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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입니다. 집전화가 오늘 중으로 중지됩니다. 확인 하실려면 0번을 눌러주세요"
흠.. 한국통신이라. KT로 바뀐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올레KT라고 하는데 한국통신이라. 무슨 쌍팔년도 용어를 쓰나 했습니다. 대번에 보이스 피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었더니 계속 똑같은 기계음이 나오고 지풀에 끊더군요
혹시나 해서 KT에 전화를 해보니 집전화 연체되면 문자로 발송하고 휴대전화가 없으면 지로로 발송하기에
보이스 피싱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옛 생각이 났습니다. 나의 첫 보이스 피싱
80년대 중반 전두환이라는 분이 대통령을 하고 있던 그 시절 초등학교 6학년인 저는 무료한 여름방학을 보냈습니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울리죠. 80년대 초 겨우 전화가 개통했던 터라 전화문화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전화는 어머니에게 오고 어머니가 겁니다. 수다를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전화기 통 붙들고 살았습니다. 지금 같이 분당 요금이 나가는게 아닌 한번 걸리면 똑 같은 요금이 나가기에 한번 붙들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잡고 계십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방에 있다가 전화가 오면 나가 놀기도 했습니다.
첫 전화 통화도 기억나네요.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녀석이 단어 하나를 모른다고 전화했는데 한참 어색하게 통화하다가 끊었네요. 지금이야 전화기통 붙들고 사는 시대며 나이가 되었지만 첫 통화에 대한 기억은 또렸하빈다.
여러분의 첫 통화 첫 전화통화 기억하시나요?
그렇게 무료한 여름을 보내던 그때 한통의 전화가 옵니다
"나 현수인데 우성아파트 102동 504호로 와라. 심심한데 같이 놀자"
"어 기다려 갈께"
"빨리와 6학년 2반 얘들 많이 온데"
그렇게 해서 20분을 달리고 걸어서 우성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띵똥 소리에 현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놀라면서 황당하면서 반가운 표정이 순식간에 교차하더군요. 그리고 어떻게 여기 오게 되였나고 하더군요
"니가 불렀잖아"
"내가 언제? 너 혹시 여자얘들이 요즘 남자얘들에게 장난전화 건다고 하던데 당한거아냐?"
"아냐 남자 목소리던데"
"그래. 뭐 어쨌건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들어와라"
그렇게 그냥 가기도 들어가서 편하게 놀기도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런 치욕적일 수 있는 하루 그러나 장난치고는 결말은 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친구네 집에서 재미있게 놀다 왔거든요. 혈우병 때문에 학교 자주 못나가는 이야기와 학교에 못 나가면 집에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등 그동안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치욕은 2학기 개학후에 다가왔습니다.
한무리의 여학생들 그것도 반에서 가장 잘나가고 예쁜 여학생 무리에서 제 이름이 나오면서 깔깔 소리가 나왔습니다
대충 짐작은 했죠. 올것이 왔구나
등을 누군가가 때리면서
"너 현수네 갔다면서. 그거 우리가 남자 목소리 낸건데 너 속았나보네 진짜 갈줄 몰랐어"
.....
뭐 이런 장난 전화는 이 당시 학생들의 소일꺼리이자 장난꺼리였죠. 남의 집 벨 누르고 도망가기와 함께 인기 장난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전화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네요
여자친구나 여자후배 집에 전화 할려면 꼭 부모님의 감시어린 말투와 함께 블로킹도 많이 당했죠.
별 생각없이 심심해서 전화를 해도 꼭 부모님을 통해서 받은 경우가 많아서 쓸데 없이 걸수도 없었고요.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바로 걸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나요.
전화 홍수시대에 통신비 과소비와 스펨전화가 극성이네요. 한국통신 보이스 피싱에 옛생각이 나네요
그나저나 오늘 보이스피싱 한 사람들은 참 멍청하네요. 한국통신이 언제적 한국통신이예요
아.. 오히려 똑똑한것 일수도 있네요. 저 같이 젊은 사람 말고 노인분들에게는 여전히 KT가 아닌 한국통신이니까요.
전화 끊어진다는 소리에 대부분 0번을 누를 분들이 많을 듯 하네요
글로벌 시대의 병폐중 하나겠네요. 국제전화가 비쌌다면 스펨 전화 많이 걸지도 않을 텐데요. 국제적인 공조및 한국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합니다. 신고하면 피해가 없으면 신고접수도 안받아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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