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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물어보라고 하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줍니다. 내가 잘 살았다면 내 신분을 증명함을 넘어 인간성까지 증명해 주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날 변호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또는 낯선 사람에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신분증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태어나면 누구나 출생 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등록번호과 이름이 적힌 신분증을 내밀면 내가 누구인지 바로 증명이 됩니다. 그러나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불법체류자들입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가버나움>은 아동 노동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 영화는 아동 노동 문제도 거론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분증이 없는 두 주인공을 통해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날품팔이와 배달일을 하는 자인과 동생들

영화가 시작되면 자인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12~13살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지나간 후 여러 여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부릅니다. 에디오피아의 티케스트라를 호명하자 한 여자가 손을 듭니다. 영화 <가버나움>의 주인공은 이 2명입니다. 12살 소년 자인과 20대의 티케스트. 이 둘의 공통점은 신분증이 없습니다. 

시리아에 사는 자인은 학교에 갈 나이가 지났지만 월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죄아닌 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품팔이를 하고 식료품 가게에서 배달을 하면서 돈을 법니다. 자인만 하는 건 아닙니다. 자인의 동생들도 함께 길거리에서 돈을 법니다. 여기에 부모의 지시로 약국에서 환각제 성분의 약을 얻어서 환각제까지 만들어 판매합니다. 

영화는 자인이 자신을 낳은 부모를 고소했고 부모와 자인은 한 법정에 같이 섭니다. 재판장은 "왜 고소를 했죠?"라는 질문에 자인은 확실한 어조로 말합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충격적인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천륜이 맺어준다고 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간, 쓸개 다 빼준다고 할 정도로 뜨거운 모성애와 부성애로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자인은 부모가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했기에 고소를 했을까요? 영화 <가버나움>은 자식인 자인이 친부모를 한 이유를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자인은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화가나고 짜증의 연속이지만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 힘겨운 삶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학교도 못가고 날품팔이와 식료품 가게 배달일을 하지만 어린 동생들을 보호하면서 실제 부모 역할을 합니다. 특히 동생 사하르와 무척 친하게 지냅니다.

자인은 사하르가 생리를 하게 되자 사하르가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시집가게 될 것을 알기에 생리를 숨깁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사하르를 마치 자신들의 물건처럼 취급해서 사하르를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더 나쁜 것은 항의하고 화를 내는 자인 앞에서는 엄마는 사하르를 시집 보내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나쁜 부모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질을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시프트가 되어서 지금 시리아의 모습이지만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에 한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인권유린이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까?

자인의 가족은 식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대략 7명 이상은 되어 보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까요?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그 이유를 투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그 아이 중 성공한 한 두명의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노후를 기댈 수 있기에 많이 낳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1명이나 2명이면 그 1,2명이 물질적인 성공을 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노후가 불안합니다. 그러나 7~8명 이상 낳은 후 그중 1~2명만 성공해도 자신들 및 다른 가족들이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많이 낳아야 그 자녀 중 사고나 병으로 많이 죽어도 자녀의 숫자가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하죠. 자인의 가족도 이런 이유로 많이 낳은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는 전 세계적인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아랍국가입니다. 또한 가난해서 피임에 대한 지식도 없고 돈도 없을 겁니다. 

자인은 말합니다. 엄마 뱃속의 아이도 태어나면 자신처럼 시궁창 같은 삶에서 살 것이라면서 부모에게 항의를 합니다. 속 시원한 말입니다. 자인은 영특한 아이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머리를 가졌습니다. 자신이 왜 학교도 못가고 어린 나이에 형제들을 먹여 살리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하루종일 우울합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견디다 동생 사하르가 11살의 나이에 시집을 가자 집을 뛰쳐 나옵니다. 


불법체류자 티케스트 자인을 만나다

자인은 가출을 합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다 쓰러져가는 놀이공원에서 놀고 있는 자인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디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자 티케스트입니다. 티케스트은 집에다가 공부하러 간다면서 시리아에 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마님을 모시는 가사도우미로 삽니다. 그러다 경호원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습니다. 당연히 임신한 가사도우미로 가사도우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이일 저일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합니다. 

불법체류자의 삶은 고단합니다. 신분증이 없어서 가짜 신분증을 고액의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고충도 있지만 불법체류자라서 싼 임금에 체용이 되거나 월급을 떼일 때도 많습니다. 하루 하루가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 또는 불안한 사람은 불안한 사람의 떨림을 잘 압니다. 티케스트는 놀이공원에서 놀고 있는 자인에게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이지만 월세로 살고 있는 자신의 집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제공합니다. 대신 자신이 키우고 있는 아들 요나스를 돌봐달라고 합니다. 


티케스트는 신분증을 갱신해야 합니다. 불법체류자라서 새로운 가짜 신분증으로 바꾸려면 큰 돈이 필요합니다. 일하는 곳에서 가불을 요청했지만 가불을 해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렇게 돈을 구하려고 다니다가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서 구치소로 향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인은 티케스트의 아들 요나스를 홀로 키웁니다. 돈이 없자 약국에서 약품을 사서 약물을 만들어서 팔고 온갖 방법으로 요나스를 키웁니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나옵니다.


