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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추억과 재미 모두 잡은 강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by 썬도그 202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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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1편 이상 영화를 보던 제가 요즘은 영화를 주로 넷플릭스에서만 봅니다. 영화를 보고 싶어도 개봉하는 영화들이 없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다들 개봉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관을 더 안 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문화가 있는 날'에 영화 1편이라도 보고자 무조건 영화관을 갔습니다.

멀티플렉스관이 단관 개봉관이 되었네요. 테슬라는 딱 1회 개봉이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미스터트롯 : 더 무비>만 상영하네요. 트롯 영화는 콘서트 영상이라서 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만 볼 수 있네요. 

그냥 그런 영화인 줄 알았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올해의 영화일 줄이야~~~

올해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편하게 본 마지막 영화가 <히트맨>이었고 이후 코로나가 터져서 1달에 1편 정도밖에 안 보고 그 마저도 최근에는 개봉 영화가 확 줄어서 더 안 보고 있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흔한 블랙 코미디 인 줄 알았습니다.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은 그냥 그런 영화인 줄 알고 지난주 개봉할 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관 냄새가 그리워서 '문화가 있는 날'에 강제 선택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안 봤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N차 관람할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네요. 

가장 놀랐던 건 스토리입니다. 스토리가 매끈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전형적인 이야기를 비트는 재치가 있고 뻔한 캐릭터인 줄 알았던 사람의 반전과 3명의 여주인공의 매력이 콸콸 넘칩니다. 여기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우울하고 침울하게 그리지 않고 아주 밝고 맑게 그리고 있습니다. 올해 본 영화가 많지 않은 걸 감안해도 올해의 한국 영화라고 할 정도로 아주 뛰어난 영화네요. 제가 강추하는 영화 많지 않지만 이 영화 강력 추천합니다. 꼭 보세요.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특히 1995년에 20대를 보낸, 사회 초년생을 경험한 현재의 40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1991년 페놀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닙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이지 전체적인 스토리는 실제 사건을 재현한 영화가 아닙니다. 낙동강 페놀 사건은 중년 이상 분들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1991년 3월 구미에 있는 두산전자 공장에서 PCB 회로 기판을 만들기 위한 독극물인 페놀을 낙동강으로 몰래 흘려보냈다가 이 낙동강 물이 수원지에 유입되고 수원지에 넣는 염소와 함께 결합이 되면서 악취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했고 정부에서 조사를 해보니 두산전자에서 비 오는 날 폐수를 몰래 하천으로 보냈습니다. 두산그룹 회장이 사과까지 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다 환경과 안전을 너무 등한시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밑을 흐르는 도림천은 똥내가 가득해서 근처를 갈 수 없었고 2000년대 초만 해도 안양천은 똥내가 넘칠 정도로 썩은 내가 가득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서울 하천에도 하수처리장이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요즘 미세먼지요? 80,90년대 미세먼지와 게임이 안 됩니다. 당시는 환경 규제가 거의 없어서 매연 뿜는 버스, 자동차 엄청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페롤 사건이 환경 문제의 경각심을 가지게 했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안전 문제에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성장통을 겪고 그나마 상식적인 세상이 된 한국입니다. 물론, 요즘도 못된 기업들이 여전히 비올 때 강물에 폐수를 버리다 걸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전 이 영화가 을지로를 배경으로 해서 '영풍 석포제련소'를 소재로 한 영화인 줄 알았을 정도로 요즘도 못된 기업들이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습니다. 

