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는 시각이 사라진 세상을 그렸습니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정부가 수용소에 가두는데 사람 취급이 아닌 노예 취급을 합니다. 시력이 있는 사람들이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끔찍함을 넘어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런 종말 직전의 지구에서도 시력을 잃지 않았던 여주인공은 항상 옳은 선택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주제 사라마구'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제거한 후의 아비규환과 그 아비규환 중에서 주요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서 인간성을 돌아보는 소설을 참 잘 씁니다. 이와 비슷한 드라마가 화제입니다.
아쿠아맨보다 더 인기 있는 넷플릭스 무비 <버드박스>
드라마 <킹덤> 때문에 보기 시작한 월정액 VOD 서비스 넷플릭스는 다른 VOD 서비스와 다르게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꽤 많고 재미있습니다. 작년 12월 21일 개봉한 넷플릭스 영화 <버드박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뉴스에서 접했습니다. 사람들의 <버드박스>를 보고 따라하다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유튜브는 <버드박스>처럼 눈을 가린 영상물을 제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 이슈를 넘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고 따라하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나 많이 봤고 얼마나 인상 깊었기에 이렇게 뉴스에 오를 정도가 되었을까요? 씨네 21기사에 따르면 산드라 블럭이 주연한 <버드박스>는 공개 1주일 만에 4,500만명이 볼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를 영화 관객으로 치면 아쿠아맨의 무려 3배나 많은 관객수입니다. 궁금해서 봤습니다. 그리고 이 넷플릭스 무비가 왜 인기 있는 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네요.
악령을 본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시작한 세상을 그린 <버드박스>
말로리(산드라 블록)은 임산부로 동생과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에 사람들이 자해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기저기서 자동차 사고가 나는 모습에 크게 놀랍니다. 말로리는 뒷좌석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려고 하던 중에 동생이 뭔가를 봤는지 폭주를 합니다. 차가 전복이 되었는데 차에서 나온 동생은 지나가는 차에 몸을 던져서 죽습니다. 이런 일들은 사방에서 일어납니다.
말로리는 근처에 있는 집으로 몸을 피합니다. 안에는 집주인과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사람들이 뭔가를 보고 자해를 하고 자살을 하는 것 같다면서 창문을 가립니다. 방송에서도 실내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말을 합니다. 아비규환이 된 바깥 세상에 나가지 못하지만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차의 창문을 다 가리고 네비게이션만 이용해서 근처 대형 마트에 갑니다. 마트에서 음식과 생활필수품을 구했는데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외칩니다. 문을 열고 도와주려고 하는데 마트 안에 있던 새장의 새들이 날개짓을 하면서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자 문을 닫습니다.
생존한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들처럼 실내에만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정체 모를 무엇가가 돌아다니는 바깥 세상에서도 이전처럼 편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젠 사람조차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위험이 감지되면 새들이 먼저 그 공포를 경보 센서처럼 알려줍니다.
시각의 소중함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버드박스>
사람의 오감 중에 가장 중요한 감각이 시각입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움직여 보세요. 세상은 생지옥 같이 느껴집니다. 시각을 잃은 공포를 담은 영화중 가장 뛰어난 영화는 <눈먼자들의 도시>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SF 명작 소설 <괴기식물 트리피드>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초등학교 다닐 때 읽었는데 아직도 그 재미와 충격이 잊혀지지 않네요. 간단하게 소개하면 인류는 걸어다니는 괴기식물 트리피드를 농장에서 재배를 합니다. 독이 있는 식물이지만 기름이 나와서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괴기식물입니다. 그러다 별동별 쇼가 하늘에서 펼쳐지고 그걸 본 인류는 눈이 멀게 됩니다. 주인공은 트리피드 독에 대한 내성과 별동별 쇼 당시 병원에서 누워 있어서 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시력을 잃지 않은 주인공이 괴기식물 트리피드가 농장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생지옥을 목격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괴기식물 트리피드>는 재난의 생생함과 공포감이 주는 재난 그 자체를 재미의 주타켓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결이 좀 다른 영화가 <눈먼자들의 도시>입니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시각이라는 권력을 통해서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노예로 삼는 나쁜 인간과 자신의 시각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는 착한 인간을 동시에 배치하면서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습니다.
<버드박스>는 <괴기식물 트리피드>와 <눈먼자들의 도시> 중간에 위치한 넷플릭스 영화입니다. <버드박스>의 재미 90%는 시각을 제거한 세상의 살벌함과 공포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괴기식물 트리피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로리라는 선한 사람이 세계 종말의 세상에서도 작은 희망의 빛이 되어서 사람들을 돕습니다.
새로운 은둔지로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말로리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두 아이 중 한 명이 급류 상태를 보고 말로 전해줘야 합니다. 당연히 눈가리개를 풀고 직접 봐야하기에 급류를 본 아이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명이 살려면 1명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 중요한 선택을 통해서 우리가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언인 지를 아주 잘 담습니다.
빼어난 수작은 아니지만 2시간 순삭시키는 넷플릭스 영화 <버드박스>
자유롭게 나는 새를 새장에 가두어서 자유를 강탈 하듯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각인 시각을 제거한 공포를 아주 잘 담은 드라마가 <버드박스>입니다. 그러나 빼어난 수작은 아닙니다. 다만 5년 후와 이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5년 전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이 무척 세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연출도 꽤 매끈하고 깔끔하네요.
또한, 악령의 정체나 발생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주인공들이 겪는 공포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재난을 통해서 인간 본성 또는 옳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에 대한 통찰이 더 많이 담겼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드라마입니다. 2시간이 순삭됩니다. 산드라 블록과 존 말코비치도 볼 수 있습니다. 추천하는 넷플릭스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는 이런 꽤 질 좋은 드라마를 계속 자주 만드네요. 이러면 영화관 갈 돈으로 안방 1열에서 큰 TV화면으로 1달 내내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