어른은 나이가 아닌 책임감

어른은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어른은 나이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태도로 구분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크게 지지 않지만 어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물론 아이의 잘못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어른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어른 같지 않은 나이만 어른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을 보면 그 어른같지 않은 어른은 안 보면 되지만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걱정이 됩니다. 어른도 시험을 보고 매년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자인의 부모가 그렇습니다. 어른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무조건 다그칠 수는 없습니다. 자인의 부모들도 열심히 살고 있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합니다. 해답은 간단한데 해답 대신 변명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 무책임함은 아이지만 어른 같은 자인이 떠 안습니다. 자인은 돌아오지 않는 요나스의 엄마 티케스트를 기다립니다. 자신의 동생도 아닌데 요나스를 위해서 구호품 배급소에서 엄마가 임신 했을 때 커피를 너무 마셔서 동생이 까맣다고 합니다. 이 대사에 흔들렸습니다. 어린 아이가 저렇게까지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것도 자신의 동생도 아닌데 필사적으로 요나스를 키웁니다. 자인은 11살짜리 어른입니다. 이는 티케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법체류자이자 미혼모인 티케스트는 아들을 키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삽니다.

그러나 티케스트는 자신도 살기 어려운데 가출한 자인을 품습니다. 이 따뜻한 온기는 자인에게 전달이 되고 자인은 요나스를 품습니다. 영화 후반에 자신까지 침몰할 것 같아서 요나스를 두고 떠나는 자인이 자꾸 뒤돌아 보다가 자신을 따라오는 요나스를 보고 되돌아가는 장면은 사람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전쟁과 기아와 가난은 어른들이 다 만들어 놓고 애먼 아이들이 그 피해를 최전선에서 맞고 있습니다. 


신분증이라는 관료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영화 <가버나움>

자인과 티케스트의 공통점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분증이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따뜻한 인성을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자인은 불법체류자는 아니지만 난민과 같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키웠습니다. 티케스트는 에디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자입니다. 자인과 티케스트는 굶어 죽을 위기에 놓였지만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온갖 사회의 폭력에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신분증이 없다는 약점을 파고 들어서 신분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호의를 배풀 뿐 사회의 냉대 속에서 살아갑니다. 신분증은 신분증 이상의 힘을 발휘합니다. 세상은 네가 인간이라는 증명인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이 말은 신분증이 없는 없는 사람은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소리이기도 하죠. 

외모는 사람이고 말도 통하지만 신분증이 없으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관료 편의적인 발상이고 폭력적인 시선일까요? 티케스트를 임신 시킨 신분증이 있는 인간이 자식을 버리는 것은 용납해도 신분증이 없는 것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분증이 없어서 각종 국가로부터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화 <가버나움>이 정조준한 주제는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비록 신분증이 없지만 우리와 똑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고 항변을 합니다. 


어른을 고발한 아이 자인의 슬픈 이야기 <가버나움>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태어난 자체는 누구의 잘못도 칭찬도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에 우리는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단 이 고마움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태어나보니 개똥같고 시궁창 냄새가 가득한 세상이고 부모가 어른같지 않은 어른이라면 어린 아이는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 것입니다. 자인이 그랬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 같지 않은 부모 밑에서 매일 중노동에 시달립니다. 

자인은 부모를 고소합니다. 죄명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죄'입니다. 법정에 선 자인은 세상 어른들도 고발합니다. 책임지지 않는 전 세계의 어른들을 동시에 고발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 없이 움츠러듭니다. 자인의 맑은 눈으로 세상 어른들을 향한 쓴소리가 비수가 되어서 박힙니다. 동시에 자인이 저렇게 항변해도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은 이 영화를 보지도 않겠지만 우연히 보더라도 반성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의 인성은 고착화되면 변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두 주연 배우와 연기자들 대부분은 시리아 난민이자 불법체류자들입니다. 감독 '나딘 라바키'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서 실제 시리아 난민 가족과 불법체류자를 영화의 배우로 캐스팅합니다. 다들 전문 연기자가 아님에도 놀라운 연기들을 보여줍니다. 특히 자인의 연기는 놀랍고 아릅답기 까지 합니다. 

영화 <가버나움>이 끝나고 배우들의 현재의 삶도 자막으로 비추어줍니다. '가버나움'은 도시 지명의 이름이자 '혼돈과 기적'이라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혼돈 속에서 살던 배우들에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이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인과 티케스트와 같은 신분증 없이 사는 전 세계의 인간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좋은 영화입니다. 인권에 대한 심도 깊은 영화 <가버나움>을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어른 같지 않은 사회와 미성숙 어른을 고발한 영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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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9.04.08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봐야 할 영화로 메모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