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는 고루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KBS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특히 주말 드라마는 중장년층 이상이 좋아하는 뻔한 가족드라마라서 시청률 40%가 넘어가도 안 봅니다. 그래서 <동백꽃 필 무렵>도 안 봤습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동백이 노래를 부르고 강하늘이 주연을 하기에 1편만 대충 보다가 집중해서 봤습니다.
함박 웃음이 매력적인 미담 제조기 강하늘이 나오기에 꾹 참고 봤다가 푹 빠졌습니다. 드라마가 한창이던 20회 이후부터 봐서 앞 부분은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미혼모인 동백(공효진 분)를 범인을 잡고 특채로 경찰이 된 황용식(강하늘 분)이 짝사랑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더군요.
우리 주변의 인물이 주인공인 <동백 꽃 필무렵>
파격적입니다. 미혼모가 주인공인 것이 가장 놀랍습니다. 이전에도 미혼모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겠지만 그런 미혼모를 총각이 무한정 하염없이 좋아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찾으면 있겠죠. 그런데 강하늘과 공효진이 연기를 한 드라마는 아닐겁니다.
이 <동백꽃 필 무렵>은 참 좋은 드라마입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이야기가 좋은 것이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흔해빠진 재벌 2세,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같은 상위 1%의 사짜들이 주인공이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전문 직장인들의 사랑과 연애를 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세상 99%가 흙수저인데 드라마는 상위 1%인 사짜들만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는 현대판 사극입니다. 사극을 싫어하는 이유가 맨날 천날 왕만 나옵니다. 왕 이야기가 이야기 풀어가기 쉽긴 하지만 지긋지긋하거든요. 사짜들이 주인공인 현대 드라마도 사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은 미혼모 동백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미모로 재벌 2세 훈남을 홀리는 내용이 아닙니다. 순박한 용식이가 씩씩한 동백이에게 반해서 푹 빠지는 내용입니다.
동백이에게 반한 건 황용식 뿐이 아닙니다. 흘겨 보던 옹산 마을 사람들도 동백이의 따뜻한 성품에 조금씩 마음을 엽니다. 특히 한 평생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매몰찬 찬 바람을 맞고 산 향미(손담비 분)도 동백이의 따뜻한 온기에 차가운 마음에 온기가 들어옵니다. <동백 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도 밝음과 온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미혼모에 그것도 부모에게 버림 받은 동백이가 이렇게 굳세어라 금순이처럼 사는 모습은 용식이와 옹산 마을을 넘어서 TV를 시청하는 시청자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안고 사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동백이
세상 모든 불운은 동백이라는 꽃에 박힌 듯 합니다. 미혼모에 어려서 어머니에게 버림 받고 연쇄살인마 까불이까지 달라 붙고 보고 있으면 측은해서 눈물 겹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동백이는 이런 고통의 연속 속에서 움추려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따뜻한 성품에 탐복한 마을 사람들과 용식이가 응원을 해주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고통을 떠 안고 사는 동백이는 숨다 못해 마을을 떠나려고 했지만 옹산 사람들의 온정에 다시 옹산에 정착합니다.
이 온정이라는 것이 홀로 피어나는 온기가 아닙니다. 주고 받고 하면서 화력이 더 커지죠.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은 그 온정을 담고 있습니다. 재벌 2세의 돈은 사랑하는 가난한 연인에게만 흐르지만 옹산의 온기는 돈처럼 돌고 돌고 돕니다.
동백이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러나 동백이가 가진 삶의 고통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동백이는 온갖 불운이 다 붙어 있는 고통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특히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용식이를 심쿵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백의 뜨거운 포옹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사는 우리들을 위한 위로
<동백 꽃 필 무렵>의 마지막 회의 용식과 동백의 포옹 장면을 한 참 봤습니다. 온갖 불운을 달고 사는 동백이가 드디어 자신 안에 있던 고통을 언제나 밝은 태양인 용식이에 기대어서 게워냈습니다. 미혼모인 동백이 항상 친절하고 세상에 당당하게 살아서 고통이 없는 줄 알았지만 동백은 세상 편견과 혼자 자식을 먹여 살리는 미혼모의 고통을 직격으로 맞았습니다. 여기에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버림 받은 트라우마까지 온갖 고통을 그동안 참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들 앞에서 특히 자식 앞에서 비굴하고 부도덕하지 않고 싶어서 모든 걸 참고 살았습니다. 건물주인 노땅콩 노규태에게 손목이 잡혀도 바로 뿌리치고 당당하게 땅콩 안주 값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게 부모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고 그게 자식에게 존경 받는 부모의 길이니까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살수록 오히려 더 비참한 일이 일어나죠. 융통성 있게 살라고 세상은 훈계하지만 동백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융통성은 버리고 당당함을 택합니다.
그 당당함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견뎌야 합니다. 견디고 견뎌야 했습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용식의 온기에 봇물 터지듯 터집니다.
이 포옹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치 오늘을 꾸역꾸역 견디면서 사는 우리들의 모습 같았습니다. 특히 세상 편견이라는 고통을 받고 있는 음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당당하지 않으면 고통을 줄어 들 수 있습니다. 그냥 세상과 타협하고 융통성이라는 미명 아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세상의 이치라는 변명으로 살면 고통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식과 동백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만난 사람 중에 부녀회장이 최고 권력자라고 말하는 동백이는 타협하지 않은 당당함으로 용식이를 흔들었고 씨족 사회 같은 강력한 카르텔이 형성된 옹산 마을의 융통성으로 포장된 불의와 불평등을 분쇄했습니다. 그 자리엔 옹상의 온기와 남 불편하게 쪼아대는 오지랖이 좋은 방향으로 형성되어 동백이를 같은 편으로 만듭니다.
이 씨족사회에서는 같은 편 되기가 어렵지 한 번 되면 평생 같은 편이 됩니다.
올해는 보통 사람이주인공인 드라마 중에 좋은 드라마가 참 많네요. 봄이 오는 올 초에 방영한 jtbc의 <눈이 부시게>는 늙어감에 대한 우리들의 삶을 놀라운 스토리와 뛰어난 연기와 대사로 담았습니다. <동백 꽃 필 무렵>은 세상 편견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를 통해서 편견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유머를 곁들여서 잘 담았습니다.
눈이 부시게가 끝나고 한참 눈이 부시게 앓이를 했는데 <동백꽃 필 무렵>도 한 동안 앓이를 할 것 같네요. 좋은 드라마는 사짜들에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 우리 일상을 담고 하루 하루 먹기 살기 힘든 우리들의 모습만 진솔하고 온기 있게 담아도 좋은 드라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청률은 알아서 따라오는 선물이겠죠.
좋은 드라마의 소재는 상위 1%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캘 수 있는 소재와 주제는 차고 넘칩니다. 부디 공중파가 신데렐라 이야기나 캐지 말고 주변에서 보물을 찾았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