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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말에 인천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여행을 갔다오면 꼭 바리바리 싸들고온 사진과 동영상 편집문제로 난감해 할때가 많습니다. 제가 게으른것도 있지만 PC가 오래되서 편집시간이 길고 그러다 보면 지쳐버리더군요. 이번에 PC 최신형으로 바꾸고 밀린 여행기들 좀 처리좀 해봐야겠네요
사실 인천을 여행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좀 가깝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1시간도 안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거리면 집에서 서울시청 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시청부근에는 자주 나갔지만 인천쪽은 잘 안가게 되더군요. 딱히 갈일도 없죠. 인천쪽에 사는 친구도 없으니까요
더구나 저 끝 동인천쪽은 고등학교때 대학 떨어지고 영종도의 을왕리 바닷가 갈때 한번 가보고 대학때 출사간것이 전부입니다. 대학때 월미도 출사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인천여행기가 좀 길어질듯 하네요.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그 6시간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느낌과 생각과 채취를 담았습니다. 이번글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편입니다.
출발전에 동인천까지 가는 전철시간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최근에 인천행이 복선화 되어서 급행열차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즉 동인천까지 급행으로 가는 전철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동인천 급행열차는 15분에 한대씩 습니다. 정말 자주있네요. 구로역에서 동인천까지 약 30분 걸린다고 합니다.
동인천역 4번출구를 나오니 재개발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이곳도 뉴타운 같은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듯 합니다.
선거때만 한표 부탁하고 당선되면 나몰라라 하는 모습들 너무 많이 봐서 저 플랜카드들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네요.
참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이야기를 안했네요.
사실 이곳을 갈려고 간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이 목적이었고 집을 나설려다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동인천역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어 급하게 끼어 넣게 되었습니다. 인천 어느지역에 달동네 박물관이 있다는 소리를 이전에 많이 들었던 터라 한번 들려보고 싶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쭉 올라가면 달동네 박물관이 나옵니다.
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불량주택인 달동네가 있었구요.
잉크병에 펜촉 찍어가면서 글씨 쓰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도 펜촉으로 글씨 써봤는데 잉크가 가방에서 쏟아져서 낭패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엔 다들 잉크한번 엎어본적 있었을 거예요. 꺼끌꺼끌한 잉크펜촉. 그러나 그 느낌이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파주 헤이리에 20세기 소년소녀관이 있는데 그곳도 추억의 물건을 많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긴 추억의 물건을 전시만 하는데 이곳은 판매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저 추억의 물건만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보존상태들이 너무 좋은데 누가 준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더구나 이곳처럼 판매까지 하는 모습에 중국에 공장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80년대 한국의 추억의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 참 재있는데요.
저 동그런 딱지 지금도 파나요? 드래곤볼이 찍힌걸 보면 파는것 같기도 한데 요즘 아이들은 메이플 딱지를 많이 가지고 다니더군요
아 이 권법청년 참 재미있게 봤는데 권법소년도 있었죠. 전성기 글그림이지만 이 작품 일본작품을 그대로 배낀것이더군요.
그걸 최근에 알았는데 이 80년대 90년대 초는 일본 만화들이 불법 카피되서 많이 팔렸습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죠.
만화만 그랬나요. 노래들중에서도 일본 노래 카피한 노래도 며개 있었죠.
물론 부잣집들은 이렇게 걸어놓지 않았죠.
기계추가 달린 괘종시계. 저 어렸을때 본 그대로네요.
한쪽에 붙어 있는 우등생은? 이라는 글귀에 눈이 쏠리네요. TV,신문,잡지를 삼가하며 영어는 큰소리로 교과서를 왼다.
수학은 연습장을 많이 쓴 사람이 1등이다. 국어공부는 하루이틀로 안된다. ㅎㅎ 재미있는 글귀입니다.
저 항목중 많은 부분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저는 저런 일본식 교복 바로 다음세대여서 저 교복을 입어보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교련복은 정말 잘 입고 다녔습니다.
교련이 있는 날은 교련복 입고 등교하던 모습. 지금도 교련은 있지만 예전같이 군사훈련은 안하다고 하네요.
지금 남북한 긴장상태인데 전쟁나면 고등학생들도 총들고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엔 대학생들도 교련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교련시간에 제식훈련 다 배우고 군대가니 군대에서 솔직히 배울게 별로 없더군요.
이 집은 조금 사는 집안같습니다. 이렇게 마루가 있는 집은 조금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죠.
저 비키니 옷장. 어렸을때 세들어 살던 신혼부부가 저 비키니 옷장 하나만 놓고 살더군요.
그분들 요즘 뭐하고 지내시나 궁금해지네요.
저 미닫이가 있던 흑백TV, 저게 집에 들어오는날 난리가 났었습니다. 동생들과 방방 뛰었구요.
그러나 자주 고장나서 난감했죠.
어렸을때 쌀이나 옥수수등을 가지고 가서 돈을 내면 크게 만들어주던 마술사가 따로 없었어요.
저 주렁주렁 달린 것은 제 기억으로는 미수가루나 먹는 가루였던것으로 기억해요.
저가 뜯어서 손바닥에 뿌려놓고 혀로 핥아서 먹었는데 다 불량식품이죠. 그런데 아무 탈 없었습니다.
장난감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서 풍선하나사서 며칠을 논 기억도 납니다. 풍선으로 집에서 게임하고 배구도 하고 참 재미있게 놀았는데ㅎㅎ
칠성코라도 있었나요? 전 먹어본적이 없어서. 칠성사이다. 코카콜라. 킨사이다, 오란씨, 환타등을 마시던 80년대
그 80년대를 넘어 한세대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왜 달동네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80년대 초 KBS에서 방송한 달동네라는 드라마 때문에 달동네로 불리워지게 됩니다.
달과 더 가까운 동네 아니 달을 더 크게 볼수 있는 동네라서 달동네라고 불리던 그곳은 집없는 사람들이 무허가로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국가가 달동네를 철거하면 서민들은 또 하염없이 다른 달동네를 찾아 떠났습니다.
서울 난곡이라는 동네도 달동네로 유명했습니다. 그곳은 지금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은 8.7%로10명중 한가정만 재정착하고 다들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뉴타운이라는 개발지상주의가 많은 공동체를 파괴했고 지금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재정착율을 50%로 올린다고 하지만 하나의 수사학일 뿐입니다.
박물관은 오래된 물건들만 전시하는 곳이지만 달동네 박물관에서본 이미지를 안고 현재를 살고 있는 분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박물관속 이미지로 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실인 모습을 생각하면서 수도국산 달동네를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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