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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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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시동을 걸다가 만 영화 <시동>

썬도그 2020. 1. 18. 18:47

영화 중에는 영화를 볼 때는 가끔 웃고 가끔 분노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지만 영화관을 나서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통 신파라고 하죠. 신파극들은 보편적이지만 뻔해서 지루한 스토리를 감추기 위해서 감정 과잉의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관을 나서면 바로 머리에서 사라지는 휘발성이 강합니다. 영화 <시동>은 신파극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신파극처럼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마동석의 단발머리가 하드 캐리 하는 코미디

영화 <시동>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유명 웹툰이 원작이고 웹툰 초반을 좀 봤는데 그런대로 볼만하더군요. 웹툰을 본 분들은 적극 추천하고요. 원작대로만 나오면 대박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이 후반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면서 적극 추천과 추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봉 당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 <시동>은 먼저 본 분들의 말처럼 후반의 반전이 좀 애매하게 이어집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라는 생각만 남네요. 영화 <시동>은 코미디 빙자 드라마입니다. 예고편만 보면 빵빵 터질 것 같은데 예고편에서 나온 웃기는 장면이 영화의 웃기는 장면이 거의 다입니다. 

유일하게 예고편에 없는 숨은 병기는 마동석이 트와이스 T.T를 부르면서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마동석은 영화 <시동>에서 단발머리를 한 모습 만으로도 웃음 짓게 합니다. 분장쇼라고 할 정도로 단발머리가 주는 기이하면서도 웃긴 모습이 영화 전반부에 잔잔바리로 잘 깔려 있습니다. 이 마동석이 깔아 놓은 무대 위에서 이제는 농 익었다고 할 정도로 연기를 찰지게 잘하는 배우 박정민이 마음껏 춤을 춥니다. 그러나 영화의 웃음 포인트는 예고편에서 다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웃음이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양아치 고택일이 어른을 만나다.

내가 읽은 웹툰 초반부와 영화는 좀 다릅니다. 웹툰은 고등학교도 안 다니는 양아치인 고택일(박정민 분)과 우상필(정해인 분)이 동네에서 어린아이들 삥을 뜯는 생양아치로 그려지지만 영화에서는 그냥 머리에 물들이고 다니는 그냥 양아치라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한 캐릭터가 변하는 과정을 그리려면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기저 효과가 큰데 그냥 머리 물들인 츤데레 중졸 아들로만 그려집니다. 

딱히 심성은 나빠 보이지 않지만 학교는 안 다니는 고택일은 가출을 하고 친구 우상필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를 돌보는 심성 고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동네 아는 형을 따라서 취직을 했는데 그곳이 일수 집이었고 얼떨결에 사채업자가 됩니다. 

고택일은 무작정 집을 나와서 군산에 도착한 후 군산 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배달원이 됩니다. 중국집 사장님은 택일이 딱 봐도 가출한 청소년으로 보였고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배달을 맡깁니다. 만약 고택일이 이 사장님을 못 만났다면 양아치 고택일로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좋은 사장님 만나서 서서히 변해갑니다. 이 변화에는 거석이형(마동석 분)도 큰 도움을 줍니다. 

이 중국집은 좀 특이한 곳입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용기를 주는 곳입니다. 영화와 상관 없지만 걸그룹 AOA의 멤버 찬미 어머니의 이야기와 참 비슷합니다. 작년에 읽은 수많은 뉴스 기사 중에 가장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찬미 어머니 이야기였습니다. 찬미 어머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갖은 학대 속에서 자랐고 남편도 잘못 만나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학대하는 아버지를 피해서 다른 지방에서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미장원 아주머니가 일을 잘 한다면서 태어나서 처음 칭찬을 받습니다. 그 따뜻한 칭찬 한 마디가 찬미 어머니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찬미 어머니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장원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쉼터 역할을 합니다. 딱 시동의 중국집 사장님입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 감동 코드이자 주제임에도 이상하게 영화는 이 점을 크게 부각하지 않습니다. 

