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지나간 영화나 드라마를 VOD로 서비스하는 곳이지만 넷플릭스가 제공한 제작비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꽤 많습니다. 오히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보려고 넷플릭스 가입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 보석 같은 콘텐츠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킹덤>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 애니도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애니가 있어서 호기심에 봤습니다.
중국 3도시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 <우리의 계절은>
2018년 8월 첫 선을 보인 <우리의 계절은>은 독특한 애니입니다. 보자마자 일본 애니구나 했고 실제로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제작진들이 투입되었다고 하네요. 애니 작화도 스토리텔링도 모두 일본 애니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애니의 배경이 일본이 아닌 중국입니다.
<우리의 계절은>은 총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3편 모두 중국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좀 이상해서 검색을 해서 보니 3편의 감독 중 2명이 중국인이고 1편은 일본 감독입니다. 그런데 더빙은 일본어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일본어로 더빙을 했을까요?
중국과 일본이 애니로 교류한 것일까요? 이전에는 일본이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들면 한국에서 작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중국에서 작화를 하는 것일까요? 여러 의문 속에서 1편 씩 봤습니다. <우리의 게절은>은 '의식주'를 소재로 한 3편의 청춘 드라마를 '행' 즉 교통으로 엮은 독특한 애니입니다.
산시엔 미펀의 온기를 <따뜻한 아침식사>
3편의 주인공 모두 20대 청춘들이 주인공입니다. 모두 20대라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20대가 벌써 과거를 회상한다? 좀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 추억이란 나이에 상관이 없죠. 특히나 현재가 각박하고 치열하면 할수록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베이징에서 회사를 다니는 샤오밍이 잿빛 하늘이 가득한 도시 생활에 지치게 되자 어린 시절 할머니랑 같이 먹던 '산시엔 미펀'의 온기를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스토리는 별거 없습니다. 그냥 할머니랑 먹던 집밥 같던 수제 미펀이라는 쌀국수를 먹던 그 시절과 그 맛과 미펀을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직접 국수를 칼로 잘라서 만드는 어린 시절 먹던 미펀에 비해 점점 편리한 도구가 발명되고 결국 기계가 뽑아내는 균질한 국수가락의 자극적이고 온기 없는 미펀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이는 현재의 발달한 문명 또는 자본주의가 확립되고 고도화된 현재를 배척하고 과거가 더 좋았다는 주인공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추억은 아프고 쓰린 기억은 억제하고 좋은 기억은 더 부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보다 추억은 과거를 더 향긋하게 만들어 놓죠. 집밥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집밥이 정말 맛있어서 기억하고 먹고 싶다기 보다는 맛의 기억을 형성하던 어린 시절의 맛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죠.
<따뜻한 아침식사>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쌀국수인 미펀의 온기를 섞어서 소개합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서 따뜻한 국수 한 사발 먹은 느낌입니다. 여기에 첫사랑이 짝사랑인 사람이면 쌉싸름하지만 항상 되새기고 싶은 첫사랑이라는 고명도 올라갑니다.
이 1편을 보면서 애니 먹방을 해도 되겠다 할 정도로 미펀을 만드는 과정과 미펀을 얼마나 뛰어나게 묘사했는지 보다가 '산시엔 미펀'을 검색해 봤네요. 어린 시절 먹던 찰랑이는 햇빛이 국수가락에 반짝이던 미펀의 추억. 이 추억으로 오늘을 버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작은 패션쇼>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동생과 따로 살다가 패션 모델로 성공한 후 다시 동생과 둘이 살게 된 이린은 광저우에서 활동하는 인기 패션 모델입니다. 성공한 패션 모델이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 모델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 하루가 스트레스입니다.
여기에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패션쇼 현장에서 쓰러집니다. 은퇴를 고민하던 이린, 이런 이린 앞에 동생이 손을 잡아줍니다. 3편 중에 가장 스토리가 많고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2편인 <작은 패션쇼>도 1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스토리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공감가는 청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짋어지고 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나누기 보다는 모든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렇게 다 짋어지고 가면 금방 퍼집니다. 내 삶이라도 같이 들자고 손을 내밀어야 다른 삶의 짐도 함께 들 수 있죠. 가장 깔끔한 이야기이자 가장 좋았던 이야기였습니다.
테이프에 담긴 옛 사랑 <상하이의 사랑>
리모는 명문대학교를 나와서 상하이에 있는 건축회사에 근무합니다. 하루하루 상사에게 깨지고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자 독립을 선언합니다. 비싼 월세를 내는 단칸방 집으로 이사를 하다가 1999년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지와 테이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테이프가 자신이 짝사랑했던 단짝 친구 샤오유가 녹음한 테이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리모가 명문대학교를 간 이유는 샤오유 때문입니다. 동네 친구였던 샤오유와 리모, 판은 함께 다니는 삼총사였습니다. 그렇게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3명 모두 진학한 후 계속 같이 지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샤오유가 갑자기 명문대에 갈 수 있는 그 대학 부속 고등학교 진학을 하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샤오유를 짝사랑하던 리모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샤오유와 같은 고등학교를 가려고 노력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샤오유와 리모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됩니다. 이런 이별이 10대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이별이죠. 어른이 되면 멀리 떨어져 살아도 자주 연락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 헤어지면 이상하게도 그냥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은 더 심했습니다. 1999년 샤오유와 리모는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3편 모두 청춘이라는 계절을 지나고 있는 주인공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1편과 3편은 과거 회상이 대부분입니다. 이게 참 공감이 가지만 추억팔이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많다보니 식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1편과 3편이 색다른 시선이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아닙니다.
밥 같다고 할까요? 맨 밥처럼 맛이 다이나믹하지 않습니다. 다만 밥이 맛은 단조롭지만 맛있고 꼭 먹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이 사실을 키워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좋습니다. 여기에 '신카이 마코토' 풍의 작화가 주는 세련미가 그 흔한 추억팔이를 좀 더 깊게 진하게 우려냅니다.
<우리의 계절은>이라는 한국 제목은 <너의 이름은>을 연상케 하려고 한 제목 같습니다. 그러나 원제목인 <Flavers of youth>가 더 어울립니다. 청춘의 풍미. 젋음 그 자체가 재산이자 자신감입니다. 이 젊음을 먹고, 입고, 거주하는 의식주라는 그릇으로 담아냈네요. 그리고 3개의 이야기는 교통의 성지인 공항에서 만나게 됩니다. (쿠키 영상을 꼭 보세요).
빼어나거나 추천하는 애니는 아닙니다. 다만 낡은 청춘을 살면서 10대 시절 그 어설픈 추억을 꺼내 보고 싶은 청춘들에게는 추천합니다. 저는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이제 10대 시절도 잘 돌아보게 되지도 않고 기억도 바래져서 잘 기억나지도 않네요. 강렬한 10대의 찬란한 빛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찬란한 10대시절의 찰랑거리는 머리결을 떠올리게 하는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