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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20년만에 다시 찾아본 헌책방

by 썬도그 2009.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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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헌것보다 새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희소가치가 올라가는  골동품(骨董品)을 뺀다면 대부분의 것들은  새것이 좋습니다. 새집이 좋고 새로산 노트북이 좋고 새로산  신발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떨까요?

책은 쉽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절판된 책이고 그 책이  명서라면 희소가치가 올라가  가격이 올라가겠지만  거의 그런일은 없습니다. 절판된 책 대부분이 소비자가 찾지않는  인기없는 책이나  시대가 지나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실용서들은  절판과 함께 사라집니다.  하지만  추억이 묻어나고  책 한 귓자락에  책을 선물해준  사람의  아주 짧은 멘트가 적혀 있는 책이라면 그 책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물론 나에게만 가치가 올라가는 일이겠죠.   일전에  모 신문사 기자분이  바자회 한다고 기증물품좀 보내달라고 해서  몇권의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때  좀머씨 이야기를 보내줄려고 했는데   맨뒷장의 글귀에 감히 보내주질 못했습니다


이책은 이제 15살이 되어가네요. 15년전 책이지만 지금 서점에서 팔고 있는 좀머씨 이야기보다  저에겐 더 소중한 책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대부분의  물건처럼  새책이 좋습니다.  


헌책방을 알게 된것은 외삼촌 때문입니다. 외삼촌이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  어사 박문수란 만화책을 사다주었습니다.
뒷동산 풀밭에서 하늘을 베게삼아서 읽고 있었는데   책 중간에  라면먹다가 국물이 떨어진 페이지가 몇페이지 있더군요.  국물은 말라서 스프가루가 붙어있던  책, 당시 좀 깨림직했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그게 헌책임을 그때 알았죠. 이후에  헌책방을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새책보다  싸다는 이유때문이죠.   중학교를 올라가서  전 과목 참고서를 사야하는데 새 참고서로 사면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엄청비쌌거든요.  가정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는데   고민이 많았죠. 새참고서를 사자니 비싸고  안사자니 공부하기 힘들고   그때 친구가  학교앞 헌책방을 알려주었습니다.


80년대 중반에는  학교앞마다 헌책방 한두군데는 꼭 있었습니다.   그 헌책방에 가니  온통 중고등학교 참고서로 가득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하교후에  몇일을 그 헌책방에서 살다 싶이 했습니다.  헌책방이 좋은 이유는  거의 똑같은 내용인데 단지  1년 지났다고 가격이 무척이나 싸더군요.  뭐 간혹   공부한답시고 샤프로  활자들을  먹칠한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공부한 흔적이 전혀 없는 책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럴때는  유레카~~를 외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은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  낙서가 되어 있거나  공부를 열심히 한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것은  대부분의 책들이  1,2,3단원만  공부한 흔적이 있구 뒤쪽은  새책과 다름없었습니다. 샤프로 먹칠한 공부의 흔적들은  헌참고서를 한아름 싸들고 집으로 가면서 점보지우개를 사서 박박 지웠습니다.    하루종일  아들녀석이 지우개똥 날리면서 뭔 작업을 하나  어깨넘어로 보시던 어머니는  마음이 짠하셨나 보네요.     아들녀석이  돈 아낀다고  새참고서 안사고  헌참고서 사서 일일이 지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나 봅니다.

이 녀석아! 돈을 달라고 하지 왜 헌책을 사와~~
여기만 지우면 새책과 똑같은데요 뭐~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간후  주말이나 평일날  야구응원한다면서 동대문야구장으로 응원갈때가 있었습니다.
야구 응원후 근처 평화시장을  친구와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헌책방 비슷한곳을 발견했습니다.

지금도  이 평화시장 1층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좀 특이했습니다.  헌책도 팔긴파는데  덤핑책들이 많아 보이더군요.
책에 하자가 있어서 반품되거나 안팔린책들의 배출구 같았습니다. 여기서 성문기본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샀습니다. 책은 새책이고 가격은  3천원이상 싸더군요. 도매시장인가?   이후에 참고서나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영어 맨투맨등을 사러갈때 꼭 이곳을 갔었습니다.
지금은 학습참고서 파는곳은 없고 기독교서적이나 아동서적등을 파는곳이 많아 졌더군요.

이런 75,000 단어장도 볼수 있습니다.

아직도 88년도에 산  성문기본영어가 집에 있네요.


이후 헌책방에 가보질 않았습니다.  책을 잘 읽지도 않았던 20대에는  헌책방은 물론 서점도 가끔 들렸습니다. 오히려 군대있을때 책을 끼고 살았네요.  공군에서 외출 외박시에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점을 꼭들렸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인터넷 서점이 들어선 2천년대 초 알라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들짝 놀랐죠.  아니 책이  왜 이리 싸~~  서점보다 30%나 싸네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왜 이런것을 몰랐을까 머리를 쥐어 박으면서   서점에 가던 발긴은 뚝 끊겼습니다.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면서 기존의 서점들은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온라인서점과 도저히 경쟁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책의 가격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죠.

