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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틈나는대로 가는 고궁은 창경궁입니다. 아름다운 경치도 일품이고 조용하고 기품있는 춘당지도 있구요. 볼거리도 많은 고궁입니다.
경복궁은 왠지 고풍스러운 이미지가 없어요.  궁의 규모만 컸지 왠지 정이 안가고  덕수궁은 동서양의 건축물의 조화가 좋은데 너무 작은게 흠이구요.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고궁은 어디일까요?  저는 창덕궁을 꼽고 싶습니다.
창덕궁은  가이드관광과 함께 자유관광을 매주 목요일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장료가 비싼게 좀 흠이고  큰 호수가 없어서 좀 밋밋합니다. 하지만  부용지와 같은  한국화에 그려질만한 단아한 풍경들이 많이 있습니다. 눈오는  날 그곳을  다녀 왔습니다.


자연을 닮은  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태종때 건립된 궁궐입니다.  경복궁이 임진왜란때 소실된후  터가 불길하다는 말이 돌아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이사를 갑니다. 270년간 즉 조선시대 반 이상을 이곳에서 조선의 왕들이 기거를 했습니다.
창덕궁은  작은 언덕과 산을 품고 있는데 산을 깍지 않고 그 능선을 그대로 이용해서 건축물을 지어서  자연의 품속에 고궁이 들어 앉은 모습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궁궐 보존을 위해서 가이드 관광을 합니다. 매 15분 45분에 한국어 가이드가 시작되는데  전체를 도는데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가면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다리의 이름은 금천교입니다. 그 밑에 냇물이 흐르는데 지금은 흐르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이 금천교에 물을 흘려 보낸다고 하는데  내년 봄이나 가능한 가 보네요



아담한  행사장인  인정전

조선의 궁궐들은 이런 2층다리 거대한 목조건물이 있고  그 앞에 표시석들이 있습니다.
경복궁의 인정정이 가장 크고 우람합니다. 창덕궁에도  인정정과 비슷한  목적인 인정전이 있습니다.
인정전은 정전으로써 왕의 행사나  사신을 대접하고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를 하는 하나의 강당이나 행사장 같은 곳입니다.
이 조선의 궁궐들이 과학적이라는것이 이 곳에서  음악연주를 하면  오페라하우스처럼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맴돈다고 하네요.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조상님들의  지혜는 정말 뛰어 났네요.



왕이 저 곳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 봤겠네요. 



경복궁 인정적보다는 작지만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입니다.  


왕의 사무실 희정당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희정당입니다.  이 희정당은 바로 옆에 있는 편전인  선정전이 좁고 비좋아서  왕의 편전을 선정전에서 희정당으로 옮겼습니다.  선정전은  청기와로 만들어져서 정말 아름다운 지붕을 가진 건물이죠. 청기와는  청색을 내는 안료를 수입해서 만들어야 해서  가격이 비싸서  조선의 궁궐에서도 보기 힘든 지붕색입니다.  

이게 선정전 지붕인데요. 흐린날이라서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네요.  이 사진 찍는데 나가라고 하네요.
왜 그런가 봤더니  소방시설 공사한다면서  들어오면 안된다고 합니다. 

고궁들은 화재에 약한데  화재에 대비한 공사를 하나 보네요. 이게 다  숭례문을 화재로  잃은 뒤에 정신차린 모습이죠.
늦게나마  소방시설 제대로 갖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생석회로 만든  시멘트같은  지붕의 테가 참 아름답습니다. 단청색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카메라로 많이 담게 되네요



희정당은  좀 특이한 모습입니다. 저 앞에 보면 서양의 고급주택에서나 보이는  반달형 주차파킹시설이 있습니다. 
사실 저곳에서  고종이  어차(자동차)를  내리가 타곤 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죠.  



