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시니컬한 성격이지만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더 시니컬하게 보게 됩니다. 최근에 본 한국 영화 중에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드물 정도로 좋은 한국 영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증 받은 할리우드 영화만 주로 보고 이 마저도 가끔 보고 있습니다. 매년 영화 관람료는 오르는데 보고 싶은 영화, 관람료 아깝지 않은 영화, 만족스러운 영화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고편만 보고 보고 싶다는 욕망이 크게 샘 솟았습니다.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위해서 치킨집을 인수했는데 이 치킨집이 대박이 나면서 본업인 수사를 뒷전으로 미루고 닭을 튀긴다는 이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이런 설정 코미디는 2000년대 초 대박을 낸 영화 <신라의 달밤>이나 <주유소 습격사건>, <달마야 놀자>, <라이터를 켜라>를 연상케 합니다. 비록 조폭 코믹물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한국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이자 제2의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솔직히 요즘 한국 영화들은 스릴러 영화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나게 웃고 싶은데 웃음은 TV 예능이 담당하면서 코미디 영화 씨가 말랐습니다. 가끔 한국 코미디 영화가 나오지만 피식 웃음도 나오지 않는 영화들이 많아서 인상만 쓰게 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영화 <극한직업>은 예고편만 보고 이 영화는 다르다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가 아닐까 반신반의하면서 개봉 첫 날 심야에 봤습니다.
범인 잡다 치킨 맛집을 운영하게 된 형사들의 이야기 <극한직업>
범인을 감시하려고 치킨집을 인수했다가 맛집으로 소문나서 치킨집을 운영하게 되는 마약반 형사팀의 이야기를 담은 상황 코미디가 <극한직업>입니다. 여기에 대사의 말맛이 아주 찰지고 쫄깃합니다. 근래에 본 아니 여태까지 본 한국 코미디 영화 중에 가장 대사의 재미가 좋은 영화가 <극한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대사가 아주 웃깁니다. 미리 말하지면 영화 <극한직업>은 웃음반, 액션반을 잘 섞은 강력추천하는 코믹액션 영화로 기대 이상의 재미를 주는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심야에 봐서 관객이 20명 밖에 안 됐는데 시종일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반장(류승룡 분)은 마약범을 잡는 마약반을 이끄는 반장이지만 중간유통을 담당하는 범인을 잡는데도 어설프게 잡습니다. 이번에도 직접 잡은 것이 아닌 지나가던 마을버스가 범인을 잡았다는 핀잔을 받습니다. 자존심도 없어서 자신의 상사가 된 후배의 진급턱을 넙죽 받아 먹습니다. 진급을 한 후배가 이 고반장에게 마약 전과가 있는 이무배(신하균 분)이 출소 했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 같다면서 잠복근무를 부탁합니다. 이무배는 거물이라서 잡으면 진급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고반장팀은 이무배가 오길 기다리며 건너편 치킨집에서 1주일 내내 치킨을 질리도록 먹으면서 잠복근무를 합니다. 그러나 치킨집이 장사가 되지 않아서 오늘까지 장사를 하고 그만 둔다고 하자 고반장은 퇴직금을 땡겨서 치킨집을 인수합니다. 그렇게 치킨집으로 위장하고 잠복근무를 하려고 했지만 손님이 없다던 치킨집에 자꾸 손님들이 들어옵니다. 치킨 집이 치킨을 튀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고 그렇게 되면 이무배 무리들이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닭을 튀깁니다.
또한, 튀긴 치킨을 이무배 무리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배달을 가면 자연스럽게 염탐 및 잘하면 일망타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치킨을 튀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마형사(진선규 분)가 엄청나게 닭을 잘 튀깁니다. 여기에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수원 왕갈비에서 사용하는 양념을 입힌 '수원왕갈비통닭'이 대박이 납니다. 밀려오는 손님 때문에 잠복 수사는 뒷전이고 맛집으로 소문나서 형사들이 장사에 올인합니다.
하루 매출 234만원, 초대박 맛집 사장이 된 고반장은 아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명품가방을 사주면서 돈의 맛을 즐기지만 정신을 차리고 손님을 줄이기 위해서 1마리에 3만 6천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으로 올리지만 럭셔리 치킨이라고 소문이 나서 더 대박이 납니다. 하루 50마리 한정 수량 판매로 치킨집의 열풍을 잠재우고 본격 수사를 다시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잠시 서장에게 불려간 사이에 이무배 일당이 아지트를 옮겨 버립니다.
말맛이 좋은 대사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빼어난
시나리오가 주는 웃음 폭탄이 가득한 영화 <극한직업>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페이스북에 <극한직업>이 재미있다는 글이 올라오네요. 저만 재미있게 본 것은 아니고 본 주변 분들 대부분이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었다고 하네요. 제 예상으로는 영화 <극한직업>은 최소 500만 이상의 관객이 들 것으로 보이고 설 연휴에 가장 인기 높은 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1천만 관객은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정말 잘 만든 코믹 액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코미디부터 보면 영화의 대사들이 웃깁니다. 라임이라고 할 정도로 대사들이 참 예쁘고 웃깁니다. 예를 들어 후배는 과장이 되었는데 만년 반장인 고반장을 아내가 구박하고 있는데 마침 딸이 들어오더니 "엄마 나 반장됐어"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대사들이 시종일관 계속됩니다.
