네요. 

피해국인 한국인 분들은 이 부분 때문에 무척 불편할 수 있지만 그 꺼끌꺼끌함만 견딜 수 있다면 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스즈라는 이 세상 한구석에 존재하는지 말던지 하는 먼지 같은 삶을 사는 소시민을 통해서 전쟁의 살벌함과 무서움을 담고 있는 좋은 애니입니다. 

왜 미국 아카데미나 일본 아카데미 아니 영화제들이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나이 들면 자꾸 지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가 '너의 이름은'을 제치고 그해 일본 아카데미 우수 애니상을 받았나 봅니다. 분명 좋은 애니지만 '너의 이름은'이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깊어서 저는 '너의 이름은'이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 세상의 한구석에'가 '너의 이름은'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분명 좋은 애니이지만 다소 일본인들이 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고생담으로 들려서 좀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을 누가 일으켰는지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나라 국민들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라는 애니를 통해서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더 강해질 겁니다. 다만 이 애니가 좋은 점은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와 그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피는 민초들의 삶을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힘 있게 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보고 싶은 분들은 보세요. 꼭 보라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전 아주 감동스럽게 봤습니다. 스즈가 너무 안쓰러워서 몇 번을 멈추고 봤네요. 

별점 : ★★★
40자 평 : 전쟁이라는 포화 속에 핀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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