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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외국사진작가

고대 조각상 같은 우아함을 계획해서 넣은 패션사진가 호르스트 P. 호르스트 (Horst P. Horst)

by 썬도그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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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 같은 사진을 하지만 어떤 사진은 보도 사진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어떤 사진은 나를 증명하는 증명사진으로 활용되며 어떤 사진은 상품 판매를 촉진하는 상업 사진으로 분류합니다. 패션 사진은 기본적으로 상업 사진입니다. 패션 잡지나 패션 회사들의 의뢰로 유명 모델이나 배우를 모델로 삼아서 옷이나 액세서리를 최대한 돋보이게 촬영합니다. 이 패션 사진가 중에는 사진 수준이 뛰어나서 예술가로 분류되는 사진가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호르스트 P. 호르스트(1906 ~ 1999)가 있습니다. 같은 사진을 하지만 어떤 사진은 보도 사진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어떤 사진은 나를 증명하는 증명사진으로 활용되며 어떤 사진은 상품 판매를 촉진하는 상업 사진으로 분류합니다. 패션 사진은 기본적으로 상업 사진입니다. 패션 잡지나 패션 회사들의 의뢰로 유명 모델이나 배우를 모델로 삼아서 옷이나 액세서리를 최대한 돋보이게 촬영합니다. 이 패션 사진가 중에는 유명한 사진가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호르스트 P. 호르스트(1906 ~ 1999)입니다. 호스트 P. 호스트로도 표기하지만 여기서는 호르스트 P, 호르스트로 소개하겠습니다. 

건축가를 꿈꾼 독일 청년 '호르스트 파울 알베르트 보어만'

호르스트 P. 호르스트

1906년 독일의 바이센펠스에서 태어난 호르스트 파울 알베르트 보어만은 함부르크 상업미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1930년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인턴십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화려한 프랑스 파리처럼 화려한 스튜디오를 예상했지만 생각과 달리 누추한 곳에서 작업을 하고 무뚝뚝한 '르 코르뷔지에'에 실망을 했습니다. 때 마침(?) 부모의 지원도 끊기고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후에 살인적인 물가 폭등과 전쟁을 준비하는 등 정치적인 혼란기라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지 호이닝엔 휘네

'호르스트 파울 알베르트 보어만'은 패션 사진잡기 보그의 파리 스튜디오 책임자인 '조지 호이닝엔 휘네'라는 러시아 출신 유명 패션 사진가를 우연히 알게 됩니다. 몸매가 좋았던 '호르스트 파울 알베르트 보어만'은 호이닝엔 휘네의 모델이 되면서 모델과 사진가 관계를 지나서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조지 호이닝엔 휘네'는 러시아 공작의 아들로 태어난 인물로 프랑스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다가 사진계로 전향을 합니다. 우아한 선과 연출된 빛을 중요시하는 사진가로 호르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1930년대 프랑스는 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인류 최대 호황기였던 '벨에포크 시대'로 호이닝엔 휘네와 함께 '만 레이', '장 콕토', '부뉴엘'같은 유명 인사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호르스트는 스승이자 연인인 호이닝엔 휘네의 모델과 조수 역할을 하다가 스승의 권유로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호르스트는 패션 사진에 입문합니다. 

초기에는 혹평도 많이 받았습니다. 

마틴 문카치 (Martin Munkacsi) 사진
마틴 문카치 (Martin Munkacsi) 사진

1935년 패션 사진계는 스포츠 사진기자 출신의 '마틴 문카치(Martin Munkacsi)' 사진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패션 사진들은 빛을 제어할 수 있는 인공미가 가득한 스튜디오 촬영 사진이 많았는데 '마틴 문카치'는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에게 반기를 들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던 인상파 화가처럼 카메라를 들고 야외에 나가서 패션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러나 호르스트와 그의 스승이자 연인인 호이닝엔 휘네는 그리스를 여행하는 등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합니다. 그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란 비너스상 같은 고대 조각들입니다. 

그리스 조각상 같은 탐미주의적인 패션 사진을 촬영한 호르스트 

1939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1931년 처음으로 보그지에 자시의 사진을 소개한 호르스트는 '마틴 뭉카치'와 정 반대인 실내에서 완벽하게 제어된 고전주의 화풍의 그림 같은 살롱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조각상 같은 포즈를 연구하기 위해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대 조형 작품이나 정물의 포즈들을 연구하고 살펴봅니다. 

