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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영화 기생충. 지하와 선으로 자본 계급 사회를 비판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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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지하와 선으로 자본 계급 사회를 비판하다.

썬도그 2019.06.01 12:48

살아 생전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줄은 정말 예상 못했습니다. 특히 요즘 한국 영화들은 맥아리가 없고 철저하게 상업성만 분석해서 내놓은 평균의 맛을 내지만 맛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프랜차이즈 음식 같은 영화들이 태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맛집이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장인 중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획득했네요. 혹자는 올림픽 메달이 아니라고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하지만 올림픽 메달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저도 첫 번째 메달은 기억해 주는 것이 국뽕과 무관하듯 첫 번째 수상은 모두 함께 기뻐해줘도 전혀 국뽕의 향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기생충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 기생충을 보실 분은 어떤 리뷰도 안 읽고 보시는 것을 권해드리고 보신 분들은 함께 영화 감상을 나눴으면 합니다. 이 글은 전반부 줄거리만 소개하고 스포는 최대한 자제한 글로 적겠지만 그럼에도 관람 예정인 분들은 보시고 이 글을 읽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참고로 기생충은 기존 봉준호 영화 보다는 크게 웃기거나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고 한국 사회 아니 전 세계의 빈부격차를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입니다. 


지하와 지상으로 구분된 계급 사회를 비판한 영화 기생충


의,식,주 중에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입는 옷과 신발과 가방으로 부자와 빈자를 드러낼 수 있지만 단박에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사내식당과 학교식당 같은 급식 시설을 이용하면 먹는 것으로도 부자와 빈자의 구분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는 곳으로 부자와 빈자를 아주 쉽게 구분하는 게 한국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강남 3구에 살면 일단 잘 산다고 보면 되고 실제로 강남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잘 삽니다. 반대로 서울 변두리 이름도 잘 모르는 동네 또는 가난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수사를 쓰는 구나 동에 산다고 하면 가난을 낙인 찍습니다. 그래서 사는 동네 이름을 숨기거나 다른 곳에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가난의 낙인이 찍힌 동네에 사는 분들이 평균 소득이 낮지만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잖아요? 단지 좀 불편할 뿐이죠. 그러나 한국은 가난이 무슨 전염병에 걸린 사람 취급하고 멀리하려고 하고 배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은 같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지만 임대 아파트에 살면 휴먼거지니 임대거지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배척하고 멀리하려고 합니다. 한국인들의 이 더럽고 추잡한 습속은 한국인의 영혼의 DNA에 깊이 박혀 있고 부모가 자식에게 사고 방식을 대물림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민족보다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한국. 이런 한국을 만든 것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집이 전 재산인 국민이 가진 슬픈 자화상입니다. 한국에서 집 1채 있으면 그 자체로 안전망이 되고 집이 없으면 국가의 안전망에 기대야 합니다.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반지하에 삽니다. 몇 번의 자영업 실패로 반지하로 이사 왔지만 보이는 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다리와 노상방뇨하는 인간들 뿐 앞이 보이지도 않고 계획도 없습니다. 2명의 자식이 있지만 장남 기우(최우식 분)은 4수를 한 백수이고 딸 기정(박소담 분)은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싶어하지만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합니다. 전원 백수인 가족은 오늘도 주인집 와이파이 신호에 기생하면서 사는 위기 가정입니다. 

마침 아들 기우의 친구가 유학을 간다면서 자신이 하던 IT기업 사장의 딸 대입 과외 자리를 주선합니다. 유명 대학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기우는 반지하를 나와 대저택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기우는 대입 과외 강사로 합격합니다. 대저택에 사는 IT기업 사장의 아내인 연교(조여정 분)은 사람을 너무 쉽게 잘 믿습니다. 아니 박사장(이선균 분) 가족 전체가 사람을 잘 믿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간파한 기우는 자신의 동생인 백수 기정을 해외 유명 대학 디자인학과 출신이라고 속이고 8살 아들 미술치료 교사로 채용합니다.

기우와 기정은 박사장 집에 기생을 하기 시작하고 이 기생은 아버지 기택과 엄마 충숙(장혜진 분)까지 이어집니다. 한 가족이 모두 박사장의 집에 취직이 된 기생 관계가 시작합니다. 물론 박사장 가족들은 이 4명의 사람이 한 가족인지 모릅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기생을 하던 운전기사와 가정부는 퇴직을 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기생충이라는 영화 제목이 크게 공감이 갑니다. 