일반서점보다 보통 30%이상 싸니  바보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는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격은 헌책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여러 인터넷 서점들이  중고서적을 판매하고 있지만   새책과 헌책의 가격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배송비도 무료라서  헌책의 가격적인 매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번도 헌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몇일전에 일부러 헌책방을 들려봤습니다. 집근처에 있는 헌책방인데  대방동에서 신림동으로  옮겼다고 하시더군요.
장사가 잘 안되서 큰 길가로 옮겼다고 하시더군요

헌책방에 들어설려니 근처 중학교의 여학생둘이 들어가더군요.  살며시 제 20년전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세월은 변했어도 부모님 부담 덜어줄려고 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네요.




헌책방은 크지 않았습니다. 30평정도 되는데  백빽하게 들어선 책장들이 보이더군요.  규모만 작으면 제 방같아 보이더군요. 저도 집에 책들이 많아서  그냥 막쌓아놓고 있습니다.  책들은 80년대 90년대 초 책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읽던 책들도 보이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책을 골랐습니다. 한 두번 읽었던 신경숙 단편소설집인데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소장하기 위해 골랐습니다.  가격은 2천원입니다.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난듯한  책도 보입니다. 배짱으로 삽시다!!  이시형박사의 책인데 80년대 중후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80년대 화두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화병이라고 하는것이 있었어요. 지금은  화병이라는 단어를 거의 듣기 힘든데  80년대 한국은  화병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욕망대로 살지못하고  옥죄이고 숨막히게 하는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사회가 낳은 병인데 
그런 한국인들을 치료해주는  책들이 많이 팔렸고 그 대표적인 책이 배짱으로 삽시다입니다.   남을을 의식해서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라라는 말을 해준 책이죠.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한국사람들  주변 눈치 보면서 사는 분들이 많잖아요.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라는 반가운 책도 보이네요. 정신과 의사 이나미가 쓴책입니다.
서점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책을 보유했다기 보다는 한권의 책이  여러군데서 보이더군요.  풍금이 있던 자리를 고르고  다른 책장을 뒤적이다가 책상태가 더 좋은 풍금이 있던 자리를 발견하고 바꿔치기 했습니다.  한 10권정도가 곳곳에 꽂혀 있더군요.



헌책방의 묘미중 하나는 보물찾기에 있습니다. 정말 희귀한 책이나  예전책들을  골라볼수 있습니다.  잘만 고르면 
대박을 건질수도 있습니다.




제가 건지 대박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입니다.  83년에 초반이 나온 책인데 2천년도에 절판된 책입니다.  80년대에 저자 이규태가 바라본 한국인과 제가 2009년에 바라보는 한국인과의 차이점을 발견하면 우리 한세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수 있을듯 합니다.

한국에서 헌책방의 존재이유는 사실 크지 않습니다.  왠만한 책들 잘 읽히는 책들은 새옷을 입고  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가격도 헌책과 새책이 크게 차이 나지도 않습니다.  책이 점점  1회용 종이컵처럼 한번 읽고 버리는것이 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북크로싱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한국에서는 미비합니다.  또한  중고서적거래도 그렇게 활발하지 않구요.

배송비에 조금만 더 보태면  새책을 살수 있기에  이런 풍경이 생긴것일수도 있습니다.  헌책방들이  예전처럼 동네마다 있어서 중고서적들의 허브역활을 해주면 좋으련만 서울에서도 이제 몇군데 없습니다.   헌책방도 사라지고 서점들도 사라지고 그렇다고 새책도 잘 안팔리고  출판시장 전체가  몰락한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책 안읽는 사람들을  원시인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오로지 책과 신문을 통해서 습득했다면 이제는 영상매체로도 훌륭한 정보를  얻을수 있구  인터넷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을 살리자~~ 책을 읽자~~ 라는 구호는 어쩌면 공허하게 들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을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정보습득이 아닌  정서햠양을 위해서입니다.

책은  피자의 도우와 같습니다.   활자매체로  상황과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모든것을 읽는 독자가 머리속으로 그려내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같이 녹여내면서 책을 읽고 그 피자의 도우위에  개인의 느낌과 경험이라는 토핑을  올려놓고  굽는게 책입니다.
하지만 TV나 영상매체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처럼  그냥 다 만들어진거 고르면 됩니다.    맛은 있을지는 몰라도  몸에 좋지는 않죠.

책은 정서함양에는  어떤 매체도 아직까지  따라 올수 없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는 사람은  그 사용어휘나  어법과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는데 뛰어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16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256가지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죠


이번주가  책주간이라고 하네요.  혹 근처에 헌책방이 있다면 한번들려보세요. 책은 안사도 좋습니다.  책에 대한 기억만 들이마셔도 좋은 경험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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