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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3

추억의 달고나, 이젠 달고나 자판기로 즐기다 국민학교라고 말하면 가끔 초등학교로 고쳐서 말하라고 합니다 그럴때면 내가 초등학교 나왔냐? 국민학교 나왔지라고 맞받아칩니다. 네 저 국민학교 나왔습니다. 초등학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대 업적인 96년 경에 국민학교가 일본식 표현이라고 초등학교로 바꾸었죠국민학교 오전 수업을 끝내면 부리나케 달려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달달한 달고나 아저씨 앞에 둘러서는 아저씨가 찍어주는 반달 토끼등을 찍어주면 호호 불면서 살살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 먹었습니다. 모양 대로 잘 뜯어내서 아저씨에게 보여주면 아저씨가 인정해주면 새로운 한판을 무료로 먹을 수 있습니다가장 난위도가 높았던것이 비행기였습니다. 비행기도 전투기가 아닌 프로펠러기여서 따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모양대로 따낼려고 바늘을 이용하는 친구도 있었죠. 뽑기와 함께.. 2012. 4. 9.
국민학생 준비물과 초등학생 준비물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것이 준비물이었습니다. 숙제는 밤 11시까지 하더라도 하겠는데 준비물은 구하기 힘든것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실고추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5학년 실과 시간이었는데 나박김치를 만든다고 실고추가 필요했습니다. 실고추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제가 맡았구요. 집에가서 어머니에게 실고추 준비해야 한다니까 늦게 들어오신 어머니는 이집 저집 다니면서 실고추를 구하셨었죠. 그런데 실고추가 자주쓰는 것도 아니고 나박김치라는것을 잘 해먹지도 않아서 구하기 힘들더군요. 그렇다고 시장에 가자니 너무 늦은 시간이었구요. 결국 고추를 얇게 써시더군요. 나는 나대로 화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화나고 또 한번은 이런적이 있었죠. 국기함을 학교에서 만들어 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교과.. 2008. 3. 17.
콧수건 달고 했던 국민학교 입학식 지금이야 초등학교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국민학교 입학식이요. 담임선생님 앞에서 앞으로 나란히를 수없이 해서 짜증나던 입학식 여자 짝꿍의 손을 잡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손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던 내 모습을 어머니는 못마땅하셨는지 달려와셔서 손을 꽉 잡아 주시고 뒤켠에 있는 학부형의 무리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참을 그렇게 잡고 있었습니다. 3월이네요. 그리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달력은 1월부터 넘어가지만 학생들의 한해의 시작은 3월입니다. 3월의 학교앞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학생들의 표정에서 느낄수 있습니다. 오늘 학교앞을 지나가다가 한무리의 신입생인듯한 학생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가.. 2008.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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