관계에는 공생이 있고 기생이 있습니다. 공생은 A와 B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관계이지만 기생은 갑과 을의 관계처럼 한쪽의 힘에 기대서 사는 관계입니다. 숙주와 기생충은 숙주에게 걸리지 않게 조금씩 양분을 얻어 먹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너무 욕심을 내서 숙주의 건강을 위협하면 기생충 본인들도 죽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숙주에게 걸리지 않게 하려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뜯어내야 합니다. 

기택 가족은 기생을 합니다. 문제는 4명이 모두 한 가정에 기대다 보니 위험스러운 나날이 시작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엄마 충숙을 빼고 퇴근 후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에 크게 걸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박사장의 8살 아들은 4명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이후 영화는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지하로부터 일어납니다. 


영화 <기생충>은 지상과 지하라는 이분법으로 한국의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돈으로 재단된 계급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봉준호 감독이 지적했듯 한국의 반지하는 아주 독특한 공간입니다. 요즘은 다가구주택 보다는 다세대 주택인 빌라가 더 보편화 되었지만 80,90년대에는 주인집이 윗층에 살고 세입자들이 옥탑방이나 지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도 아닌 반지하라는 공간이 있는 집들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한국은 생기지 말았어야 할 주거 공간이 꽤 많습니다. 고시원도 옥탑방도 반지하도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나쁜 일자리를 없애서 평균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처럼 지옥고로 불리는 불량 주거 환경은 차차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그 불량 주거 환경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인사동의 한 사진갤러리에서 고시원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블로그에 소개했는데 갤러리 원장님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고시원 주인들이 내 글을 읽고 항의를 한다면서 글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게 한국의 민낯이고 진짜 모습입니다. 돈과 관련되면 인권 따위는 신경도 안 씁니다. 

한국은 제도화 된 신분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돈으로 계급화 된 사회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갑, 종속 관계이거나 기생 관계인 사람은 을로 살아갑니다. 박사장은 갑이고 기택 가족은 을입니다. 박사장이 대놓고 갑질은 하지 않고 매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내인 연교의 장보기 도우미부터 갑으로 사는 인간들의 무례한 그러나 자신이 무례한지 모르는 행동을 합니다. 

기분 드럽죠. 기분 더러워도 참고 사는 게 을의 숙명입니다. 기생하는 사람이 숙주를 화나게 하면 기생하는 존재들은 몸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하고 죽음의 문 앞까지 갈 수 있습니다. 더러워도 살기 위해서 참고 참습니다. 


반은 지하지만 반은 지상인 지상이 되길 꿈꾸는 반지하에서 사는 기택과 층간 소음 없고 푸른 잔디가 가득한 모던한 복층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의 집을 부러워합니다. 집이 크고 넓은 것도 있지만 하루에 30분 밖에 햇빛이 들지 않아서 퀘퀘한 반지하 냄새 대신 햇살이 곰팡이를 제거하고 햇살 내음 가득한 뽀송뽀송한 삶 자체가 부럽습니다. 그래서 기우는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간 사이에 가장 먼저 잔디밭에서 책을 읽습니다. 이 조그마한 여유가 기우에게는 가장 원하던 일상이었나 봅니다.

우리들 주거 형태도 그렇습니다. 옥상이나 테라스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책을 읽고 고기 파티를 하는 것을 꿈꿉니다. 햇빛 가득한 양지에서 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우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고 부담스러운 햇빛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영화 <기생충>은 지상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자라는 화초같은 박사장 가족과 습기 가득하고 음지에서 자라는 곰팡이 같은 기택의 가족은 지상 저택과 반지하라는 사는 공간의 대비를 아주 쉽게 잘 보여주는 영화로 절대 어렵지 않은 영화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폭우가 내리던 날 밤 박사장의 8살짜리 아들은 잔디밭에서 잠을 자고 그 모습을 박사장 부부는 흐뭇하게 보지만 그 폭우는 기택 가족의 반지하 방을 가득 물들게 합니다. 


