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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콧수건 달고 했던 국민학교 입학식 본문

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콧수건 달고 했던 국민학교 입학식

썬도그 2008. 3. 4. 00:23

지금이야 초등학교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국민학교 입학식이요.

담임선생님 앞에서 앞으로 나란히를  수없이 해서 짜증나던 입학식 여자 짝꿍의 손을 잡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손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던 내 모습을 어머니는 못마땅하셨는지 달려와셔서
손을 꽉 잡아 주시고 뒤켠에 있는 학부형의 무리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참을 그렇게 잡고 있었습니다.

3월이네요. 그리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달력은 1월부터 넘어가지만  학생들의 한해의 시작은
3월입니다.  3월의 학교앞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학생들의 표정에서 느낄수 있습니다.

오늘 학교앞을 지나가다가 한무리의 신입생인듯한 학생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e-영상 역사관

79년 국민학교 입학식은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가슴에 콧수건이 달려 있었어요.
왜 그시절 국민학생 1학년들은 코를 많이 흘렸을까요?  개그코너에서 콧물자국 그려서 나오는데
그 시절에는 정말로 콧물자국이 있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항상 코를 달고 다니는 친구도 많았구요
저요?  저도 달고 다닌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것 있었어요.  항상 계절이 바뀔때마다 가래가 많이
생기는지  길가다가 가래가 나오면 바닥에 뱉으면 되는데 수업시간엔 참 난처하더군요.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제 모습이 생각나네요. 가르마 없는 머리  저는 가르마를 탄게 중학교때인것 같아요.
가르마 타면 랄랄이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했는데  참 순진무구했던 시절이죠.  가르마좀 타볼 나이가
된 고등학교떄는  스포츠머리를 고수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가서 1년반 길렀다가 군대가서 또 빡빡깍아
버리고 ㅎㅎ 글이 셌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을 보니 생각나네요. 그때 의자를 가지고 나와서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했던 기억이요.
입학식날 저보단 부모님들이 더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국민학교 입학했다고 자랑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하루를 보내셨구 이젠 다 컸다고 하시던 말씀도 하시구요.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몇일후에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프링으로된 연습장을 접어서 줄긋기를 하고  원을 그리고
단어가 써진  종이를 문방구에서 사서  선생님이 불러준 단어를 단어가 써진 종이속에서 골라서  두손으로
들고 있어야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던 모습.  

그런데 이런일이 있어죠.   내가 사온 단어가 적인 준비물엔 안녕하세요 라고 적혀 있는데
선생님은 안녕과  하세요를  뛰어서 들라고 하시더군요.   나는 안녕하세요 라고 써진건데 어떻게 하나
난처했습니다. 그떄 여자짝꿍이  안녕과 하세요 중간을 접어서 짤라주더군요.!!!
그 짝꿍 지금은 무얼 하고 있으까요?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고마움과 아련함만 남아있네요.

이런일도 있어죠.  79년도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이라서  저학년들은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공부했습니다.  오전에는 1반인 교실이 오후엔 8반이 됩니다.  4교시만 하니 오전 오후 나눌수 있었쬬
오전에 선생님이 준비하라고 한 준비물을 제가 준비를 안해 왔습니다.  1학년인 저는 다음시간에 준비를 해야하는 준비물을 안가져온것을 꺠닫고 쉬는시간에  책가방을 싸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는길은 30분이나 걸렸습니다.  8살의 걸음으로 30분을 걸어가다가 오후반인 동네 형을 만났죠.

너 어디가니?
어 준비물 안가져와서요~~

어머니에게 준비물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놀라면서  제손을 잡고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선생님이 웃으시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엔 준비물 준비 안하면 그냥 맞았습니다.  왜 그떄는 준비할 준비물이 왜 그리 많은지.. 나라가 어려웠으니 대부분을 학생들이 준비해와야 수업이
되었던 시절이기도 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한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10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습니다.
집에가는 길에 대통령을 애도하는 플랜카드가 아직도 눈에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8살의 나에겐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대통령도 총맞고 죽는구나 했었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광주민주화 항쟁도  고등학생인 삼촌에게 어꺠넘어로 듣고
매일 기도하고 잠에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외계인들이 쳐들어 오지 않게
해달라고요.  걱정이 많은 나이죠.(성격탓도 있지만요)  그게 기우였다는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어린나이엔 무서운게 하나둘이 아닙니다.  몇일전 조카랑 얘기하다가 묻더군요.

삼촌 정말 꿈꾸다가 귀신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해? 꿈속에서 죽는 사람도 있어?  가위눌려서 못 꺠어나면 죽는거야?
그럼!!  꿈에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 사람도 많어. 가위 눌려서 못꺠어나면 죽을수도 있지.
(조카 골려줄려고 했었죠)

그런데 조카는 가위눌리는것이 어른들만 할수 있는 특권(?)인줄 아는지 

어휴~~ 어른되면  힘든것도 많구나 어른 안됐으면 좋겠다. 라고 하더군요.


