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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공지영, 그 많던 안티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by 썬도그 201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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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운동권의 현장감을 쉬운 언어로 쓴 작가 공지영

90년대 초는 386세대라고 불리는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의 선배들이 지나간 후였습니다. 90년대 초는 노태우 정권에서 93년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권이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이 때도 지금보다 대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했지만 대학생 시위의 정점은 87년 6.10 항쟁이었습니다. 

마치 2008년 촛불시위가 1백만명이 광화문에 모인 6월10일 이후 촛불시위는 계속되었지만 점점 사그라드는 촛불과 같았죠.  치열했던 시위문화를 간접화법으로 배우던 시기였습니다. 87년 때는 전국의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했지만 90년대 초는 일부 대학교만 시위를 했습니다. 

제가 몇년만 더 일찍 대학교에 갔다면 저도 386세대라고 불리면서 그 치열한 사회의 생체기를 온 몸으로 경험했겠죠.
하지만 그 치열한 현장은 대부분 사라진 후 식이 끝난 식장에 들어간 느낌이었따고 할까요. 매케한 최루탄 냄새는 가득했지만 그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 시위의 현장음을  소설로 풀어주는 소설가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자신의 문학적 소양과 계몽위주의 글들이었죠. 이때  동트는 새벽과 '인간에 대한 예의'등으로  그 현장음을 쉬운 대중의 언어로 생생하게 풀어내는 여류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공지영입니다.
어제도 성석제나 다른 동료 문인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386세대들의 향기가 나더군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여자후배들이 남자선배에게 동성처럼 형이라고 부르는게 유행이었습니다.  이성이라는 남녀의 거리감을 없애고 연애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보호막이었나요?  당시는 형이라고 부르는게 유행이었습니다.
연애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사회동참.  그 시대는 자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사회를 위하는 대학생들이 많았죠

그렇다고 지금의 대학생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대학생들이 더 불쌍하죠
당시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대학교 졸업만 하면 대부분 취직이 잘 되었습니다. 지금 같이 대학진학률이 80%도 아니였죠  약 30% 전후의 대학진학률로 인해 대학생이 희소가치가 있었습니다. 
대학4년중 3년내내 시위를 하고 대학 4학년때 공부해서 졸업하도 취직 술술 잘되던 시절이었죠


동화책 까지 썼던  다작의 여왕  공지영



공지영은 책을 참 많이 낸 작가중 한 사람입니다. 거기에 인기작가이기도 했죠.
특유의 대중취향의 쉬운 글쓰기로 그녀의 작품은 베스트셀러 10위에 3권이 동시에 오르는 기현상도 보였습니다
1위 고등어,  2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위 인간에 대한 예의
지금은 3권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1위 고등어는 불륜에 대한 소재도 있고 치열했던 80년대의 생채기도 있었던것으로 기억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남녀평등을 그리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인간에 대한 예의는 단편모음집이었죠. 인간에 대한 예의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고 아직도 기억나는 단편들이 있습니다. 

공지영은 어떤 작가라고 정의하기 힘들게 자신의 과거이야기를 술술 잘 풀어 씁니다. 시위 많던 대학시절을  책으로 쓰기도 하며  어린시절의 이야기인 '봉순이 언니'를 풀어내기도 했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사형수의 이야기를 담았고  도가니에서는 현실참여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전 공지영이 다른 작가보다 좋았던 것이 바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걸 문학으로 풀어낸다는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자기 안으로 숨었다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 속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는 도가니 같은 소설은 그녀의 매력포인트를 하나 더 늘려 주었습니다.  생떽쥐베리가 레지스탕스 일을 하면서 소설을 썼듯 그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녀를 비판하는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시류나 사회동참적인 글을 쓰면서 날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죠
전 반대로 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테두리에서 대중 니들이 멍청한거지 공부해서 우리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기존 문단의 문인들이 오히려 자폐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시는 분 별로 없겠지만  공지영은 동화책도 참 많이 쓰는 작가입니다. 데뷰때 '미미의 일기'라는 동화책을 쓰기도 했고
어린왕자를 쓰기도 했습니다. 아는 후배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공지영때문에 미치겠다는 말에  왜 그려냐고 물었더니
동화책 하나 맡겼는데 1년이 지나도 책이 안나온다면서 짜증을 내더군요.  
공지영이 동화책을??    어제도 말했지만 생계형 글쓰기가 동화책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63년생 여류작가  공지영과 신경숙

공지영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크기의 인기를 얻은 여류작가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공지영과 함께 줄창 읽었던 신경숙 소설,  군대에서 여류소설가 책만 읽는다고 핀잔 들었던 일도 생각나네요
둘은 참 많이 다릅니다. 