시동이 집중하는 건 감동 코드 보다는 코미디입니다. 거석이형과 고택일의 티키타카를 넘어서 고택일과 똑같은 가출 청소년인 복싱을 배운 소경주(최성은 분)에 집중합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의 주제가 많이 희석되고 고택일과 소경주의 상황이 너무 가볍게 다루어집니다. 

고택일이 가출을 한 것은 부모님에게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또한 고택일에게도 큰 고통이죠. 그럼 그 고통의 잘 표현해야 고택일이 겪은 고통이 중국집 사장님을 통해서 치유되고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감동 코드인데 영화 시동은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고택일이 아가리 파이터로 활약하면서 여기저기서 맞는 장면을 부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슬랩스틱 코미디인 줄 알았습니다. 아주 야무지게 맞는 모습이 웃기긴 한데 점점 영화는 산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거석이형의 숨겨진 비밀?

고택일과 거석이형의 티키타카는 영화 시동의 초반을 나름 잘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서서히 위기나 갈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갈등이라는 것이 거석이형에서 나옵니다. 거석이형은 원펀맨이라고 할 정도로 주먹을 잘 씁니다. 그러나 무슨 과거가 있는지 불의를 보고도 참습니다. 

불의를 보고 참는 건 거석이형의 과거에서 기인합니다. 영화는 거석이형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크게 바뀝니다. 거석이형도 고택일도 모두 서울에 일이 생겨서 서울로 올라갑니다. 고택일은 어머니가 돈을 겨우 모아서 마련한 토스트 가게가 불법 건축물로 강제 철거 위기에 놓이고 사채업자들은 고택일이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번 돈까지 가져가려 합니다. 이런 갈등 구조는 영화의 초반 결과 크게 달라서 재미보다는 맥이 빠지게 합니다.

그럼에도 잔잔한 코미디로 끝까지 진행할 수 없자 위기를 넣은 것 같은데 위기 자체가 너무나 신파적이고 흔하고 뻔한 위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적한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이 좀 생뚱맞습니다. 일반적인 갈등 해결은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거나 거석이형이 한방으로 사채업자와 악덕한 세력을 일망타진하거나 도움을 줄텐데 이 시동은 거석이형과 고택일이 따로 갑니다. 

예고편에도 나왔지만 거석이형 말로는 '니 문제는 니가 해결해'라는 식이지만 그럴 거면 왜 중국집에서 함께 동고동락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그리고 고택일은 어른이 아닙니다. 나이로도 고등학생 나이로 미성년자입니다. 미성년자에게 니 앞 가름 네가 하라는 건 중국집 사장님과 다른 시선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주제에 대한 시동이 안 걸린 영화 시동

배우 박정민, 마동석의 연기는 아주 좋았습니다. 정해인 캐릭터는 딱히 도드라지는 캐릭터도 아니고 캐릭터 자체가 큰 매력이 없습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모시면서 사채업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잘 담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림은 그런대로 좋은데 영화가 하고 싶은 주제가 거의 안 보입니다. 

상처 입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동료애를 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원하게 사회적 악에 대한 후련한 강 스파이크를 내리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고택일이 돌아오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새로운 식구가 탄생하는 식으로 끝이 납니다. 그게 현실적인 결말 이서 좋긴 했지만 그 현실적인 결말을 보려고 우리가 영화를 보는 건 아닙니다. 영화가 주는 환상을 보러 가는 것이죠. 비록 그게 작위적이고 뻔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인 결말을 내리는 것도 좋은 대안은 아닌 듯하네요. 

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냥 시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든 가면 길이 나오겠지라는 청춘의 긴 한숨이자 희망이 그나마 약간의 위안을 주네요. 

별점 :

40자 평 : 시동 안 걸리는 스쿠터를 2시간 내내 질질 끌고 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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