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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젊은 날의 초상 -청춘의 고통은 형태만 바뀔 뿐 무게는 똑같다.

by 썬도그 2016.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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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고 맑기만 한 청춘 같지만, 막상 청춘이 되면 짙은 우울함이 머리 위에 항상 따라다닙니다. 차라리 몸이 힘든 고등학교 시절이 좋았습니다. 주어진 길만 가면 되는 등 떠밀려 가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춘은 항상 두통을 동반합니다. 처음으로 내 삶을 내가 개척하고 책임져야 하는 그 갑작스러운 큰 자유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혼란은 한꺼번에 다가옵니다. 이성에 대한 욕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동시에 흥분되게 하고 어둡게 합니다. 그러나 젊기에 거의 대부분의 행동이 용서됩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았기에 되돌아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때다 좋은 때! 이 좋은 때가 대학 시절일까요?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일까요? 


이문열 작가의 80년대 빅히트 소설 '젊은 날의 초상'

지금은 뭐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보수주의자인 이문열 작가는 198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썼다 하면 대박을 낸 스타 작가입니다. 그가 쓴 '젊은 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연속 히트시켰습니다. 

이 중에서 1980년대 청춘들의 필독서는 '젊은 날의 초상'이었습니다. 전 이 소설을 94년도인가? 군대에서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많은 사유와 공감을 했습니다. 특히, 젊음이 가진 고통을 너무 잘 녹여 낸 책입니다. 청춘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울분을 차분하고 납득이 가게 잘 담았습니다. 특히 칼갈이와의 대화가 생각나네요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그러나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주인공 이름도 내용도 다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다시 읽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2시간에 복습할 수 있는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을 봤습니다.  1991년 3월 개봉한 '젊은 날의 초상'은 곽지균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정보성, 이혜숙, 배종옥, 옥소리입니다. 


빛나는 배우들

영화 리뷰를 쓸 때 배우들에 대한 소개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한다고 해도 글 후반에 소개하죠. 젊은 날의 초상은 배우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배우들의 이미지와 연기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대학생 영훈 역은 정보석이 맡았습니다. 정보석은 턱선이 날카로운 이지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약한 이미지와 함께 섬세하고 여린 문학소년의 이미지와 함께 강단이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주인공인 국문학과 대학생 이영훈의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영화를 보자마자 느낀 것은 정말! 잘 생겼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네요. 정보석이 잘 생긴 배우라는 것은 알았지만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였는데 스크린에서는 하나의 빛나는 별입니다.

이 정보석과 함께 3명의 여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부르주아의 딸로 나오는 혜연 역의 옥소리와 술집 작부로 나오는 윤양의 배종옥 그리고 영훈의 첫사랑인 정님역의 이혜숙은 빛나는 별입니다. 3명의 여배우 모두 당시의 톱 클래스 여배우이기도 했지만 3명의 배우 모두 다른 색갈의 빛을 내서 아름다움이 겹치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배종옥의 당찬 연기는 원작 소설에서는 작게 그려진 캐릭터가 크게 부각됩니다. 이외에도 조재현의 신인 시절 모습과 신현준과 김승우의 까메오 출연도 살짝 흥미롭네요


극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민하는 청춘을 그린 '젊은 날의 초상'

영훈(정보석 분)은 형의 일을 도우면서 검정고시를 통해서 서울 명문대를 입학합니다. 아버지 같은 큰 형은 영훈의 등록금을 주면서 동생의 뒷바라지를 합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는 데는 덕없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학을 합니다. 

대학교에서 복학생 김형과 하가라고 부르는 친구를 만나서 술과 인생을 논하는 흔한 대학 생활을 합니다. 
이 대학 생활 중에 영훈은 혜연이라는 갑부집 딸을 만나고 혜연과 사귀게 됩니다. 그러나 영훈은 부루조아의 딸인 혜연의 삶과 자신의 삶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합니다. 그렇게 술로 연명하는 삶을 살다가 이데올레기에 넌더리를 내면서 문학 동아리를 탈퇴합니다. 

친구인 하가는 학원 시위대 앞에 서서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 맞서서 싸우지만, 자신은 강의실에서 그런 하가를 쳐다만 볼 수 밖에 없습니다.그렇게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김형이 자살합니다. 연이어서 하가도 시위 도중에 건물 옥상에서 투신을 합니다. 한 번에 2명의 절친을 잃은 영훈은 깊은 방황을 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의 전반부는 대학생 영훈의 캠퍼스에서의 삶을 그리고 후반부는 그 대학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배우는 로드 무비가 펼쳐집니다.



