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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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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여행사진을 절대로 수정하면 안되는 이유는 재현이라는 룰 때문

썬도그 2016. 6. 11. 11:48

하나의 세상이 파괴 되는 데는 1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진애호가의 영웅이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가 '비쥬얼 스토리텔러'라는 처음 들어보는 세상으로 넘어가는데는 1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세계로 도망치면 앞으로 많이 보고 느끼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보고 "저거 연출 한 거 아니야?" "저거 포토샵 이용해서 합성 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저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 애호가에게는 사진 보정을 넘어 없던 피사체를 넣고 있던 피사체를 지우는 행위를 하면 다큐멘터리의 재현성이 붕괴가 됩니다. 

뭔 말인지 모르시겠죠?

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쓰면서 많은 상념에 젖었습니다. 처음에는 '스티브 맥커리'의 포토샵을 이용해서 사진을 보정을 넘어 수정하는 것에 대한 의혹이 해외에서 들려왔고 제 블로그에서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1달 조금 넘은 의혹의 눈초리에 '스티브 맥커리'는 자신은 다큐 사진가가 아닌 '비쥬얼 스토리텔러'라고 해명하면서 어느 정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스티브 맥커리 사진 논란을 대화식으로 풀어보면....

세상은 넓고 생각은 다양합니다. 저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았습니다. 위 다섯 개의 글을 통해서 맥커리에 대한 비판의 댓글을 쓴 분도 있지만 '그럴 수 있다'라는 맥커리의 행동을 이해하는 댓글도 꽤 있었습니다. 이에 전 크게 반발했습니다.

왜냐하면 맥커리의 행동인 사진 보정을 넘어서 있는 피사체를 지우는 행동을 옹호하면 제가 믿고 따르던 다큐멘터리의 재현성이라는 성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게 보편화 된다면 전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존경을 싹 다 접을 생각입니다. 또한, 사진이 재현성을 버린다면 전 사진에 대한 관심을 확 줄여 버릴 것입니다. 


제 블로그 명을 '사진은 권력이다'라고 한 이유는 이 사진 때문입니다. 1987년 6.10 민주 항쟁 하루 전인 1987년 6월 9일 이한열 군이 최루탄 파편을 맞고 쓰러지는 사진으로 6.10 민주화 항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침묵을 지키던 기성세대인 30,40대 직장인들이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줬고 결국 노태우 황태자는 호언철폐를 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를 국민들이 투표로 뽑는 직선 투표를 인정했습니다. 

사진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 도화선 또는 마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사진이 수정 사진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없던 피사체를 넣고 있던 피사체를 지운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맥커리의 행동을 이해하는 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몇몇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 이유를 처음에는 거부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분들이 생각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친구와의 대화식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레임 조절도 사진 조작이 아닌가?


: 어쩜 이럴 수 있어?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중 일부가 사진 콘트라스트, 채도 노출 조정을 넘어서 있던 피사체까지 지울 수 있어?

친구 ; 뭔 소리야? 맥커리 사진이 조작을 했다는 소리야?

: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채도 조절이나 콘트라스트 변경이 아니라면 콘트라스트 변경이나 채도 변경은 이해해 그런데 없던 피사체를 넣거나 있던 피사체를 지우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해! 그건 현실 조작이거든. 

친구 : 그래? 그런데 다큐/보도 사진이 진실을 이야기 할까?

: 무슨 소리야?


친구 : 예를 들어 이 사진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3명의 남자가 있어서 사진 제목은 '백만달러 4인조'야. 


그런데 이 사진의 원본은 이거야. 이거 현실 왜곡 아니야? 니가 주장하는 재현성에 위배되는 행동 아니야? 
이런 사진이 한둘이 아니야. 이 가디언지 영상을 봐봐


이 영상을 보면  스킨 헤드를 한 불량배 같은 인간이 신사를 덮쳐 여기까지 보면 무고한 사람을 불량배가 뒤에서 덮쳐서 강도 짓을 하는 것 같어. 그런데 먼 그림에서 보면 이 스킨 헤드가 벽돌에 깔리는 위기에서 구해주잖아. 

사진도 그렇잖아. 프레임을 좁게 설정해서 스킨 헤드가 강도 짓 하는 모습만 담을 수 있잖아. 그런데 실제는 스킨 헤드가 신사를 구하잖아. 내 말은 사진이 프레임만 조작해서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소리야. 


