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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눈같이 새하얀 슬픔과 딸같은 봄이 담긴 영화 윤희에게

by 썬도그 2020.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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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가장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야 정보에 오염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리뷰를 보고 다이제스트 영상인 예고편 정도는 봅니다. 예고편을 보면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 북해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보였고 엄마가 어린 시절 만났던 친구를 찾아가는 영화로 보였습니다. 호평들이 많아서 볼까 하다가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올라왔네요. 

과거에서 윤희에게 온 편지

남편과 이혼하고 대학에 합격한 고3 딸과 사는 윤희(김희애 분)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옵니다. 윤희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는 이런 시절 헤어졌던 준(나카무라 유코 분)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준은 윤희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입니다. 한국인 어머니 대신 일본인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고 일본으로 떠난 친구죠. 그런 준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핑계로 연락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끔 생각난다는 편지입니다. 보통 이런 편지를 받으면 너무 반갑다면서 이메일이나 전화를 해서 만남을 시도하지만 윤희는 웃지 않습니다. 뭔 사연이 있을까요?

윤희의 딸 새봄은 엄마에게 여행을 가자고 조릅니다. 급식업체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윤희에게는 그런 딸의 부탁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영양사에게 휴가 좀 쓰겠다고 말했지만 여행 갔다 오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반 협박을 받습니다. 윤희는 자신의 삶에 지쳤는지 직장을 그만두고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갑니다. 

아름다운 오타루 풍경이 가득한 영화 윤희에게

눈이 많이 내리는 북해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윤희에게를 보다 보면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일본 영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만년설 같은 눈이 가득하고 영화에서도 수시로 눈이 내리는 장면이 담깁니다. 엄마 윤희와 함께 일본 여행을 온 딸 새봄은 엄마 몰래 남자 친구도 함께 왔습니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이 사실을 숨깁니다. 숨기는 것은 또 있습니다. 새봄은 엄마가 친구인 준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엄마는 준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 <윤희에게>는 이 미스터리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영화 중반 이후까지 끌고 갑니다. 딸 새봄은 엄마가 항상 자기에게 말해주던 준이라는 친구를 일본까지 와서 안 만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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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의 내러티브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40대로 보이는 엄마가 이혼을 하고 딸과 함께 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를 찾으러 일본에 갔지만 주저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 자체는 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윤희라는 주인공이 왜 친구를 안 만나고 주저할까라는 호기심만 유발합니다. 여백이 많은 이야기죠. 이 빈 여백을 딸 새봄이 채웁니다. 새봄을 연기하는 김소혜 배우는 딱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생기 넘치는 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릴 줄 아는 성품 고운 딸입니다. 

이 딸과 딸의 남자친구가 만드는 이야기가 빈 이야기를 채웁니다. 아니 이야기가 빈 것보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윤희에게>는 한국 영화이지만 일본어가 대사의 6할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일본 대사가 많습니다. 이는 일본에 사는 윤희의 친구 준과 준과 함께 사는 고모의 대사가 꽤 많습니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윤희가 아닌 준이 아닐까 할 정도로 출연 분량은 김희애 보다는 나카무라 유코가 더 많습니다. 일본 자본으로 만들었나 할 정도로 일본 배우들의 분량이 꽤 많습니다. 일본어와 일본 오타루의 겨울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줍니다.

후반의 뜻밖의 반전

영화 <윤희에게>에서는 필름 자동 카메라가 나옵니다. 가정 형편상 대학을 못 간 윤희에게 엄마가 사준 선물입니다. 이 필름 카메라를 딸인 새봄과 새봄의 남자 친구가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디카 시대에, 폰카 시대에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가 색감이나 톤 면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굳이 이걸 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용하는 걸 보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의 여행을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과거입니다. 다만 그 과거를 여는 열쇠는 있습니다. 바로 사진입니다. 사진을 통해서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갈 수 있습니다. 그 과거의 상징체가 필름 카메라 같습니다. 

엄마 윤희를 딸 새봄은 카메라로 많이 담지만 윤희가 웃는 사진은 없습니다. 윤희가 그런 사람입니다. 한 번도 웃지 않고 웃음보다는 뭔가 모를 절망감, 죄책감에 살고 있는 우울한 얼굴입니다. 그나마 봄 같은 딸을 만나서 잠시 웃지만 봄눈처럼 금방 사라집니다. 

이 딸이 사라진 엄마의 웃음을 되찾아 줍니다. 아니 최소한 웃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줍니다. 

여기서 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보실 분만 보시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주세요

영화 <윤희에게>에서 윤희가 웃지 못한 이유와 준을 만나지 못한 이유가 서서히 밝혀집니다. 저는 현재의 자신을 과거의 친구인 준에게 보여주기 쉽지 않고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안 만나는 줄 알았습니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야 아름답지 그걸 또 끄집어내서 현재 어떻게 변했나 만나서 좋을 수도 있지만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제 생각과 달리 이 영화는 퀴어 영화입니다. 윤희와 준은 어린 시절 서로 사랑하던 동성애 커플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동성애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너그럽게 보지만 당시는 정신병으로 생각했죠. 강제로 두 사람은 떨어지게 되었고 윤희는 그렇게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반면 준은 평생 혼자 삽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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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동물 병원을 운영하면서 단골에게 말합니다. "만약 비밀이 있다면 평생 말하지 말아요" 퀴어 영화였네요. 이 설정 하나로 윤희가 왜 웃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영화 <윤희에게>는 질퍽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준과 만난 윤희는 딸과 함께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카메라 앞에서도 웃고 있는 겨울 같은 윤희를 봄 같은 딸 새봄이 봄을 만나 웃는 엄마의 얼굴을 필름 카메라에 담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윤희에게>는 봄이 나오는 5분을 위해서 1시간 30분을 기다린 느낌도 듭니다. 윤희는 준에게 편지를 씁니다. 스스로 벌을 주면서 살았던 세월을 뒤로한 채 새봄과 함께 새로운 봄을 맞으로 가는 차 창가에서 윤희의 얼굴에 봄이 느껴집니다. 

사회적인 폭력으로 산 사람들을 위한 위로

좋은 영화입니다. 깔끔하고 여운이 긴 영화입니다. 평생 사회적인 편견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차분한 어조로 잘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았던 준과 부모가 강요한 삶을 살아서 불행했던 윤희, 상처가 큰 윤희를 봄 같은 딸이 다시 엄마를 넘어 윤희의 삶으로 돌려놓습니다. 

내 행동이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지만 사회적인 억압과 굴레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을 위한 마음 따뜻한 손편지 같은 영화 <윤희에게>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얼음같이 차가운 손으로 살던 윤희를 한 장의 편지와 딸의 온기로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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