삶의 수도자가 된 영훈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겪는 청춘 고통의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 여정에서 시골의 객주집 방우 생활을 하다가 윤점숙(배종옥 분)이라는 술집 작부를 알게 됩니다. 미스 윤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점숙은 대학생인 영훈에게 호감을 보냅니다. 

방우 생활을 통해서 대학이나 시골이나 대한민국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영훈은 객주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미스 윤도 그 길에 동행을 합니다. 기차에서 만난 복수가 삶의 목표인 칼갈이와 함께 3명의 나그네는 동해를 향해 함께 여행합니다. 

이 부분만 보면 영화 '삼포 가는 길'과 그 구성이나 캐릭터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이만희 감독에 대한 오마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쉽게 유명 영화에 편승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잠시 동행하던 미스 윤과 헤어지고 자신의 어렸을 때 짝사랑이자 첫사랑인 정님 누나를 만난 후에 큰 변화를 하게 되고 칼갈이 아저씨를 해변가에서 만난 후 다시 대학이 있는 서울로 돌아오는 젊음의 방랑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스토리 자체로는 별 매력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소설도 스토리 위주라기보다는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변해가는 젊은 날의 내적 방황이 주로 묘사됩니다. 소설은 글로 그 방황을 빼곡하고 촘촘하게 담을 수 있지만, 영화는 내면의 고통을 스크린에 담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들은 영화로 만들기 쉽지도 않고 만들어도 재미가 보장되지 못합니다.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은 그래서 재미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영화관에 걸었다면 크게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는 이런 잔잔한 영화도 인기 배우를 배치하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냥 대충 중박 정도 한 영화로 기억되네요. 

이 '젊은 날의 초상'을 21세기에 나이 들어서 보니 여러가지 1980년대 이미지와 풍경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보겠습니다. 


1. 80년대. 거대한 부조리의 시대

1980년대는 거대한 부조리극 같은 시대였습니다. 영훈의 일상을 들여다보죠. 영훈은 가난한 농촌에서 올라와서 서울의 명문대를 다닙니다. 영훈의 여자친구는 갑부집 딸이라서 서 있는 풍경이 다릅니다. 지금은 더 극심해졌지만, 당시에도 빈부 격차가 심했습니다.  영훈은 캠퍼스에서 낭만과 정의를 외치면서 기성 세대와 군부 정권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영훈의 친구는 민중 노동자를 외치면서 민중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학생으로 비추어지지만, 밤에는 술을 퍼 마시고 사창가에 가는 자기 주장에 역행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런 행동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민중을 외치면서 운동권 세력끼리 학력 차별을 하는 모습은 아주 전형적이죠. 영화 '강철대오'는 이런 운동권의 부조리함을 은유법으로 풍자한 영화입니다.

운동권 대학생들 자체가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지만 그들 스스로 부조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운동권 학생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부조리해도 부조리한 세상에 돌팔매질 하는 것은 거룩한 행동입니다. 

또 하나의 부조리가 있다면 대학생들의 삶을 다루고 구로공단 여공의 삶은 다루던 이문열이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꼴통 보수주의자가 된 것도 참 부조리하네요.  


2. 이념의 시대

1980년대는 숨 막히는 이념의 시대였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부르조아라는 외국어가 대학가를 점령했습니다. 대학생들은 민중 해방이라는 명목아래 매일 같이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위는 정작 민중에게 확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책으로 배운 민중과 실제 민중은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386이라는 이념에 찌든 대학생 세대들이 정치권에서 여러 곳에서 큰 활약을 했고 그들의 행동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칭찬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386 대학생들이 주장은 너무나도 과격한 것이 많았습니다. 

주인공 영훈은 깃발을 들고 이념에 찌든 캠퍼스에 넌더리를 냅니다. 영화 동주에서처럼 시대가 엄혹한데 시 나부랭이를 쓸 수 없다고 자책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념 전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면서 동료들을 글로 비판합니다. 이에 문학 동아리에서는 영훈에게 배신자라고 나가라고 합니다. 

0과 1만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디지털 시대가 1980년대였습니다.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시대였고 이런 숨 막히는 시대를 영훈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영훈은 이런 혼란스러운에서 크게 방황을 합니다. 




