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이재한 형사의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대사에 울컥

by 썬도그 2016. 3. 8.
반응형

인생 드라마라고 불리는 tvN의 드라마 '시그널'은 금,토요일 스케줄을 바꿀 정도로 파괴력이 아주 큰 드라마입니다. 제가 TV를 거의 안 봅니다. 그러나 안 볼 수가 없는 드라마가 응답하라 1988과 후속작인 '시그널'입니다.

드라마 '시그널'은 방영하기 전부터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해서 보고 싶었던 것도 주제나 소재가 흥미로워서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김은희 작가 때문입니다. 


장르 드라마를 개척하고 있는 '김은희' 작가

김은희 작가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김은희 작가 남편 때문입니다. 김은희 작가 남편은 출연하면 예능국에 화색이 돌게 하는 내가 아는 가장 웃긴 영화 감독인 '장항준'감독입니다. 이 장항준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윤종신과 절친이라서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연출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항상 응원했죠. 그런데 장항준 감독의 아내가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하고 연속 대박을 터트립니다. 

2011년 SBS드라마 싸인을 시작으로 2012년 유령, 2014년 쓰리데이즈를 연속 히트시키면서 인기 작가가 됩니다. 특히나 기승전 연예라는 고리타분한 한국 드라마의 절대공식을 파괴하고 오로지 장르에만 천착하는 뛰어난 드라마 스토리를 만들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미국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오로지 김은희 작가 작품이라서 보게 된 드라마 '시그널'은 처음에는 시큰둥했습니다. 무전기를 통해서 과거와 무전을 한다는 설정은 낡고 허름한 소재입니다. 이미 '동감'이나 '나비효과' 등이 바로 떠오르는 타임슬립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시간 여행을 하기보다는 1980년대 또는 2000년대 초의 이재한 형사와 2015년의 박해영 형사 사이의 무전을 통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 무전기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점을 크게 부각 시키지는 않습니다. 현재에서 단서를 제공해서 과거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있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2015년 대한민국의 비탄스러운 현실을 고발하는 데 있습니다. 




경찰도 국민도 잊은, 피해자 가족만 기억하고 있는 장기미제사건

이제훈, 김혜수 그리고 조진웅의 연기는 시그널의 고공 행진에 큰 역할을 합니다. 특히나 조진웅의 곰 같은 뚝심과 무심하지만 마음 따뜻한 츤데레 형사의 우직함은 많은 시청자를 울리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에 적극 협조를 했지만 크게 보면 이 드라마 '시그널'은 경찰을 비판하는 드라마입니다. 

장기미제사건이라는 그 자체가 경찰의 무능함을 고발하는 스토리니까요. 그럼에도 경찰이 협조한 이유는 경찰이 협조하게 되면 시나리오를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은희 작가는 경찰의 무능과 비리와 부패를 비판하면서 이재한이라는 '절대 선'의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경찰의 따가운 시선을 빗겨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3인방을 제외하면 주변의 거의 모든 경찰은 뇌물을 먹고 사건을 은폐하는 부정하고 무능하고 파렴치한 악마와 같은 경찰들이 가득합니다. 사회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함께 경찰 내부의 부정부패를 정조준한 드라마가 '시그널'입니다. 

매주 금,토요일만 기다리게 하는 시그널은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울분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은희 작가는 장기미제사건은 경찰도 잊고 국민도 잊고 살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언젠가 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가 있자마자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분들이 잊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 될까봐 겁이 나네요. 제 페이스북 커버 이미지를 세월호 집회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아마도 제가 죽을 때 까지 커버 이미지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계철 형사가 오대양 사건을 계속 거론하는 이유는 우연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과 연관된 소유주 유병언이 오대양 사건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이재한 형사는 돈 있고 빽 있는 용의자가 수사에서 교모하게 빠져나가자 2015년에 있는 박해영 형사에게 
"거기도 그럽니까?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 뭐라도 달라졌겠죠"라며 씩씩거리면서 무전을 합니다. 

이 무전에 울컥했습니다. 
전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서 자신의 오류를 교정하면서 진화해가는 동물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그런 많은 실수와 오류를 통해 경험을 얻고 그 경험을 통해서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고 교정하면서 진화해 왔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경험을 책과 서류에 남겨서 후손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노량진 학원을 가면서 들은 라디오 싱글벙글쇼에서 한국의 부정부패가 아주 심각하다면서 혀를 차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그 80년대와 더 나아졌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추악해졌습니다. 80년대는 부정부패가 있어도 그걸 부끄럽게 여기는 권력자가 많았습니다. 국민께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그런 모습에 심하게 질타하는 국민이 많았습니다. 

2015년 현재, 똑같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어떤 행동을 할까요?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 내가 뭔 잘못을 했나? 그러는 너도 문제 아니냐!라고 따지거나 다른 사건으로 물타기 하면서 넘어갑니다. 오히려 1980년대보다 더 후퇴했습니다. 이렇게 후퇴한 결정적인 이유는 언론의 퇴화입니다. 언론들이 기업의 비리나 정치인의 권력형 비리에 눈감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더 후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들도 문제죠. 자기 발밑만 보고 살다 보니 연대 의식이 다 끊어졌습니다.

달라지긴 했습니다. 달라졌는데 더 안 좋게 달라졌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

참여연대의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8005참팟에서는 참팟 호외4에서 김은희,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너무나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생기다 보니 자기 방어 기제 때문인지 요즘은 그런 사회적 이슈나 안 좋은 일에 관심을 덜 가지게 된다고 장항준 감독이 말했습니다.

이는 저도 마찬가지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자꾸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처음에는 분노하고 저항했지만 이제는 지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게 됩니다. 

사회자와 장항준 감독은 일비일희하지 말며 신용복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역사를 장기적으로 보고 분노가 당장 반영하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길게 보자는 말을 했습니다. 공감합니다. 장기전입니다. 한번 사회의 기류가 꺾이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 듯 다시 꺾으려면 그 2배의 에너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덜 고통받기 위해서 자기방어를 하더라도 힘이 필요로 할 때 함께 그 에너지를 쏟아내야 할 것입니다. 



정의 사회 구현이 내가 원하는 사회

소통 가장 못하는 사람들이 소통하자고 외칩니다. 국민을 가장 하찮게 보는 대통령이 국민을 외칩니다. 특정 단어를 자주 외치는 사람은 그 특정 단어를 가장 몰이해하며 가장 못하는 사람입니다.

전두환 정권의 국정기조는 '정의사회 구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정의를 가장 구현 못했던 정권 중 하나가 전두환 정권이었죠.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정의사회가 구현 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정의사회'입니다.  죄 지은 놈은 죄값을 받게 하는 그런 정의말이죠. 

정의의 반대는 불의가 아닌 망각입니다. 이재한 형사가 피해자를 잊지 않았듯 우리도 세상 모든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드라마 시그널 마지막 장면은 위 포스터처럼 3명의 형사가 대포집에서 소주잔 기울이는 모습으로 끝났으면 좋겠네요. 현실이 시궁창이지만 드라마는 환타지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