1991년 페롤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후반으로 가면 환경 문제를 지나서 다른 이슈로 넘어갑니다.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계속 환경 문제에 집중하면 좋았을텐데 기업 경영 이슈로 넘어가면서 초점이 좀 흐려지네요. 그럼에도 경영에 관한 문제가 환경 문제 해결의 가장 쉽고 강력한 문제 해결책이기에 크게 모가 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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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해 못할 1990년대 직장 생활과 공감하는 1990년대 중반 풍경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환경 문제를 다룬 사회 비판 영화로 보이지만 그건 하나의 소재일 뿐 실제 소재는 내부 고발입니다. 내부 고발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함께 여러가지 소재를 섞었습니다. 잘못 섞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여러 소재가 모두 생기 넘치게 자기 역할을 잘합니다. 소재가 어두운 소재인데 굉장히 밝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제로 웃기는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이렇게 밝을 수 있는 것은 3명의 주인공과 함께 1995년이라는 한 세대 전의 세상을 아주 잘 재현했습니다. 추억 보정이라고 해서 추하고 어렵고 힘든 과거는 다 휘발되고 기분 좋은 기억만 남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추억은 다 밝고 맑습니다. 

1995년을 지나온 저로서는 이 1995년 주변을 아주 잘 기억합니다. 1990년대 중반은 1998년 IMF 사태가 터지기 전으로 경제가 꽤 활기찼던 시기입니다. 해외에서는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할 정도로 과소비가 일어나던 시기입니다. 1989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돈은 넘치다 보니 사회 전체가 꿀을 발라 놓은 듯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이때 나온 것이 X세대입니다. PC가 막 보급되던 시절로 집마다 PC를 들여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은 후진적이었습니다. 특히 기업은 사복 입은 군대라고 할 정도로 상명하복이 심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당시에 비하면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가라 영수증(가짜 영수증) 처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기업 문화였습니다. 대기업인 삼진 그룹에 입사한 상업고등학교 출신 이자영(고아성 분), 정유나(이솜 분), 심보람(박혜수 분)은 대졸 출신 사원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그들의 사무 업무 보조 역할을 함을 넘어서 매일 아침 믹스 커피를 타야 합니다. 지금은 원두커피를 배달시켜 먹거나 직접 타 먹는 분위기지만 당시는 여직원이 커피를 타서 제공해야 했습니다. 임신을 하면 자동 퇴사였습니다. 출산 휴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상고 출신 여직원들을 아래 것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던 꼰대들의 모습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꼰대들만 가득한 상사들만 담은 것은 아닌 심보람 사원에게 아버지처럼 대하던 봉현철 부장(김종수 분) 같은 인지한 상사도 담고 있습니다. 

상고 출신의 여직원들이 진급을 할 수 있을까요? 진급을 한다고 해도 결혼하면 퇴사해야 하는 분위기라서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토익 점수 600점을 넘어야 진급할 수 있다는 소리에 상고 출신 여직원들은 회사 근처 토익 영어 학원에서 강의를 듣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보다 보면 아련한 1995년 풍경들을 볼 수 있습니다. PC로 테트리스 하다 혼나는 모습이나 삐삐로 연락을 하고 르망 자동차 등등 추억을 돋게 하는 장면들이 많네요. 그렇다고 본격 추억 팔이 영화는 아닙니다. 이 당시의 분위기만 전하는 정도로만 활용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PC를 대표하는 디지털 문화가 서서히 시작되던 시기의 모습을 잘 담았습니다. 

뛰어난 캐릭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마치 삼국지를 보는 듯하다

좋은 대중 영화나 드라마는 캐릭터 설정을 아주 잘합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줘야 그 이야기에 쉽게 빠지고 집중하기 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블 히어로 영화에 쉽게 빠지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3명의 주인공을 보다가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떠올랐습니다. 문제 해결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착한 심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유비 같은 이자영(고아성 분)과 여장부처럼 과감한 행동을 펼치는 장비 같은 정유나(이솜 분)과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은 관우 같은 숫자 덕후 심보람(박혜수 분)이 페놀 방류 사건 내부 고발에 나섭니다. 여기에 망나니 같은 재벌 2세 캐릭터로 한국적인 재벌 그룹의 풍경을 넣습니다. 가장 힘든 것이 내 밥줄을 내가 스스로 끊어 버리는 일이죠. 이 어려운 일을 심성 고운 이자영이 앞장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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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자고 남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자영은 페놀 방류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이 험난한 일에 심보람, 정유나가 같이 동행합니다. 3명의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합니다. 이솜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났네요. 특히 박혜수는 영화 <스윙키즈>에서 눈여겨 본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버섯돌이 머리를 하고 아주 연기를 잘하네요. 이 3명의 연기 앙상블이 아주 좋네요. 여기에 조연 캐릭터들도 예측 불허입니다. 이 재미도 아주 좋네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비윤리적 행동에 휩쓸을 분 3명의 여직원들

봉현철 부장은 암에 걸려서 퇴사를 합니다. 아버지 같은 봉현철 부장 병문안 온 심보람은 봉현철 부장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기업의 생리가 이윤 때문에 환경을 무시할 수 있다고요.