: 맞아. 니 말에 공감해. 내가 요즘 고민하는 부분이자 사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야. 사진은 뛰어난 증명성과 재현성 때문에 천 마디 말보다 1장의 사진으로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기도 해. 시쳇말로 수백 마디 목격담보다 사진 1장이 더 강력해.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논쟁이나 언쟁을 하다가 인증샷 날려라고 간단하게 말하잖아. 인증샷이 뭐겠어. 사진의 증명성을 기대는 행동이잖아요. 그래서 인증샷 날리면 바로 조용해지잖아. 이건 반박할 수 없는 증거거든.

니가 주장한 프레임 조작? 그거에 대해서 말해볼까?
먼저 카메라 자체가 프레임 조작 도구야? 너 광각렌즈끼고 촬영하고 줌렌즈 끼고 촬영하면 화각이 달라지는 것 알지?

친구 : 그렇지 광각 렌즈는 넓게 담고 줌렌즈는 좁게 담지!
: 어떻게 보면 광각이 현실에 가까워. 세상을 객관적으로 담으려면 내 주관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려면 360 카메라가 가장 객관적이야. 실제로 환 언론사는 시리아 난민과 인터뷰를 하면서 시리아 난민과 인터뷰 하면서 360도로 그 인터뷰를 담았어. 그래서 그 영상을 보는 사림이 인터뷰 하는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곳을 볼 수 있었어.


그런데 이게 사실이고 현실적이고 왜곡 없는 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어. 왜냐하면 저 인터뷰를 하는 언론사가 시리아의 참상을 알리는 것이 언론사에게 이롭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면 취재도 하지 않겠지 즉,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객관적 사실이야. 그런데 그걸 취재하고 취재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첨가하지 않아도 보는 시선에 따라서 악의적으로 전할 수 있거든. 쉽게 말하면 언론사에게 이득이 되는 사실만 추려서 세상이 알리는 자체도 현실 왜곡이지. 



                                    출처 http://namu.mirror.wiki/w/%ED%8C%A9%ED%8A%B8

이 사진을 봐봐. 위 사진에서 양심적인 사진기자나 사진가라면 가운데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려야해. 왼쪽 군인은 포로를 억압하면서 반항을 원천 봉쇄하지만 동시에 목마른 포로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인도적인 행동인 물을 줘야해. 말도 안된다고? 이게 세상이야. 세상은 양가적이야. 머리속 세상과 달러. 총구를 겨누면서 동시에 물통을 줘야해. 이게 상식이고 현실이야

친구 : 그런데 이 사진을 가지고 우익은 왼쪽 사진을 좌익에 있는 사람은 오른쪽 사진을 좋하해! 이렇게 프레임을 잘라서 자기 유리한 대로 세상에 알리는 것은 왜곡이 아닐까?

: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은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나 사진가는 현장의 분위기를 잘 알어 어떤 사진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알지. 그런데 사진가나 사진기자는 줌렌즈라느 프레임의 마술사를 가지고 펼쳤다 조무렷다 하면서 전부 담어 우익에 이로운 사진, 좌익에 이로운 사진, 정말 객관적이 사진을 담지. 그런데 이건 좌나 우의 시선 때문에 담고 담지 않고의 선택의 문제지 재현의 훼손은 아니야.

즉 현실의 왜곡(그건 너무나 주관적이지만)은 있을 수 있지만 사진을 찍는 사진가와 사진작가가 자기는 객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걸 틀린 답이라고 할 수도 없어. 어차피 세상은 주관으로 돌아가잖아. 

위 사진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옳고 그를 수는 있지. 자신이 좌익이라면 오른쪽 사진이 정답이지만 자신이 우익이라면 왼쪽 사진이 정답이지. 그러나 진실은 가운데 사진이야.

가운데 사진도 프레임 조작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 어차피 전체를 담기에는 카메라가 모든 화각을 담을 수 없으니까. 카메라 자체가 크롭 도구잖아. 어안렌즈로 넓게 담는다고 진실의 화각이고 줌 망원 렌즈 화각이 거짓의 화각은 아니잖아. 