3.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던 시대 

영훈은 하구라는 시골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거기서 짝사랑을 하던 동네 누나를 뒤로 한 채 서울 객지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두 명의 친구가 연달아 죽고 고향 동네에 장례식 때문에 내려갑니다. 그 장례식에서 짝사랑하던 누나를 보게 됩니다. 누나는 고등학교 유부남 선생님과 눈이 맞아서 미혼모로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어르신들은 그런 누나를 받아들일 수 없죠. 1980년대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시골에서는 갓 쓰고 한복 입고 다니는 어르신도 심심찮게 보던 시대였습니다. 동시에 산업화의 온기가 시골까지 서서히 전파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근대화와 현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던 어수선한 시대였습니다. 영훈은 대학이라는 현대화의 최전선과 전통 생활 양식이 또아리 잡고 있는 시골의 삶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청춘의 고통은 형태만 바뀔 뿐 무게는 똑같다

한 어른이 6.25때는 쌀이 없어서 배 곯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한 아이가 대뜸 쌀이 없으면 라면 끊여 먹으면 되죠! 라는 우문현답을 했습니다. 

많은 어른이 그런 소리를 합니다. 나 때는! 이렇게 고생했어. 니들은 편한 줄 알어라는 본전생각 난다는 식의 훈계조의 말을 합니다. 그 말이 젊은 사람들에게 먹힐까요? 제 경험상 안 먹힙니다. 오히려 꼰대라고 낙인이 찍히죠. 현재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20대 청년들에게 잔소리합니다. 

맥아리가 없다. 뭐든 해봐라. 열정과 노오오오력을 요구합니다. 분명히 요즘 20대들이 1980년대 청춘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현재의 20대가 더 측은스러워 보입니다. 1980년대 청춘들은 경제라는 괴물에 먹혀버린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대학 3학년까지 시위를 해도 대학 4학년 때 반짝 공부를 해서 졸업만 하면 기업에서 모셔갈 정도로 취직이 잘 되었던 고도경제성장기라는 축복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대학에 가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많지 않습니다. 미래는 잿빛 그 자체이고 그 잿빛 하늘을 걷어내기 위해서 스펙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흙수저가 은수저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1980년대의 영훈이 이념과 근대화에 큰 고통을 받았다면 현재의 영훈은 취직에 큰 고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청춘의 고통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그 고통의 무게는 동일합니다. 청춘은 그렇게 고통을 동반한 고통 전선이 항상 머리 위에 드리운 시절입니다. 맑은 날도 많고 어두운 날도 많은 나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성에 대한 고통은 형태도 고통도 동일하네요. 영화 '젊은 날의 초상'에서 영훈은 3명의 여자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짝사랑 했던 동네 누나였던 정님으로부터 사랑의 아픔을 배우고 미스 윤으로부터 삶의 흔들림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것을 배우고 혜연으로부터 돈 많은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봅니다. 

정님 누나는 이상형의 사랑이고  미스 윤은 온기 가득한 사랑 그리고 혜연에게서는 넘을 수 없는 세상의 벽을 느낍니다. 20대라는 나이는 대부분이 새로운 것 새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충격과 고통의 연속이죠. 영혼의 굳은 살이 없어서 쉽게 감동하고 좋아하고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 청춘의 고통을 잘 담은 영화가 '젊은 날의 초상'입니다. 재미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나 지금이나 20대는 항상 방황과 갈등의 연속이고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그 고통이 굳은 살이 되면 삶의 지혜가 될테니까요.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을 보니 20대는 항상 자기 과잉이 넘치네요. 자의식이 너무 과팽창 되었다고 할까요? 세상은 너무 단순하게 흐르는데 거대한 이념 논쟁과 자의식의 과잉으로 쓰잘덱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네요. 

이게 다 나이 들어서 내려다 보니 보이는 풍경이네요. 반면, 현재는 셀카로 대표되는 자신의 표현이 과한 청춘들이 주변에 많이 보이네요. 자아 형성기라서 그런 것 같네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동의할 수 없지만 청춘은 항상 아프다라는 말은 동의합니다. 덜 아프기 보다는 그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청춘들이 많길 바랍니다

젊은 날의 초상 무료 감상하기 : https://www.youtube.com/watch?v=VEXQOaq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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