비는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난이 되는 이 삶의 구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돈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쉽게 해석이 되지 않을까요? 박사장의 집에서 나와서 3명의 기택 가족이 하염없이 내려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내 마음은 점점 가라 앉았습니다. 마치 잠시 비행기를 탔다가 계속 추락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반지하에서 지상 1층은 걸어서 1분도 안 걸립니다. 그러나 그 1분도 안 거리는 거리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수십 년 또는 평생 걸릴 수도 있는 현실을 영화는 묵묵히 담고 있습니다. 지하에 사는 사람은 주인이 사는 윗집에서 쿵쾅거리고 뛰어도 묵묵히 참아야 합니다. 이 모습을 영화는 흥미로운 장면으로 담고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선에 관한 영화다

넘지 못하는 선

영화 <기생충>은 선에 관한 영화입니다. 한국은 보이는 계급이라는 선은 없지만 돈이라는 무언의 선이 만드는 계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 또는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선에 접근하지 못하게 여러 장치를 이용해서 접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 여러 장치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돈입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서 쉽게 돈을 벌고 있고 이 이너서클의 선을 넘지 못하게 많은 장치를 걸어 놓았습니다.

이는 대저택의 담벼락과 비슷합니다. 부촌인 성북동이나 평창동에 가보면 대략 10~20미터 높이의 거대한 담장들이 가득한 주택들이 많습니다. 이는 도둑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가리기 위한 역할도 합니다. 마치 성과 같은 대저택을 보면 사람들은 위압감마저 느껴집니다. 이렇게 부자들은 선을 만들어서 부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매너 좋은 IT회사 사장인 박사장이지만 박사장이 싫어하는 건 주제를 모르고 선을 넘는 행동입니다. 철저히 부자로만 살고 싶고 곰팡내 나는 지하에 사는 듯한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부자들의 시선이고 누구나 위에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내려다만 보기에 기를 쓰고 올라오려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선을 넘을 것 같으면 사다리를 걷어차 버립니다. 자본주의 강국들은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은 부자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선을 넘을 수 없다고 하죠. 그 부자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돈입니다. 돈이 많으면 그 부자들이 만든 성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자와 빈자의 선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같은 처지 또는 을끼리 뭉쳐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을끼리 뭉칠까요? 전 영화 <기생충> 장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을끼리 갑질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습니다. 보통 갑은 악당, 을은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는 을이 갑이 되면 갑질을 하고 갑이 을이 되면 을의 위치를 잘 알고 알아서 을의 행동을 합니다. 을이 선한 게 아니라 선한 사람이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부자들의 이미지는 몇몇 대기업 회장 가족의 폭언과 폭력으로 점철된 모습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자=악인이라는 편견이 정립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최근 갑부들의 도덕을 무시하는 행동, 저열한 인성들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반대로 빈자=선인이라는 구도도 정립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라는 이상한 구도가 정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자는 모두 악인이고 가난한 사람은 착한 사람들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부자와 가난한 것에 이유가 크게 없듯이 나쁘고 착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 가짐과 태도이지 돈과 연관이 없습니다. 물론 부자와 빈자의 이유가 있고 설명되어지던,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게으르면 가난해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계획적인 삶이 부자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아들 기우는 IMF가 터지기 전인 1997년 이전의 삶의 방정식인 미래를 계획해서 부자가 되는 꿈을 꿉니다. 반면  아버지 기택은 자본주의 생리를 아주 잘 압니다.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압니다. 계획을 세웠다 실패하면 상처만 입기에 상처가 없는 무계획을 택합니다. 그럼에도 아들 기우는 아버지를 위해서 마지막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을 지켜보는 저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어차피 안 될 건데! 라는 절망감이 몰려오더군요.

다들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씁쓸하다고 느끼면서 영화관을 나올 겁니다. 산타가 없는데 산타가 있다고 믿는 아이를 지켜보는 듯한 부모님의 마음이 내가 기우를 보는 시선이었습니다.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는 된다는 방정식이 성립되던 고도성장기에는 부자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인성, 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부자인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쉬운 부자가 되는 방법이고 현재 한국의 부자 대부분은 자수성가가 아닌 부모 팔자 반팔자라고 부모 잘 만나서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그 부모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냐? 그 부모들은 강남에 땅 투기를 해서 또는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면 살이 트듯이 물질적인 부는 충족하는데 그 부를 영위할 수 있는 부자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들이 문화, 교양에 대한 소양이 무척 떨어집니다. 


희미한 선, 허술한 선

대표적인 인물이 박사장의 아내인 연교입니다. 연교는 시시때때로 영어를 섞어서 사용하지만 그 자체가 공작 깃털을 자기 몸에 꽃아서 공작이길 바라는 비둘기 같은 행동입니다. 사람 순박하게 느껴지다 못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연교는 다른 사람을 잘 믿습니다. 자기 딴에는 철저한 것처럼 말하지만 위조된 재학증명서를 보면서도 위조를 알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서류는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쿨한 척 하지만 심하게 말하면 찐따입니다. 그러니 인터넷 검색으로 무장한 기정의 얇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거짓말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마치 부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백도어 같은 존재가 연교입니다. 그렇게 기택의 가정은 연교라는 백도어를 통해서 부자의 몸에 기생하기 시작합니다. 