프레이밍과 사진 수정의 차이점은 재현 왜곡과 재현 훼손의 차이

친구 : 그럼 위 사진에서 사진의 입맛에 맞게 프레이밍하는 것과 그냥 사진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왼쪽 병사던 오른쪽 병사를 포토샵을 이용해서 지워 버리는 것도 똑같지 않어. 어차피 둘 다 진실 왜곡이잖아 

: 그렇게 보는 사람이 꽤 있어. 어차피 사진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서 너 처럼 포토샵을 이용해서 지우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따지지. 그런데 이건 다른 문제야. 사진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진실 왜곡의 도구로 많이 활용 돼. 그래서 무엇보다 사진가의 양심이 무엇보다 중요해. 그건 나중에 더 이야기 하고 프레이밍으로 피사체를 프레이밍 밖으로 밀어내는 것과 포토샵으로 지우는 건 아주 큰 차이야. 

큰 차이를 넘어서 사진이라는 자체를 부정하려는 행위야.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대학생이 주방위군 총에 맞아서 쓰러진 사진이야. 그해 풀리쳐상을 받았지. 쓰러진 학생 옆에 울부짖는 여학생이 있는데 사건의 긴박감이 느껴지지 


그런데 이 사진의 원본은 이 사진이야. 여학생 머리 위로 긴 막대가 있어. 사진기자는 이 막대가 사진을 방해한다면서 지워버렸어. 

친구 : 사진의 주 피사체가 아니면 지울 수도 있지

: 정말 그렇게 생각 해? 막대기를 지우는 행위는 엄청난 행위야. 왜냐하면 저 막대가 사진에 방해 된다고 지우면 이건 사진이 아닌 미술이 돼
왜냐하면 사진은 뛰어난 재현성의 도구야. 사진의 시작도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도구로 인기를 얻었고 그 뛰어난 재현성 때문에 화가들은 사진가가 되거나 아니면 사진의 뛰어난 재현성과 다른 길인 자신의 주관을 넣은 인상주의 또는 추상화 쪽으로 진화를 했어. 

그런데 그 재현성을 훼손한다고? 사진에 있는 피사체를 지우거나 넣는 순간 그 사진은 사진이 아닌 그림이 돼. 

친구 : 그럼 위 사진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난 저 막대기가 꼴 뵈기 싫은데

: 더 가까이 가서 찍거나 그냥 둬야지. 

친구 : 주 피사체가 아니잖아

: 주 피사체와 아닌 것과는 상관 없다니까 사진에 뭘 넣고 지우는 그 행위를 하면 그 사진은 사진이라는 기록물이 아닌 그림이 된다고 그렇게 허용하면 사진의 순간 포착성도 훼손되잖아. 니 생각처럼 포토샵을 이용해서 피사체 막 지우고 그런게 가능해지만 누가 사진을 진지하게 찍겠어. 대충 찍고 집에서 포토샵으로 지워버릴 생각을 하지. 그리고 지웠다고 당당하게 말도 못할 걸 . 당당하게 포토샵으로 지웠다고 말하지 못하는 자체가 스스로가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소리야

내가 다큐/풍경 사진가 중에 포토샵으로 피사체 지웠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사진가 한 명도 못 봤다. 





<사진 김아타>

친구 : 풍경 사진에서 사람을 지우고 싶으면 포토샵으로 지우거나 장노출로 지우거나 무슨 차이가 있어 장노출은 괜찮은 거냐?

: 당연하지 둘 다 결과물은 똑같을 수 있어. 그러나 장노출은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이 이 사진은 장노출로 촬영해서 사람들이 안 보이는 구나 인지할 수 있잖아 이건 기만적인 행동은 아니야. 정말 장노출의 달인이 티도 안 나게 거리나 도로의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고 쳐. 그 사진을 가지고 그 사진가가 이게 재현의 사진이라고 하지 않어. 그래서 장노출 사진은 보도 다큐 사진에서 거의 볼 수 가 없어. 순간 재현성이 생명인 사진에 장노출은 현장 재현력이 확 떨어 지거든 대신 세상을 다르게 담는 예술적 가치는 높아지겠지. 장노출 사진 대부분은 예술 사진 쪽에서 하는 행위지. 그리고 보도 다큐 사진에서 장노출로 사람 지운다고 해도 캡션으로 적극적으로 알려

중헌 것은 그거야. 보도 사진과 다큐 사진은 캡션을 통해서 사람이 오해할 만 것은 사전에 방지해. 그래서 보도 사진의 맹점인 순간 포착으로 인해 사람들이 사진에 대한 오해를 하지 못하게 캡션들이 붙어.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글은 사라지고 사진만 돌아다녀서 오해를 사기도 하지. 오해를 즐기는 쪽은 예술 사진 쪽이야. 일부러 오해 사게 해 놓고 좋아하기도 해. 