대사를 누가 썼는지 라임도 좋고 리듬감도 느껴집니다. 상황을 잘 설명하고 이끄는 대사가 주는 웃음이 꽤 많습니다. 그렇다고 시원스럽게 욕질을 해서 웃기는 욕질 유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욕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도 거의 없습니다.
시나리오가 아주 좋습니다. 잠복근무를 위해서 치킨집을 인수해서 맛집이 된 상황이 주는 웃음은 초반에만 웃길 뿐 2시간 내내 웃길 수 없습니다. 특히나 스릴러 영화가 많은 요즘 관객들을 웃기기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 <극한직업>은 이걸 해냅니다. 영화 초반 맛집으로 대박나는 과정에서 주는 웃음이야 예고편에서 충분히 봤기에 예상 가능한 웃음이라고 해도 그 이후의 스토리도 꽤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중간에 살짝 웃음 강도가 떨어지려고 할 때 이무배를 연기한 신하균과 찌질 연기의 대가인 테드 창을 연기한 오정세가 입방정을 떱니다. 특히 신하균은 잔인무도한 인물이지만 말빨이 아주 좋네요. 웃음의 강도를 최대 10이라고 치면 영화 <극한직업>은 강도 7의 웃음이 시종일관 계속 터집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강도 10의 강력한 카운터펀치급 웃음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계속 웃음의 쨉과 훅이 쑥쑥 달 들어갑니다.
영화 <극한직업>이 좋아던 점은 기존의 한국 조폭 코미디 영화의 문제점인 억지 설정과 각종 욕설이 난무한 자극적인 웃음, 건강하지 못한 웃음이 많았다면 이 영화는 억지 스토리가 거의 없습니다. 개연성이 떨어지지도 않고 과장된 스토리도 없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는 형사들의 현실성을 유지하면서도 웃음도 놓지지 않는 생활 밀착형 웃음이라서 건강하고 맛도 좋고 개운하기까지 합니다.
정말 지금까지 이런 코믹 액션 영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극한직업>의 감독은 영화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입니다. 보통 한국은 영화 감독들이 시나리오까지 씁니다. 이게 개성 높은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상업 영화는 좋은 시나리오의 작가의 글을 좋은 감독이 연출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제가 아는 이병헌 감독은 이런 좋은 시나리오를 쓸 감독이 아닙니다. 영화 <스물>은 재미있긴 하지만 화장실 유머, 저질 유머가 많아서 눈쌀이 지푸려져서 좋은 평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필력이 좋아졌나? 하고 검색해보니 예상대로 시나리오 작가가 따로 있네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에서 탄생한 문충일 신인 작가가 쓴 시나리오네요. 어쩐지 이병헌 감독 영화 답지 않게 과장된 말이나 액션이나 상황이 없네요. 그렇다고 이병헌 감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좋은 연출로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렵죠. 이병헌 감독은 영화 <극한직업>의 코미디의 좋은 호흡을 불어 넣었습니다. 밀고 당길 때와 멈추고 나아갈 때의 코미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보다 보면 코미디 호흡과 포인트를 아주 잘 잡아냅니다. 여기에 편집술도 좋아서 불필요한 장면도 거의 없습니다. 이병헌 감독은 평생 코미디 영화 연출만 했으면 합니다. 아주 잘 하네요
배우들을 칭찬 안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류승룡이 부활했습니다. 코미디 연기 참 잘 하는 류승룡은 최근 출연한 영화의 부진과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류승룡은 무언극인 난타를 장시간 연기를 해서 그런지 코미디의 타이밍을 아주 잘 압니다. 여기에 이하늬의 화장 지운 얼굴로 연기하는 코믹 연기도 좋고 진선규와 신입 형사 공명의 공명감 넘치는 유머도 좋습니다. 이동휘가 가장 웃길 줄 알았는데 가장 덜 웃긴다고 느낄 정도로 다른 배우들의 웃음 유발 지수가 꽤 높습니다. 이동휘가 밀릴 정도라니 이 영화의 웃음 지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겠죠?
웃음 못지 않게 화끈한 액션도 볼만한 <극한직업>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생각보다 액션이 꽤 많습니다. 웃다가 정신차려보니 이 영화 주인공들이 형사입니다. 당연히 액션이 가미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형사들이 보통 형사들이 아닙니다. 허당 형사들이죠. 그래서 액션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화려한 액션이 영화 후반에 나옵니다. 액션도 과장되지 않고 현실감 넘치는 액션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액션 때문에 코믹의 톤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정세, 신하균 덕분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연기가 너무 웃깁니다. 살벌한 말인데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옵니다.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 영화는 없었다 무한 극찬의 <극한직업>
재미있습니다. 시종일관 재미있습니다. 요즘 머리 아프고 우울한 일들이 많았는데 이 영화 덕분에 크게 웃었네요.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계속 관련 영상을 보고 웃고 있습니다. 건강한 웃음과 볼만한 액션과 배우들의 찰떡 호흡이 너무 좋습니다. 오랜만에 잘 만든 한국 코미디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네요. 이런 영화만 꾸준하게 나오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잠복근무 하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해서 맛집이 탄생한 이 설정을 좀 더 끌고 가고 좀 더 유쾌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음에도 너무 쉽게 장사를 접습니다. 그럼에도 우울한 날 달래주는 영화여서 별 1개를 더 드리고 싶은 영화네요. 추천을 넘어 강추합니다. 시종일관 웃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코믹액션 영화 <극한직업>입니다. 꼭 보세요
별점 : ★★★★
40자 평: 지금까지 이런 한국 코미디 영화는 없었다. 건강한 코미미 반, 액션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