선을 넘는 냄새

선은 부자들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운전 기사는 운전만 해야 하지만 운전 기사를 집안 장보기에 투입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보모 역할까지 하게 합니다. 이게 그들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박사장은 선을 자신이 만들어 놓고 이 선을 넘어오면 짜증을 냅니다. 아주 유아기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졸부의 습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부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다 합리적이고 옳다고 봅니다. 이너서클 안에서는 그게 용인이 되고 상식이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도 보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도 살펴보고 경험을 해봐야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데 하루 종일 만나는 인간들이 비슷비슷한 인간들이니 자신이 뭘 잘 못하는 지 모릅니다. 

문제는 기택 가족에게도 있습니다. 부자들이 만든 선을 무시하고 넘나드는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법이라는 사회가 만든 선을 넘어섭니다. 영화 <기생충>의 두 가족은 겉으로는 매너 있는 척 하지만 두 가족 모두 위선적인 행동들을 수시로 합니다. 앞에서는 바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갑질을 하는 박사장과 어리숙한 연교를 이용해서 집안에 침투한 기택 가족들의 위선적인 행동이 영화 전체에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선을 그어서 아래에 사는 사람과 섞이고 싶지 않고 기어오르는 것을 용납 못하는 박사장. 그런 박사장을 속이고 기생하는 기택 가족, 모든 것을 속이고 숨길 수 있었지만 냄새는 숨길 수 없습니다. 박사장 아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로 알고 있는 기택 가족에게서 같은 냄새가 날 때도 그냥 웃어 넘겼지만 기택 가족은 난처해 합니다. 

냄새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다른 것은 위조하고 숨겨도 특유의 몸에 벤 냄새는 상대방의 정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다고 사생활이라서 너에게 퀘퀘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박사장은 아내에게 기택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의식하지 않았던 아내 연교도 기택에서 나는 냄새를 의식합니다. 차라리 냄새 난다고 말하면 속이 편하지만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 눈초리가 더 불쾌합니다. 


기택은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간, 쓸개 다 빼놓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지하실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를 불쾌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불쾌하게 바라봅니다.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하죠. 가난, 사랑, 기침. 이중 가난은 최근 들어서는 잘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의 냄새는 숨기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발각되는 일도 없습니다. 다만 불쾌하게 바라볼 뿐이죠. 


자본주의 최첨단 국가 한국 사회를 모두깐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은 <괴물>,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같은 대중성 높은 영화는 아닙니다. 그 만큼의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아니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삶의 지도를 지상에 사는 박사장 가족과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살지만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통해서 사람 보다 돈이 중요시되고 돈이 만든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고 부자는 악당이라는 시선이 아닌 악과 선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생황과 환경 때문에 악해질 수  있고 부자도 겉으로는 매너 좋은 사람, 또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배달일을 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촌에 사는 사람들이 매너가 더 좋다고 하죠. 그렇다고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매너가 없다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들이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어떤 사람을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건 사는 집과 함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아닐까 하네요.

가난한 사람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뒤에서 굴러 내려오는 거대한 바위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지만 부자들은 안 일어나도 되고 늦잠 자고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으면서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여러가지 시선이 내포되어 있고 리뷰를 또 쓸 생각입니다. 정말 다채로운 시선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분이 있을 정도로 영화적인 큰 재미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를 목도 하고 싶은 분들은 꼭 보셨으면 하네요. 제목 기생충은 정말 절묘하고 적절한 제목을 넘어서 뛰어난 영화 제목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모두 비판을 한 영화입니다. 가난한 서민이라고 챙겨주고 측은하게 그리지도  부자라서 악당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부자도 빈자도 모두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살아갈 뿐입니다. 마치 기생충이 숙주의 몸에 맞게 변화를 하듯 사는 삶의 풍경에 맞게 살아갑니다. 그게 기생충들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슬픈 느낌이 자박자박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통쾌했던 부분은 부동산 업자 비판은 아주 통쾌하네요. 딱 한 번 빵 터졌는데 한국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아주 대놓고 비판하더군요. 좋은 영화입니다. 추천 영화입니다. 다만 사회적 감수성이 약한 분들에게는 비추천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자본주의 사회가 풍겨내는 숨은 냄새까지 그대로 담은 놀라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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