1945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고전주의 조각의 포즈에서 영감을 얻은 후 스튜디오에서 포즈, 조명이 모두 완벽하게 제어된 사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호르스트 사진은 완벽한 무대 조명과 비너스 조각상 같은 고대 조각상의 포즈를 취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조명은 위에서 떨어지는 톱 라이트 조명을 사용해서 인물의 굴곡을 빛으로 더 확실히 드러나게 연출을 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이 완벽한 조명과 포즈를 대형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마틴 문카치가 소형 카메라로 야외에서 역동적인 사진을 찍었다면 호르스트는 실내에서 연출된 그림 같은 사진을 대형 카메라로 담습니다. 

1938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디테일에서 가치가 더 증폭이 됩니다. 아니 저런 것까지 연출을 했어?라고 할 저도로 다 계획을 세우고 소품 하나까지 행동 하나까지 조율을 합니다. 호르스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르스트는 대형 카메라로 잘 연출된 사진을 담아서 디테일에서 매력이 샘솟게 만듭니다. 사진에 담긴 모든 것이 계획에서 나온 것이고 우연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설사 그게 우연처럼 보인다고 해도 다 계획에서 나온 우연입니다. 

여자들을 여신으로 담는 호르스트는 강한 새도우의 사진들은 1개의 조명을 이용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개의 조명과 반사판을 이용해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완벽주의자 호르스트가 촬영한 사진을 지금 봐도 질리지 않은 이유는 가장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호르스트 P. 호르스트의 대표작 '메인 보허의 코르셋'

<메인보허의 코르셋(Mainbocher Corset), 1939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호르스트의 대표작은 1939년 촬영한 메인보허의 코르셋입니다. '호르스트 파울 알베르트 보어만'은 1934년 스승이자 연인인 '호이닝엔 휘네'가 보그지에서 경쟁 패션 잡지인 하퍼스 바자로 옮기자 휘네가 맡았던 보그 프랑스 스튜디오의 책임자가 됩니다. 이후 이름을 '호르스트 P. 호르스트'로 바꿉니다. 

그리고 새로운 백작 연인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독립을 한 후 '호르스트 P. 호르스트'는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전운이 감돌자 '호르스트 P. 호르스트'는 미국 보그지에서 일하기로 계약을 하고 프랑스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이 바로 그의 대표작인 메인보허의 코르셋입니다. 

이 사진도 여전히 강한 조명을 위에서 떨어트려서 콘트라스트와 새도우가 강합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굴곡이 잘 담기는 포즈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코르셋입니다. 이 코르셋은 중세시대 여성들의 몸매를 강조하는 도구로 많은 여성들이 이 코르셋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심지어 코르셋 때문에 죽은 여자들이 있을 정도로 여성 압박 도구였습니다. 시대가 변한 후에 코코 샤넬이 탈 코르셋을 외치면서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편안한 복장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1920년대부터 서서히 코르셋은 사라집니다. 

봉건주의 산물인 코르셋을 1939년 호르스트는 다시 들고 나옵니다. 구시대의 산물을 끄집어낸 것 차체로도 많은 비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사진을 촬영한 다음날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호르스트는 뉴욕으로 피신을 합니다. 

이 사진은 전쟁 때문에 바로 프랑스 바자 10월호에 소개되지 못하고 12월호에 우편 엽서 크기로 작게 소개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까칠한 비평의 도시 프랑스에서 구시대적인 사진이라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호르스트를 대표하는 사진이 되었네요. 

흥미롭게도 탈코르셋을 이끈 '호르스트 P. 호르스트'는 1937년 코코 샤넬을 촬영했습니다. 

 

고전주의 조형미를 강조한 호르스트 사진이 다시 인기를 얻다

1947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Conseulo Vanderbilt. 1946년, 호르스트 P. 호르스트 

뉴욕으로 건너간 호르스트 P. 호르스트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자신만의 사진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나요? 1970년 다시 화려하고 치장을 중시하는 아르데코 사진이 유행하자 다시 '호르스트 P. 호르스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백악관 방에서 촬영한 베티 포드 , 1981, 호르스트 P. 호르스트

1974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가지고 1980년에 다시 보그와 베니티 페어 잡지와 함께 사진 작업을 합니다. 1999년 11월 19일 플로리다에서 숨을 거둡니다. 

평생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패션 사진가 '호르스트 P. 호르스트'. 그 고집이 백악관의 영부인들을 촬영하는 영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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