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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보신주의와 소신주의 아버지를 담은 영화 <말모이>

by 썬도그 20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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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일제강점기 영화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광복한 지 70년이 지난 요즘에 왜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질까요? 그건 아마도 한국이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크겠죠. 지금도 토착 왜구들이 권력을 잡고 흔들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친일을 하던 경찰, 교사, 고위공무원과 같은 위정자들이 자주 독립이 아닌 외세에 의한 강제 독립의 틈을 타고 특별한 처벌과 심판을 받지 않고 계속 호가호위한 추악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회주의자였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그 후손들이 여전이 사회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이런 추악한 현실을 국민 대다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들의 울분을 영화라는 판타지에서 단죄하는 모습이 최근들어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제강점기 저항 영화 중 하나가 <말모이>입니다.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말모이>

탄압이 극심해지던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은 조선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서 '내선일체' 정책을 펼칩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서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라고 지시를 합니다. 이 일본어 교육 정책은 그 어떤 정책보다 가혹하고 확실한 정책입니다. 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어를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일제를 지워야 할 역사가 아닌 그리운 시절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일본어 강제 교육 시절에도 한글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21년 주시경의 문하생이었던 최두선, 임경재, 권덕규, 장지영 등이 모여서 만든 조선어 학회가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전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를 모아서 한글 사전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서 쉽지는 않습니다. 

류정환(윤계상 분)은 자신에게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아버지가 친일로 변절을 했지만 조선어 학회를 만들어서 우리말을 키우고 가꾸고 모으는 일을 합니다. 조선어 학회는 전국의 사투리를 그러모아서 우리말 큰사전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까막눈에 양아스러운 김판수(유해진 분)는 극장에서 짤린 후 아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류정환의 가방을 훔칩니다. 그러나 정환의 끈질김에 가방을 돌려줍니다. 조선어 학회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에 회원들은 양아스럽지만 일처리는 잘 하는 김판수를 받아들이자고 하지만 대표인 류정환은 자신의 가방을 훔친 경력이 있는 판수를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회원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글을 읽고 쓰는 조건으로 김판수를 한 식구로 받아들입니다. 예상대로 김판수와 류정환은 초장부터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본심을 알고 서로가 꼭 필요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쌓여던 오해는 점점 풀어지고 동지가 됩니다.


영화 <말모이>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김판수입니다. 김판수는 일제강점기를 살던 까막눈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김판수는 조선어 학회에서 한글을 깨우치면서 한글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집니다. 선술집에서 성냥개비로 한글 자음을 만드는 모습이나 길거리 간판과 담벼락 낙서를 읽으면서 한글 배우는 재미를 느낍니다. 이 김판수의 글 배우는 재미는 우리도 다 겪었던 재미입니다. 

김판수가 배운 건 한글이었지만 한글을 통해서 왜 한글을 지켜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말 큰사전을 만드는데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김판수는 한글을 배우고 한글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말 큰사전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판수가 조선어 학회 일을 하면서 큰 위기가 닥칩니다. 바로 아이들 때문입니다. 


보신주의와 소신주의의 두 아버지를 담은 영화 <말모이>

사람은 평온할 때 평화로울 때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면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에게는 위기의 나날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지만 일제강점기가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자 다시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깨달은 사람들이 변절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문인과 예술가와 정치인들이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항일운동을 하고 독립군을 돕다가 일제 말기에 변절을 하고 일본 제국을 조국으로 모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변절자 또는 친일파라고 부릅니다. 영화 <말모이>에서  류정환 대표의 아버지이자 경성중학교 교장인 류완택(송영창 분)은 변절자입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아들에게 알려주던 선생님이자 아버지가 일제의 일본어 교육에 적극 참여합니다. 

친일파들은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눈치를 보다가 힘이 쎈 놈에게 붙어서 기생하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기회주의로 살아야 물질적인 성공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지금도 그런 세상 이치가 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신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버닝썬 사건의 근간은 검찰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가진 집단의 전형적인 보신주의의 결과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압력을 맞서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불의를 참고 못 본 척한 수 많은 검찰과 경찰의 협조 덕분에 거대한 악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보통의 보신주의와 달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큰 피해를 입는 일이 많은 검찰과 경찰일은 배임이라는 범죄와 연결됩니다. 

이번 버닝썬에 연류된 경찰들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친일파로 불리웠을 겁니다. 


보신주의를 무조건 비난하기에는 우리 대부분이 보신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처자식이 있는 분들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불의를 못 본 척하고 굴복하기도 합니다. 김판수가 그랬습니다. 김판수는 부성애는 있지만 부꾸러움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들 학자금을 위한다면서 도둑질을 합니다. 이런 김판수가 한글을 배우면서 한글의 재미와 민족 정신을 서서히 깨닫게 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 한글어 학회 일을 계속하면 감옥에 갈 수 있고 중학생 아들마저 군대에 입대하면 어린 딸 혼자 살아야 하는 현실에 한글어 학회를 떠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우리들의 모습이자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보신주의가 바꾸고 이끌어가지도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불의에 맞서고 보신이 아닌 자신의 소신을 믿고 우직하게 전진하는 사람을 기록하고 감사해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소신주의자들이 바로 독립군이고 항일 투쟁 운동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항일 투쟁하면 무장 독립 투쟁만 떠오르지만 조선어 학회 사람들처럼 폭력으로 항거하지 않지만 사진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독립 투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말모이>는 보신주의자 아버지인 김판수가 소신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또한 류정환으로 대표되는 식자층과 까막눈의 백성같은 김판수와의 갈등을 통해서 약간의 계급 갈등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이 갈등을 잘 봉합하면서 식자층과 백성 같은 국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을 담습니다.

영화는 우리에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보신주의로 현재에 만족하며 부끄럽게 살 것인가?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소신주의자로 대대손손 떳떳하게 살 것인가?


영화 <말모이>는 한글이라는 민족의 혼이 담긴 언어를 지키던 사람들을 담은 영화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 보다는 상상력으로 만든 캐릭터들을 통해서 조선어 학회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한 국가의 정체성이자 민족성이기도 합니다. 외모만 보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을 시켜보면 대번에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언어는 민족성을 드러내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를 잘 아는 일제는 한글을 금지하고 일본어를 강제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조선어학회 33인이 모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심심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액션도 긴박함도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제에 항거하다가 죽어가는 울분이나 처절함도 심하지 않습니다. 그냥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우리의 말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거룩함이 켜켜히 쌓아갑니다. 

건강하고 깔끔한 영화입니다. 책처럼 담백합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색다른 것은 아니지만 김판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말을 지키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썩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윤계상과 유해진의 연기는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추천하는 영화 <말모이>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언어를 지키던 소신주의자들의 거룩한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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