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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지 않고 또 돌아온 것들

by 썬도그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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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자본의 입김이 강해지면 CG나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개성 넘치는 시나리오가 사라집니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한 영화일수록 시나리오는 모든 연령대와 모든 계층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보편타당성에 기반한 대중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그래서 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는 기승전결이 다 예측됩니다. 대표적인 영화사가 JK필름 영화들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영화들은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지만 개성 있는 영화들은 없습니다. 안 봐도 본 것 같은 영화들이죠. 

그다음이 감독입니다. 개성 넘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감독이 아닌 제작자 말 고분고분 잘 듣고 시나리오에 충실하면서 제작자가 원하는 그림을 만드는 감독들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영화감독들이 꽤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중 한 분이 신정원 감독입니다. 

시실리 2km, 차우의 신정원 감독의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한국 영화가 2020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돌아보면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는 현재가 아닌 2000년대 초였습니다. 이 당시는 어떻게 이런 독특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와 개성 넘치는 장면들이 많았을까 할 정도로 엄청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04년 개봉한 <시실리 2km>는 코미디와 호러를 절묘하게 섞은 묘한 영화였습니다. 아주 짜임새가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지만 조폭 영화와 호러 그리고 코미디를 섞어 놓아서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2가지 맛을 잘 섞어 놓았습니다. 

이후 영화 <차우>라는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어서 이런 살벌 코믹한 분야는 신정원 감독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했습니다. B급 코미디를 잘 만드는 신정원 감독. 한국의 에드우드 감독인 신정원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왔습니다. 

B급 코미디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코로나 시국으로 많은 한국 영화, 외국 영화들이 큰 곤혹을 겪고 있습니다. 다 만든 영화 개봉을 계속 연기하기도 그렇고 안 하자니 그렇고 미루다 미루다 뒤늦게 한 두 편씩 개봉을 하고 있습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신정원 감독이 연출 및 각본까지 쓴 전형적인 신정원 감독의 영화입니다. 주연은 이정현, 김성오이고 서영희, 양동근, 이미도 같은 매우 연기 잘하는 조연 배우도 배치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이미지를 한 장의 사진으로 담는다면 위 스틸 사진이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주유소에서 경유를 차가 아닌 자기 몸에 넣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주에서 한 사나이가 지구로 떨어집니다. 한 하천에 떨어진 그는 터미네이터처럼 맨몸을 일으키며 물속을 나와서 걷습니다. 약사인 소희(이정현 분)는 외국 유명 대학을 나왔지만 직업이 의뭉스러운 만길(김성오 분)과 달콤한 신혼을 보냅니다. 여고 동창회에 갔다가 남편이 바람 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편 만길이 자꾸 모임을 피하고 약속을 피하는 것이 참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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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을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를 보게되고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닥터 장(양동근 분) 바람난 남편 상담을 받습니다. 브로콜리 머리를 한 '닥터 장'이 이상해서 의뢰를 포기하려 했지만 '닥터 장'은 남편 만길의 24시간을 추적해서 소희에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남편 만길은 24시간 쉬지 않고 클럽과 유흥을 즐기면서 아내 소희 말고 다른 여자들과 찐한 밤을 보냅니다. 더 충격적인 건 남편 만길이 초혼이 아닌 이전에도 3번의 결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닥터 장'은 이런 사람들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서 이들을 '언브레이커블'이라고 부릅니다. 외계에서 온 '언브레이커블'의 목적은 지구의 다양한 여자들의 DNA를 채취해서 지구 정복(?)을 꿈꿉니다. 

믿지 못하는 소희에게 '닥터 장'은 경유를 입으로 넣고 있는 남편 만길을 직접 보여줍니다. 이에 소희는 남편을 사랑이 아닌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 '언브레이커블'은 전기에 약하다는 말에 욕조에서 감전사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갑자기 소희네 집에 들이닥친 소희의 여고 동창생인 양선(이미도 분)이 남편을 찾겠다면서 찾아오게 되고 양선이 담배를 피겠다면서 라이터 같이 생긴 전기 발생 리모컨을 눌러서 욕조에 숨어 있던 남편 '닥터 장'이 감전사하게 됩니다. 이후의 일들은 B급 스토리 이기고 알고 보면 재미없기에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신정원 감독의 결은 살아 있지만 규모는 대폭 축소되다 

영화의 규모는 저예산 영화라고 할 정도로 액션 장면도 많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소박한 규모의 영화입니다. 이 소박함을 매꾸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양동근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놀라면서도 웃기는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어떤 액션을 하는 것도 대사로 웃기는 것이 아닌 그냥 갑작스러운 등장만으로도 웃게 만듭니다. 이런 캐릭터를 잘 배치하는 것이 신정원 감독의 특기죠. 슬랩스틱은 아니고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능청스러운 코미디를 참 잘 구가합니다. 

여기저기서 신정원 감독 특유의 갑툭 코미디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입실금처럼 웃음이 스르륵 흘러나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풉하고 뿝게 하는 게 신정원 감독이 참 잘합니다. 그럼에도 아쉬움도 많이 나오네요. 영화 초반이 너무 지루하고 너무 비약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탄탄하게 한 후 그 무대 위에서 춤을 춰야 하는데 기반 공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 과정이 특별한 것도 재미도 없습니다. 

중반부터 배우들의 힘으로 살아나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재미

스토리가 이전 영화인 <시실리, 2km>나 <차우>보다 예측 가능하고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서 신선함은 많이 떨어집니다. 내 남편은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이미 많이 봤죠. 게다가 그 처리 과정이나 뻔한 클리세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점은 신정원 감독 답지 않네요. 

그럼에도 중반부터 재미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닥터 장'의 아내가 소희의 고등학교 동창인 양선임을 알게 되고 바람핀 남편 때문에 화가 많은 세라 언니(서영희 분)가 욕실에서 죽은 '닥터 장'을 숨기기 위해 외계인인 만길을 막아서고 만길을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짜는 과정부터 이 영화의 재미가 차 오릅니다. 여기에 만길의 부하들이 가세하면서 점입가경이 됩니다. 역시 신정원 감독이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런대로 볼만하고 재미있지만 아쉬움도 꽤 보이네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지 않고 또 돌아온 것들

영화 제목이 스포라고 할 정도로 이 영화에서 죽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좀비가 아닐까 할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은 이유 설명도 없습니다. 원래 신정원 감독 영화들은 가타부타도 없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알아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B급 무비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죽지 않아서 좋은 캐릭터는 바로 양동근이 연기한 '닥터 장'입니다. 나중에 초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라는 대사에 빵빵 터집니다. 그러나 죽어야 하는 것들까지 살아서 돌아옵니다. 바로 '자기 복제'입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보다 보면 신정원 감독의 이전 영화에서 본 캐릭터와 웃음 코드와 함께 촬영 장소도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양동근이 연기한 캐릭터는 이마에 큰 못을 달고 번개를 맞고도 죽지 않은 <시실리 2km>의 석태가 부활한 느낌입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도 영화 <차우>에서 봤던 그 폐탄광소 같더라고요. 웃음 코드야 워낙 독특해서 자기 복제를 해도 되지만 죽었어야 하는 것까지 죽지 않고 찾아온 것은 반갑지 않네요. 

전작과 비교하면 규모도 축소되고 재미도 축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냥 눈에 힘빼고 보다 보면 가끔 피식거리다 한 두 번 박장대소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미도와 양동근 배우가 정말 감초 이상의 역할을 해주네요. 

별점 : ★★☆
40자 평 : 죽지 않아서 재미있고 죽지 않아서 재미 없음이 함께 돌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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