조선왕실의 대표상징이미지인  오얏꽃 문양이 있습니다. 이 오얏꽃을 많은 분들이 배꽃으로 알고 있는데 배꽃이 아닌 복숭아 꽃이라고 하네요.  저도 배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날렵하게 올라간  처마끛이  캉캉춤을 추는 무희 같습니다.


이 곳에서  고종이 어차를 타고 내리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고종과 순종은  어차를 많이 타고 다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고종과 순종의 어차는 경복궁옆 고궁박물관 지하1층에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희정당을 지나서 침전인 대조전으로 향했습니다. 희정당과 대조전은  구름다리 같은  이동통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버선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희정당에서 집무를 하고  대조전에서  휴식을 취할때  신발을 신지 않고 이동 할 수 있었겠네요



왕의 침전 대조전

조선의 궁궐을 돌아 다니다 보면 대조전처럼  용마루가 없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지붕위에  뭔가 하나 빠졌죠.  용마루가 없는데 왕이 용이기 때문에 용이 용을 누르는 형상이 되어 용마루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곳은 왕비가 기거하는 곳으로 왕의 침전이기도 합니다.  이 대조전은  1910년 경술국치인 어전회의가 열린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대조전은 화재로 소실된것을 1920년 경복궁 교태전을 뜯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궁궐들은 목조건물이라서 화재에 참 취약했어요. 


제가 눈오는 날에 고궁을 자주가는데  수묵화 같은 풍경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은 기와가  하얀색으로  바뀌는 모습이 참 생경스럽고 좋네요.










작은 언덕을 넘어서 


창덕궁의 보물 부용지

부용지는 창덕궁의 꽃입니다.  이 부용지는  왕들과 학자들의 도서관이었던 주합루안에 있는 규장각과 서향각이 있고  한쪽에서는 어린아이가 연못에 물장구를 치듯 서 있는 부용정이 있습고  연못 오른쪽에는 행사를 하던 영화당이 있습니다


연못인 부용지 한가운데는 작은 섬과 같은 곳이 있는데 가이드 분이 말하길  정조가 부용정에서 친한 학자들과 신하들을 불러  술과 음식으로 풍류를 즐기면서   시 한편을 시간내에 짓도롤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시간내에 시를 못 만들어낸(?) 신하는  작은 배를 태워서 저 작은 섬에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정말  멋진 모습 아닌가요? 풍류라는게 이런것이겠죠.  




전 이 부용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가지 들었습니다. 아담한 사이즈에 열십자 모양의 독특한 건물  이 곳에서 조선의 왕들이  물고기를 잡으면서 술 한잔씩 했다고 하는데  이 곳에서 신선놀음이 간절해 지네요


병품을 접어 놓은듯한 모습이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 부용정이 닫혀 있던데 습기 때문인지 열어 놓았네요.
요즘 고궁들 가면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주변의 웅성거림은 온통  일어와 중국어 뿐이더군요. 한국의 고궁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한다면 규모면에서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담하고  정감있고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은  그들의 나라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부용정에서 바라본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입니다..


부용정을  떠 받들고 있는 두 기중이 연못에 잠겨 있는데  연못에 발 담그고 있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산기슭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사정기비각이라는 곳 입니다. 비각에는  부용지를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이 적혀져 있고  부용지의 수원이기도 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사정기비각 오른쪽에 있는 용두(용머리)의 입에서 계곡물이  연못에 흘러 들어 갑니다.




이곳이 여름에는 연꽃이 펴서  아름다움을  더 합니다. 겨울에도 여전히 아름답네요.


