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메가 시티가 개발되기 시작하던 것은 70년대에서 80년대였습니다. 지금의 강남은 63년 이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언주면이었습니다. 63년 서울에 편입되었지만 강남구가 아닌 성동구였습니다. 그러다 1975년 성동구에서 분리되어 강남구가 되었습니다.
영화 <강남 1970>은 뽕밭이었던 강남 개발 과정에서의 돈과 조폭의 권력관계를 통해서 한국 현대사를 조명했습니다. 지금의 강남은 서울 최고의 갑부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이 강남 부자들의 상당수는 강남 부동산 투자를 해서 큰돈을 번 졸부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라는 졸부라는 단어 조차 희미해졌고 세대 세탁으로 부의 세습이 2세대가 지나서 많이 희석되었죠.
80년대 고도 성장 시대에 관과 조폭을 조율해가면서 큰돈을 번 능구렁이 같은 졸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나온 이유도 다 개발 이권이라는 거대한 힘이 있었습니다.
개발 참 좋죠. 개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가 올라선 후 제가 사는 아파트 가격도 크게 올랐습니다. 아파트 가격 상승을 떠나서 집 근처에 카페도 많이 생기고 고깃집도 생기고 무엇보다 걸어서 대형마트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개발이 계속되고 앞으로도 개발이 많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개발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 생활의 편의를 높이 올려주기도 하지만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연 파괴입니다. 기승전 코로나 시절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 코로나19코로나 19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의 과도한 개발 때문이기도 하죠. 박쥐에서 시작된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박쥐를 다 죽이면 되지 않냐고 하는 말에 전문가는 우리 인간이 과도한 개발만 하지 않으면 박쥐랑 접촉할 일도 없고 박쥐 서식지가 줄어서 박쥐가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내려올 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지금도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곡식과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서 숲을 밀어 버리고 거기에 농작물을 심는다고 하죠. 코로나19로 인간이 고통받고 있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고 코로나 19가 면역세포인 백혈구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우리 인류에게 코로나19 사태가 준 유일한 이점은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 종말 시계를 잠시 멈췄다는 겁니다.
1960년대 일본 신도시 개발 과정을 비판한 애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일본을 미워하는 우리지만 생활 행태는 일본과 너무 닮았습니다. 너무 닮다 못해 거의 비슷해서 일본의 10년 후 모습이 한국이었고 한국의 10년 후 미래가 일본이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경제, 사회 문제가 10년 후 한국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언어 어순도 비슷하고 이웃나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가장 따라 하기 쉽고 경제 롤모델이 일본이어서 일본과 한국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 지금은 일본과 한국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함을 넘어서 몇몇 분야에서는 일본의 어깨를 누르고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80년대만 해도 우리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만연한 기대감을 가지다가도 공상이라고 자포자기하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망해가는 듯한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말 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앞서가기 시작했고 하다 못해 보건 복지 분야에서도 일본보다 한국이 앞서고 있습니다.
조선, 반도체, 공산품, 사회 인프라 등등 한국이 전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만 애니 쪽은 일본을 앞서나가기 쉽지는 않아 보이네요. 그러나 일본의 애니도 3D 애니 시대에 밀려서 점점 쇠락해 가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인건비에 비해서 수익은 높지 않다 보니 일본의 국보급 애니 스튜디오인 지브리도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브리에게 2조 원을 꽂아준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넷플릭스입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2월부터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든 명작 애니를 3차에 걸쳐서 총 21편의 애니를 오픈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브리 애니에 무려 2조 원을 지불했습니다. 미쳤습니다. 1편에 1000억 원 가까운 저작권을 줬다는 건데 이는 1편의 제작비 전체를 지불한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이 21편을 넷플릭스가 제공하기 전에 거의 다 봤습니다. 그러나 거의 유일하게 못 본 애니가 1994년 제작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양대산맥인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입니다. 이 애니는 당시에도 일본에서 애니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는 뉴스를 꽤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일본 문화 수입 금지 정책으로 이 애니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법 복제물를 통해서 참 많이 봤습니다.
저도 볼 기회는 있었지만 사람이 아닌 너구리가 주인공이어서인지 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이 애니를 칭송하는 분들도 많고 지브리 애니면 닥치고 봐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정설을 믿고 넷플릭스에서 시청했습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지브리 애니의 한결같은 주제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다룬 애니입니다. 다른 지브리 애니와 다른 점은 좀 더 직설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이걸 환상적인 동화 같은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날이 선 비판의식으로 담았습니다.
배경은 1967년 도쿄의 인구 폭발로 인해서 도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배드타운을 개발하기 위해서 다마시를 개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다마시 개발을 위해서 사람들을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앞세워서 신도시를 개발하고 이로 인해 너구리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너구리들은 이런 인간들의 횡포에 회의를 하게 되고 인간과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이에 수세기 동안 금지되어 있던 변신술을 허락합니다. 한국에도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일본에는 여우와 너구리가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변신한다는 전설이 있나 봅니다. 그렇게 너구리들은 변신술이 허용되자 특공대처럼 변신술을 연마합니다.
