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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연예인과 나에 대한 이중 잣대를 담은 영화 풀잎들

by 썬도그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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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는 불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정도로 영화의 결이 크게 달라집니다. 불륜 이전작이자 김민희가 나오지 않았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에서 보여줬던 블랙코미디가 너무 매혹적이라서 즐겨 찾고 자주 찾게 되었지만 불륜 스캔들이 터지고 난 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영화 <하하하>를 하하하 현웃 터지면서 봤었는데 이제는 웃음이 사라진 영화들만 만듭니다. 

웃을 수가 없을 겁니다. 괴롭고 괴롭겠죠. 그 괴로움을 영화로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홍상수 감독은 불륜 이후에 만든 영화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항변하고 대변하고 변명하는 내용들을 참 부지런히 담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그만 해도 될 것 같은데 평생 자신의 불륜에 대해서 변명하고 따져 묻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괴로운 것만 담을 것인지요. 

이러다 보니 불륜 이후 영화들은 예전의 웃음은 사라지고 자기 연민에 빠진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불륜 이전 영화에서는 불륜 커플의 속물 근성을 담았다면 본인이 그런 속물이 되고 난 후에는 적극적으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홍상수 영화들은 덜 보게 되네요. 

 카페에서 다른 테이블을 엿듣는 형태의 영화 <풀잎들>

자려다 새벽 공사 소음에 깨어나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였고 6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라서 봤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안재홍도 나오고요. 영화는 흑백 영화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강변호텔>과 함께 흑백으로 담았습니다. 2018년 4월 개봉작인 <클레어의 카메라>는 불륜이 밝혀지기 전에 아주 짧은 시간에 촬영한 영화라서 그런지 컬러 영화입니다. 

아무튼 불륜 이후 영화들은 다 흑백으로 담기고 있고 그게 자기 반성이라기 보다는 잿빛 같은 자신의 현실을 대변하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 <풀잎들>은 다른 홍상수 영화와 다르게 공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자주 지나가는 윤보선길에서 조금 더 들어간 카페에서 여러 명의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걸 김민희가 엿듣는 형태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 저렴한 예산 때문에 하나의 연극 무대 같은 카페에서 촬영한 영화로도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는 확실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풀잎들> 초반 기주봉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데 마치 홍상수의 아바타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 곳곳에 나옵니다. 아무래도 관객이나 영화를 만든 홍상수 감독이나 모두 가장 유명한 불륜 커플이다 보니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불륜에 대한 자신의 괴로움과 변명만을 담고 있지 않고 이걸 지우고 보면 영화는 좀 더 보기 부드러워집니다. 

연예인과 나에 대한 이중 잣대를 담은 영화 <풀잎들>

영화 <풀잎들>에서 김민희는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른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를 귀동냥으로 듣고 그걸 평가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사실 좀 말이 안 되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그냥 눈치껏 모른척하고 보면 큰 걸림돌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다른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가 카페에서 나눌만한 대화가 아닌 죽은 친구나 동료에 대한 대화가 동일하게 나옵니다. 

어떻게 카페에서 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지난 주에 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한 남자가 아내인지 결혼할 상대인지는 모르겠지만 2시간 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카페가 편한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렇게 2개의 테이블에서는 각자 먼저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 죄책감과 책임전가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화를 혼자 앉아서 귀동냥하면서 평가하는 김민희의 모습은 마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귀동냥으로 사실과 겉모습만 보고 비판하는 인상 비평입니다. 이런 인상 비평을 우리는 매일 하고 삽니다. 언제 했냐고요? 우리가 연예인 뉴스를 보고 하는 그 한마디가 다 인상 비평입니다. 

연예뉴스는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뉴스입니다. 연예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보도가 될 정도로 연예뉴스는 참 많이 생산하고 요즘은 SNS 하는 연예인이 많아서 뉴스를 자체 생산합니다. 이런 뉴스들은 연예인과 직접 인터뷰를 한 뉴스는 1%도 안 되고 대부분 카더라~~ 와 사실을 적당히 섞어서 내놓는 인상 비평 뉴스이고 우리는 그런 뉴스를 보고 인상 비평을 합니다. 

김민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다른 테이블의 하소연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고 비평을 합니다. "죽은 친구가 옆에 있어도 자기  죽을 건 생각 안 하는 것들"이라고 쉽게 묶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아무런 평가를 안 하는 테이블이 있는데 한정식집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아무런 평가를 안 합니다.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사이인 걸 보면 불륜 커플 같지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당하게 말을 못하지만 또 다그치면 부끄러운 관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홍상수와 김민희 커플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그런데 왜 김민희는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아무런 평을 안 했을까요? 자기들 이야기라서? 그래서 더더욱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집중해서 들어보게 됩니다. 이유영과 사랑하던 사이인 교수가 비리 사건으로 투신하게 됩니다. 이에 동료 교수로 보이는 사람이 비리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투신한 것이라고 다그칩니다. 

김민희는 동생과 결혼할 여자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혼하지 말라고 과한 분노심을 보입니다. 웃깁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너 테이블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동생이 결혼할 여자를 결혼할 여자가 동생을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혼하면 불행해진다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또는 자신의 사생활에서는 잘 알지 못하면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연예인 같은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왈가왈부하면서 훈수를 둡니다.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김민희를 배우이자 작가가 되고 싶은 정진영이 작가냐고 계속 물어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프로도 아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저 같은 프로가 아니면서 세상 비평을 하는 블로거나 유튜버나 입담꾼, 호사가들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상당히 지루한 영화 <풀잎들>

역시 주제가 또렷해서 좋긴 한데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영민했던 시공간을 활용한 블랙 코미디는 사라지고 자기 변명 반, 좀 유치한 이야기와 더 유치한 대사들과 너무 한정된 공간만 보여주다 보니 영화가 너무나 정적으로 느껴집니다. 

뭐 홍상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하고 저도 색안경을 끼고 보다 보니 홍상수 감독이 가진 특징들이 멋이 아닌 유치함으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과도한 줌인 , 줌아웃도 롱테이크도 다 제작비 아끼기 위한 방법으로 보이기까지 하네요.

별점 :

40자 평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하는 창 밖 너머 인생들에 대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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