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스럽게 음식에 탐닉하는 엄마, 아빠를 못마땅하게 보던 치히로는 엄마 아빠에게 가자고 말을 하지만 엄마 아빠는 돈도 안 내고 음식을 계속 먹었습니다. 뭐 주인이 오면 돈을 내면 된다고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이죠. 나이 들수록 도덕성이 떨어지는 어른들을 참 많이 봅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와 제어하는 치히로
결국 엄마 아빠는 돼지가 됩니다. 벌이라면 벌이죠. 그러나 돼지처럼 먹는 것에 홀린 우리 현대인에 대한 벌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요즘 TV나 유튜브만 틀었다하면 먹방이 가득합니다. 이 자체는 뭐라고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먹는 것에 탐닉하고 온 신경을 쓰는 모습이 행복한 돼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너무 하나에 몰입하고 쏠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엄마 아빠가 악인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다만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른의 표상을 보여줍니다. 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먹는 것뿐이 아닙니다. 소비도 제어하지 못해서 과소비를 하고 각종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들이 점점 늘어갈수록 어른일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치히로는 욕망을 제어합니다. 돈도 안 내고 마구 소비하는 어른들과 달리 치히로는 같이 먹기를 거부합니다. 또한 돈을 내지 않았기에 먹어서도 안 됩니다. 최소 주인이 보는 앞에서 먹어야죠. 이는 나이 들수록 도덕성이 떨어지는 우리네 못난 개저씨, 개줌마들을 비판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참 궁금했던 것이 왜 나이 들수록 도덕성이 떨어질까? 였는데 제가 나이 들어가다 보니 조금은 알겠더군요.
체면이 점점 사라집니다. 동네에서는 휴지도 잘 줍고 인사도 잘하고 성인군자처럼 지내는 어른도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곳에 가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쳐다 보는 사람도 적다는 것을 잘 아는지 공중도덕을 참 안 지킵니다. 치히로의 엄마 아빠는 바로 그 도덕성 낮은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을 돼지로 그렸습니다. 돼지였던 엄마 아빠는 다신 인간으로 돌아오지만 자신들이 돼지였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줄거리
10살 치히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갑니다. 이사를 가는 중간에 한 터널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린 후 그 터널을 지나갑니다. 엄마 아빠는 돈도 안 내고 음식을 먹으면서 치히로에게 권하지만 치히로는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하쿠를 만납니다. 하쿠는 인간인 치히로를 보자마자 돌아가라고 하지만 해가지고 강물이 막고 있어서도 돌아가지 못합니다.
엄마 아빠는 돼지가 되어서 어디로 끌려갔습니다. 10살 치히로는 갑작스러운 일에 크게 당황합니다. 몸은 점점 사라지는데 이때 하쿠가 다가와서 이 세계 음식을 먹어야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음식을 먹입니다. 그렇게 하쿠는 인간인 치히로에게 가마 할아범에게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석탄이나 돼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치히로가 취직한(?) 곳은 거대한 온천으로 유바바가 온천 주인입니다. 유바바에게 취직을 허락 받은 치히로는 치히로라는 이름을 일부 지워서 센이라고 불리우게 됩니다. 센은 온천에 찾아오는 여러 신들의 목욕물 시중을 들고 온천을 청소하면서 지냅니다. 그러다 오물의 신을 치료(?)해 주고 유바바에게 깊은 신뢰를 얻습니다.
비 맞고 있는 가오나시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따뜻함을 보여주자 가오나시는 온천으로 들어오게 되고 온천의 노동자들을 금으로 유혹하면서 그들을 집어 삼킵니다. 용으로 변한 하쿠는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의 도장을 훔치다가 도장의 마법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빠집니다. 이를 본 센은 하쿠를 도와주고 하쿠가 훔친 도장을 제니바에게 돌려주려 찾아갑니다.