그렇게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이용해서 신도시 개발을 하는 인부들의 중장비나 트럭이나 신도시 개발을 방해합니다. 변신한 너구리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신도시 다마 주변에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신도시 개발은 잠시 중단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운 인부를 모집하면서 너구리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신술로 인한 도시 개발 방해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에 수백 년을 산 노회 한 장로 너구리를 모셔와서 거대한 변신 축제를 펼칩니다. 특훈을 마친 너구리들은 각종 변신을 통해서 신도시에서 대형 퍼레이드를 펼치고 이를 본 사람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가장행렬인 줄 알고 이 기이한 퍼레이드를 즐깁니다.
너구리들은 이 거대한 변신 퍼레이드를 보고 인간들이 귀신 들린 도시라고 도시 개발을 중단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너구리의 변신과 인간의 사기의 공통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도시 개발을 둘러싼 인간과 동물의 대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동화풍으로 그려지기에 상당히 부드럽게 다가옵니다만 이야기 자체는 밝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를 보다 보면 너구리가 인간으로 변신해서 인간처럼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인간을 놀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구리 입장에서는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를 넘어서 너구리들이 너구리로 안 보이고 도시 개발을 통해서 핍박받았던 원주민 또는 도시 빈민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강남 개발 당시에 뽕밭 주인들이 각종 돈과 조폭들에게 휘둘려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원주민 이주의 과정을 보는 느낌입니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대부분 떠나고 외지인들이 살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너구리들이 마치 원주민처럼 보이고 신도시 개발업자들과 신도시 주민들이 가해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도시 주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신도시에 정착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개발 논리에 수혜자와 피해자로 보이는데 둘의 관계가 가해자 피해자가 아닌 하나의 시대 흐름에서 서게 되는 입장으로 느껴집니다.
너구리들의 현란한 변신술을 보다 보면 변신술이 사기술인데 인간의 종족 특징인 사기술과 변신술의 대결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 <철학자와 늑대>에서 인간과 늑대가 다른 점은 인간만이 사기를 칠 수 있다는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그렇다고 애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가 인간의 사기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너구리들의 변신술이 인간의 사기와 비슷하고 이 사기술로 인간을 물리치려는 행동이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애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는 인간과 너구리의 공존이 아닌 대결구도가 계속되다가 결말로 치닫습니다.
뛰어난 상상력을 뛰어난 작화로 담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지브리 하면 뛰어난 스토리와 작화죠. 특히 뛰어난 정밀 묘사의 작화는 지금 봐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은 수채화 같고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부드럽고 정확한 묘사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그 수준이 절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묘사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너구리들이 변신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정밀 묘사를 했다가 명량 만화식으로 가볍게 그리는 등 강약 조절도 자유자재로 합니다. 셀 애니메이션의 절정이 아닐까 할 정도로 애니 작화가 엄청나네요. 조금 아쉬운 것은 노래가 꽤 경쾌하고 낙천적인 너구리들이 수시로 축제를 하는 장면을 잘 담긴 했지만 일본풍 노래와 다양하지 못한 음악이 좀 아쉽긴 합니다. 그럼에도 주제 음악과 주제가는 아주 흥겹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담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야기 자체는 동화적인 판타지가 많습니다. 서사가 많아서 이야기를 주인공이 끌어가는 것이 아닌 내레이션이 이끌어 갑니다. 주인공이 있는 것 같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한 캐릭터에 집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너구리 마을 전체가 주인공이자 한 너구리 마을 자체가 주인공으로 느껴집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는 너구리들을 통해서 인간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애니입니다. 다소 서사가 길어서 이야기가 좀 늘어진다는 느낌도 들지만 인간의 도시 개발을 막아내려는 너구리 사회에서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리는 문제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나는 동물을 넘어서 원주민들의 피해를 너구리를 통해서 잘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오더군요. 낙천적인 너구리들이 춤을 추면서 세상에 슬픈 적응을 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개발이라는 목적 아래 많은 생명들의 터전을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이요.
너구리가 화면을 보고 말합니다. "너구리와 여우는 인간으로 변신해서 사라졌다고 해도 토끼나 족제비는 어떻게 된 거죠?" 폼포코 너구리들이 인간에게 묻는 화두는 2020년 현재도 유효합니다. 다만 대 팽창기였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환경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이 동물을 위한 환경이 아닌 인간에 대한 환경이죠. 그럼에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발하는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다들 농촌 생활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편의성에 만족하기에 농촌을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편의를 위해서 많은 자연 파괴를 일으킨다면 지구가 분노해서 코로나19 같은 재앙을 또 내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방법을 지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명작 애니입니다.
40자 평 :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밀려난 동물과 사람을 위한 진혼곡
별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