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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영서와 처세술 책만 읽었더니 속이 좀 허합니다. 처세술서나 경영서에는 직장에서 일상에서의 혜안을 담고 있지만 삶을 담아내고 있지 못합니다. 직장생활도 삶이긴 하지만 존재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양복입은 삶 말고 옷을 다 벗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그런 존재론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없죠.
옛 고전이 좋은 이유는 그런 삶과 존재의 폐부를 찌르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시선과 성찰과 통찰이 있습니다.
실존주의의 대가 샤르트르의 벽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고등학교 현대문학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잠깐 말해주었던 책이였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그때 선생님이 말한 책이 '벽'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스페인 내전으로 반역죄로 잡혀온 톰과 후앙 그리고 주인공 파블로는 넓고 하얀방에 떠밀려 들어가게 됩니다. 후앙은 자신의 형의 잘못을 뒤집어쓴 불쌍한 청년이었습니다. 톰과 파블로는 덤덤하게 지낼려고 노력합니다.
잠시 후 한 소령이 들어오더니 3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두 사형이라고 선고합니다.
즉결심판이죠. 파시즘과 광끼가 점령한 20세기 초의 스페인의 풍경이자 2차대전 전세계의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긴 밤을 뜬눈으로 보내야 하는 3명의 사형수, 그때 의사가 들어옵니다.
이 의사는 이 3명의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의사를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주인공 파블로는 경계심을 보이죠.
이 의사는 떨고 있는 후앙의 목과 머리를 만지면서 마치 몰모트를 관찰하듯 죽음의 공포앞에서 사람의 신체의 변화를 체크하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그 모습에 파블로는 더 큰 분노를 느낍니다.
파블로는 깨끗한 죽음, 떨지 않는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추운 겨울밤을 반팔과 삼베바지를 입고 있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이런 정체모를 땀은 톰과 후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의사, 정신은 죽음에 대해서 강건하고 자신있어 하지만 신체는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더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파블로,
이 소설은 죽음을 앞둔 3명의 사형수의 심리와 신체묘사가 너무나 뛰어나서 마치 내가 그 어두운 공포의 밤을 느끼게 하는 마력과도 같은 힘이 있습니다
해가 뜨자 다른 감방에 있던 동료들이 총살을 당합니다. 그 총소리에 더 공포감을 느끼는 3명,
잠시후에 철문이 열리고 톰과 후앙을 데리고 나갑니다. 후앙은 흐느적거리면서 끌려 나갑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파블로만은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잠시 후 파블로는 장교사무실에 데리고 가고 동료인
'라몽그리'가 숨어 있는 위치를 알려주면 사형은 보류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미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 파블로 이비에타에게는 그런 제안이 웃길 따름입니다.
파블로는 침묵하는 대신에 군인놈들 고생이나 시키자고 생각하고 무덤가에 가면 있을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30분 후 파블로는 사형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송됩니다.
죽을줄만 알았는데 재판을 받을거라는 말에 어리둥절해진 파블로, 그때 마을에서 잡혀온 빵집 주인과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군인들 골려줄려고 말한 무덤가에서 '라몽그리'를 발견한 군인들이 그 자리에서 라몽그리를 총살했다는 것 입니다. 군인들 골려줄려고 했던 농담 같은 말이 진실이 된 이 엄청난 부조리에 파블로는 크게 웃습니다
실존주의는 1.2차대전이 만들어낸 철학이기도 합니다.
19세기말 과학이 발달해서 과학지상주의가 만연한 인간들은 기고만장해집니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진 인간들은 자신들을 한없이 고귀하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1.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그 꿈이 허무하게 무너지죠. 인간성은 박살이 나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심해지면서 발생하게 실존주의죠.
이 소설 '벽'에는 부조리가 많이 나옵니다. 먼저 고귀한 죽음을 다짐했던 파블로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그 추운 방에서 반팔을 입고 식은땀을 밤새 흘리는 모습,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산자의 대표인인 의사가 측은심이 아닌 과학자로써 생체변화를 관찰하는 모습, 거기에 가장큰 부조리는 선의의 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엄청난 아이러니가 나옵니다.
의사와 사형을 앞둔 사형수 사이에는 '죽을 자'와 '산자'의 벽이 있습니다. 거기에 사형수 3명의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벽이 있습니다.
벽에서 3명의 사형수들은 하루밤을 죽음의 공포에서 지내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경우 허리우드 영화라면 히어로가 와서 구출해 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3명의 주인공은 어떠한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합니다. 그냥 주어진 삶을 따라가야 할 뿐입니다
죽음을 알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울까요? 후앙은 의사에게 묻습니다.
총을 쏴서 한번에 죽지 않으면 두번쏜다면서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얼마 남지 않는 삶의 미래를 예상하고 두려워 합니다.
톰과 파블로는 과거를 생각하긴 하지만 그들 또한 죽음이라는 옷을 벗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파블로는 죽음을 앞둔 삶의 대한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장교는 말합니다. 파블로 니가 '라몽그리'를 밀고하면 넌 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파블로는 콧방귀를 낍니다. 그리고 군인들을 골탕먹일려고 이렇게 말하죠. 무덤이나 가보쇼~~~
그러나 농담조로 말한 그 말이 진실이 되어 돌아 왔고 '라몽그리'가 실제로 무덤가에 숨어 있다가 군인들에 의해 총살 당했을때의 파블로는 크게 웃어버립니다. 만약 파블로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고 그냥 침묵을 지켰다면 '라몽그리'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게 의도하지 않는 참혹한 결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댓가를 평생 짊어지면서 살아갸야 합니다.
무시무시한 인간성 파괴의 현장을 목도한 지성체 샤트트르는 인간본질을 넘어서는 실존을 들여다보는 휴머니즘으로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자신의 형의 잘못을 애먼 동생이 뒤집어쓰고 죽어야 하는 비참한현실, 그속에서도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에 따라서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모습, 파블로의 의도되지 않는 미필적 고의의 선택으로 인해 '라몽그리'의 존재는 파괴됩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강건할것 같으면서도 아이러니 하게도 훅하면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기도 합니다. 인간은 무엇무엇이 될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태어난 후 수많은 선택을 통해서 무엇무엇이 되죠. 태어난 후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들 속에서 실존적 존재가 완성되어갑니다. 그 존재를 완성해가는 과정에는 선택이 있습니다. 선택뒤에는 항상 책임이 뒤 따르죠
파블로가 허망하게 웃었던것은 평생 짊어질 자신의 선택에 대한 어이없음과 인생의 우연성에 대한 허무함이겠죠. 신을 믿지 않았던 무신론자 샤르트르는 신이 없는 담백한 세상을 담고 있습니다.
' 인생은 B(brith) 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
장 폴 샤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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