다시 말하지만 재현성에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행동을 하면 절대 안 돼. 이건 정언명령이라고 할 정도로 엄격해
프레이밍은 재현 왜곡이고 포토샵으로 피사체를 지우는 것은 재현 훼손이야. 




요즘 한 창 논란이 되고 있는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이야. 위 사진을 보면 똑 같은 사진인데 위 사진에는 있어야 할 피사체들이 사라졌어. 이는 아래 원본 사진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피사체를 싹 지워버렸어. 넌 이런 식으로 피사체 지우는 걸 옹호할 수 있어?

친구 : 응! 괜찮지 않어?

나 : 위에서 말했지만 그러면 안돼 너 처럼 사진에 손을 대면 그 사진은 사진이 아닌 미술이 된다니까. 특히나 이런 풍경 사진 또는 다큐 사진은 포토샵으로 피사체 넣고 지우면 더더욱 안되고 손을 되면 그 순간 이 사진은 미술 영역으로 넘어가버려 즉 예술 사진이 된다고.
맥커리의 사진 논란이 왜 일어났겠어. 지금까지 다큐 사진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진 막 지우다가 걸리니까 뭐라더라 자신은 "비쥬얼 스토리텔러"라고 하더라고. 졸렬한 행동이지 지금까지 다큐 사진가라는 명성으로 살아 놓고 이제와서 자신은 사진에 손을 될 수 있는 동화작가라고 하는 거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니가 찍은 풍경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서 사진을 만들면 그 순간 넌 사진가가 아닌 화가가 되는거야. 

친구 : 화가? 그럼 예술 사진 하는 사진가들은 포토샵을 이용해서 사진 합성도 자유롭게 하는데 그 사람들도 화가냐?





예술 사진과 다큐 사진은 사진이라는 도구만 같을 뿐 아예 다른 장르다

: 난 예술 사진은 사진이 아닌 미술이라고 생각해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은 이래. 예술 사진과 기록 사진이 동일한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둘은 아예 다른 존재야. 기록 사진 즉 다큐나 여행사진 풍경사진은 미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은 재현성이야. 그 장소와 현장을 그대로 떠서 사진으로 담는거야. 그래서 우리가 재현성이 중요한 사진을 보면 그걸 포토샵으로 지우고 조작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런데 예술 사진에서는 포토샵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합성하고 지우고 해. 그게 가능한 이유는 예술 사진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했지 사진이 아닌 미술이야.



요즘 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사진전 봤어?

친구 : 아니

: 이 사진전에 가면 1980년대 이후의 연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어. 메이킹 포토라고 하는데 1980년대부터 사진에 예술성을 넣은 사진들이 등장해. 그런데 이 사진전에는 그런 예술적 가치가 있는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진을 전시하고 있지. 한 잡지에서 그런 질문을 해. 왜 다큐 사진은 없냐고 이에 전시회 기획자는 이렇게 대답해 "미술의 영역으로 포함할 수 있는 예술 사진만 포함했다"


이는 미술계에서 인정하는 사진 즉 예술로 포함하는 사진이란 재현성이 중요하지 않은 예술 사진이라는 것이지. 이게 뭔 말이야면 재현성이 뛰어난 다큐 보도 사진은 미술계는 예술로 안 본다는 거야. 실제로 우리가 다큐 사진 보고 예술이라고 느껴지냐? 물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보도 사진도 있어. 살가도 사진 같은 경우 참혹한 기아 현장이지만 아름답게 보이기도 해. 그래서 비판을 받어. 있는 현실을 제대로 담지 않고 너무 아름답게만 담는다고 비판을 받지


위 사진은 올해 풀리쳐 상을 받은 사진이야. 난 이 사진을 보면서 너무 영화 같다고 느껴져서 이질감이 들더라고. 분명 연출 사진도 아니고 이미지 합성을 한 조작 사진도 아니야. 그런데 내가 이 사진을 거북스러워 하는 것은 시리아 난민의 고생이나 서러움이 느껴지지 않어. 너무 멋진 구도와 포즈로 인해 아름답게 느껴졌거든. 고통스러운 사람을 담은 사진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체가 이질감이 들어

실제로 다큐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면 그 자체로 그 다큐 사진은 다큐가 아니라는 소리도 많아 그래서 이런 사진들은 비판을 많이 받어. 그래서 살가도 사진도 비판을 꽤 받고 있고