글이 곁가지로 많이 흘렸네요.
뭐 꼭 주제를 놓고 얘기하는것보단  글가는 대로 쓸떄도 글쓰기의 묘미니 이해해주세요


입학식의 설레임이   더 이상 입학식이 없는 나에게도 생기를 돋게 합니다.
3월엔 파란새싹만 돋아나는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꿈도 자라라는 3월입니다.
그 설레임으로 평생을 가져갈 친구들을 만들길 바랍니다. 학생 여러분~~~


5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diarix.tistory.com BlogIcon 외계인 마틴 2008.03.04 01:59 신고 캬.. 정말 옛날 생각을 나게 하시네요.
    저도 저렇게 손수건 달고 입학식했고 1학년때는 계속 달고 다녔던것 같습니다.
    요즘은 서너살만 되어도 코흘리는 애들은 보기힘들지만 저때는 왜 다들 코를 흘리고 다녔는지 ^^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ganum.tistory.com BlogIcon 가눔 2008.03.04 11:19 신고 저는 조금 나중에 입학해서 그런지 콧수건세대는 아니랍니다.^^;;;;
    그래도 풍경은 비슷한 느낌이네요. 아련한 추억입니다..흐흐..
  • 프로필사진 스피릿 2008.03.04 13:43 와우!
    추억이 새록새록(맞는 표현인가요..? -0-)머릿속에서 어린 기억이 떠오르는 사진이네요!
    코흘리던 시절 엄마 손잡고 국민학교 정문에서 징징울며 때쓰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 무엇이 저를 무섭고 낯설게 만들어었는지...감회가 새롭네요.

    저 사진의 역사는 제가 어릴때보다 좀더 과거로의 여행 같군요.
    하지만 분위기가...제법 공감가는 맛스러운 사진이네요.

    추억선물 감솨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happypowder.com/blog/ BlogIcon Alyssa 2008.05.30 17:42 초등학교 준비물에 얽힌 이야기를 보다가, 며칠 새 머리에 맴돌던 단어 하나 찾고
    기분이 좋아 이것저것 다 읽고 있습니다.
    이 글도, 참조하신 사진도 지금 보니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네요.

    운동장에 입학식 하러 왔는데 그 기억이 납니다.
    5,6학년 언니 오빠들은 검은 교복을 입고 있었거든요.
    그 옷 입은 사람들이 참 어른스러보였던 기억이 (그래봐짜 6학년이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서 입학하고도 전체 조례시간에

    교단(연단?)
    6학년 5학년 4학년
    1학년 2학년 3학년

    이렇게 서자면 오른쪽 끝으로, 한 칸 앞으로 또 왼쪽 끝으로 가고 싶었죠.
    지금은 하루하루 가는게 한숨이 폭폭 나는데, 얼른 나이먹고 싶었던 그 어릴적이 그립네요 ㅎ
  • 프로필사진 투머치 2020.03.27 06:58 무려 12년 전 글이군요 ㅎㅎ 저는 85년에 1학년 들어갔는데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저도 콧수건 달았던게 생각납니다. 당시에 서울은 아마 안달았을꺼에요.
    저는 시골중에서도 완전 시골이었거든요. 한 학년당 2반까지밖에 없었죠.
    2학년 때 서울로 이사왔는데 한 학년당 무려 8반까지 있는걸 보고 놀랐었습니다 ㅎ
    다들 얼굴도 하얗고 역시 서울이구나 했던 기억이.. 저도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학생들 동그랗게 원으로 서서 서로 손잡게했는데 제 옆에 여자애 손을 못잡았었어요.
    오히려 여자애가 먼저 제 손을 잡더라구요 얼마나 심장이 쿵쾅대던지..ㅋ
    저 나무의자 생각납니다. 시골에서 1학년 다닐때 저 의자였는데 서울로 오니 역시나 없더라구요.
    시골과 서울의 갭이 꽤 컸던거같아요. 시골에서는 공책이 갈색인데 꺼칠꺼칠해서 연필로 쓰다보면
    금방 찢어져버리고 지우개로 지우는것도 조심하지않으면 찢어졌거든요.
    서울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하얗고 반질반질한 공책에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첫 이사온 서울동네에서 9살부터 18살때까지의 9년이 정말 아주 길게 느껴졌었는데
    성인이 되고 20대 후반즈음에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고 그곳에서 무려10년을 살았는데
    정말 한순간인것처럼 짧더라구요. 추억도 없구요. 잠자고 출퇴근만 하던곳이었으니 뭐 ㅎ
    아련한 옛 추억을 되새길수 있었던 글이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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