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맛집이 많은 서촌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한옥이 있는 아름다운 골목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아파트가 거의 없는 서촌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골목이 워낙 많아서 길을 잃기도 하고 어떤 골목은 막다른 골목이라서 돌아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게 골목의 맛이죠. 저 골목 뒤에 뭐가 나올지 궁금하거든요. 막히면 꽝! 또 다른 길이 나오면 환희! 마치 화투장을 뒤집을 때의 쾌감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골목길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다가 이상한(?) 건물을 봤습니다. 딱 봐도 비효율적이고 비정형적인 건물입니다. 뭐지 이 건물은?
가까이가서 보니 이상함은 신기함을 바뀌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야 너무 흔하게 봐서 특색이 없지만 창문 위 차양막이 독특합니다.
차양막 끝에는 철사가 길게 나와 있네요. 빗물이 저 긴 철사 끝에서 떨어질 듯 합니다. 창문도 네모랗지도 그렇다고 세모도 아니고 창문 모양이 조금씩 닮은 듯 다릅니다. 너무 독특하네요. 대칭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가우디 건물 같다고 할까요? 입구도 물고리 입 같이 생겼습니다. 뭐 이런 건물이 있지? 돈 많은 건축주가 비싼 돈 주고 만든 건물 같았습니다.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다고 할까요?
인간이 만든 조형물과 자연이 만든 조형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바로 직선입니다. 인간은 직선을 참 좋아하고 잘 만듭니다. 직선은 효율의 대명사죠. 만약 방이 세모랗거나 동그라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어요. 그렇게 되면 책상, 가구 모두 곡선으로 뒤를 처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직선은 효율의 대명사입니다. 대표적인 직선 조형물이 건물이죠. 건물 중에 곡선으로 만든 건물들이 있지만 그렇게 되면 건축비가 비싸집니다. 그런 곡선의 집도 집 안에서는 직선으로 된 방들이 가득하죠.
하지만 이 건물은 직선이 있지만 곡선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직선이라고 해도 대칭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대단한 솜씨입니다. 신기해 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이 건물이 예사 건물이 아니네요. 한국의 가우디라고 불리던 허영만 화백의 친구인 차운기 건축가가 지은 12주 건물이네요. 건물에 이름이 있습니다. 즉 네임드라는 소리입니다. 아쉽게도 이 12주 건물은 차운기 건축가의 유작이었습니다.
1955년에 태어나 200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40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했다고 하네요.
정형성을 파괴한 이 건물은 처음에는 빌라 촌 한 가운데 있어서 여기도 빌라 인 줄 알았습니다. 다가구주택인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한 주류 유통업체가 사용하고 있네요.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108-6입니다. 여기 사무실로 쓰지 말고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으로 활용해도 인기 많을 듯 해요. 겉이 이런데 속은 또 얼마나 화려하겠어요.
12주라는 이름은 12주 만에 지어서 12주는 아니고 12개의 구리라서 12주라고 한다고 하네요. 건물 짓는데 3년이나 걸렸는데 설계와 시공까지 차운기가 직접 했습니다. 창문 참 독특하네요. 한 처마 밑에는 랜프가 달려 있나요? 그나저나 저 창문은 열릴 수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다음 로드뷰로 검색해보니 여름에는 능소화 덩굴이 엄청나게 펴 있네요. 여름에 더 아름답네요.
서촌을 이렇게 골목마다 보물이 숨겨져 있어서 좋습니다. 또 한명의 흥미로운 건축가를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