창덕궁의 도서관 규장각과 주합루

정조는  공부를 정말 많이 한 왕입니다.  틈나는대로  책을 읽고  학자들과 학문을 읽히고 토론을 했었죠.
저 뒤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 규장각입니다. 1층이 규장각이고  2층이 주합루입니다. 1층은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이고 2층은 열람실인 주합루인데  2층이상의 건물들을 누각이라고 하죠.  이 2층 주합루라는 누각에서  책을 펴들고 부용지를 보면서 책을 읽었을 조선의 학자와 정조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좋더군요.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더 잘될것 같기도 한데 풍광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영화당은 행사를 하는 곳이였습니다.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의두합과 기오헌

부용지를 지나서  뒤켠으로 가면  단청이 없는  무채색의 건물들이 보입니다.
컬러 사진들만 보다가 흑백사진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궁궐에 이런  소박한 곳이 있나 할 정도로  단청이 없는 두 건물을 만날 수 있스빈다.

이곳은  기오헌입니다.  궁궐안의 건물 같지 않고  저 지방의 양반집 같아 보입니다.
이 기오헌은  조선 23대 왕 순조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지은 곳 입니다.  저는 이 건물을 만든  효명세자 성품이 참 검소했구나 했는데
직접 기거하거나 사적인 공간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성품도 할아버지를 닮았을 것 입니다. 이 곳에서 책과 공부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22살의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후에 아들인 헌종이 익종으로 추존을 하게 됩니다. 죽은 후에 왕이 된 효명세자네요



옆에 정말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곳은 의두합인데 사람들이 이곳을 화장실 아니냐고 묻곤 한다는데 
가이드 분이 말하길  이곳은 서재였다고 하네요. 책을 여기에 쌓아 놓고  기오헌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네요


연꽃을 사랑한  숙종이 만든  애련정과 애련지

이 기오헌과 의두합 바고 앞에는 불로문과 함께  애련정이 있습니다. 이곳도 네모 반듯한 연못이고 연꽃이 흐드러지게 담겨 있는 곳 입니다.
숙종이 연꽃을 무척 좋아해서  이 곳의 연꽃들을 무척 좋아했고  이 곳 호수의 이름을 애련지라고 짓고 그 옆에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정자 이름은 애련정입니다  



고종이 접견장으로 활용한 연경당

애련정을 지나서  좀 더 들어가면  창덕궁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연경당이 나옵니다.



연경당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단청도 없구요.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집안의 모습을 닮았는데  양반들이 99칸의 방을 만들었다면  이 곳은 궁궐답게(?) 120채의 건물로 만들어 졌습니다.  효명세자때 만들었다가 고종때  외국공신의 접견실로 활용했습니다.



청나라풍 건물이 있는데  외국사신들을 맞이할 때 사용했던 곳이네요




고종이 조선의 암울한 미래를  외국공사관들과 밀담을 나눌때 사용했 을 곳으로 보이는데  이 곳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연경당 높은 곳에는  농수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마치 비밀 접견실 같아 보이네요.  높은곳에 있어서  저곳에서  애련정도 보였을듯 합니다. 직접 올라갈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게 조선시대의 하인들이 기거하는 곳 입니다. 방 정말 좁죠. 


건물을 보면  문턱이 높은곳이 있고 문턱이 낮은 곳이 있습니다. 문턱이 낮은 곳이 출입구입니다.  문턱이 높은 이유가 뭘까요?
조선의 계급사회에서도  농땡이를 치고 싶은 하인들이 있었을 것  입니다.  또한  항상  머리숙이고 부동자세로 살아 갈 수도 없죠.
양반들이 안볼때  적당이 눈치껏 쉬는 자유가 있었을 텐데요.  저 문턱이 높은 이유는  밖에서 머리를 드리밀어 방 안을 들여다 보지 않는 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게 짱박혀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준 것 입니다. 문턱 바짝 붙어서 누워서 자면  자고 있는 지 알 수 없죠.
양반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면서도 모른척 했을 것 입니다.



창덕궁은 언제가도 아름답지만  겨울에는 더 운치있고 아름답네요.  시간되시면 아이들과 함께  역사여행을 떠나 보셨으면 합니다. 
가이드 관광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고궁여행을 떠나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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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10.01.03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오랫만에 보는데 정말 아름답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