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 보면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 또는 자회사가 만든 애니 같습니다. <겨울왕국>, <모아나>, <라푼젤>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어떤 유명 영화 제작진을 내세우는 영화는 영화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제작진 버프를 활용합니다. 그래서 유명 영화 제작진 홍보 문구가 있으면 거르는 것이 좋습니다.
<레드슈즈>에서 유명 디즈니 영화 제작진이라고 함은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였던 김상진씨를 말합니다. 김상진씨가 <레드슈즈>의 주요 캐릭터를 만듭니다. 따라서 1명만 디즈니 애니 제작진입니다. 그러나 이 1명이 대단한 1명이라서 제작진이라는 문구를 적용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영화의 맹점입니다.
애니나 영화는 그림만 보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에 스토리와 연출, 편집이 더해져야 영화가 만들어지죠. 그림은 250억원이라는 제작비 치고는 꽤 질이 좋습니다. 물론 디즈니의 그 현란한 움직임과 그래픽 보다는 못하지만 250억 제작비에 비해서는 꽤 고퀄리티 작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나 스토리입니다.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대상을 받은 일곱 난쟁이를 영화로 만든 <레드슈즈>
한국 애니의 고질적인 병은 스토리입니다. 대부분의 애니들이 스토리들이 매끄럽지 못하고 이해 못할 전개로 진행이 됩니다. 이러다 보니 때깔만 좋고 스토리가 부실해서 망한 애니들이 꽤 많죠. <언더독> 작화 스킬은 세계 탑 클래스이지만 스토리가 아이들이 보기엔 사회성이 너무 짙은 유기견 이야기를 담은 자체가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스토리도 결말 부분이 너무 튀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에서 스토리가 가장 탄탄했던 애니는 <마당을 나온 암탉>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디즈니 식 결말이 아닌 잔혹하지만 그게 세상 이치라는 결말에 충격을 받았고 옆에 있던 아이는 펑펑 울다 못해 소리 소리 지르고 울더군요. 이런 뛰어난 스토리 덕분인지 한국 애니 사상 최고 관람객 숫자인 22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지금 봐도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정말 잘 만들어진 애니입니다. 스토리, 작화, 연출, 편집 등 거의 모든 것이 놀라운 애니였습니다.
제가 한국 애니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레드슈즈>도 한국 애니입니다.
싸이더스가 제작한 <레드슈즈>는 제작비가 250억원이나 들어간 애니로 제작 금액이 꽤 높습니다.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애니는 국내용이 아닌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영어 더빙을 지한파인 '클로이 모레츠'가 주인공 백설공주를 연기하고 못된 왕비인 레지나를 '지나 거손'이 연기를 합니다. 저도 성우만 보고 외국 애니구나 했지만 감독 이름을 보고 바로 알았습니다. 감독은 홍성호 감독입니다.
애니 매니아들은 이 이름을 잘 아실 겁니다. 2003년 개봉한 <원더플 데이즈>에서 시각효과를 맡았던 홍성호 감독입니다. 이 애니는 한국 애니의 자존심이라고 할 정도로 큰 기대를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조악한 스토리로 인해 크게 망했습니다. 이 애니를 보면서 한국 애니는 작화가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죠.
홍성호 감독의 재기작인 <레드슈즈>에서 스토리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했을까요?
먼저 스토리는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대상을 받은 '일곱 난쟁이'를 각색해서 만들었습니다. 공모전의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여러 사람이 인정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신뢰도가 높은 시나리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기 어렵기에 각색을 통해서 좀 더 영화에 적합하게 조정한 후에 제작에 들어갑니다.
<레드슈즈>의 스토리는 창작 스토리이긴 하지만 기존의 동화들을 섞어 놓았습니다. 제목은 동화 '빨간 구두'에서 가져왔지만 빨간 구두를 신으면 날씬해진다는 마법만 차용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원작 시나리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백설 공주와 일곱난쟁이'에서 얻어왔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꽃보다 일곱왕자'가 악당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했는데 공주가 너무 못생겨서 마녀로 오인합니다. 그렇게 마녀를 때려 잡았는데 못생겼을 뿐 일곱왕자가 때려 잡은 마녀가 마녀가 아닌 공주였습니다. 공주는 이 '꽃보다 일곱왕자'에게 저주의 마법을 겁니다. 그렇게 '꽃보다 일곱왕자'는 녹색 피부에 키도 작은 난쟁이가 됩니다.
마법에 걸린 사람은 또 있습니다. 스노우 화이트 공주는 아빠가 사라진 후 마녀 같은 레지나 왕비와 같이 삽니다. 모든 실권은 레지나 왕비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왕비가 키우는 마법의 나무가 있었는데 이 마법의 나무에 열린 사과가 레드슈즈로 변합니다. 레드슈즈를 따서 신어본 스노우 화이트 공주는 날씬한 몸매로 변합니다.
이 놀라운 변신은 레드슈즈를 신을 때만 적용되고 빨간 구두를 벗으면 다시 뚱뚱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 '레드슈즈'는 레지나 왕비가 기다리던 구두였습니다. 레지나 왕비는 '레드슈즈'를 신고 젊음을 되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레드슈즈를 스노우화이트 공주가 뺏어가자 불같이 화를 내고 공주를 찾으러 나섭니다. 공주는 왕비를 피해서 날으는 빗자루를 타고 왕국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꽃보다 일곱난쟁이가 있는 집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다가 일곱난쟁이와 첫 만남을 합니다.