이 사진이 그래서 난 좋아. 이 사진도 풀리쳐 상을 받았는데 위위 사진과 달리 시리아 난민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져. 물론, 사람마다 사진을 보는 주관이 다르기에 내 말이 정답이라는 소리는 아니야. 다만, 다큐 사진은 그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때 가치가 생기고 인정을 받어. 그런데 너 처럼 사진에 방해 된다고 피사체를 막 지우면 그게 다큐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서 위 사진에서 사진가가 오른쪽 뒤에 있는 자동차가 꼴뵈기 싫다고 지워버리면 그 순간 이 사진은 다큐 사진의 생명을 끝나. 해외에서는 콘트라스트 조절과 색감 조정을 의도적으로 해도 엄청난 비난을 받어. 하물며 포토샵으로 피사체를 지운다고?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지




스티브 맥커리는 다큐 사진가가 아닌 예술가이다. 

: 위 사진은 스티브 맥커리 사진이야.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어. 


그런데 이게 원본 사진이야. 공을 차는 맨 앞에 있는 아이 뒤에 또 다른 아이가 있어. 그런데 이걸 맥커리가 지웠어. 이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다시 말하지만 저 아이를 지우는 순간 이 사진은 다큐 사진이라는 재현 사진의 생명은 끝나고 예술 사진의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조작 사진으로 분류가 되어야해. 또한, 콘트라스트와 색조 변경도 사진가의 양심에 따라서 자신이 본 이상으로 보정을 하면 안돼. 그러나 보정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난 콘트라스트나 색조 변경까지는 할 수 있다고 봐. 그런데 이미지 변경은 절대로 용납이 안돼

만약 이게 용납이 되면 모든 이미지 합성과 제거가 허용이 되어야 하거든


친구 : 맥커리는 사진의 주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피사체 지우는 것도 괜찮다고 하고 나도 그런 생각인데 

: 어느 정도 이해는 해. 저 아이를 지운다고 해서 현장의 느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기는 해. 그런데 그렇게 이미지 제거를 허용하면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보단 집에서 지우는 연습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그래서 풍경 사진에 불 필요하다고 느끼는 전깃줄 전봇대 열심히 지우겠지. 
다큐 사진가 풍경 사진가라면 전깃줄이 없고 전봇대가 없는 풍경을 찍거나 프레임 밖으로 몰아 내야지. 그게 사진이지 짜증난다고 지워버리면 그건 그림이야

난 그래서 맥커리를 화가라고 생각해. 사진 재현의 룰을 깨버린 작가는 예술 사진가나 화가라고 생각되거든. 

친구 : 좀 과격한 생각이지 않냐?

: 응 과격하긴 하지만 요즘 내가 보는 사진의 시선이야. 지금까지 예술 사진과 다큐 사진을 모두 좋아했는데 앞으로는 매체만 같지 시선은 다른 사진으로 인식하고 보려고 해 그렇게 보니 좀 더 명확하게 보이더라고



허접한 글입니다. 급하게 적다 보니 중구난방이 되어 버린 것도 있네요
한 줄로 정리해보면 사진은 재현의 도구입니다. 뛰어난 재현성 때문에 지금까지 사랑받고 앞으로도 사랑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포토샵이나 합성으로 사진을 이용하고 그게 주류가 되면 사진은 재현성에 의심을 받고 멋진 사진을 찍어도 조작했을거야라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그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조그마한 티끌도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촬영하고 소장하는 사진까지 조금도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진실성이 중요한 다큐나 보도 사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프레이밍 하는 자체도 사진 조작이라고 말합니다. 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심리적인 문제이고 2차적인 문제입니다.  즉 심리의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프레이밍 조작과 포토샵을 이용한 피사체 제거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니 피사체를 포토샵으로 지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죠. 

다시 말하지만 프레이밍 하는 것은 사진가의 양심에 따라서 주관에 따라서 하는 행위이고 현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재현성을 훼손하지는 않습니다. 있는 것을 지우고 없는 것을 있게 하지는 않죠. 그러나 프레이밍질을 보면서 그냥 쉽게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지우고 넣고 하는 행위는 재현성을 훼손합니다. 재현성을 훼손하자마자 사진으로서의 생명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제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댓글로 제 의견과 다른 의견을 달아 주시면 제가 답글을 달면서 토론을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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