신경숙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정읍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때 돈을 벌로 서울에 올라와서 고시원과 비슷한 가리봉 벌집촌에서 공장일을 했었습니다. 야간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예전에 들어가죠. 
반면 공지영은 부자집 딸로 태어나서  연대에 입학 졸업을 합니다.  63년 동갑이지만 둘의 태생적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여기에 두 작가의 글쓰기가 많이 다릅니다.

신경숙 소설은 소녀적인 글쓰기로 귓속말 하듯 소곤소곤거립니다. 그녀의 책을 읽을려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원의 노래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경숙 소설,  그녀도 공지영 못지 않게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습니다.
남녀사이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던 신경숙,  깊은 슬픔, 깊은 숨을 쉴떄마다. 바이올렛, 풍금이 있던 자리, 빈집, 
외딴방등이 있죠.  외딴방 같은 경우는 각혈을 하듯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풀어낸 소설이었는데  80년 당시의 여공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공지영이 그 당시 가리봉 전자회사에 위장취업을 했던 대학생이었다면  공지영은 거기서 일을 하던 여공이었죠
그 여공시절 이야기를 담은 외딴방은 프랑스에도 소개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이 됩니다.

공지영의 소설은 활달합니다. 투쟁하고  대들고  앙칼지게 사회문제를 헤집어 냅니다. 
신경숙보다 외향적인 글쓰기죠.  마치 톰보이 같다고 할까요.  전 이 두 여류작가의 책을 모두 좋아합니다
공교롭게도 63년 동갑이 이 두 여류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런것 까지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개인적인 사생활도 둘은 참 많이 다르죠

나이만 똑같고 모든게 달랐던  두 작가.  이 두 여류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가 되었고  두 작가의 책은 내는 족족 베스터셀러가 됩니다

안티많던 공지영  커밍아웃 후  안티들이 사라지다

공지영 작가처럼 안티가 많은 작가가 있을까요? 지금은 덜 하지만 공지영 작가는  평론가, 동료소설가등 그의 글쓰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무릎팍 도사'에서도 밝혔지만 예쁘다는 이유로  얼굴팔아서 글 쓰는 작가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가 쎄다고 하나요.  이혼을 수차례 한 개인 사생활까지 더해져서 공지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잘난척 한다라는 이유로 비판도 참 많이 받았고  평단에서는 문학의 깊이는 없고 대중취향적인 글을 쓴다는 이유로  비판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공지영 말도마 기가 쎈건지  이혼을 몇번이나 하냐. 또 이혼했데~~
얼굴 값 하는건지  얼굴 예쁘면 저런가 보다. 예술가들은 다 그런가봐~~ 라는 수근거림이 많이 들렸습니다
공지영이 예쁘다??  지금이야 예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작가치고는 예쁜 작가였죠. 인기 여류작가가 많지도 않고 있어도 예쁨과 거리가 먼 작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공격포인트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공지영은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생활에 대한 뒷담화와 언어적 폭력이 많았고 결국은 그녀가 절필은 아니지만 7년간 칩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이 다른 아이들 3명을 키우는 싱글맘, 
이 기구한(?) 모습을 이해할 대중이나 언론은 많지 않았고 항상 헤드라인에  그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공지영이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게 된것은  언론사 덕분이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한 신문사가 그녀의 상처를 제대로 건드렸고 까발렸습니다

3명의 성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작가
오히려 이게 계기가 되어 세상에  당당하게 외칩니다. 이혼녀, 그것도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한 이혼녀라고 당당하게 세상에 말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커밍아웃하고 오히려 그녀는 인기가 더 많아 집니다.

안티들은 참 신기한게 움츠러들수록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당당하게  모든것을 인정하고 들어 내놓으면 사라지죠.   제 글을 보고 어떤 분이  문제점을 강한 욕설로 지적하더군요
그래서 쿨하게  인정합니다 라고 했더니 혼자 토악질 하던 악플러쉬를 멈추더군요.  

그렇다고 안티가 모두 사라진것은 아니죠. 여전히 그녀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다만 예전같이 얼굴, 개인사생활로 공격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요즘 어느때 보다 활발한 글쓰기를 하는 공지영,  

신경숙 작가와 함께 평생을 가져가면서 함께한 여류작가입니다.  앞으로도 대중적인 눈높이의 글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감동을 주는 책을 써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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