일곱난쟁이들은 공주가 도둑인 줄 알고 때려 잡는데 때려 잡고 보니 너무 예쁜 모습에 바로 경계를 풀고 사랑에 빠집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백설공주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난쟁이들이 너무 밝힌다는 것과 슈렉처럼 녹색 피부를 가졌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점과 레드슈즈를 신으면 예쁜(?) 백설공주로 변신한다는 내용이 다릅니다.
스노우화이트 공주는 레드슈즈를 신고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전단지를 뿌립니다. 애니 <레드슈즈>는 스노우화이트 공주의 아빠 찾기와 레지나 왕비가 레드슈즈를 회수하기 위한 위기의 요소가 깔립니다.
아름다움은 겉모습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레드슈즈>
위기는 백설공주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못된 왕비가 착한 공주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 다니는 과정이 전체적인 위기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난쟁이들도 스토리가 꽤 있습니다. 먼저 일곱 난쟁이 중에 센터 역할을 하는 멀린은 번개 마법을 사용하고 아더는 아더 왕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인지 돌에 박힌 칼을 뽑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외에 피노,키오, 노키 등으로 7명의 캐릭터들이 그냥 소비되지 않고 다들 캐릭터가 있습니다.
다만 캐릭터의 스토리를 깊게 입히지 못하고 대충 그려지는 느낌입니다. 이중에서 멀린과 아더는 스노우화이트 공주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합니다. 너무 들이대서 발정난 개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주에게 치근거립니다. 그러나 공주는 자신의 원래 모습은 이렇게 날씬한 모습이 아닌 뚱뚱한 모습임에 고민을 합니다.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려고 시도했지만 레드슈즈가 벗겨지지 않아서 실패를 합니다. 공주는 핸섬한 멀린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난쟁이 멀린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멀린은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죠. 애니 <레드슈즈>는 유쾌한 전복을 시도합니다. 뚱뚱하고 키가 작다고 아름답지 않다는 건 편견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신선하긴 한데 이미 슈렉에서 써 먹었던 시선이죠. 이미 다른 영화에서 시도한 시선이라서 신선도는 높지 않습니다. 다만 슈렉보다 좀 더 꼬아서 생각의 깊이를 더 깊게 한 점은 꽤 좋네요.
How did this get approved by an entire marketing team? Why is it okay to tell young kids being fat = ugly? 🤔😏@ChloeGMoretz pic.twitter.com/PVhgwluGTM
— Tess Holliday 🥀 (@Tess_Holliday) May 30, 2017
하지만 해외 마케팅을 할 때 '백설공주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7명의 난쟁이가 크가 컸으면?' 이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이는 대충 보면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고 뚱뚱한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인데 못생겼다고 말했다가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키가 작다는 것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죠. 특히나 인권과 사회적 감수성이 발달한 서양에서는 더더욱 이런 식의 마케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뚱뚱해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입니다.
오랜 만에 우연히 개그콘서트를 봤는데 여전히 뚱뚱하다고 비하하고 몸땡이 가지고 놀리는 저질 개그를 하는 모습에 채널을 돌렸습니다. 사람의 몸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몸, 못생긴 몸에 대한 평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 10년 전에는 이런 비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0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고 한국도 몸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하지 않게 되는 분위기가 진해지고 있습니다. 일베충이 아니라면 사람의 몸을 가지고 함부로 아름답다 아니다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뚱뚱한 백설공주를 아름답지 않고 키 작은 왕자들을 못생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에 이 트위터리안은 주연 성우를 한 '클레이 모리츠'에 항의성 맨션을 했고 '클레이 모리츠'는 영화 내용은 그렇지 않다면서 왜 그런 마케팅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저 마케팅에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도가 높음을 알지 못한 실책이죠. 게다가 이 <레드슈즈>는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을 전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애니인데요. 영화 주제는 좋은데 마케팅을 왜 저렇게 했는지 참!
후반만 볼만했던 <레드슈즈>
<레드슈즈>는 초반과 중반까지 여러 곳에서 덜컹거립니다. 스토리도 백설공주 이야기를 비틀었는데 비틀어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액션 장면이나 활동량이 많은 장면도 많지 않아서 지루한 구간이 꽤 깁니다. 그래서 보다 말다 했습니다. 1시간 정도 지켜보니 좀 볼만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법에 걸린 일곱 난쟁이들과 마법에 걸린 줄 자기만 알고 있는 스노우화이트 공주의 묘한 긴장감과 이야기 레이어가 두터워지자 볼만해 집니다. 후반에는 액션 장면도 꽤 있이서 지루한 구간이 없습니다. 다만 유머러스한 장면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 액션 연출도 별로입니다. 그나마 토토로 닮은 거대한 목각 토끼와 목각 인형 3명이 주는 귀여움은 있습니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들이죠.
여기에 노래가 뜬금포처럼 갑자기 뜬금 없이 나오는데 노래가 안 좋습니다. 주제가가 너무 안 좋아요. 오히려 영화에 방해만 됩니다. 좋은 점은 작화입니다. 작화 퀄리티는 꽤 좋습니다. 250억 원 투입해서 이 정도로 뽑아 낸다면 이 작화팀이 좋은 시나리오와 연출자를 만난다면 좀 더 좋은 애니가 나올 듯합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 중에 뛰어난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영화나 애니 쪽의 스토리는 좋은 스토리들이 많이 나오지 않네요. 한국이 점점 스토리텔링 강국으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네요. 차라리 스토리는 외주를 주거나 외국에서 사오고 작화만 한국에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 애니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레드슈즈>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백설공주를 비틀었지만 기시감이 더 강해서 아쉬웠던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