스토리 자체는 아주 독특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주는 재미는 크지 않습니다. 그냥 착하디 착한 10살 소녀 치히로가 따뜻한 마음으로 물질 문명에 찌듯 사람들을 치유하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돕는다는 흔하디 흔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스토리로 이 영화가 2003년 제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베를린 영화제 큰곰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애니에는 어른들의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날카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인 아동 노동을 담다
하쿠의 도움으로 치히로는 온천장에 취직을 한 치히로는 자신의 정체성인 치히로 대신 이름 중간만 남긴 센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10살짜리 꼬마를 취직시키는 자체가 좀 경악스럽습니다. 이는 아동 노동이고 전 세계에서 금지하고 있는 아동 학대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아동 노동을 막고 있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울면서 뜨거운 벽돌을 식히는 작업이나 축구공을 꿰매고 있습니다. 아동 노동은 21세기인 지금도 불법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미국에서는 없었냐? 미국에서도 아동노동은 있었습니다. 다만 현재가 아닌 아주 먼 과거에 행해졌습니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방직기계를 손보고 있는 이 소녀는 학교도 가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치히로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입니다.
2002년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아동 노동에 대한 시선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나이가 들고 세상 일에 관심이 많아지니 아동 노동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유바바는 밑도 끝도 없이 일을 시켜달라는 치히로에게 일을 줍니다. 마치 자본주의 나라에서 노동자가 일할 권리를 달라고 하자 그 의무를 다하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애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노동에 관한 주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10살 아이가 살기 위해서 그 힘든 온천탕 일을 합니다. 노동자들의 꿈은 큰 돈을 버는 것입니다. 개성, 적성, 소질 다 무시하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 월급을 줍니다. 돈 때문에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21세기인 지금도 태반입니다.
가오나시는 이런 노동자들의 욕망을 아주 잘 압니다. 그래서 금덩어리를 주니 가오나시를 신처럼 대접합니다. 돈의 신 가오나시는 그렇게 노동자들을 집어 삼킵니다. 그러나 10살 치히로는 가오나시의 황금을 거부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오나시는 우리의 욕망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센의 치히로란 이름 찾기를 통한 정체성 찾기
치히로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이름을 센으로 바꿉니다. 이는 이름이라는 정체성을 지우는 작업입니다. 2002년 당시보다는 많이 달라진 2020년 직장 풍경이고 세상 풍경이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돈을 버는 이유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기 때문에 돈을 주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분들이 늘고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우는 직업이 되기 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해서 얻은 스트레스를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푸는 시스템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기계의 부속품 같은 삶을 사는 현대 직장인들의 삶을 치히로와 센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센은 내 정체성을 잃어버린 회색빛 얼굴을 한 노동자의 이름이고 치히로는 내 그 자체인 정체성입니다. 유바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체성 지우기이고 살기 위해서 치히로는 센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주세요)
이런 인물은 또 있습니다. 바로 하쿠입니다. 하쿠는 마술을 배우겠다는 개인 욕망으로 유바바의 조수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긴 뒤 도둑질이나 하는 나쁜 마법사가 되어갑니다. 이런 하쿠의 이름을 되찾아주는 인물이 치히로입니다. 치히로가 이름을 찾아주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유바바로부터 떠날 방법을 찾습니다.
치히로가 찾아주는 것은 또 있습니다. 가오나시는 참 외로워 보이는 캐릭터입니다. 외로운 사람은 뭔가에 자꾸 기대려고 하고 뭔가로 자꾸 날 채우려고 합니다. 그게 음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습니다. 가오나시는 그 빈자리를 이용해서 우리를 먹어 삼킵니다.
그러나 치히로는 가오나시가 준 황금을 거부하고 비맞는다며 들어오라는 온기를 전해 줍니다. 그리고 그 온기는 가오나시가 있어야 할 곳을 알게 해줍니다.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가오나시가 괴물이 되었음에도 치히로는 가오나시를 데리고 바다를 달리는 전차를 타고 가서 가오나시의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장면은 이 어린아이가 얼마나 마음 따뜻한 아이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환경 사랑이 담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 환경부 장관 자리를 줘야 할 정도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환경 사랑은 대단합니다. 지브리의 첫 장면 애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수 많은 애니에서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원령공주> 보다는 못하지만 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자연을 파괴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물 신이 온천에 왔다가 옆구리에 박힌 쓰레기를 빼자 원래 모습은 용이 되어서 날아가는 모습이나 하쿠가 강의 정령이었다는 설정을 보면 우리 인간들이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고 이를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득합니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보기 좋은 애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과 치히로의 예쁜 마음이 마음 따뜻하게 합니다. 보고 나면 맑고 고운 마음이 덩그러니 놓이게 하는 명작 애니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현재를 살아가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피로를 녹여주는 따뜻한 온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