또 이런 말도 합니다. "옛날이 좋았어"라는 말을 하지만 현재를 사는 사람들도 좋은 세상에서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옛날을 안 사람 본 사람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말이라고 말합니다. 봉현철 부장은 다른 임원들과 달리 자기반성을 할 줄 알며 후배를 넘어 후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만들어야 하고 그게 현재를 살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어둡고 내일이 더더욱 어두워진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느낌이 있어야 이 험한 세상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참습니다. 돌아보면 1995년 한국과 2020년 25년 사이에 한국은 나아가고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듭니다. 제가 대답을 하자면 한국은 경제적인 발전은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이루는 핵심 시스템들 중에 검찰, 법원, 언론과 정치 문화 같은 공공 시스템은 발전이 아닌 후퇴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1995년에 당연시하던 임신=퇴직이나 직장 내 성희롱 등등은 많이 줄었습니다. 또한, 권위적인 시스템도 많이 붕괴되었죠. 

그러나 여전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도 많습니다. 먼저 내부 고발입니다.  회사를 보다 깨끗한 경영과 윤리적인 기업으로 향하게 하는 순기능을 하는 내부 고발자는 여전히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영화에서 내부고발자가 면벽 수행을 하는 모습은 영화적 상상이 아닙니다. 현재 정도 경영으로 존경받는 대기업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일어났던 일이고 다른 기업에서 현재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는 3명의 상고 출신 여직원들이 내 회사의 비리와 비윤리적인 문제점을 직접 청소하는 과정이 주는 쾌감이 아주 좋네요.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고 사회 비판성도 좋고 추억 팔이도 과하지 않게 하는 영화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걸 해냈네요. 아주 아주 잘 해냈습니다. 여기에 영화 후반에는 옥시 사건을 연상케 하는 모습도 담깁니다. 

영어라는 권력에 도전하는 상고생들의 영어 도전기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영화 후반 영화 소재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튀면서 집중력이 좀 떨어집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마무리에서는 다른 곳으로 튄 것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그 중간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좀 의아하긴 했네요. 

영어토익반이라는 제목을 꼽씹어 봤습니다.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요? 똑똑함의 차이? 상고 출신에도 똑똑한 분 많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못가고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상고에 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화에서 이자영과 정유나 심보람의 명석한 머리에 기대는 대졸자들을 보여주면서 묘한 쾌감을 줍니다. 

영어는 하나의 계급 분리 도구가 아닐까 합니다. 대졸자와 고졸자가 능력이 같다면 대학교를 왜 가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영어를 변별력 도구로 삼습니다. 회사는 진급 조건으로 토익 600점을 내세웁니다. 대졸자들은 쉽게 토익 600점을 넘을 수 있지만 상고 졸업자는 쉽지 않습니다. 이에 퇴근 후에 토익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합니다. 회사는 상고 졸업자들은 알아서 진급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지만 영어토익반의 상고 출신들은 그 권력에 대항합니다. 이는 영화 후반에 영어를 잘 쓰는 임원과의 다툼에서 빛을 발합니다. 똑똑한 임원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단 상고 출신 여직원들보다 애사심이 없고 도덕성도 낮습니다. 

강력추천합니다.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재미도 웃음도 감동도 추억도 사회비판도 잘 담은 수작입니다. 이런 영화가 코로나를 뚫고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하네요. 안 봤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모든 것이 생기 넘치던  20대 그 시절, 우리의 부끄럽고 밝았던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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